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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원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지민
사막
민지야, 내려와서 가게 일 좀 도와. 엄마가 아래층에서 나를 불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방바닥에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엄마가 민지야! 하고 나를 한 번 더 불렀다. 나를 가게로 끌어내리려는 엄마의 목소리가, 꼭 모래지옥 같았다.
모래지옥은 사막에 있는 무덤이다. 안쪽은 비어 있는데 겉은 모래로 덮여 있어서, 밟으면 땅속으로 빠지고 만다. 나는 사막 사진집 20쪽을 폈다. 거기에는 모래지옥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낙타가 있었다. 낙타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낙타에게서 묻어온 절망을 잊으려고 고개를 두어번 저은 뒤, 50쪽을 폈다. 거기에는 하얀 소금과 투명한 물로 이루어진 소금사막의 사진이 있었다.
소금사막은, 모래로 뒤덮인 일반 사막의 중아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막이었다. 거칠고 힘겨워보이는 다른 사막들과는 달리, 천국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소금 사막에 가고 싶었다. 저기에 있으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일 터였다.
소금사막에 가는 것은, 우리 가게에 책 코너가 들어선 이후 내 가장 큰 소망이 되었다.
우리 집은 1층에서 슈퍼를 했다. 정말 온갖 걸 팔았다. 식료품부터 시작해서 약재, 철물까지 팔았다. 최근에는 책장까지 들여, 서점도 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야지.”
엄마가 책장에 책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나도 엄마를 도와 책을 꽂던 중에, 사막 사진집을 발견했다. 사막 사진집의 표지 사진은 소금사막의 풍경사진이었다. 나는 소금사막을 본 그 첫 순간에, 저기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금사막의 호수는 맑게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소금사막에 가면 사는 것 같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일 것이었다. 이렇게 애써서 살아야하는 삶이 아니라, 가볍게 날아다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 그래서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서, 소금사막에 가.”
엄마는 계산대에서 매출 정산을 하며 말했다. 나는 그게 아냐. 라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막에서 살 듯 필사적으로 살기는 싫었다. 사막을 횡단할 사람들처럼 엄마는 꾸역꾸역 가게에 수많은 물품들을 들였다. 언제 무엇이 팔릴지 모른다며 엄마는 무엇이든 갖다 놓았다. 아빠는 하루 종일 택시를 몰았다. 아마, 아빠가 달린 거리를 다 합하면 이미 사막 몇 번쯤은 횡단을 끝냈을 것이다. 나는, 사막에서 지도를 보는 것보다 더 집요하게 문제집을 들여다보았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애썼지만, 늘 목마름은 채워지지 못했다. 엄마는 또 적자라며 한탄했고 아빠는 허리에 파스를 매일 붙였다. 내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가끔, 밤에 누우면 너무 지칠 때가 있었다. 모래바람이 불어온 듯 눈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흘러나오고는 했다.
민지야! 엄마가 나를 다시 불렀다. 모래지옥 같았다. 이 사막에서, 내가 태어난 이 사막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민지! 나는 일어났다. 사막을 거치는 삶을 살지 않고서는 소금사막에 도달할 수 없었다. 꾸역꾸역 사막을 횡단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 가족도 소금사막에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때 엄마아빠와 나란히 서서 소금사막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단을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가게로 가는 계단이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김경민
파란색 혹
낙타는 속눈썹이 길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서라나. 나는 문득 아빠가 걱정 됐다. 머리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는 아빠가 속눈썹이라고 풍성할 리가 없지 않은가. 파란 모래들이 날리는 곳에서 아빠의 눈은 괜찮을까 얼굴의 절반을 덮는 안경을 쓰고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얼굴에 내려앉은 가루가 없나 살펴봐야겠다.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고 낙타의 등에 난 혹이 나타났다. 색색깔의 비단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짐꾸러미가 혹을 피해 낙타의 등에 얹어져 있었다. 저 혹은 낙타가 사막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물탱크였다. 부엌에 있는 정수기처럼 원하는 때에 물을 꺼내 먹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낙타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바람이 불어 모래들이 일순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제작진들은 카메라 장비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더 봐도 나올 건 뻔했다. 황금빛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탁한 모래 알갱이들. ‘오아시스를 찾아서’라는 방송 제목은 아무래도 잘 못 지어진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도 아니 아빠에게 혹이 생기게 될 줄은 사막의 모래바람은 예고 없이 불어온다던 내레이션이 귓가를 맴돌았다.
