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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월이 한참 흘렀고, 어느 해 봄이던가 나는 이 글을 소재로 「그대에게」 라는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었다.
그대에게
눈부신 신록의 계절 오월에
나 그대를 생각합니다.
바람인가 싶어 돌아보면
꽃잎이 지듯 그렇게
가슴을 휘젓고 지나는 그리움이었고
그 진한 그리움에 겨워
가만히 이름을 불러보면
그 순간 늘상 그렇듯이
내 마음속에 별이 뜨고 달이 지는
그대는 내 숨결이며 내 호흡과도 같습니다.
오호라, 질기고 두터우며 온기가 스민
내 귀한 인연이여,
그대는 그 끝을 잡고 놓지 말아다오.
그대는 내 가슴에 지핀 모닥불이며
저녁하늘을 수놓는 별이고
마르지 않는 우물입니다.
그대는 항상 출렁이는 바다이고
수평선이고 갯벌이며
그 안을 파고드는 바다 내음입니다.
푸른 오월의 꽃향기보다도 더 그리운 이여,
그대 아직도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인 것을 아시나요?
이 시(詩)에서의 ‘그대’는 반드시 아내나 어떤 한 여성이나 남성, 실존하는 인물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화자(話者)가 꿈꾸는 영원한 그리움과 연모의 대상을 일반화하고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이 시를 가지고 가곡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 시를 가곡으로 만들기에는 시 자체가 너무 길었고, 시어(詩語)도 성악가가 실제 무대에서 불러야 하는 노랫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수정한 끝에 이 곡의 가사를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다듬었다.
그대에게
바람인가 돌아보면/ 꽃잎이~ 지듯
가~슴을 휘젓고 지나는 그~리움이여
가~만히/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내 마음에 별~이 뜨고/ 달이 지~네
그대는 내/ 숨결이며/ 호~흡이어라
오호라, 질기고/ 두터~우며/ 온기가 스민
내~ 귀한/ 인연이여, 그대는 그 끝을 잡고
놓지 말아다오.
(간주)
5월의 꽃향기보다/ 더 그리운 이여
그대 아직도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인 것을~ 아시나요?
그대 아직도/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인 것을~ 아~시~나요?
이렇게 가사를 완성했지만 이 곡의 멜로디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저녁이면 가족들과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가서 입 속으로 중얼대며 멜로디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오호라, 질기고 두터우며 온기가 스민” 이 부분을 가곡으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사실 가곡은 가사의 구절마다 글자 수가 어느 정도 맞아야 곡을 붙이기가 수월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가사의 글자 수가 4글자- 4글자- 4글자- 4글자 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면 아무래도 멜로디를 적용하기가 나을 것이다. 하지만 가사를 먼저 완성해놓고 그 가사에 곡을 맞추다보면 곡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고, 거꾸로 곡을 완성해놓고 그 곡에 가사를 맞추다보면 시의 문학적인 흐름이 부서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러다보니 이미 완성되어 있는 시를 가곡으로 만든다는 것이 어려우므로 아예 처음 시를 쓸 때부터 그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가곡을 만들려면 아예 그 가곡에 맞는 시를 새로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았고, 나도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그대에게」 처럼 이미 완성된 시가 있을 때에는 그 시가 처음부터 가곡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 아니므로 시를 가곡에 맞게 수정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시가 항상 머릿속을 맴돌다보면 멜로디도 떠오를 때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순간 “5월의 꽃향기보다~/ 더 그리운 이여~” 하는 부분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내가 작곡을 해보니, 가곡의 첫 구절에 대한 멜로디가 먼저 떠올랐을 때 작곡이 가장 쉬웠다. 그러나 때로는 이 곡에서처럼 곡의 중간부분의 멜로디가 먼저 떠오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의 멜로디를 먼저 완성하고 나서 그 뒷부분을 완성하고, 맨 마지막에 앞부분을 만드는 식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곡 「그대에게」는 2023년 7월 25일 멜로디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11월 중순경 구광일작곡가와 함께 채보를 하였으며, 2024년 3월 초순에 피아노3단악보가 완성되었고, 2024년 5월 18일 신세계장충레코딩스튜디오에서 바리톤 박경준의 연주와 피아니스트 엄은경의 반주로 녹음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가곡을 소프라노의 음성으로도 녹음하고 싶어 2024년 12월 10일 신세계장충레코딩스튜디오에서 소프라노 임청화의 연주와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반주로 다시 녹음을 하였다.
https://youtu.be/z4t7xv2OBD0?si=snW5P2yOQ4Um_zYO
첫댓글
김성만 님
오랜만에 가곡의 일지를 함께 합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새해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