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과 완장/똥꼬의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낼 때면 으레 기사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친구가 있다. 기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관리과 직원을 기사처럼 부리는 묘한 인간이다. 말이 좋아 묘한 인간이지 한마디로 밥맛인 친구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기사, 아니 관리과 직원은 하릴없이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며 직장상사인 원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무슨 이유로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느냐고 물으면 원장은 그쯤 되어야 하는 거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스런, 아니 한심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어쩌다 이 친구의 병원에 가볼라치면 별것도 아닌 일이건만 직원을 쥐 잡듯 한다. 원장이 원장다워야 병원의 기강이 서고 병원의 미래 또한 있는 거라나 뭐라나.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세종 역을 맡고 있는 한석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한방 날렸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는 그런 대찬 친구가 없다. 이 친구는 음식점엘 가도, 와인을 고를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어김없이 원장을 들먹인다. 음식이니 술이니 옷이니 하는 것들이 도대체 원장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지…… 아무튼 거시기한 친구다.
딸아이의 우리말 수준이 심상찮다. 맞춤법은 말할 것도 없고 띄어쓰기 또한 엉망이다. 아비로서 참담하지만 꼭 우리 애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으로 알량한 위안을 삼는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스마트폰 등이 상용화되면서 딸아이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의 언어사용능력이 그야말로 눈 뜨고는 봐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지 싶다. 언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의사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존재의 뿌리임을 감안하면,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딸아이가 문자를 주고받는 수준을 보면 동물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머해”
“기냥”
“밥은”
“아직”
“나도”
“ㅠㅠ”
다른 동물을 향해 그토록 으스대며 우월감으로 충만한 인간이란 존재가 나누는 의사표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하고 빈약하지 않은가. 뜻만 통하면 되지 뭘 그리 깐깐하게 구느냐며 눈을 흘길 이들도 분명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대수롭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 자체로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고매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상스럽다 여기며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언어가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는 섬뜩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행복한 사람이 기쁨에 찬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 가득한 언어가 행복한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데, 이는 사회과학적으로나 인류문화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언어를 그저 단순한 의사표현의 도구로 하찮게 다루고 마구 굴려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섭스레기’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좋은 것은 빠지고 난 뒤에 남은 허름한 물건’이라 뜻풀이가 되어 있다. 딸아이가 이런 우리말을 알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 단연 ‘허접스레기’나 ‘허접쓰레기’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띈다. 글자의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여 아무렇게나 마구 사용하는 것이라니. 세종대왕께서 인터넷을 들여다본다면 ‘지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으며 분을 삭이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셨을 게다. ‘허접쓰레기’라는 단어가 뒤늦게 표준말이 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는 사전에도 없는 수상쩍은 단어였다는 것을 아는 이들 또한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접속’과 ‘접촉’ 또한 글자 모양은 비슷하지만 그 뜻은 천양지차다. 한데 많은 이들이 이를 혼동해서 사용함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웹서핑에 사용하는 것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에 접속해서 제주도 올레 길을 훑어보는 것과 직접 올레 길을 걸으며 접촉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접속해서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미꾸라지를 보는 것과 직접 시냇물에 손을 담그고 미꾸라지를 만져보며 접촉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태임에 틀림없다.
입만 벙긋하면 ‘원장’을 들먹이며 거들먹거리는 친구를 탓할 것만도 못된다. 글자 모양새가 비슷하다 하여 ‘허섭스레기’를 ‘허접스레기’로, ‘접촉’을 ‘접속’으로 아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친구 역시 ‘원장’을 ‘완장’으로 착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그래, ‘ㅓ’와 ‘ㅏ’는 한 끗 차이가 아닌가. 눈꼴사납다며 멀리하기만 했을 뿐, 원장과 완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진한 친구에게 우리말사전 한 권 선물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