철문을 열면 아빠가 있었다. 나는 문밖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빠를 불러보았다. 기다란 호스를 들고 휘청거리는 아빠는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내가 문을 열면 나오기 쉽겠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문 안에 있는 파란 모래 바람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빠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문을 열고 나온 아빠는 스머프 같았다. 작업복을 감싼 걸로 모자라 장갑 속에 있던 손톱에까지 파란 모래가 껴 있었다. ‘분료 도장 작업’이라고 했다. 선박이나 비행기 몸체에 색을 칠하는 것인데 가루 페인트라며 아빠가 기침을 했다. 눈가루가 폴폴 날리듯 아빠 주변에서는 파란 가루가 떠다녔다. 물을 찾는 아빠의 모습은 오아시스를 찾던 제작진 같았다. 눈 부분이 조금 보이는 안경 안에는 몇 가닥 남지 않은 속눈썹이 있었다. 속눈썹 사이사이에도 가루들이 내려앉았다.
“계속 몸 안에 쌓여 있다 보니 병이 된 거죠. 직장을 그만두실 수는 없으니까……. 지금은 약을 복용하는 게.”
엄마의 눈물은 파란색이 아니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려 청바지에 떨어지고 나서야 파란색으로 보였다. 아빠에게 혹이 생기게 됐다. 눈밭에 눈덩이를 계속 굴리다보면 어느새 커지게 된다. 나는 아빠의 혹이 파란색이라는 걸 알았다. 아빠는 항상 파란 가루와 함께였으니까. 아빠는 기어코 작업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빠는 마치 철문 안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손을 꽉 잡았다. 다행히 손바닥에는 파란 가루가 남아 있지 않았다. ‘파란 비행기’ 내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아빠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낙타의 반짝이던 눈망울과 닮아 있었다. 아빠가 찾는 것은 뭘까. 낙타들은 사막을 행진하며 오아시스를 찾는다. 아빠에게는 비행기가 오아시스일까. 무엇보다 아빠가 걷고 있는 사막의 끝이 있을까 궁금했다.
사막에서는 신기루가 나타납니다. 높낮이가 없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낙타의 혹이 눈에 거슬렸다. 소파에 누워 있는 아빠의 배를 봤다. 등이 아니라서 그런가. 오르락 내리락 코 고는 소리에 움직이는 배에는 혹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손을 가져다대 꾹꾹 눌러보아도 혹은 만져지지 않았다. 억, 소리를 내며 아빠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 때문인 것 같아 서둘러 물을 한 컵 떠왔다. 아빠는 혹을 갖고 있으면서도 목이 마른지 벌컥벌컥 들이켰다. 잠이 깬 아빠는 마스크를 꼈다. 작업실에서 쓰는 것 보다는 훨씬 부드러웠다. 숨을 쉬기에는 편할 것 같았다. 귀찮지도 않은지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잠을 잘 때를 빼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아빠는 건조대에 있는 작업복을 챙겼다. 소매 끝 부분은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빠를 따라 작업장으로 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나는 조금 무서웠다. 아빠에게만 의지하기에 사막은 너무도 컸다. 가까이에서 본 비행기 날개는 그냥 쇳덩어리였다. 부분별 도색 후에 합체를 시키기 때문이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빠는 호스의 앞쪽을 잡고 나는 아빠의 옷자락을 잡고 파란 가루의 사막 속으로 거어 들어갔다. 분료 도색 장치를 작동시켰다. 호스를 타고 나오는 파란 가루 바람은 금방 눈앞을 뒤덮었다. 앞에서부터 칠하지 않고 아빠는 깊숙하게 들어갔다. 마침내 아빠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아마 마스크 속의 입도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내게 작은 비행기 모형을 건넸다. 역시 파란색이었다. 날개 위에는 가루가 뭉쳐있었다. 나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 보았다. 힘없이 부서진 가루 뭉치는 사방으로 퍼졌다. 아빠의 파란색 혹은 어떨까. 그것들도 가루가 뭉쳐진 것인데 쉽게 터지지 않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파란 가루가 가득한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아빠가 만들어 준 비행기와 함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파란색 혹은 힘없이 톡 터지지 않을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
한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백소현
아버지의 목소리
당신이 미웠다. ‘아버지’라는 이름 하나로 인해 나는 당신을 사랑하다가도 금방 다시 미워하였다. 내가 작은 두 발로 일어나 당신을 향한 첫 발을 떼기도 전에 당신은 ‘우리’를 떠났다. 엄마는 당신에 대한 언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지만 나는 당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안방 서랍장에서 겨우내 찾은 가족사진 속에는 오빠를 닮은 한 남성이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까마득히 잊은 당신의 얼굴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잊었다기보단 애초에 내 기억 속에 없는 당신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당신임을 알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당신을 바라보다 엄마 몰래 유일한 당신의 사진을 내 책상 서랍에 넣었다.
