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오전예배 2015. 7. 19 한우리교회
*제목: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 예배 *본문: 신6:4-5
1. 성경에 나오는 예배 2. 예배가 잘못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 3. 합당치 않는 예배 4가지 1) 거짓 신들에 대한 예배 2) 잘못된 형식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3) 자신의 방식대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4) 올바른 방식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나, 잘못된 태도로 예배하는 것.
*생명의 말씀: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들어가는 말) 유머로 마음을 열자!(웃음을 주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으로 혼돈과 무질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이 혼합주의에 빠져 우리 기독교를 향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더욱이 온갖 이단들을 정통교회 성도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온갖 사상과 문화, 교육 모든 분야도 인본주의가 강해 우리 자녀들을 학교 보내기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세력들이 하나님을 향해 정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교회는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점점 영적으로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기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금 부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으신 분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돌아가셨나요? 그분은 불꽃 같은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 계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다시금 일어 설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일어서기 위해서 가장 먼저 회복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는 회복될 수 있으며 동시에 이 세상 또한 회복될 것입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예배
성경에서 예배라는 주제는 성경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실패하면서 인간은 타락하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 영원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안에서, 모든 역사가 절정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예배의 교리는 성경 본문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신명기6장 4-5절을 인용하며 그것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12:29-30) 그것은 예배로의 부르심이며,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모든 계명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음으로써 예배가 최우선임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출20장에는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1-2 계명이 예배를 요구하며 또 규정하고 있습니다.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구약 성경에서는 예배가 모든 삶을 포함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막은 예배의 우선권을 강조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일곱 장에 걸쳐 성막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려 243절입니다.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를 묘사한 부분도 31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막은 ‘오직’ 예배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을 예배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성만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앉거나 보살핌을 받기 위해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또 즐거움을 얻기 위해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성막에 갔습니다. 다른 목적을 위한 모임에는 다른 곳을 사용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의 배치는 예배가 다른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성막은 진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성막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레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더 떨어진 곳에는 여러 종족들이 각각 중심, 즉 예배 처소를 향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활동은 율법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레위기 1-7장에 묘사한 제사의식 목록이며, 이들 모두 예배 행위였습니다. 목록에서 나오는 첫 번째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의 특징은 완전히 태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제사처럼 제사장들이나 제물 바치는 사람이 어떤 부분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번제는 가장 중요한 예배의 실례였습니다. 사실 모든 제물을 올려놓는 제단은 번제의 제단이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제물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제일 앞에 나오는 것이 번제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오려면 제일 먼저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은 생생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예배를 최우선순위로 강조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30장 34-36절은 향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향은 성경에서 예배를 상징합니다. 참된 예배가 하나님께 올라가듯 그 향기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37-38절은 향에 대한 경고문입니다.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든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냄새를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에서 끊어지리라” 사실상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상징인 특별한 향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 향은 특별하고 거룩한 향이어야 한다. 누구든지 단지 더 좋은 냄새가 나게 하려고 감히 제멋대로 이 향을 만드는 자는 내가 죽이겠다.”
분명 예배에는 인간의 차원과 완전히 구별되는 매우 특별하고 거룩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고안하신 것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향은 불활성 성분의 화합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상징합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향처럼 거룩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고, 향기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감미로운 향기처럼 하나님께 올라가야 합니다.(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2. 예배가 잘못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
하나님은 자신에게 제대로 예배드리지 않은 사람들을 거듭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했을 때, 예전 같았으면 온 나라가 완전히 멸망했을 텐데, 다행히도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형벌을 완화해 주셨습니다. 대신 그들 가운데 3천 명만 죽이셨습니다.(출32:7-28) 그러한 심판의 행위는 하나님이 잘못된 예배를 어떻게 보시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레위기10장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직에 임명됩니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제사장이 되기를 기다려 왔고, 제사장직을 위해 준비하며 훈련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으로서 처음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 그들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습니다. [공인되지 않은 불] 아마도 그들은 보통 쓰는 향이 아니라 다른 향을 하나님께 분향했을 것입니다.(출30:9) 어쩌면 포도주를 마신 뒤에 제물을 바쳤을 수도 있습니다.(레10:8-9) 어떤 경우든 그들은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으로서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예배에 과한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하게 행하였고, 이제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즉시 죽이셨습니다.
