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원장, 코도 보나?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나는 글벗들 틈에 끼여 15인승 승합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천안수필문학회 봄 문학기행, 참여 인원 15명, 이동수단은 맛이 간 15인승 승합차, 목적지는 선운사. 문학기행 행사에 참여하기는 처음인지라 설레기는 했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비좁은데 에어컨은 시원찮았고, 제법 가파른 언덕을 오를라치면 당장에라도 승합차에서 뛰어내려 차를 밀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런 승합차나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회장이 연거푸 자신의 미안한 속내를 내비쳤다. 오십 줄의 회장이 가까스로 차를 섭외했다는데, 거기다 운전기사까지 자처한 마당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잠자코 있을 밖에. 자가용도 아닌 승합차를 회장이 손수 운전하는 모임, 낯설었다. 생소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팔십 줄의 연로한 전직 교장선생님은 맨 뒷좌석 창가에 짐짝처럼 끼여 있었다. 뭐 그런 싸가지 없는 모임이 있느냐고? 그런 건 아니다. 말리기도 전에 가장 연로하신 어른께선 맨 뒷좌석 창가를, 회장은 운전석을 떡 하니 차지한 것이니, 누가 그들을 끌어낼 수 있으랴. 그렇게 된 거다. 아무튼 글 쓰는 사람들, 털털거리는 수동 승합차만큼이나 내겐 낯설었다.
10분이나 채 달렸을까, 총무가 바리바리 싸온 짐을 풀어놓았다. 마른 오징어, 땅콩, 캔맥주……. 쩝쩝, 재잘재잘, 벌컥벌컥……. 이내 승합차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을 태운 스쿨버스로 둔갑하고 있었다. 불편했던 내 마음도 어느 새 봄눈 녹듯 녹아들고 있었다. 문학기행을 처음으로 따라나선 마당에 잠자코 앉아 있기가 멋쩍어 어디쯤에선가 나는 불쑥 말문을 열었다.
“제가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와이프와 국회의원의 공통점 세 가지가 뭔지 아는 분?”
“말이 많다.”
“뻔뻔하다.”
“……….”
정답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대답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다가는 이내 잠잠해졌다.
“돈을 좋아한다. 말로는 당할 수가 없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뭘까요?”
단 하나의 정답도 끄집어내지 못하는 문우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나는 두 개의 정답을 공개했다.
“깔깔깔.”
“맞아 맞아!”
웃음과 수긍을 담은 목소리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뿐, 여전히 정답 하나는 오리무중.
“그냥 말해보세요.”
누군가 대표로 백기를 들었다.
“정답은……… 내가 선택했지만 후회할 때가 많다.”
“푸하하하.”
“까르르르.”
일시에 터져 나온 웃음으로 차가 기우뚱거렸다. 하긴 평소 과묵하기만 하던 회장조차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린 것이니, 차가 놀랄 만도 했다. 음주, 가무로 달리는 고속버스가 휘청거린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폭소로 차가 비틀거리다니.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럼 제가 문제 하나 낼 테니 풀어들 보세요. 와이프와 무의 공통점은?”
사십 줄 어디쯤의 주부, 속셈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문우였다. 모두들 상대방의 얼굴만 번갈아 바라볼 뿐, 이번에도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잠잠. 문제 낼 땐 몰랐는데 막상 풀자니, 그게 쉽지 않았다.
“가만 두면, 보기만 하면 바람 든다.”
이번에도 정답은 출제자의 입을 통해 공개되었다.
“흐흐흐.”
“호호호.”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뭔가 다른, 전과는 분명 차별된 웃음소리. 갑작스레 산수유를 선전하는 구수한 사투리의 어느 사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보기만 하면 바람 든다……….’
문득 우리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우리 세대는 철벅철벅 수초를 헤집으며 미꾸라지를 만졌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딸깍딸깍 클릭하며 미꾸라지를 보기만 한다. 아이들이 실팍한 무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덧 목적지인 선운사 입구. 선운사를 구경하고 정상에 오르기 전에 허기를 채우기로 했고, 이내 승합차는 <풍천 장어집>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은 장어가 유명하다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달리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다. 여기도 장어집, 저기도 장어집, 온통 장어집밖에 없었으니까. 장어집 주변은 등산복 차림의 어른들만 눈에 띌 뿐 아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아이들은 고사하고 개새끼들조차 보이질 않았다.
‘발에 차이는 게 장어집, 그렇다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이들이 튀어나와야 하는 거 아냐?’
‘손님들 상에서 떨어지는 장어도 있을 테고 그것을 주워 먹는 개들도 있을 터. 바야흐로 때는 해도 길고 따사로운 5월. 그렇다면 여기저기서 수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암캐의 꽁무니를 따라다녀야 하는 거 아냐?……… 원조는 개뿔.’