사진은 그 순간의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을 뿐, 목소리는 담아내지 못한다. 당신은 내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데 당신은 아무 말이 없다.
내가 열 두 살이었을 때였다. 주말을 맞아 외할머니댁에서 하룻밤 잔 다음날, 나는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수첩을 들춰 보았다. 매번 그 자리에 있는 수첩들에 호기심을 느낀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수첩에는 누군가의 전화번호들이 써져 있었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사촌동생네와 성북동 큰 할아버지, 그리고 부동산. 한 장 한 장 넘기다 무심코 맨 뒷장을 쳤다. 뒷장에는 ‘사위’라는 이름의 한 전화번호만이 적혀 있었다. 외가댁의 사위라고는 미국 워싱턴에 사는 이모부와 당신뿐이었다. 이모부의 번호가 아니었다. 유년의 시절,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의 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번호는 누구의 것일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어 종이에 적혀 있는 번호를 따라 눌렀다. 그래, 사실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의 어린 딸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고 당신을 찾아서 헤맨 적이 있다. 번호의 주인이 당신이길 바라며 손끝으로 더듬거렸다. 오랜 발신음 끝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백종구씨 맞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당신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 전화기만 꼭 쥐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려 갈라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의 앞에선 벙어리에 불과했다. 전화기와 전화기 사이에 오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틈 사이로 부엌에서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소리가 드렸다. 당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당신이 내게 짜증난 말투로 혼을 내눈 순간에 나는 묵은 김치가 보글보글 끓으면서 내는 매콤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당신의 옆에서 누구냐 묻는 낮선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아, 미쯔코. 아무것도 아니야. 장난전화인가봐. 당신은 그리 다정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뚜욱-뚜욱-. 전화기만이 다시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지 말라고, 그럴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방금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혹은 ‘미쯔코’라는 여자는 당신의 직장 동료일 것이라 생각했다.
밥 먹어라. 식탁과 반찬 접시들이 부딪히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다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로 하였다.
그 날의 밤은 유독 깊어 나는 꿈에서 영영 길을 잃는 게 아닐까, 했다. 그러나 밤이 오면 아침도 오는 것이었다. 밤은 쉬이 가버리는 것이었다. 당신의 뒤를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 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당신은 보이지 않았다. 신기루가 사라진 자리에는 밤새 비가 내려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목련잎들이 바닥에 납작 눌러 앉아 있었다.
당신, 행여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로 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아버지, 나는 입술을 달싹여 그 부름 한 번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끝내 어떤 말일지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 말, 꼭 들려주고 싶다.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셨나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3학년 박희영
목소리
병실에 들어섰다. 병원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가 보였다. 닫힌 유리창 너머로는 우중충한 하늘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들만 보였다.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엄마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형광등의 빛과 사람의 형체가 비칠 정도로 잘 닦인 바닥에 구두가 닿으며 또각또각, 무언가 깎아내는 소리를 만들었다.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낯선 사람을 보듯 그 눈 안에는 경계심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나를 보며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웃으며 엄마의 딸이라 답했다. 올때마다 반복되는 물음과 대답이었다. 엄마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침대 맡에 있는 사진을 액자 채로 들어 보여주며 사진 속의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 말했다. 나는 병실에 올때마다 보았던 과거의 가족사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지금보다 더 젊은 나이의 엄마와 이제는 사진으로만 뵐 수 있는 아빠, 그 사이에 지금보다 어리고 수줍고 엄마의 얼굴을 무척이나 닮은 내가 서있다. 엄마는 품 속에 아기를 안 듯 액자를 끌어안고 나에 대해서 말했다. 어느 날에는 새끼 길고양이를 데려와 돌봤고 어느 날에는 손편지를 써 자신을 감동시켰고 또 어느 날에는 화분을 가와 정성스레 꽃을 가꾸었던 참 마음씨가 고운 아이라고. 나는 기억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눈을 꼭 감고 미소를 짓는 엄마는 병실에 있는 사람같지 않게 행복해 보였다. 엄마가 다시 두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아가씨는 누구야? 또 한 번 묻는 말에 잠시 숨을 멈췄다가 내뱉으며 말했다. 저, 엄마 딸이에요. 엄마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불쑥 손을 내밀어 내 얼굴을 만졌다. 볼록한 이마, 쌍꺼풀 진한 눈, 곧게 뻗은 콧대와 입꼬리가 올라간 입매 더듬더듬 내 얼굴을 만지던 따뜻한 손은 금방 떨어져 나갔다. 엄마는 액자를 내 눈 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족제비처럼 쭉 찢어진 눈에 누군가 짓누른 것 같은 낮은 콧대, 툭 얹어놓은 것 같은 광대. 내 얼굴은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액자를 밀어냈다. 엄마는 내가 액자를 밀어낸 것에 마음이 상해 몸을 돌려 누워버렸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일어났다.
