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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는 목적
23:24-25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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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금년 1월1일 0시부터 15분까지 함께 모여 앉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새해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후 계속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1월달에 성경을 이미 일독을 하신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대 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책 한권 이상씩을 다 읽었습니다. 이것은 교회학교에서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년에 우리 교회가 펼치는 성경읽기 운동을 크게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읽기를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증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할려고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을 순종할려고 피땀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또 말씀을 대항합니다. 그리고 불순종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순종한 왕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씀은 이와 같은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 말씀을 온전히 순종할려고 노력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영어성경에서는 Heart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양심입니다. 양심에 거리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성품은 영어성경에서는 Soul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석하고 해석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은 육체적인 힘입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마음과 정신과 육체와 영적인 모든 힘과 지식을 총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그것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었다는 공적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는 이유를 우리가 잘 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말씀을 읽는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살다가 멸망의 길로 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들면 사울은 하나님의 택한 정말 멋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키도 컸습니다. 준수하게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마음도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13:8-12). 이것은 하나님을 심히 노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공격해서 그 백성과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전쟁이니까 이미 이겨놓고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정말 이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소유를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죽여야 하는 데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여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15:10-11).
이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물런 사울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앞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기쁘게 축복하십니다.
사울에 이어서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허물이 없었습니까? 그에게도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아내 밧세바와 잠을 자며 사랑을 나누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모든 전우들이 야전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데 어떻게 내가 아내와 편히 잠을 잘 수 있느냐고 거절했습니다. 다윗이 이틀을 함께 잠을 자도록 시도해도 안되니까 다윗이 야전 사령관 요압에게 우리아를 싸움이 격렬한 곳에 보내어 죽이라는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정말 국가와 왕에게 충성하는 우리아를 이렇게 해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악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나단의 책망을 들은 후에 쓴 다윗의 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51:7).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51:4).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하면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려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주신 성경을 읽으며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성경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읽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는 로마서 8장에서 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적인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인도를 따라 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1-11).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의 양식을 먹이는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서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우리 신명기 8:3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 보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훈련을 시키시며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육의 양식이 없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도 금식기도하신 후에 심히 배가 고프신 때에 사단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3)고 시험했습니다. 이 시험은 "네가 40일 동안 굶주렸으니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해서 먹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의 말씀을 즉시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느니라 (마4:40)."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아서 죄를 짓고 타락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불 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무엘이 처음으로 사울왕을 세우면서 단단히 일렀습니다. 사무엘 상12:13-1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 이제 너희의 求한 王 너희의 擇한 王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王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萬一 여호와를 敬畏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命令을 拒逆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王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萬一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命令을 拒逆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列祖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왕들이 이 말씀을 먹고 기억하여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으면 이스라엘이 더 많은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요사야왕도 성경이 없었습니다. 성전을 수축하기 위해서 돈을 꺼낼려고 연보궤를 뒤지다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왕들이 말씀이 없으므로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바알신상도 세우고 거기서 바알에게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마다 바알신을 섬기는 산당을 만들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성전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먹었습니다.
조상들이 한 일은 하나 같이 옳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써 말씀에 어긋난 것은 개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시야의 이 행동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왕하 23: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向하여 震怒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震怒를 돌이키지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激怒캐 한 그 모든 激怒를 因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城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殿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조상들이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요시야가 이렇게 노력을 해도 예루살렘과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먹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정말 영적질병이 온 땅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건강한 사람은 음식을 보면 먹고 없으면 요리를 해서라도 먹듯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말씀을 먹게 되어 있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먹고 소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 기갈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크리스찬들이 말씀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안 먹어도 굶주림을 못 느낌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문둥병 환자가 환부의 통증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영적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택동이가 문화혁명을 일으키면서 모든 성경을 불사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읽는 사람은 체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영적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서울에 있는 극동 방송국에서 자정에 중국어 성경 낭독을 전파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이 거의 끝나갈 무렵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 편지가 극동방송국에 왔습니다. 내용은 그 사람이 방송을 들으면서 창세기부터 계속 받아 적고 있는 데, 사무엘 상 15장 읽을 때 방송 상태가 고르지 않아서 받아쓰지 못했으니, 언제 날자를 잡아서 다시 들려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나운서가 편지 잘 받았다는 방송을 띠우고 몇월 몇일에 그 부분을 읽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어서 그 부근을 읽었습니다.
이후 여러달 후에 극동 방송국에 편지가 왔습니다. "나는 이제 성경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성경은 붓으로 적었기 때문이 지게로 한 짐이라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이 삶은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고 달게 먹는 자세입니까?
중국은 아직도 성경을 맘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이 없습니까? 우리는 성경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성경이 한두권 이상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읽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시야 시대때 성경을 연보궤속에 넣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죄를 짓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온 미주에 성경읽기 붐을 일으키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고 읽도록 서로 권하고, 서로 격려하는 역사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인생의 등불이기 때문에 읽어야 합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국 항공모함이 비율빈 해협을 통과하고 있을 때 수병의 상의가 바람에 날려 물속에 떨어졌습니다. 이 수병은 자신의 상의를 건지기 위해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수병은 상의는 건졌지만 모함으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모함이 멈춰야하고 보트를 내려야 했습니다. 결국 함장은 수십대의 비행기를 싣고 있는 항공모함을 멈추고 보트를 내려 이 수병을 구조했습니다.
그는 즉시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이런 진술을 했습니다.
"저로 인하여 작전에 지장을 초래한 것은 저의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저의 어머니가 입대할 때 주신 성경과 성경안에 든 어머님의 사진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성경을 다시 건지지 않았으면 저는 군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매일 매일 나의 하루의 등불로 삼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법관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합중국 헌법에 성경과 어머니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물에 뛰어든 수병을 처벌 하는 귀절이 없다며 무죄를 선언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편 119편을 사랑합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는 시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 "내가 주의 증거(말씀)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99-100).
위의 말씀은 말씀이 나의 인생길을 인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답답할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말씀을 펴고 읽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하시든지 영감을 주시든지 할 것입니다. 말씀은 이 세상에서 낙망하던 사람들을 인도하여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기차에다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일하며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실험을 하다가 기차에 불이 붙자 차장이 화가 나서 에디슨을 창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 때 머리를 다친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에디슨은 처음에는 자기를 차창으로 버린 그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사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연구하여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성경을 항상 들고 다녔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모든 공직자들이 취임할 때 성경위에 손을 얻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의 말씀대로 이 나라와 국민을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성경을 열심히 읽고, 먹고 연구해서 영원토록 축복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