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가리라
-하이네 (Heinrich Heine)
아름다운 꽃 피고 예쁜 새들 노래하는
고요하고 푸른 숲에 나는 가리라
세월 지나 무덤 속에 나 잠이 들면
내 눈과 귀 흙으로 뒤덮이려니
아름다운 꽃의 모습 내 어이 보랴
예쁜 새의 노랫소리 내 어이 들으랴
이해와 감상
하이네는 우선 서정시인으로 실연의 슬픔에서 비롯되는 청년시절의 시집 '노래책'으로 유명해졌고, 당시 메테르니히의 탄압정책이 지나치자, 개인과 정치를 전통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라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고전주의가 내세우는 조화적인 인간도, 낭만파의 중세 그리스도교적 관념론도 과거의 유물로서 거부되었고, 이 거부된 전통을 대신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권리, 모든 도덕 ·종교 ·정치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이것들이 하이네를 비롯하여 베르네, 구코, H.라우베 등 '청년 독일파' 작가들의 이념이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이네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전통을 잇는 서정시인인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반(反)전통적 ·혁명적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이 시에서 현재적 삶에 대한 철저한 즐김을 노래하였다.
하이네(Heinrich Heine)
정식식 이름은 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 본명은 Harry Heine(~1825). 1797. 12. 13 프로이센 뒤셀도르프~1856. 2. 17 파리.
독일의 시인
〈시가집 Buch der Lieder〉(1827)으로 국제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확고히 했다. 곡이 붙여진 것은 주로 이 노래들이지만 만년에 쓴 음울한 시들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초기생애 및 작품
부모가 유대인이었는데, 아버지는 잘생기고 친절하지만 다소 무능한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당시 교육을 잘 받은 여성으로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대단했다. 하이네는 초년에 숙부 잘로몬 하이네의 재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함부르크 은행가로서 백만장자였던 숙부는 관대한 반면 복종을 요구했으며, 하이네는 이 숙부와 오랫동안 불편하고 불안정한 관계였었다. 뒤셀도르프의 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그를 상인(처음에는 은행업, 나중에는 소매업)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숙부가 학비를 대주게 되어 하이네는 본·괴팅겐·베를린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괴팅겐대학교로 옮겼고 1825년 최하위의 성적으로 법학학위를 땄다. 같은 해 유대인에게는 닫혀 있던 공직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해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 번도 변호사로 개업도 하지 않았고 공직을 맡지도 않았다. 그는 대학시절 동안 학업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시·문학·역사 공부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