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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6 - 12장 4 (역사의 마지막 종착역)
성경본문 : 다니엘11:36-12:4
36.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쉴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 열조의 신들과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아무 신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나
38. 그 대신에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39. 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취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
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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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다니엘 12: 1-4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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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다니엘의 영적 싸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애통하며, 생명을 걸고 금식하고 기도하자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힘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 천사가 역사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했습니다.
11장에 나오는 모든 내용은 그 천사가 들려주는 역사의 미래에 대한 계시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11장에서 역사를 개관하고 있는데, 그 역사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가 전쟁입니다. 싸우고, 죽이고, 정복하고, 그리고 조약을 맺고, 배반하고 이런 역사가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역사는 전쟁사(戰爭史)이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시대든지 세계 역사 속에서 전쟁이 없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개발한 것이 전쟁 무기였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다니엘에게 역사를 전쟁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에서부터 안티오커스 4세까지의 역사를 개관하며 그때 일어났던 전쟁과 폭력과 살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원전 6세기에서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약 400년간의 고대 서아시아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페르시아 시대(2절)부터, 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3절), 톨레미 왕조(5-6절), 톨레미 왕조와 셀류쿠스 왕조의 전쟁(7-9절), 안티오커스 3세(10-19절), 셀류쿠스 4세(20절), 안티오커스 4세의 난폭성(21-39), 그리고 안티오커스 4세의 몰락(40-45)의 역사입니다.
물론 여기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은 안티오커스 4세입니다. 엄청나게 유대인을 학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악의 상징이요, 죄악 그 자체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페르시아에서부터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까지. 이 역사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페르시아는 포로로 잡혀왔던 유다 백성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적인 모든 요소를 파괴한 사람입니다. 율법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사도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역사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역사가 점점 악해져 가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면서 악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점점 악이 기승을 부리고 죄악이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신앙의 사람이 신앙 인답게 살기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과연 이렇게 끝날 것인가? 인간의 운명은 죄악의 구렁텅이에 속으로 깊숙이 빠져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사라져버린 역사가 될 것인가?
오늘 본문의 말씀들은 여기에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말론의 역사관입니다.
종말론은 어두운 역사 현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전쟁의 역사,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까지 이르는 이 역사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악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지상의 통치자들끼리 제멋대로 치고 박는 싸움의 역사입니다. 이 어두움이 역사의 끝인가?
만약 역사가 어두움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절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모든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이 세상이 결론지어진다면, 신앙인이 신앙의 지조를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어두움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밤이 깊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진리를 무시하고, 인간을 천대하며, 자기 멋대로 날뛰는 지도자가 나타나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마저도 하나님께서 관장(管掌)하고 계십니다. 오히려 가장 어두운 그 순간에, 역사가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추한 그 때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장 45절과 12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할 때, 그 어두움의 때에 종말이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미가엘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 세상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정의보다 악이 판을 치고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여 피로 얼룩진 세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려는 하나님의 백성보다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들에게 동조하도록 유혹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 다니엘서는 그 물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그 물음에 답을 주기도 합니다.
욥기는 의인의 고통의 원인이 사단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이 세상의 전쟁의 배후에 악한 사단의 세력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책에서조차도 결코 그 배후 세력, 그 원인이 초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가? 여기에 물음을 던지기 보다는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이러한 고통을 이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역사가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럽고, 악으로 치닫는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역사의 궁극적인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모든 핍박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그 때가 종말의 때입니다. 그 때에 이 부패한 역사 속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가 있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개입하시는 때가 역사의 마지막 종착역입니다. 그때에 이 세상 역사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역사의 마지막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첫째 그 종착역은 구원의 역입니다.
12장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에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환난이 역사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책은 하나님 백성의 명단입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산 사람입니다. 환난의 때에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고난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두움의 시대에 믿음을 지키며 살기 위해 온갖 수모와 고통을 모두 감내한 사람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그 종착역은 부활과 영원의 역입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즉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으려 하다가 순교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악과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으로 끝날 것인가? 결코 아니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을 것이다' 는 약속입니다. 부활은 고난 당하고 핍박받던 자리에서 악을 벌하고 의를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라고 일컫는 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이 시기하고 모함하는 악행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의의 승리를 만 천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다가,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 이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그 자리로 내려간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그 순간에 그 하나님의 백성을 부활시킴으로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시고, 그의 억울함을 시원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핍박의 시대, 순교의 시대, 어두움의 시대에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의 원천은 부활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의 삶이 이 세상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수모, 고통 이 것이 다 헛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불쌍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죄와 어두움의 역사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그 날, 어떤 사람은 부활로 영생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사람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그 종착역은 상급의 역입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니라".
'지혜 있는 자'가 받게 될 명예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것은 결코 세상적인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지혜자는 출세한 사람도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익힌 사람도 아닙니다.
구약성서에서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서에서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뜻을 정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의 지혜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왜 다니엘을 지혜 있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뜻을 정하고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지혜자는 처세술에 능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어두운 시대에 지혜자는 고난을 당합니다. 순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구원이 약속되고, 부활과 영생이 약속되고, 상급이 보장된 이 사람들은 모두 지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무엇이 지혜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신앙인이 신앙 인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으로 살려하다가 순교의 자리에까지 들어가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양심을 지키고, 믿음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별은 천상의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지혜 있는 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천상의 존재와 같은 정도까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천상의 존재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는 자리에 함께 영광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2장 5절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다스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역사의 종착역이 어디입니까?
죄악으로 망해 가는 세상 역사입니까?
죽음이 여러분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에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더럽고, 추하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목적이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그러한 어두운 시대에도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지혜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하나님 말씀을 준수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사람에게 핍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이 따라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구원이 약속되었습니다. 부활과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고 세상을 다스릴 날이 약속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런 믿음과 지조와 확신을 가진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역사를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이 세상을 변혁하고,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이 민족, 이 나라, 이 사회를 옳은 데로 인도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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