창밖에선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모든 걸 씻어내리는 듯한 비의 냄새를 맡고 싶었지만 나무를 뿌리째 뽑을 듯 사납게 부는 바람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비 내리는 것을 보기만 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툭툭툭, 발길질 하는 소리 같았지만 창문에 부딪혀 흩어지는 건 빗방울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 딸이에요.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부터 들뜬 듯 높으면서 동시에 듣기 날카로웠던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말하자 엄마의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두 눈을 느리게 꿈뻑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저 가볼게요. 병실의 문고리를 잡기 전까지 대답이 없던 엄마의 목소리가 문을 열자 들려왔다.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뒤를 돌아 엄마를 보았다. 여전히 잠자듯 눈을 감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유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눈을 뜨고, 멀어서 보이지 않을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3학년 고선경
스윗 데저트
나는 분명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지혜 누나와 솜사탕처럼 녹아내릴 듯한 첫키스를 나누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
낙타?
낙타 씨는 카페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귀에는 소니 이어폰을 꽂은 채 이따금씩 다리를 까딱거렸다. 나는 질겁해서 소리를 꽥 질렀다. 경찰 신고는 112, 간첩 신고는 모르고, 짜장면집 번호 까먹었을 땐 114, 동물 신고는 어디로 해야 되나요. 나는 손을 달달 떨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번호가. 대체 어디에, 신고를. 그때 낙타 씨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아주 우아하게 깜박,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체내에선 심장을 포함한 모든 내장기관이 펄떡펄떡 뛰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낙타 씨의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그것이 나를 부르는 낙타 씨의 신호인 듯했다. 쭈뼛거리며 카운터에서 나와 낙타 씨에게로 다가가자 그녀는, 혹은 그는, 아니, 아마도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 했다. 나는 찔끔, 오줌을 지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낙타 씨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를 핥기 시작한 땀방울을 몰래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닦았다. 낙타 씨는 말이 없었다. 혹시 졸리신가. 여동생이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아 풀 바른 인조 속눈썹을 붙이던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낙타 씨의 속눈썹은 그보다 길고 풍성했다. 그리고 어딘가 고급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 눈을 좀 뜨시지요. 낙타 씨는 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번뜩 눈을 떴다.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사막, 좋아하시나요?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메뉴판을 떨어트렸다.
주섬주섬 펜과 메뉴판을 주우면서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암요. 낙타 씨는 사막에서 오셨답니까? 그런데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무슨 볼 일이라도? 낙타 씨가 여기 계셔서 불편한 거 절대 아닙니다. 단지 정말 궁금해서. 나는 횡설수설 되는 대로 입을 놀리며 자꾸 헛손질을 했다. 오래된 메뉴판의 종이들 중엔 찢어진 쪽수가 많았다.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 몇 장까지 간신히 줍고 나서 메뉴판을 펼쳐 종이를 끼우려는데, 침이 꿀꺽, 넘어갔다.
SWEET DESERT
우리 사장은 머리가 졸라 나쁘다. 달콤한 후식인지 사막인지 모를 그 촌스러운 영문자를 바라보다가 머리가 띵, 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낙타 씨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낡고 흙탕물 튀긴 자국이 군데군데 찍혀 있는 간판에, 카페 이름이 써 있었다.
SWEET DESERT
그러니까, 디저트인지 데저트인지 모를 그 영문자를 나는 망연자실하여 쳐다보았다. 유리창 너머의 낙타 씨는 어느새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리를 흔들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유진
필리핀의 사막을 아시나요
내가 열한살이 되던 해, 나는 중학교 수학 과정인 인수분해를 배웠다. 그것은 단순한 선행학습을 위한 게 아닌, 그 나라의 교육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 내가 다녔던 필리핀 국제 학교에서 나눠준 책들은 온통 영어뿐이었고 대학교 서적만큼이나 두꺼웠다. 지금은 수학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때의 내게 인수분해란 다가가긴 커녕 쳐다볼 수조차 없는 벽 같았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수학만이 아니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간 곳이니만큼 난 하루에 열시간을 영어와 싸웠다. 영어로 쓰여진 과학을 배웠고 문학을 접했으며, 심지어 필리핀 모국어인 따갈로그까지 배우곤 했다.
