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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춤
박경선
< 1. 땡칠이랑 땡순이랑 >
땡칠이네 학교 운동회가 내일입니다.
“야, 내일 우리 엄마랑 아빠, 고모 모두 내 꼭두각시 춤 보러 오신댔어.”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입니다. 땡순이가 땡칠이 옆에 바짝 붙어 따라오며 방방 뛰는 목소리로 조잘조잘 댑니다.
“칫 그깐 꼭두각시 춤 별건가 뭐?”
땡칠이는 콧방귀를 낍니다.
“왜? 땡칠이 너, 꼭두각시 춤 재미있다고 했잖아.”
“흥, 우리 엄마 학교도 내일 꼭두각시 춤 하는데 뭘.”
그 말에 땡순이가 깜짝 놀랍니다.
“참, 너네 엄마도 내일 큰별초등학교에서 2학년들 꼭두각시 춤 가르치겠네? 우리 학교랑 같은 날 운동회 하니 보러 오시지도 못하겠네?”
땡칠이가 엄마랑 같은 2학년이라고 자랑할 때마다 땡순이는 엄마 선생님을 둔 땡칠이가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땡칠이 엄마는 내일 운동화에 못 오시지만 땡순이 엄마는 옷가게를 닫고 오실 거라 했거든요. 생각할수록 히죽히죽 웃음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땡칠이 앞에서 히죽히죽 웃을 수도 없습니다. 자꾸만 히죽히죽 나오는 웃음을 입속으로 돌돌 말아 넣으며 억지로 인상을 찌푸려 보입니다.
“안 됐다 땡칠아, 어떡해? 내일 김밥도 못 먹겠네.”
그 말에 땡칠이 얼굴빛이 확 달라집니다.
‘어머, 약 올리려는 게 아니었는데... ’
땡순이는 자기 머리를 ‘쿵!’ 쥐어박았습니다.
“헤헤!”
울 것 같던 땡칠이가 헤헤 웃어제끼는 모습에 땡순이가 덩달아 웃습니다.
“왜 웃어? 헤헤!”
“땡순이 너 머리, 쿵 치는 걸 보니 꼭 우리 엄마 같아서 말야. 우리 엄마도 미안한 일 있으면 엄마 자기 머리를 요렇게 쿵 치거든!”
하며 땡순이 머리를 쿵 치곤 막 달아납니다.
“야, 너네 엄마니까 너 머리를 쳐야지. 왜 내 머리를 치는데...”
땡순이가 새근새근 따라오고 땡칠이가 앞서 펄쩍펄쩍 뛰어갑니다. 그러다가 땡순이네 옷가게가 나왔습니다. 땡순이는 가게 문을 열고 쏘옥 들어갑니다.
“야 우리 땡순이, 엄마 보고 싶어 막 뛰어왔구나!”
땡순이는 오늘 따라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가 너무 좋습니다.
< 2. 땡칠이랑 고물장수 아저씨랑>
땡칠이는 구불구불 골목길을 들어서며 땡순이가 마냥 부럽습니다. 땡순이네가 사는 집은 하늘에 매달린 아파트이거든요. 땡칠이도 하늘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지만 3대 1입니다.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텃밭이 있는 땅집이 좋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 땅집!’
땡칠이는 흙냄새 풀풀 나는 이 집을 땅집이라 부릅니다. 땅집 대문을 열었지만 할머니가 없습니다. 아마, 동생 땡땡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셨나 봅니다.
‘칫, 할머니가 있으면 뭐해. 내일도 땡땡이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실 건데 씨이!‘
내일도 1학년 때처럼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져 옵니다. 1학년 때 운동회 날이 떠오릅니다. 친구들은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과 점심을 먹는데 그 옆에 땡칠이 혼자서 돗자리를 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뒤쪽 구석진 곳에 숨어 도시락을 폈지만 누가 볼 것만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것보다 더 부끄러운 건,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할머니도 없는 고아로 볼 것만 같았습니다. 훌쩍훌쩍 울다 눈물 떨어진 김밥을 쓰레기통에 버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일은 아예 김밥 도시락을 안 가져갈 테야. 그러면, 점심시간 동안 어디에 숨어 있지?’
