마지막의 불꽃
1980년 5월 27일, 새벽의 전남도청은 적막 속에 싸여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도청 앞 광장을 뒤덮고,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군의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전날 밤부터 시민군들은 도청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압군의 진입은 시간 문제였다.
주인공 진수는 스물셋의 대학생이었다. 처음 광주에 폭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할 때,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민주주의와 정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국가 폭력은 그의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친구들이 총에 맞고, 시민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본 그는 도청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진수는 전남도청을 둘러싼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손에는 전투용 총을 쥐고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용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불안과 분노만이 가득했다.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택시 기사, 농부, 그리고 대학생들. 그들 모두 총을 처음 잡아본 이들이었다.
"이제 곧 올 거야," 옆에 있던 동료 중 한 명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눈빛만은 결연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자리를 지키는 한, 그들은 절대 이 도청을 쉽게 넘지 못할 거야."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두려웠다. 하지만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친구 정우를 떠올렸다. 며칠 전, 정우는 시위 도중 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은 진수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되자 도청 밖에서 무거운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압군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탱크의 무거운 바퀴 소리가 지면을 진동시켰고, 수백 명의 군인들이 전열을 정비하며 도청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준비해!" 시민군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진수는 총을 들고 몸을 낮췄다. 주변의 동료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죽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그 순간, 마침내 총성이 울렸다. 진압군이 도청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시민군들도 총을 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무기는 상대적으로 빈약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총성 속에서 혼란은 극에 달했다.
진수는 재빠르게 벽 뒤로 몸을 숨기며 총을 쏘았다. 그의 몸은 이미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움직였다. 도청 안쪽에서는 부상자가 속출했고, 시민군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와 그의 동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압군의 수는 너무 많았고, 그들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점점 더 많은 시민군들이 쓰러졌고, 진수의 몸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의 눈앞에서 동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피와 연기가 가득한 도청 안은 마치 지옥과 같았다. 진수는 한 손으로 총을 잡고, 다른 손으로 상처를 누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군인과 마주쳤다. 진압군은 차가운 눈빛으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진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총알이 발사되기 직전, 그의 눈앞에는 정우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했던 평화로운 날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던 미래가 한순간에 지나갔다.
"정우야, 미안해… 난 끝까지 지키지 못했어." 진수는 속으로 외쳤다.
총성이 울렸다. 진수는 쓰러지며 차가운 지면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피로 물든 도청 안에는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멈췄다.
에필로그
몇 시간이 지난 후, 전남도청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그곳에 남아 있던 마지막 시민군들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싸운 이유,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광주의 거리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광주 시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진수와 그와 함께 싸웠던 이들은 비록 그날 도청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했다. 그들이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불꽃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진수는 그날의 새벽, 마지막까지 싸웠던 그곳에서 여전히 광주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있던 희망과 꿈은 그날의 밤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끝.
이 소설은 5.18 민주항쟁의 마지막 순간, 전남도청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시민군들이 진압군에 맞서 싸우며 그들의 신념과 용기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모습을 담았고, 그들의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