막막하게 다가온 것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내가 향할 곳은 하숙집이 유일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층에 위치한 나의 방이 나의 하나뿐인 목적지였다. 친구도 없었을뿐더러 낯선 나라를 혼자 돌아다니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다고 집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지내던 곳은 엄마의 고교시절 동창인 이모의 집이었는데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 외곽 마을에 위치한 2층 주택이었다. 이 집에 처음 온 날을 난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본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낯선 것에,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가 그 집 식구들과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집 식구들이라고 하면 이모와 남고생 아들 하나, 내겐 그저 아저씨 같았던 대학생 오빠 둘이었다. 남편분이 다른 나라에서 일하느라 그곳에 없었던 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그런 집의 화목한 주말 저녁 시간을 가르고 등장한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만약, 내가 어색하게나마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면 꽤 괜찮은 첫만남이 되었을 것이었다.
한 번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인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혼자 있는 편을 택했다. 그렇다 보니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내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매일 봐온 물건들을 몇 번이고 다시 관찰하는 시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것 같은 방의 열기였다.
방이 2층에 있던 탓에 햇빛은 고스란히 집 지붕과 내 방 창문으로 흡수되었다. 필리핀의 해는 무척이나 뜨거웠으며 1년내내 길었다. 찜질방처럼 후끈거리는 공기는 물론이고 방바닥 위에 맨발로 서있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침대나 이불, 책상과 의자까지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이 나면 스멀스멀 일어서는 곱슬머리를 가진 나로선 다른 사람에 비해 몇 배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이글거리는 방은 그야말로 사막이었다. 내 얘기를 들은 엄마는 헛똑똑이가 따로 없다며 1층에 가있으라고 말했지만 낯선 것 투성이인 1층에 내려가리란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1층에 가면 느껴질 어떤 막연한 소외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몇 평짜리 사막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미지근한 물만 끊임없이 마셔대다간 선인장이나 낙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거나 전갈만큼이나 큰 바퀴벌레에게 물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와 같은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일부러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 할수록 울컥 하고 서러워지는 일이 많아졌다. 당장이라도 119에 전화해, 여기 사막에 같힌 사람이 있으니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집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이 때가 기회다 싶어 1층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벌레가 많은 것은 똑같았지만 선선한 바람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텔레비전을 켜서 매일 소리로만 시청하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던 찰나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1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거실을 사막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 이전에 내가 2층의 사막에 갇혀 산다는 걸 나말고 누가 알고 있긴 할까?
콜라를 마시며 한 손에 리모콘을 쥐고 있는 날 본 3명의 아저씨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민망한 건 그 잠시뿐이었다. 잠시 일시정지되었던 화면이 도로 재생되듯 우린 일순간에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순간부턴 내가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을 보며 동시에 웃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사막에서 보냈던 어제까지의 낮이 벌써 옛날일처럼 느껴졌다.
뭐야, 별 거 아니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 뒤로 해가 떠있는 동안 나는 1층에 머물렀다. 딱히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애초에 1층은 사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나는 계단을 올라 밤이 찾아왔을 사막, 그러니까 나의 방으로 향했다. 열기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그곳 특유의 산뜻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누가 들으면 재미없고 속터지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같은 집안에서도 지구 한 바퀴를 돈 것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뜨겁다가도 차갑고, 차갑다가도 도로 뜨거워지는 사막에서 보낸 나의 열하나는 열아홉이 된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다. 낯선 것이든 힘들고 벅찬 것 때문이든, 종종 사막 한가운데 뜨거운 모래를 딛고 서있는 것 같은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렴 좋다. 문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열고 나갈 용기가 생겼고 끝이 안 보일 땐 주위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법도 배웠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때는 몰라도 사막에 밤바람이 불 거라고, 나는 믿는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진윤선
목소리
뭐? 남자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어왔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환승역인 탓에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내 작은 목소리가 남자에게 들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 했고, 또다시 작게 말을 내뱉었다.
마포 도서관은 어느 출구로 가야 해요…….? 작게 속삭인 목소리는 당연히 주변 소음들에 묻혀버렸다. 귀 끝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뒤통수를 남자의 뾰족한 시선이 찌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크게 터져나오지 못 하고 목에 걸려서 나오는 목소리가 원망스러웠다. 남자가 잠시 나를 흘겨보다 내게서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내 목소리는 항상 낮고 꽉 막힌 채 흘러나왔다 자신이 없어서 목소리를 크고 또렷하게 못 내는 탓이었다. 속으로는 잘 정리되어져 있던 말들도, 밖으로 내뱉으려 하면 목구멍에서부터 소리가 먹혀서 나왔다. 그래서 몇 되지도 않는 대화를 주고받고 나면, 금방 목이 피로해져 아파오고는 했다.