땡칠이는 또 고아가 된 것 같아 눈물이 찔끔 납니다.
‘땡순이는 좋겠다. 엄마도 오시고 아빠도 오시고 고모도 오신댔지?’
“고장 난 세탁기나 라디오, 냉장고 삽니다.”
고물 장수 아저씨가 한참 만에 오셨나 봅니다. 땡칠이네 집 앞을 지나며 외치는 목소리가 정겹습니다. 땡칠이가 대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봅니다.
“오랜 만이다.”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며 아는 체 합니다.
“할머니 안 계셔요.”
땡칠이가 뿌루퉁하게 대꾸합니다. 할머니가 계시면 또 아저씨더러 시원한 미숫가루 한 사발 들고 가시라 하셨을 테지요.
“그래, 심심하겠네. 이 책 볼래?”
아저씨가 내민 건 『내 동생 싸게 팔아요』하는 동화책이었습니다. 땡칠이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나도 내 동생을 팔면 내일 할머니가 우리 학교 운동회에 오실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확 들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니 아저씨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들킨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안 돼요. 제 동생 팔면 엄마. 아빠께 혼나요. 할머니께도...”
“하하! 그렇구나. 아저씨도 네 동생은 살 생각이 없단다. 그럼 이거나 씹어라.”
아저씨는 뒷주머니에서 풍선껌을 하나 꺼내 주고 부르릉 소리를 내며 차를 몰고 멀어져 갔습니다. 담장 위에 올라 앉아있던 고양이가 땡칠이를 유심히 노려봅니다.
“아니야, 난 동생 안 팔았어. 땡땡이는 할머니가 데리고 올 거야. 두고 봐.”
땡칠이는 풍선껌을 크게 불어 큰일 날 뻔한 일을 멀리 멀리 날려버립니다. 마침, 땡땡이가 골목 저쪽 끝에서 신나게 쫓아옵니다.
“봤지. 봤지? 내 동생이야.”
땡칠이는 혀를 내어 고양이한테 메롱을 해보입니다.
“형아, 이것 상 탔어!”
땡칠이를 보자마자 할머니 손을 탁 놓고 뛰어오는 땡땡이가 오늘 따라 무척 귀엽습니다.
“짜아식, 뭐해서 상 탄 거야?”
“달리기 했어. 할머니 나 일등 했지요?”
할머니를 돌아보며 똥배를 쑤욱 내밀고 증거를 대어 달라니 할머니도 거들어줍니다.
”그래. 우리 땡땡이 하나도 안 넘어졌어. 넘어져서 안 울었는데 선생님이 착하다고 일등한 거나 똑같다고 상을 주셨지.“
땡칠이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넘어져 우는 녀석에게 선생님이 일등 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달래느라 스케치북을 상으로 주셨다는 걸요.
“땡땡아, 남자는 말이야. 아파도 울어서는 안 돼!”
땡칠이가 제법 형아답게 일러줍니다.
“응, 형아, 오늘 나, 넘어졌는데 쬐금만 안 울고 참았어.”
“그래. 잘했어! 내일 아침에도 엄마 학교 갈 때 가지마라고 울며 떼쓰지 않을 거지?”
그 말에 땡땡이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너 지금도 우는 거지?”
“아니야, 눈물 나오지 마라고 눈 감았다 떴는 걸?”
땡땡이가 눈물 가득한 눈을 들어 우기는 바람에 땡칠이는 더 마음이 아픕니다.
‘야, 우리는 엄마 없는 고아나 마찬가지야!’
집에 들어오니 전화 벨소리가 울립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땡칠이랑 땡땡이에게 이릅니다.
“너네 엄마가 오늘도 늦게 온단다. 반 아이 중에 하나가 가출을 했데. 저네 엄마 찾아간다고 동대구역으로 가다가 파출소로 끌려갔나봐.”
“파출소에는 왜 끌려가요?”
“차비 구하려고 지갑을 훔쳤나봐.”
땡칠이는 파출소에 자주 가는 엄마가 참 한심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독 땡칠이 엄마가 맡는 반 아이들 중에 말썽쟁이가 많은 걸 보면.
