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最古·最初의 선사인 주거지를 조사하다 .... 中에서
(237)유적 발굴 조사팀 정영화 교수
정영화 교수와 김원룡 학자 등이 1973년 조사했던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위치한 빌레못동굴. 동굴 주위에 두 개의 연못이 있어서 평평한 암반을 뜻하는 빌레라는 제주도 말과 연못의 못이 합쳐져 ‘빌레못’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사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정난주 丁蘭珠:1773(영조49)~1838(헌종4), 천주교 순교자. 유배인. 아명은 정명련(丁命連). 본관은 나주, 아버지는 정약현(丁若鉉), 어머니는 천주교도 이벽(李蘗)의 누이, 첫째 작은아버지는 정약전(丁若銓), 둘째 작은아버지는 정약종(丁若鍾), , 막내 작은아버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다.
정난주는 둘째 작은아버지에게 서학을 배우고, 장성한 뒤에 고모부인 베두로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마재강 기슭에서 물로 씻고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따라서 외숙 이벽의 교화로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다져졌다.
한편 17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천재적인 진사 황사영(黃嗣永)이 정약종을 만나 배우면서 천주학(天主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정난주를 자연스럽게 만나 둘은 천주께 성혼성사(成婚聖事)를 거행, 부부로서 서울 삼청동의 시모(媤母)를 모셔 살게 되었다. 이들은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우며 아현마루 공소에 열심히 다녔다.
1799년 정조가 승하하고 정순왕후 김대비(金大妃)의 섭정으로 천주교에 대한 가혹한 탄압정책으로 들어갔다. 조정에서는 1801년(순조1) 1월 7일 ‘사학(邪學)금지포고령’을 내리자 정난주는 시어머니 이윤혜와 함께 간난아이를 등에 업고 마재로 피신했다. 황사영은 정동(貞垌) 송재기의 집으로 피신, 여기서 김한빈을 만나 충북 제천(提川)의 배론 골짜기로 은신했다.
황사영의 백서는 결국 발송 직전 발각되어 의금부에 구금되고, 모반죄(謀反罪) 등 중죄인으로 사형을 집행, 순교하였다. 이 일로 가산은 몰수당하고 정난주의 시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정마리아는 제주도로 귀양가게 됐다. 이에 정난주는 두 살인 아들을 데리고 제주로 유배가던 중 호송선이 하추자도 예초(禮草)리 서남쪽 ‘물=세울’에 잠시 머물렀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황새-바위’ 갈대밭에 내려 두고 유배의 길로 떠났다. 모두 ‘한양 할머니’가 죽었다고 슬퍼하였다.
지금 대정읍 동일(東日)리 9번지의 정난주 묘역(墓域)은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천주교 성지로 개발, 순교자 정마리아의 고혼(孤魂)을 기리고 있다. 또 대정현성 안에 마리아가 살았던 집 대정읍 보성(保城)리 1261-1번지의 터전은 최근까지 김상집의 손자 김영학의 이름으로 등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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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의 기사가 조금 이상하여 제가 조금 고쳤습니다.
진주목사 정재원에겐 4형제 정약현(이복형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의 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