엄마는 학생 때 입이 아프게 떠들며 놀았는데 넌 뭐니? 진짜 엄마 속상하게. 함께 외출을 하고 들어온 날이면 나를 밉지 않게 흘겨보며 엄마가 한 말이었다. 상대와 눈도 못 마주치고 속삭이듯 말하는 나를, 엄마는 항상 속상해했다. 그러면서도 이내 수줍고 낯가림이 조금 심해서 그런 것이라며 달래주고는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괜히 손끝만 바라보았다.
맨 처음에는 나도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구부정하게 사람들 시선을 피하는 내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나를 포기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내가 가장 못난 사람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차라리 내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늘은 유독 미워졌다.
길을 걸을수록 생각이 늘어갔다. 이사를 오고나서 위치를 알고 있음에도 찾지 않다, 처음으로 새로운 동네의 도서관을 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도서관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외출을 준비하게 하는 몇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점차 발걸음을 빨리했다. 지금 가는 도서관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책들이 조용한 말들을 가득 품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억지로라도 좋은 생각들을 하려고 하자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한 말이 있지만 오늘따라 더 와닿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도서관은 내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장의 가장 밑칸, 구석진 자리에 꽂혀있는 시집을 빼내었다.
표지에 쌓인 먼지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 목소리마냥 책에 담긴 이야기도 오랜시간 묵혀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내 오래 읽히지 않은 책은 버려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책과 함께 내 목소리도 잊혀지면 어떻게 하지. 나는 책의 내용도, 나의 원래 목소리도 궁금해졌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책 표지의 먼지를 털어내고 첫 장을 폈다. 그와 함께 허리를 꼿꼿히 세웠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또렷하게, 하지만 조용히 책의 첫 문장을 읽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울산여자고등학교 3학년 황희진
칼 가이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작은 심장소리가 교실안에 울려퍼지는 듯, 교실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일자로 줄지어 있는 책걸상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다들 긴장한 눈치였다. 난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손바닥을 교복치마에 닦았다. 이번 시험도 망치면 정말이지 재수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종이 치고, 바삐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내 심장소리를 덮었다. 맨 뒷줄에 앉아있어, 시험지가 여러 경쟁자들 손을 거쳐 내게 오는 동안 침을 모아 꿀떡 삼켰다.
선생님은 3분 뒤 영어듣기방송이 나올거라 일렀다. 그 3분동안 아이들은 여러행동을 취했다. 검지를 귓구멍에 박고 돌려서 귀지를 빼내는 아이들,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청력이 좋아지라고 기도하는 아이들 그리고 앞뒷문을 재빠르게 닫아 밖에 소리를 완벽히 차단하는 아이들. 난 기도를 하는 편이었다. 기도내용은 청력이 좋아지게 해주세요. 가 아닌 아빠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종이 짧게 울리고 곧바로 독특한 발음을 가지고있는 남녀의 목소리가 스피커 구멍으로 새어나왔다. 여자는 하이톤의 영국발음으로, 요즘 부쩍 잠이 오지 않는다며 걱정하고 있었고 남자는 아주 친절하게 그녀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문제는 그들의 관계를 맞추라는 것이었다. 평균적으로 이런 내용이면 ‘환자-의사’라고 택하겠지만 둘의 대화 끝부분에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반전이 나온다. 여자가 ‘오, 허니. 땡큐’라고 하거나 ‘땡큐, 빠더’와 같은 반전의 호칭이 나온다. 둘의 대화가 클라이막스로 흘러갔고 여자의 목소리가 나올 타이밍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집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칼 가이소-”
다들 엉덩이 한 쪽을 든 채로 정지했다. “칼 가이소-” 한번 더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는 칼 가이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반에선 짜증섞인 한숨 소리와 펜을 던지는 소리가 났다. 내 앞에 앉은 친구는 묵은 머리를 풀고 창문을 흘겨 보았다. 창문밖의 목소리의 주인공을 증오하는 눈빛이었다. 난 엄지손톱 밑을 긁었다. 갑자기 손톱 밑이 간지러워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눈치없는 칼 가이소- 소리는 더 우렁차고 가깝게 들렸다. 쫌전에, 처음에 들렸던 소리는 키모마트 쯤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면 점점 교문에 가까워지게 들렸다. 아예 교문에 차를 세우고 칼을 갈아주는지 듣기방송이 끝날때까지 외국인의 목소리는 한번도 듣지 못했고 칼갈라고 재촉하는 소리만 들어야했다. 