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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 33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 히 10: 39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
히 10: 33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
본문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박해에 대해 인내했던 구체적인 모습들에 대한 표현이다. 본문은 교차 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Riggenbach, Vanho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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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과 환난으로써 사 이런 형편에 있는 자
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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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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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비방'은 거짓으로 고소하여 비난하는 것을 나타sosek.
'환난'은 폭력을 동반한 박해를 의미한다(Lane).
'구경거리'(데아트리조메노이)는 `데아트론'(극장)과 연관된 것으로 공적이고 공개적인 박해를 받는 것을 나타낸다.
수신자들은 과거에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폭력을 당하기도 하며 공개적으로 조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빼앗기는 것'(텐하르파겐)에 대해서 혹자는 수신자들이 자신이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재산을 자진 헌납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Buchanan) 본 절에서는 수신자들이 당한 박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치 않다.
'텐하르파겐'은 도리어 폭도들에 의해 재산조차 빼앗기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시사한다(Morris).
2]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본문은 고난당한 그리스도인들과 동참함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재산이 하나도 없이 감옥에 갇힌 자는 밖에 있는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굶어 죽기 쉬웠기 때문에 당연히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을 돌보는 것은 감옥에 갇힌 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였다(Bruce).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봄으로 감옥에 갇힌 자들의 고난에 동참하였다. 비록 이런 행위가 당시에는 위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장래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행위이다.
* 마 25: 36 -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히 10: 34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
1]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예수님 믿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경험하였고 그 싸움에서 잘 참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일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환난을 당했고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더 낫고 영구한 기업 즉 천국을 확신하였고 그 소망이 견고했기 때문에 옥에 갇힌 주의 종들을 동정했고 자기들의 재산과 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꺼이 당하였다.
2]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수신자들이 앞서 언급한 위험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큰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다(Bruce).
* 눅 6: 22-23 -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저자는 고난과 위험을 감수하며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휘파르크신'(산업)을 수신자들이 지상에서 고난당하면서 상실했던 '휘파르콘톤'(산업)과 연결시켜 비교함으로 고난과 위험을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산업이 훨씬 더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다(Lane).
히 10: 35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우리는 믿음의 담대함과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큰 상은 믿음의 결과인 영생과 천국의 영광을 가리킨다.
또 성도의 믿음의 길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믿음은 인내를 통해 온전케 된다. 참으로 믿는 자는 끝까지 참을 것이다.
1]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담대함'은 본서에서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
Ⓐ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4: 16. 10: 19).
Ⓑ 새 시대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용기 있는 신앙을 나타낸다(3: 6).
본 절은 후자의 경우로 사용되었다.
'담대함'은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비방과 재난을 당하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받을 상 때문이다(34 절. 11: 26).
* 눅 6: 23 -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얻느니라)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며(11: 6) 그 상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23,25 절. 9: 28, Lane).
히 10: 36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필요함'(크레이안)은 단순히 바라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담대함뿐만 아니라 인내도 그리스도인의 표식임을 시사한다(Lane).
2]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고난과 위험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잘 인내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약속'을 받게 된다.
그 '약속'은 새 언약 하에 있는 하나님 백성이 바라보아야 할 최종적인 목표로서 앞 절의 `큰 상'과 동일하며 `영생'을 의미한다(9:15, Thompson).
히 10: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본문은 합 2: 3,4(LXX)의 인용이다. 개역 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절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반드시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그 이유는 '잠시 잠간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사실이다.
잠시 잠깐 후라는 표현은 주님의 마음을 표현한다.
요한계시록 22 장에서 주께서는 3번이나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세 번째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다(22: 7, 12, 20).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인내함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불신앙은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을 가져온다.
* 막 16: 15-16 - ⑮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⑯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요 3: 36 -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1] 잠시 잠깐 후면
'잠시 잠깐'은 사 26: 20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환난과 위험의 기간이 짧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곧 재림하셔서 심판과 보상을 하실 것을 암시한다.
* 사 26: 20 -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실 이'는 70인 역에서 '에르코메노스'인 반면에 본 절에서는 '호 에르코메노스'로 본 절에는 관사 '호'가 첨가되어 있다.
70인 역에서 '오실 이'는 '기다리던 어떤 구원자'에 불과하나 저자는 본문에서 관사를 첨가함으로 재림 때에 오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Michel, Spicq, Lewis).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속히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인내해야만 한다.
히 10: 38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오직)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1] (오직)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의 의인'은 '살리라'와 '물러가면'의 주어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Morris, Lane, Hewitt, Bruce).
* 롬 1: 17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갈 3: 11 -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사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 합 2: 4 -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의롭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의롭게 되지 않는 것을 무조건 의롭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다.
죄인 된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주도권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칭의를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죗값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받기로 하고 우리의 죗값을 그에게 지우셨다.
죄가 없으신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마침내 예수는 하나님의 의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십자가의 피로 충족시키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의롭게 만들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 놓으셨다. 남은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그 은혜를 전적으로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속히 오시리라는 사실을 믿고 직면한 고난과 박해에 대해 담대하게 맞서며 인내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삯과 약속을 허락하실 것이지만 반대로 뒤로 물러나 인내하지 못하고 배교한다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고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히 10: 39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저자는 본 절에서 앞서 인용한 합 2: 3-4의 결론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신자들이 믿음을 가진 자임을 확인시킴으로 파멸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 합 2: 3-4 - ③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④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만약 수신자들이 직면한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여 배교를 한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멸망의 심판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림으로 박해와 위험을 잘 인내하고 담대하게 맞서서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에 이를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의 '믿음'을 언급함으로 다음 장에서 설명할 믿음을 예시하고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즉 믿음의 충만한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둘째, 성도는 우리의 소망의 내용들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한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재림과 의인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다.
셋째, 성도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우리 각인은 사랑과 선행을 힘쓸 뿐 아니라, 그 일을 서로 격려해야 한다.
넷째, 성도는 주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증진에 유익하다.
다섯째, 성도는 고의적으로 계속 죄를 범하는 배교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중생한 자는 배교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고는 필요하다. 사실, 거듭난 자만 이 경고를 듣고 순종할 것이다.
여섯째, 성도는 믿음의 담력과 인내를 끝까지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