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종李翼鐘(1898∼1950)
1898년 4월 20일 고덕면 율포리 35번지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 운동 때 경성의학 전문학교 2학년에 재학했다. 함태홍咸泰鴻 등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들과 3월 1일 독립만 세 시위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창덕궁 앞에서는 독립만세 시위대 군중들과 헤어져 종로 쪽 으로 나아가면서 2∼3명의 학생을 불러 “조선은 지금 독립하려고 한다. 같이 만세를 부르 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동했다. 그리고 많은 군중들을 지휘하면서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 고, 군중들과 종로의 4정목의 파출소 앞에서 독립을 고취하는 연설을 했다. 또한 박승영朴勝英·장기욱張基郁 등 시위 주동 학생들과 함께 탑골공원을 출발해 종로·남대문·대한문 전·의주로 등 기타 지역 시위와 조선 독립만세 고창을 선도하며 열광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공소돼 11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경성고등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1920년 2월 27일 기각돼 10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 『평택시독립운동사』, 평택시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4.
『독립유공자 공훈록』,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