결국 듣기방송이 끝나는 종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놓은 펜을 다시금 들었을 때, 칼 가이소-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듣기방송을 듣지 못했으니 거의 20점은 날린 상태였고 뒤에 문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분명 칼 가는 아저씨는 간 듯한데 자꾸만 아저씨의 목소리가 고막을 내리 찍는 듯 했다. 몇몇 애들은 시험을 포기하고 엎드리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후, 우리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와, 나 진짜 이런 말하면 안되지만, 칼 갈아서 저 아저씨 찌를뻔했어.’, ‘진짜 어떻해. 자퇴할까?’ 아이들은 사기를 당한 사업가처럼 화를 내거나 울었다. 그들로 쌓여있는 나는 중간에서 죄지은 듯 고갤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 날, 집으로 가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빤 아주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의 표정은 많이 지쳐있었다. 입가에 있는 깊은 주름이 더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그는 거실에 있는 나를 보곤 이내 웃어보였다. ‘딸, 왜 안자고있노? 아빠 기다렸나?’ 누런이를 보이며 웃는 그를 보곤 고개를 떨어트렸다. 마음 속에 하루종일 담아 둔 말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는 아이고, 소리를 내며 내 옆에 앉았다. 그에게서 쉰 땀냄새가 났다. 난 두 눈꺼풀을 빠르게 여닫았다. 이유모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빠가 거친 손바닥을 내 손등위에 올렸다. 보드라운 손등위로 거친 바위가 올려진 느낌이었다. 난 빠르게 손을 뿌리치고 보폭을 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쾅소리나게 문을 닫았다.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집안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다만 집 안 공기가 낯설게 느껴질 뿐이었다. 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부재중이 63통이나 와 있었다. 잠이 덜 깨, 가느다랗게 뜬 눈을 크게 떴다. 난 63통이나 전화를 건 아빠에게로 바로 전화했다. 통화음이 별로 흐르지 않았는데도 애국가 4절을 부른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기나긴 전화연결음 후에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아니었다. 전화 너머에 있는 그 남잔 병원 응급실로 빠르게 와 달라고 했다. 난 대충 옷만 갈아입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바로 아빠를 찾지 못했다. 가슴위에 손을 올리고 주변을 기웃거렸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내게로 왔다. ‘김광규씨 보호자 되십니까?’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고 그를 따라갔다. 우리 둘 다 발걸음이 빨랐다. 발걸음이 멈춰선 곳은 한 침대 앞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는 바지에 벌건 피를 묻힌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빠르게 떨리는 손으로 곳곳에 피가 묻은, 거친 손을 잡았다. 내 손의 진동으로 그의 손까지 진동이 이어졌다. 좀채 움직이지 않던 입술까지 떨리고 이내 눈물을 뚝, 흘렸다. 산소호흡기 안으로 들리는 느린 숨소리에 집중했다. 영어듣기방송에서 여자의 다음대사에 집중하는 것처럼 귀를 기울렸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난 아빠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벌린 입이 뭔가 할 말이 있어보였다. 그는 허억허억, 숨을 깊게 들이 마쉰 후, 혀를 천천히 움직였다. 산소호읍기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머리를 내려 그에게 가까이했다.
“카아... 카알... 가아... 이... 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 3학년 우희지
목소리
블라인드가 바람결에 흔들린다. 창문턱에 부딪칠 때마다 들려오는 불규칙적인 소음이 자꾸 신경쓰인다.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도 보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한참 졸음이 몰려오는 5교시 수업도 아니고, 평소 내가 싫어하는 과목도 아닌데.
“우리 몸 21번 염색체가 비정상적으로 1개가 더 많은 3개가 존재하면 그 사람은 바로 다운증후군 환자예요. 염색체 수 하나로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되는데...”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물 선생님의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요 증상으로는 극단적인 신체 능력, 낮은 시력 이상 등을 들 수 있으며...”
정말이었다. 교과서에 소개된 다운증후군 환자의 염색체 사진은 한 개를 더 갖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얼구이 후끈 달아올랐다. 뜨끔했다. 아이들이 이런 내 얼굴을 보기 전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언니였다. 사진은 언니와 꼭 닮아 있었다. 이번 수업 내용은 우리 언니의 염색체에 대한 것 이었다. 사진 옆에는 다운증후군 환자의 특징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생물시간에 이런 내용을 배우게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자꾸 머릿속에 언니가 떠올랐다. 동시에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뭔가가 많이 다른, 리듬이 좀처럼 맞아들어가지 않는 그 목소리가. 아직까진 아이들이 언니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다행이었다. 그 비밀이 밝혀지면 저 애 언니가 다운증후군이래, 수군대는 장면이 안봐도 비디오였다. 비밀은 계속 지켜져야만 했다.