“할머니, 차라리, 엄마가 학교를 그만 두는 게 좋겠어요. 그러면 엄마는 속도 안 썩고 운동회에도 올 수 있는데... ”
“그래도 능력이 아깝잖냐? 스승의 날 제자들 찾아오는 것 봐라. 참 스승이라고 세월을 두고 찾아들 오니, 선생한테는 그게 보람이지.”
“칫, 엄마만 보람 좋아하면 뭐해요? 우리는 엄마가 없는데... ”
“땡칠아, 그게 무슨 소리냐?”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이름만의 엄마도 엄마에요? 한심한 엄마지.”
땡칠이 말에 할머니가 목소리를 착 낮추어 말했습니다.
“그래. 너네 엄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엄마다. 너를 가져 배가 남산만 헤도 운동회 때 무용 가르쳐야 한다고 아픈 배 움켜잡고 춤추다가 병원에 실려 갔지. 그러고 나서도 그 다음 날 병원에서 곧바로 학교를 가더구나. 그때 죽었으면 너도 안 태어나고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할머니도 땡칠이처럼 엄마가 미운가 봅니다. 이런 말을 다 하다니.
< 3. 땡칠이랑 엄마랑>
땡칠이는 다른 날보다 더 늦게 오신 엄마가 미워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습니다.
“어멈아, 많이 늦었구나. 저녁은 먹었냐?”
할머니가 엄마를 반겼지만 땡칠이는 고개만 까닥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아니, 생각 없어요. 내일 우리 땡칠이 운동회에요. 도시락 맛있게 사주려고 유부도 사고 쇠고기도 사고 장을 좀 푸짐하게 봐 오느라 더 늦었어요.”
‘칫, 도시락 싸주면 내가 가져 갈 줄 아나?’
땡칠이는 내일 잊어버린 척 하고 도시락을 안 가져갈 궁리를 단단히 합니다.
“땡칠아, 어떡하지? 엄마 학교도 내일 운동회라서. 그 대신 내일 운동회하고 와서 너 먹고 싶은 통닭 시켜 할머니랑 땡땡이랑 실컷 먹어라. 엄마 가방에 지갑 있을 거야.”
그 말에 땡칠이 얼굴이 점점 빨개져갑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는 뜻입니다.
“뭐하니? 엄마 가방 열어봐. 내일 엄마 새벽같이 가면 너 용돈 못 챙겨 줄 수도 있는데...”
땡칠이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엄마 책가방을 열었습니다. <꼭두각시 춤- 땡칠이 땡순이 시리즈, 자진모리 장단>이라는 가사가 적힌 종이가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습니다.
“뭐야, 내 이름이랑 땡순이 이름 시리즈라니? 헐?”
땡칠이는 엄마가 자기 이야기를 꼭두각시 춤에 빗대어 뭐라고 썼는지 궁금합니다. 그보다 땡칠이 땡순이 시리즈라고 한 게 더 궁금합니다.
‘내가 땡순이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단 말이야?’
땡칠이는 <꼭두각시 춤- 땡칠이 땡순이 시리즈> 가사가 적힌 종이를 들고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벌러덩 누워서 열심히 읽어내려갑니다.
① 땡칠아 땡순아 얼굴을 가리자
땡칠아 땡순아 얼굴을 가리자
종종걸음 마주 보며 얼굴을 가리자
제자리로 돌아오며 얼굴을 가리자
허수아비 춤추며 팔 벌려 웃어보자
허수아비 춤추며 안으로 손 모으자
얼굴 밑에 턱 받치고 예쁘게 웃어보자
그래 그래 첫 번째다 웃어보자.
(뭐야, 꼭두각시 춤 노래에 맞추어 지은 노랫말이잖아.)