그 날은 슬픈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예배를 인도하는 그날을 평생 고대해 왔는데, 첫날 한 번의 잘못된 행위로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젊고, 활기차고, 열심과 열정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한 가지 예).....사울 왕[삼상13:8-14]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구약 이야기 중 하나는 웃사의 목숨을 잃은 이야기입니다. 웃사는 분명 고핫 자손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에게는 과업이 있었으니, 바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배운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절대로 언약궤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는 고리에 채를 끼워 운반해야 했고, 고핫 자손들은 정확히 민수기4장 5-6절에 쓰인 방법대로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했습니다. 15절에서 그들이 성물을 만져서 죽는 일이 없도록 주의 깊게 그것을 덮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삼하6:3절과 6-7절은 웃사의 방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을 따르지 않고 언약궤를 수레로 옮기게 했습니다. 그것은 “새 수레”였습니다. 이는 궤를 옮기는 사람들이 그들의 임무를 거룩하게 생각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그 궤를 오래 된 건초 수레에 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분명히 명하신 방법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가던 도중 수레가 덜컹거리며 뒤집히려 하자,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 평생 훈련받아 온 웃사는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팔을 뻗었습니다. 웃사가 손을 대자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예배 드리는 자들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
웃사는 분명 좋은 의도였습니다. 그는 언약궤를 보호하여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 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할을 잘못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다른 방법으로 책임을 다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하나의 예배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려는 시도로 여겼을지 모르나, 손으로 궤를 만짐으로써 그 궤를 더럽혔고 결국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정상에서 벗어난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라면 어떤 예배든 하나님이 받아주실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분명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자기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자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가 아무리 순수해 보이고, 우리의 시도가 아무리 진심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실 수 없습니다.
3. 합당치 않는 예배 4가지
1) 거짓 신들에 대한 예배 성경의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다른 이에게 예배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48:11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거짓 신들을 숭배합니다. 롬1장21절은 모든 인간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온 인류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그런 후 바울은 우리 인류가 더 악한 형태의 거짓 예배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역사를 설명합니다. 바울의 묘사대로 인간 타락의 본질은 바로 거짓된 예배에 빠지는 것입니다. (롬1:22-31절 참고)
2) 잘못된 형식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신4:14-19절에 기록된대로 모세는 모여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4.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다시 말해, 하나님은 한 나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낼 때 어떤 명확한 형태로 형상화되지 않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 기적,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났지만, 하나님이 만질 수 있거나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으셨습니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하나의 형상으로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왕좌에 앉아계신 턱수염 난 할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우상 숭배는 조각가의 망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어떤 모습을 그려야 합니까? 그 어떤 모습도 그려볼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하나님의 시각적 개념도 그의 영원한 영광을 제대로 표현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빛의 조각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ㅡ
3) 자신의 방식대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앞에서 보았듯이 나납과 아비후, 사울왕과 웃사는 모두 하나님의 계시와 상관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것은 돌로 만든 우상에 예배하는 것만큼 잘못된 예배이며,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4) 올바른 방식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나, 잘못된 태도로 예배하는 것.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예배보다 훨씬 더 미묘한 형태의 거짓 예배는 바로 올바른 방식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나, 잘못된 태도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 신과 참되신 하나님의 모든 형상과 자신이 만들어낸 예배 방식을 없앤다 해도, 마음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 예배는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 태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가? 여러분의 마음은 경외심과 존경심으로 가득한가? 솔직히 말해 봅시다. 우리 중에 이런 질문에 아무 주저함 없이 무조건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라기 1장에서 하나님은 부적절한 예배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을 맹렬히 비난하십니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그들은 예배를 업신여기고 경솔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리지 않고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짐승을 드림으로써 그들이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은 것은 그들의 태도가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선지서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에 관한 예언은, 그들이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올바른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가?
나가는 말)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늘 드리는 예배지만 예배가 무엇인지 알고 예배를 드리십시오. 이왕 드리는 예배라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여야 합니다.
교회가 예배를 올바로 드리지 못하면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실패하고 맙니다. 한 마디로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실패로 온 세상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 또한 아셔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지금도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온갖 우상들 앞에, 물질적인 것, 의식이나 형식 또는 하나님의 축복에 초점을 둔 예배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아니라도 우리는 예배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자신의 방식을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어니면 잘못된 태도나 건성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그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새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서 듣고 예배에 대해 배우십시오. 그리고 잘못된 예배 태도를 고치십시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바로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예배드림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참된 예배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되길 기도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