간택된 장어집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였음인지 장어로 향하는 젓가락은 느릿느릿, 맛도 영 아니었다. 탐탁찮게 젓가락을 놀리고 있던 어느 쯤, 앞 테이블의 아주머니가 불쑥 나의 시선 속으로 파고들었다.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른 탓인지 앞 테이블의 아주머니가 일어서서는 주변에 앉아 있던 남자 동료들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입술도 들이밀면서 농을 흘리고 있었다.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꼭 술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나는 장어꼬리를 입에 넣고는 지그시 깨물었다.
마침내, 선운사. 그간 봐왔던 여느 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스쳐지나가듯 봤으니 옛 절의 깊은 맛을 어찌 알 수 있으랴. 하지만 등산로는 아니었다. 이 꽃잎 저 꽃잎 품은 채 등산로를 따라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도 그렇고, 양산처럼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은은한 녹음도 그렇고. 다그치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완만한 흙길도 그렇고. 등산로를 오른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조만간 또 찾으리라는 결심.
“원장님, 이 나무 이름 아세요?”
함께 걸어가던 오십 줄의 문우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때죽나무라고 불리는 나뭅니다.”
“때죽나무?”
“보세요. 때가 낀 것처럼 나무껍질이 검잖아요.”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내 눈엔 그 나무가 그 나무였다.
“저 나무는요?”
“……….”
“이팝나무라는 겁니다. 꽃이 흰쌀밥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답니다.”
‘하얀 꽃을 이고 있는 나무가 어디 한두 갠가…….’
“이 꽃은요?”
이번에야 말로 많이 봐오던 꽃, 이번엔 제대로 걸려들었다. ㅋㅋㅋ.’
“들국화 아닙니까?”
“국화과긴 하지만 이 꽃은 들국화라고 하지 않고 마가레트라고 해요. 보세요, 키도 크고 줄기도 곧잖아요.”
‘뜨악!’
그러고 보니 내가 흔히 봐왔던 들국화와는 분명 달랐다.
‘이 문우(文友), 수필가야 꽃집 주인이야……….’
나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비단 내게 질문을 던지며 친절히 설명해 주는 문우만 꽃이며 나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만 빼고 모두들 꽃이며 나무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게 확실했다. 지들끼리는 말이 많이 통하는 거로 봐서. 문득 글만 쓴다고 수필가가 아니라는 생각. 어쩌면 수필가는 글에 앞서 꽃이며 나무며……… 주변의 모든 것들에 먼저 관심을 둘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또 한 번 글을 쓴다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 ‘아직도 먼 건가, 정상은?’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힘이 쭉 빠졌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마침내 끝이 보였다. 도솔암으로 오르는 철계단, 누가 끝이 아니랄까봐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선운사 스님들도 소림사의 스님들처럼 무예를?’ 그렇지 않고서야 철계단을 이렇듯 가파르게 만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려 멍하니 철계단 끝만 바라보고 있는 내 앞으로 팔십 줄의 전직 교장선생님이 휙 자나갔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게 아닌가. 흰 머리칼을 날리며 축지법이라도 쓰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놓은 어르신의 모습은 도인의 모습 바로 그 자체였다. 어르신께서 손수 시범을 보여주시는 것인데, 오르지 않을 수도 없고……… 나는 마지못해 발걸음을 철계단으로 옮겼다. 불안한 마음에 꽉 움켜잡은 난간이 꽤나 묵직했다.
수군수군, 재잘재잘, 돌아오는 길도 떠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곤하기도 할 만 하겠건만 누구 하나 눈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예린 엄마가 먹을 것을 풀어놨다. 먹을 만치 먹었건만 아직도 간식거리가 남아 있는 것이라니, 총무란 사람 손이 크기도 하다. 남이니까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내가 남편이었으면 십중팔구 헤프다며 핀잔을 주었을 게다. 천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디쯤, 느닷없이 저음의 굵직한 목소리가 수군대는 목소리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남 원장, 코도 보나?”
“갑자기 아카시아향이……… 그것 참.”
모임에서 두 번째로 연세가 많으신 백 선생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열어 놓은 차창 바깥세상은 온통 아카시아 향으로 진동했다.
“코는 보지 않습니다, 선생님. 평소 코가 안 좋으세요?”
백 선생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백 선생님 쪽을 바라봤다. 백 선생님은 애당초 답변 같은 건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수군대던 소리도 딱 멈춰있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나는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남들은 부지런하다느니, 새벽형인간이니 뭐니 듣기 좋으라고 말들 하지만 천만에, 늙어감에 다름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제나처럼 물을 마시려 냉장고로 향하는데, 열어놓은 다용도실 문틈으로 진한 아카시아향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도 은은한 아카시아향이 떠다니고 있었다. 물 컵을 들고 우두커니 다용도실에 선 채 생각에 잠겼다.
‘하루 종일 아카시아 향은 있었을 터, 한데 왜 나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야 아카시아 향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코도 보냐는 백 선생님의 질문에 침묵했어야 했다. 질문을 던진 게 아니라 문학기행을 마무리 지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화두를 던진 것을……….’
쓰다, 오늘 새벽 물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