② 땡칠이 땡순아 둘이서 마주서
볼 찍고 볼 찍고 레블레블 놀려먹자
뒷짐 지고 엉덩이 까딱 레블레블 놀려먹자
손가락질 해대며 레블레블 놀려먹자
넷이서 손잡고 줄 맞춰라 줄 맞춰
두 번 째줄 옆에 가라 여덟 명이 줄 맞춰라
뒷 걸음질 뒷걸음질 제자리서 무릎 까딱
앞 걸음질 두 번째다 제자리서 무릎 까딱
(아, 뭐야? 무용하는 동작을 적었잖아. 우리 학교에서도 꼭두각시 춤을 추는데 이런 노랫말은 안 붙여줬는데. 역시 엄마는 우리는 내팽개쳐놓고 학교 일밖에 몰라)
③ 땡칠아 땡칠아 땡순이 어깨 잡아
땡순아 땡순아 왈카닥 밀어뿌라
땡칠아 땡칠아 깨금발로 뛰어 온나
땡칠아 땡칠아 또다시 밀어뿌라
땡칠아 땡칠아 깨금발로 다시 온나
팔짱 끼고 돌아보자 오른쪽으로 돌아보자
왼쪽으로 돌아보자 폴짝폴짝 돌아보자
마주봐라 세 번째다 짝 맞추어 마주 보자
(헉, 엄마는 선생님이면서 이렇게 사투리 막 써도 되나?)
④ 땡칠아 허리에 손, 가위바위보 해봐라
땡순아 허리에 손, 가위바위보 해봐라
땡칠아 밀어뿌라 땡순아 울어뿌라
땡칠인 두 손 벌려 어깨를 으쓱으쓱
땡칠아 안 되겠제? 땡순이 뒤로 가라
그래 그래 네 번째 어깨 잡고 까꿍이다
땡칠아 계속 계속 까꿍까꿍 해보거라
땡순아 니도 함께 까꿍까꿍 웃어줘라
(아가야도 아닌 땡순이더러 까꿍까꿍하면 무지 재미있겠는데. 히히!)
⑤ 땡칠아 앞에 가서 땡순이 일으켜라
땡순아 땡칠이 어깨 위에 손 얹어라
땡칠이 어깨 치며 땡순이 너는 최고
땡순이 어깨 치며 땡칠이 너도 최고
서로서로 어깨 치며 두 손 들고 최고 최고
서로서로 어깨 치며 두 손 들고 으쓱 으쓱
기분 좋다 업어줘라 등 돌려 일어나라
그래 그래 다섯 번째 힘 빠져도 업고 돌자
(히히, 내가 땡순이 업어주면 무지 좋아하겠네)
⑥ 손들 잡고 엉덩이 까딱 엉덩이 보자 누가 예뻐?
손들 잡고 엉덩이 까딱 빼뚤빼뚤 예쁘구나
손들 잡고 엉덩이 까딱 빼뚤빼뚤 예쁘구나
손 놓고 꿇어앉자 엄마한테 절해야지
(뭐야, 엄마한테 절한다고? 엄마는 내일 오지도 않을 거면서)
두 손을 이마에 대고 큰절하며 엎드리자
고개 숙여 오래오래 땅 짚고 계속 있자
박수가 나오겠지 숙여서 있어보자
됐다마 일어나라 수고했다 들어가자
(뭐야, 박수 나오면 뭐해. 이딴 거짓말 꼭두각시춤!)
눈물이 귓불을 타고 내려옵니다. 그저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한 달 쯤 울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꼭두각시 춤- 땡칠이 땡순이 시리즈, 자진모리 장단> 종이를 천장에 확 뿌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종이 속에 꼭두각시들이 숨어 있었나 봅니다. 꼭두각시들이 천장을 뚫고 가물가물 보이더니 밖으로 뛰어나가버립니다.
< 4. 땡칠이랑 꼭두각시랑>
밖을 내다보니 한 떼의 꼭두각시들이 까치가 되어 까치집 둥지에 들어앉아 땡칠이 흉을 보고 있습니다.
“저 얘, 땡순이네 집 하늘 아파트라고 부러워하던 얘 아니야? 데려와 하늘 구경 시켜주자.”
그 말에 대여섯 명의 까치들이 우르르 몰려와 땡칠이를 까치집으로 데려갑니다.
“아이 어지러워. 난 안 갈래. 빙글빙글 돈다 말이야. 놓아줘!”
“땅집 얘를 높은데 데려와 세상구경 시켜주면 고맙다해야지. 무슨 소리야?”
“싫어. 여기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잖아.”
“넌, 땅집에서도 엄마가 없다고 했잖아 뭐.”
“맞아, 한심한 엄마가 무슨 엄마야.”
“맞아. 이름만의 엄마가 무슨 엄마야.”
“맞아, 자식이 미워하는 엄마가 무슨 엄마야.”
