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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3–24)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1. 십자가의 역설: 가장 깊은 수치 속에 감추어진 지고의 영광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 제5장에 이르러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영적 신비의 극치를 다룹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Humiliation)과 십자가의 죽음 안에 감추어진 찬란한 영광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육에 속한 시각으로 볼 때,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는 실패와 치욕, 그리고 처참한 무력함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가 성령의 조명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그 십자가를 응시할 때, 그곳은 "하나님의 모든 신적 속성(공의, 거룩, 지혜, 자비, 권능)이 한 지점에 모여 가장 찬란하게 폭발한 우주적 영광의 용광로"로 변모합니다.
오웬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십자가에 달리신 이 비하의 과정을 묵상하지 않고는, 결코 승귀(Exaltation)의 영광을 온전히 맛볼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2. 헬라어 원어로 파헤치는 자기 비하의 신학적 깊이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노래한 '그리스도 찬가(Carmen Christi)'는 오웬의 기독론적 묵상의 핵심 기초가 됩니다.
[빌립보서 2:6-8의 7단계 하강 구조]
1.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심 (μορφὴ θεο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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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등됨을 집착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심 (οὐχ ἁρπαγμὸν ἡγήσατ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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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기를 비우심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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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의 형체를 취하심 (μορφὴν δούλου λαβώ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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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람들과 같이 되심 (ἐν ὁμοιώματι ἀνθρώπω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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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기를 낮추심 (ἐταπείνωσεν ἑαυτὸ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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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 (μέχρι θανάτου, 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
(1) 모르페 테우 (μορφὴ θεοῦ, Morphe Theou) : 본체의 영광
빌립보서 2장 6절의 *모르페(μορφή)*는 단순한 겉모양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사물의 내적 본질이 밖으로 표현되는 '본질적 형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를 조금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2) 우크 하르파그몬 (οὐχ ἁρπαγμὸν, Ouch Harpagmon) : 집착하지 않으심
*하르파그모스(ἁρπαγμός)*는 '강탈하여 빼앗은 전리품' 혹은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꽉 움켜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등한 영광을 소유하셨으나, 타락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신적 특권과 가시적 영예를 당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결코 고집스럽게 움켜쥐지 않으셨습니다.
(3) 에케노센 (ἐκένωσεν, Ekenosen) : 케노시스(Kenosis)의 참뜻
7절의 "자기를 비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노오(κενόω)*는 신성의 본질을 버리거나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를 멈추실 수는 없습니다.
오웬은 이 케노시스를 "빼앗김(Subtraction)에 의한 비움이 아니라, 취하심(Addition)에 의한 비움"으로 정의합니다. 즉, 자신의 신적 본질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티끌과 같은 인간의 연약한 본성(종의 형체)을 당신의 인격 안에 덧입으심으로써, 당신의 신적 영광의 광채를 인간의 육신이라는 장막 뒤로 감추신 것입니다.
(4) 스타우로스 (σταυρός, Stauros) : 십자가의 극심한 저주
바울은 복종의 끝을 단순히 '죽음(thanatos)'으로 끝맺지 않고,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고 덧붙입니다.
로마인들에게 십자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노예와 반역자의 사형틀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신 21:23, 갈 3:13)"라는 종교적 파문에 해당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우주의 주재께서 가장 더러운 저주의 낙인을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3.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입맞춘 십자가의 영광
오웬은 시편 85편 10절("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을 인용하며, 피조물의 지혜로는 결코 화합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상충하는 속성들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완벽한 일치를 이루어 영광을 발하는지 설명합니다.
(1) 공의(Justice)와 자비(Mercy)의 완전한 일치
율법의 요구: 죄를 범한 영혼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는 죄를 결코 눈감아줄 수 없습니다.
사랑의 갈망: 하나님의 자비는 멸망할 죄인을 향해 긍휼을 베풀고자 합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공의를 세우면 자비가 죽고, 자비를 베풀면 공의가 훼손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성자의 몸에 남김없이 쏟아부으심으로써 공의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셨고, 그 결과 죄인에게는 값없는 구원이라는 무한한 자비를 쏟아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두 거룩한 속성이 단 1%의 손실도 없이 십자가 위에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2) 사탄의 책략을 부수어 버린 하나님의 절대적 지혜
사탄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을 때, 자신이 하나님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2장 8절은 선언합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님은 사탄이 쳐놓은 가장 잔인하고 간교한 덫(십자가의 죽음)을 역이용하셔서, 바로 그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시고 사망 권세를 영원히 결박하셨습니다. 원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빼앗아 원수를 처단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지혜의 영광입니다.
4. 십자가를 참아내신 동력: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히브리서 12장 2절은 성도가 평생토록 묵상해야 할 십자가의 내적 동기를 밝혀줍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ἀντὶ τῆς προκειμένης αὐτῷ χαρᾶς)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의 피땀과 골고다의 찢김, 그리고 부끄러움(Shame)을 초월하여 끝까지 인내하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바로 그분 앞에 놓여 있던 ‘기쁨(χαρᾶ, Chara)’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쁨이란 무엇입니까?
성부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는 기쁨 (요 17:4)
당신의 피로 사신 신부(교회)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품에 안으시는 기쁨 (사 53:11)
만유의 주로서 승리하여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영광의 식탁을 나누는 기쁨
주님은 눈앞의 참혹한 수치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수치 너머에 완성될 영원한 영광의 결실을 미리 바라보셨기에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5. 관주 성경으로 해부하는 십자가의 역설적 영광[관주 1] 골로새서 2장 14–15절: 승리의 개선행렬이 된 십자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밝히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θριαμβεύσας αὐτοὺς ἐν αὐτῷ)'"
로마 군대가 개선식을 거행할 때 패배한 적국의 왕과 장수들을 사슬에 묶어 조롱거리로 끌고 가듯(thriambeuo),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흑암의 세력들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셨습니다.
사형틀이 승리의 전리품 진열대가 되는 역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선포하는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관주 2] 갈라디아서 6장 14절: 바울의 유일한 자랑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자신의 학문, 혈통, 종교적 열심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장 혐오스러운 저주의 십자가가, 영적 눈이 열린 사도에게는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영원토록 자랑해야 할 최고의 영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6. 제5강의 요약
역설의 극치: 세상의 눈에는 미련함과 패배로 보이는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권능이 온전히 집약된 영광의 정점입니다.
케노시스의 신비: 그리스도는 신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종의 형체(인성)를 덧입으심으로 신적 영광을 감추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복종하셨습니다.
속성의 완벽한 조화: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무한한 자비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공의가 완벽하게 일치하여 하나님을 지극히 영화롭게 한 구속사의 분수령입니다.
이어지는 제6강에서는 낮아지심을 지나 가장 높은 자리로 나아가신 그리스도의 사역, "승귀(Exaltation)와 하늘 사역의 영광"을 다룹니다. 부활과 승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성도를 위해 일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중보 사역(ἐντυγχάνω, Entynchano)에 나타난 영광을 깊이 있게 파헤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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