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3: 20 부모에게 순종하라 - 골 3: 22 눈가림만 하지 말고
골 3: 20 부모에게 순종하라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에게 순종치 않는 것은 성경 말씀이 엄히 정죄한다.
잠 30: 17에 말하기를,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다.
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모든 일이란 말은 그렇게 엄밀하게 볼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부모가 명하는 것들 중에 악한 것까지도 포괄하는 모든 일이 아니다.
순종하라의 헬라어 '휘파쿠에테'(*)는 아내들에게 권면할 때 사용했던 용어인 '휘포탓세스데'(*, 복종하라)에 비해 강제적이다.
'휘파쿠에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절대적이며 지속적인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순종하라는 말은 18절의 복종하라는 말과 다르다. 18절의 것은 통솔(統率)에 종속함을 의미하고, 본 절의 것은 교훈에 청종(聽從)함을 의미한다.
* 출 20: 12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레 19: 3 -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신 5: 16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 잠 23: 22 -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 눅 2: 51-52 -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엡 6: 1-2 -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2]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개역 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본문은 자녀들이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기쁘게 하는'의 헬라어 '유아레스톤'(*)은 뒤에 여격을 동반한다. 그래서 '토퀴리오'(*, 주를)가 되어야 하나 헬라어 본문에는 '엔 퀴리오'(*, 주 안에서)로 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자녀들의 순종이 '주안에서' 행해져야 함을 시사한다(Moule).
Ⓑ 그리스도인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Lightfoot).
Ⓒ 부모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절한 것이며 마땅한 것임을 의미한다(Lohse, Martin).
이 세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이것은 성도들의 도덕 표준에 부합하다는 의미이다(Lightfoot).
성도들의 도덕 표준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본(寫本)은 이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주 안에서'의 헬라 원어를 "주에게"란 말로 고쳤다.
성도는 세상의 안목(眼目)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보다 먼저 그리스도에게 부합하도록 행함이 필요하다.
골 3: 21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
부모는 단순히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를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 시 127: 3 -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엡 6: 4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노엽게 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로 '자극시키지 말라'(do not embitter, NIV)는 의미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엡 6: 4이 더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이다.
부모 된 자들이 자녀를 격노케 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1) 자녀들을 훈계할 때, 자기들의 권위와 방법과 표준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2) 자녀들이 순종치 않는 경우는 혈기와 울분에 끌리어 강박(强迫), 악담(惡談), 폭력을 사용하는 데 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자기들의 권한을 남용하여 지도하는 때에는 필연적으로 실패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자녀를 교양함에 있어서 자기들의 권위나 방법을 자의적(恣意的)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이 일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만이 주인이시므로 그리스도만이 그 권위와 방법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하신 교양과 훈계를 그 자녀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혹시 그 자녀가 불순종하는 때에도 그들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온유하게 지도해야 된다.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부모가 그 자녀를 옳게 지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모에게 대하여 노여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그 부모에게는 잘못이 없다.
2] 낙심할까 함이라.
이 문구에 대한 벤겔의 강해를 보면, "낙심은 청년의 패망이다"라고 말했다.
골 3: 22 눈가림만 하지 말고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혹자는 본문에서 바울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권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Carson, Lohse).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3: 11)와 그리스도인 노예가 상전을 계속 섬겨야 하는 노예 제도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염두에 두었다고 불 수 있다(O' Brien).
1]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육신의 상전이라는 것은 지상적 영역 안에서만 상전임을 가리킨다.
바울 당시에는 노예 제도가 사회의 일부분을 점령하고 있었다. 바울이 성도의 가정 도덕을 진술함에 있어서 종은 그 주인을 속여 가면서 맡은 일을 게으르게 하고, 주인은 노예를 학대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도덕적 해결책을 여기에서 진술하였다.
그는 육신의 상전이라는 말로 노예들의 인격적 가치의 고귀함을 설명하여 그들의 눌린 심령을 위로한다. 이 말은 노예들이 육신적으로 노예된 것이고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믿는 한(限), 남들과 같이 영생의 복을 누릴 자유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 문구에 대하여 크리소스톰은 강해하기를, "바울의 이 말은 노예들의 인격의 더 좋은 부분(영혼)은 자유하다는 것이며, 노예로서의 그들의 고역은 잠간임을 밝힌다."라고 하였다.
순종하되의 헬라어 '휘파쿠에테'(*)는 자녀들에게 권면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용어로 강제성이 부여된 순종을 의미한다.
2]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본 구절에서 바울은 두 가지 차원에서 권면을 하고 있다.
(1) 부정적 측면으로 눈가림으로 순종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눈가림이란 주인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행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놓고 그 사람을 즐겁게 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2) 긍정적 측면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성실한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결하고 정결해서 흠을 찾을 수 없는 마음이다(Carson).
그리스도인 종들이 이런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동기는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동기이며 원리이다.
* 눅 18: 2, 4 -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 벧전 2: 17 -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 계 11: 18 -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로 그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할 종교적 의미이다.
그의 생활은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니, 그의 직업도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마음속과 모든 은밀한 것을 밝히 보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행함이 마땅하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하려면 거짓됨이 없이 중심으로 그 직무에 충성해야 한다.
그의 수고가 주인 된 인간을 기쁘게 할 목적이면, 그것은 하나의 무의미한 고역(苦役)과 비애(悲哀)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노예의 수고도 주 안에서 행한 것이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봉사를 목표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천국 노동이다.
* 고전 7: 17-23 -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3]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성실한 마음으로란 말은 '단순한 마음' 곧 거짓 없는 마음을 의미한다.
노예도 다른 직무를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 날에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갖게 되는 성실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