그 말에 땡칠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둘러싼 까치들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며 악을 썼습니다.
“내가 언제 엄마를 미워했다고 그래?”
그 말에 까치들이 한꺼번에 까르르 웃어제꼈습니다.
“깍깍, 엄마가 안 미우면 정성으로 사준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겠어.”
“맞아, 깍깍. 내일은 엄마가 사준 도시락, 잊어버린 채 하고 아예, 안 가져가겠다며?”
“너네들이 뭘 알아. 엉엉! 너네들 혼자서 도시락 먹어봤니? 운동회 날 혼자서!”
동생 땡땡이한테 남자가 울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지만요. 분하고 억울해서 체면이고 뭐고 없이 엉엉 울었어요.
“땡칠아, 일어나 봐. 무서운 꿈 꾼 거니?”
엄마가 들어와서 땀에 흠뻑 젖은 땡칠이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예, 무시무시한 꿈 꿨어요.”
“그래? 무엇이 우리 아들을 무시무시하게 괴롭히는지 말해봐. 엄마가 혼내 줄게.”
그 말에 땡칠이가 벌떡 일어나 엄마 품에 파고들며 무서운 꿈을 털어놨어요.
“엄마, 우리 엄마 혼 좀 내어주세요. 운동회날 아들한테 혼자 도시락 먹어라는 무시무시한 엄마에요. 다들 가족이랑 도시락 먹는데 저만 혼자서 도시락을... ”
땡칠이가 울먹울먹 말을 잊지 못하자 엄마가 땡칠이를 와락 껴안았어요.
“미안해. 미안해. 아들!”
엄마는 땡칠이 성격이 밝고 좋아서 그런 생각 없이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줄만 알았데요. 그러면서 엄마가 엉엉 울었어요. 엉엉 울다가 꺽꺽 울다가 꿇어앉아 싹싹 빌며 울었어요.
“난 엄마도 아니야. 아들 가슴에 상처 내어놓고 내가 엄마라고. 난 선생도 아니야. 우리 아들 하나도 제대로 마음 못 챙겨주면서 내가 무슨 선생이라고. 난 한심한 엄마, 한심한 선생이야 엉엉, 꺽꺽, 훌쩍훌쩍!”
땡칠이는 어이가 없습니다. 엄마인데, 어른인데, 선생님인데 고작 2학년인 아들 앞에서 이렇게 바보같이 울보같이 울어도 되는지요. 마침 퇴근해 오신 아빠가 울음바다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땡칠아, 용서해줘. 아빠도 우리 땡칠이가 그렇게 외로웠는 걸 몰랐네. 내일은 아빠가 회사에 말하고 땡칠이 운동회에 가서 도시락 같이 먹자. 응? 그런데 이건 뭐니?”
아빠가 방바닥에 뿌려져있는 <꼭두각시 춤- 땡칠이 땡순이 시리즈, 자진모리 장단> 종이를 주워들며 말했습니다.
“아, 이게 왜 여기 있지? 이것 내일 우리 학교 운동회 때 할 꼭두각시 춤이에요. 보세요. 땡칠아, 엄마는 땡순이 할게. 꼭두각시 춤 춰보자 응?”
어느새 울보 엄마가 멀쩡해줘서 땡순이가 되겠다고 춤을 춰보자 합니다.
“우리 엄마는 못 말리는 엄마! 꼭두각시 춤추며 땡순이 하면 딱이에요.”
땡칠이는 땡순이 같은 엄마 손잡고 꼭두각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① 땡칠아 땡순아 얼굴을 가리자
땡칠아 땡순아 얼굴을 가리자
종종걸음 마주 보며 얼굴을 가리자
제자리로 돌아오며 얼굴을 가리자
허수아비 춤추며 팔 벌려 웃어보자
허수아비 춤추며 안으로 손 모으자
얼굴 밑에 턱 받치고 예쁘게 웃어보자
그래 그래 첫 번째다 웃어보자.
엄마랑 손잡고 빙글빙글 돕니다. 비록 내일 운동회에 엄마는 안 오시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엄마랑 꼭두각시 춤 춰보는 아이가 어디 잘 있겠어요?
2017년 7월 23일
원고지 47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