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부모님을 따라 TV 앞에 앉아 1박2일을 함께 보았다. 전국을 유랑하면서 소소한 에피소드에 기뻐하는 출연진들의 웃음에 전염되었던 듯하다. 출연진들이 저녁 식사 복불복을 할 때면, 우리 가족도 뜨끈한 밥과 국물 한 숟가락을 들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그 시절 일밤은 푸근하고 행복했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긴 시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일밤은 점점 짧아졌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짧은 길이의 영상 콘텐츠들도 함께 흥행했다. 특히, 틱톡과 숏츠의 등장은 전 세대가 숏폼에 빠져들게 했다. 더 나아가 사람의 시청 속도에 따라 시간의 상대성이 생겨났다. 숏폼을 시청하면서 1시간을 1분처럼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따라서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온전한 웃음을 즐기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부모님과 자녀가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혼자 시청하는 것’이 더 즐거운 세상이 되었다. TV를 보는 1시간에도 10만 개가 넘는 숏폼이 영상 플랫폼에 올라와 있어 롱폼을 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는 생각이, 졸지에 부작용을 일으켰다. 영상의 질이 아니라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이다.
양으로 승부를 보니,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영상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주말의 휴식'이 아닌, '주말의 포식'을 즐기게 했다. 영상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시청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니, ‘같이 천천히 보는 것’보다 ‘혼자 빨리 보는 것’이 편한 시대가 되었다. 사실, 영상 제작자들은 이러한 포식을 즐기고 있다. 시청자들이 짧은 영상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을 갖게 되었으니, 이를 활용해 영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같은 포맷을 가진 단순한 영상들을 올려 조회수가 오르면, 그렇게 노출된 영상이 또 다른 개미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만 먹다 보면 슬로우푸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법이다. 최근 시청자들은 자극적이어서 알맹이는 없고 쉽게 휘발되는 숏폼의 특징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따라 5분 정도의 길이를 보이던 웹 예능이 점차 15분, 20분 정도로 길이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빽능>, <오분순삭>과 같이 예전 예능 영상들을 돌려보는 숏폼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오분순삭>은 이름은 5분이지만, 실제로는 10-20분 정도의 영상 길이를 제공한다. 시청자들은 이를 하나의 밈으로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긴 시간에서 자연스레 나올 수 있었던 '순수한 웃음'을 되찾으려는 시청자들이 증가함에 따른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자신이 포화 상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순수했던 일밤의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 옛 예능 콘텐츠들을 찾는다. 아예 숏폼에서 벗어나 롱폼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유튜브 채널 뜬뜬은 <풍향고: 바람 따라가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출연진들은 스마트폰 없이 지도를 활용하여 원초적인 여행 콘셉트를 즐긴다. 1박2일의 부활이다. 기본적으로 한 에피소드에 1시간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풍향고>는 공개 하루 만에 280만 뷰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제 시청자들은 옛 예능의 포맷을 따라가는 예능을 다시금 선호하고 있다.
짧아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모순적으로 짧기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우리가 긴 연필은 아껴 쓰지만, 몽당연필은 쉽게 버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짧으니까 소비하기 쉽다'는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을 훌쩍 써버린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 순수한 웃음을 지향해야 한다. 이제 시간을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좋은 예능의 척도가 될 것이다.
첫댓글 [2문단]
시간의 상대성 개념 좀 더 설명
> 그 밑의 문단과 분리
[4문단]
(추가) '더 많은 서사, 상황, 대사가 담겨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몰입하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