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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경청하는 단계입니다.
사무엘의 고백처럼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דַּבֵּר כִּי שֹׁמֵעַ עַבְדֶּךָ). 본문을 분석하려 들지 말고, 본문이 나를 향해 말씀하시도록 귀를 여는 복종적 읽기입니다.
메디타치오 (Meditatio - 묵상):
읽은 말씀을 הָגָה(Hagah)하여 영혼의 소화 기관 속으로 끌어내리는 단계입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말씀이 내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환부를 도려내도록 내어주는 영적 소화 과정입니다.
오라치오 (Oratio - 기도):
말씀에 의해 발가벗겨진 심령이 하나님께 토해내는 응답입니다.
본문이 내 죄를 지적할 때 회개의 비명을 지르고, 본문이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낼 때 경배의 무릎을 꿇는 대화의 기도입니다.
콘템플라치오 (Contemplatio - 관상/안식):
모든 인간의 말을 그치고, 말씀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 자신의 임재 안에 온전히 머무는 침묵의 안식입니다.
시편 131편 2절: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그분의 임재로 채워지는 지성소의 단계입니다.
이 순환을 거치지 않은 설교는 종이 조각에 적힌 죽은 문자에 불과합니다. 이 거룩한 독서를 통해 설교자 자신이 먼저 말씀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재창조되어야만, 강단에서 생명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습니다.
4. 말씀에 복종하는 영혼: 칼자루를 하나님께 넘겨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관주: 예레미야 23:29, 에베소서 6:17, 요한복음 12:48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살아 있고'는 ζῶν(Zon), '활력이 있어'는 ἐνεργὴς(Energes, 강력하게 역사하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맹렬한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칼날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기서 말씀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체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칼날의 궤적 아래 누워 있는 대상은 교인들이 아니라, 바로 성경을 읽고 있는 목회자 자신입니다!
설교자가 성경을 읽을 때 빠지는 가장 간교한 함정은, 자신이 칼자루를 쥔 외과의사가 되어 교인들을 수술할 생각부터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먼저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좌우에 날 선 검(μάχαιραν δίστομον)이 당신의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먼저 갈라놓아야 합니다.
당신의 허영심, 당신의 세속적 야망, 당신의 위선적인 경건이 말씀의 서슬 퍼런 칼날에 먼저 베어져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렇게 피 흘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아침 나를 이렇게 도려내셨습니다"라고 증언하는 자, 그가 바로 참된 성경의 사역자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두 번째 숨겨진 각인 '성경 읽기(Reading Scripture)'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정밀하게 다시 고정하십시오.
설교 재료를 얻기 위해 성경을 뒤지는 도구적 착취를 당장 멈추십시오. 에스겔처럼 두루마리를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십시오. 젊은 사자가 먹이를 뜯어 먹듯 הָגָה(Hagah)하며 말씀을 씹어 삼키십시오.
성경을 지배하려는 주석가적 오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의 검 아래 온몸을 내어던지는 거룩한 굴복자가 되십시오. 내 영혼이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힐 때, 비로소 우리의 입술은 시대를 깨우는 하나님의 천둥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