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고도리~~!”
“아…”
“아하~ 피박이시구만? Go를 할까 Stop을 할까~”
“하 그만 할래…”
“...많이 피곤해? 왜 그래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왔던 희진은 당황한 눈빛의 친구를 뒤로 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희진은 그때 스스로가 8살난 꼬마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 마치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되자마자 뾰료통한 표정을 하곤 ‘흥’하고 집에 가버리는 심통쟁이 어린아이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는 게 하나도 없어…?’ 희진은 화장실에서 수건에 얼굴을 박고는 눈물을 훔치며 세상을 원망했다. 희진은 3시간 동안 고스톱만 쳤는데 한 번을 이기질 못했다. ‘제발 한 번만 시원하게 이겨라…’ 애타게 바랐지만, 희진은 똥피만 싹쓸이 하며 도통 점수를 내질 못했다. 아무리 운칠기삼인 고스톱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운이 따라주지 않으니 꼭 스스로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희진은 답답하고 얄궂은 상황이 꼭 자기 인생 같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도 뭔가를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자꾸 겹쳐 보여 뜬금없이 눈물이 났던 거다. 희진은 흐느끼다 피식 웃음이 났다. 고스톱 하나 졌다고 이토록 속상할 일인지, 스스로도 기가 찼다. 되는 일이 없으니 이런 작은 결과 하나에도 쉽게 무너지는 스스로가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자네는 연기도 좋고 다 좋은데 마스크가 배우감이 아니야,,, 하 아쉽네” 한 달 전, 희진은 가장 간절히 원했던 오디션장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듯한 피드백을 받은 후 대차게 자빠진 상태였다. 배우의 꿈을 쫓아 서울로 올라온 지 5년.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힘겹게 주어진 오디션에도 번번히 떨어지기만 하니 더이상의 미래는 없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머리라도 식힐 겸 떠난 여행에서 고스톱에 져서 울고 있는 희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불운의 기운은 희진을 쫓아다녔다. 당첨률 90%라는 랜덤 인형 뽑기 가게에서 나머지 10%에 당첨되질 않나… 평소 좋아하는 라멘집이 가고 싶어 길을 나섰더니, 급한 사정으로 휴무이질 않나… 희진은 화 낼 기운마저 사라져,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전이었다.
인생사 아무리 뜻대로 되는 거 없다지만, 희진은 자신의 인생 뽑기운이 선을 넘었다 생각했다. 그래도 희진은 지지부진한 자신을 무조건 응원해주는 부모님 생각에 인생을 포기할 순 없었다. “희진아, 아빠가 더 큰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며칠 전, 넉넉치 않은 집안 사정에 연기하겠다고 나선 딸을 나무라기보다 자신을 나무라는 부모님의 한 마디가 희진의 가슴을 후볐다.
‘차라리 스님이 되는 게 낫겠다…’
“위잉-…위잉-…” 희진은 세상을 원망하다 자빠질 바엔, 해탈의 자세로 새 삶을 살기로 했다. 시원하게 깎여 나간 민머리가 썩 맘에 들었다. 그동안 지고 있던 원망을 다 잘라낸 기분이었고, 까슬까슬한 촉감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너는 스님처럼 산다더니, 고기는 먹는 거야?” 물론 배우의 꿈은 그대로였고, 스님의 자세로 새 삶을 살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희진은 더이상 스스로도,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꿋꿋이 오디션에 도전했다. 되면 땡큐, 안 되면 오케이의 마음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김희진님, <스파이>(가제) 오디션 결과 최종합격 하셨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희진은 삭발 후 본 오디션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희진이 맡은 역할은 날렵한 비밀요원. 삭발의 후광 효과였다. 희진은 문자를 받곤 화장실에 서서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길어진 오디션 과정만큼 희진의 머리도, 마음도 자라 있었다. 빼쭉 빼쭉 검게 자란 머리카락, 총명한 눈빛과 살짝 올라가 있는 입꼬리가 희진의 상태를 보여줬다.
“위잉-…위잉-…” 희진은 배역을 위해 다시 미용실을 찾았고, 머리카락을 고이 담아왔다. 다시 태어난 희진의 배냇머리였다. 희진은 결국 해낸 스스로가 벅차게 대견했다.
첫댓글 고스톱으로 자기애 소재를 떠올린 게 참신했다. 배냇머리 소재 활용도 참신.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삭발 전까지의 스토리가 길다고 느껴짐. 앞부분을 줄이고 어떤 계기로 주인공이 변화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늘려보면 좋을 것 같다. 별 것 아닌 일에 눈물나는 상황에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글의 메시지가 강하진 않은 것 같아서, 다양한 면에서 신경써보면 좋을듯. 애초에 시작에 작은 역할에도 진심을 보이는 희진이 삭발까지 해서 데뷔했는데 연이은 실패로 좌절하고 하다가 배냇머리를 보면서 자신의 진심을 소중하게 생각해보면 좋을듯...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다. 고스톱~좌절하는 과정. 뒷 얘기가 중심이 된다면 고스톱 얘기는 필요해보이진 않음. 감정선 흐름이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스님이 되겠다'라는 그 과정이 너무 러프함. 포기하지 않은 이유도 좀 더 디테일했으면. 여자 배우 지망생이 삭발 오디션을 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 그걸 납득시킬 만한 스토리가 보완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