어쩌다 언니와 외출을 하게 될 때면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난 다 느껴졌다. 언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앞서 걸었다. 난 그런 언니를 멀찍이 뒤쳐져서 주시했다. 언니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한마디로 럭비공이었다. 언니가 날 필요로 할 때 난 항상 언니 곁에 있겠지만 나의 상황은 달랐다. 나도 내가 힘들때면 조언이나 심심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언니가 필요했다. 언니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렸다. 벌써부터 언니는 그렇게 내게 짐짝같은 존재였다. 그것이 내겐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가끔씩 언니를 여느 사람들과 같이 대하는 나를 보며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철이 없어서, 뭘 몰라서 하는 행동은 아닐까 돌이켜 본다. 하지만 언니에게 대하는 내 행동들은 전혀 반대로 나가게 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되게 하는 내가 싫고, 무엇보다 이런 사람이 정말 내 언니라는 현실이 짜증났다.
어느 날인가, 언니는 내게 물었다.
“얼룩말은 뭐가 얼룩이야? 검은색인가? 근데 흰색이 얼룩이 될 수도 있잖아.”
언니는 참 한심한 질문들을 내게 많이 했다. 언니의 어눌한 목소리와 말투 때문에 가뜩이나 바보같은 질문이 더 멍청하게 들렸다. 꼭 내가 초등학교 때 궁금해 했을 법한 질문들을 이제야 내게 던진다. 처음엔 이것저것 내게 많이 물어도 친절히 대답해주고 받아주었지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또 했다. 언니는 얼룩말을 그렇게 좋아했다. 가족끼리 동물원에 가도 언니 때문에 얼룩말 앞에서 몇 시간씩 자리를 지킨 적도 많았다. 언니는 얼룩말의 무늬가 제일 좋다고 했다. 다른 말들과 달라서일까. 언니의 눈엔 얼룩말의 얼룩이 얼룩으로 보이지 않아서일까.
“최근 미국 공과대학의 한 연구그룹이 다운증후군 발병원일을 규명했어요. 장래적으로는 염색체 이상을 유전자 수준으로 수정하여 다운증후군의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아, 하는 탄성소리가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나는 50분인 수업시간이 쳐지게만 느껴졌다. 꼭 두시간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의 사진이 난 더 확대되어 보였다. 사진속 사람들은 한결같이 언니가 가진 특징들을 지닌 얼굴들이었다. 문득 언니가 내게 던진 얼룩말에 관한 물음들이 떠올랐다. 이 사람들도 모두 얼룩말이었다. 자신의 얼룩이 결고 얼룩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언니의 물음이 내게 색다른 질문으로 다가왔다. 언니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에겐 이제 얼룩이 없다. 남들도 아마 언니를 볼 때 마치 한 마리의 얼룩말을 보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얼룩말의 목소리를 싫어할 필요도, 겁내할 필요도 없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임지현
엄마의 목소리
찜통 속의 교실은 더위에 지쳐가는 아이들과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 형광등 아래, 밝게 켜진 칠판 위로 흰색, 노랑색, 파랑색의 글자들이 빼곡하게 자리잡지만 나는 도통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초록색 칠판 위 글씨를 보면 자꾸만 On-Air가 켜져있을 엄마의 수술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학교 교실에 멀거니 앉아 엄마의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한 채 수업을 듣는 기분은 마치 내가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어버린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이 해괴망측한 소식은 대체 무엇이여…….”
엄마의 편도선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것이 다름아닌 암세포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온 할머니는 아기처럼 쉴 새 없이 우셨다. 엄마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멋쩍게 어깨만 주물거렸다. 자신이 이제까지 목 속에 암세포를 키워왔다는 사실을 엄마 스스로도 믿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헝클어진 엄마의 짧은 생머리와 세수조차 하지 못한 맨 얼굴이 유난히 초췌해보였다. 목소리가 생명인 내 딸아…….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엄마를 놓칠 것처럼 애타게 부르짖으셨다.
전자기기를 파는 회사의 상담원 일을 하는 엄마는 항상 고개를 조금씩 숙이고 있어 목통증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내가 엄마의 어깨를 주무를 때면 종이처럼 납작해진 엄마의 귀는 헤드셋에 오 년 동안 눌려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고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부터 식당 종업원을 그만두고 엄마만의 밝고 청명한 목소리로 어렵게 중소기업의 상담원으로 취직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항상 뒤로 꽁지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다. 엄마가 상담 일로 열시에 들어왔기 때문에 무안에 살던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올라와 빨래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상담원으로서 사 년째에 엄마는 회사 내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엄마는 대회에서 받은 상금들을 중학생이 되고 새로 등록한 내 학원비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런데 엄마가 상당원 일을 한지 칠 년 째가 되자 엄마가 잦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열한 시가 되어 들어와 자기 직전까지 잠깐 TV를 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기침을 했다. 나와 성적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가슴을 심하게 들썩거리며 연신 콜록거렸다. 한 번 기침을 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될 때까지 기침을 했다.
“오 년만 더 하자. 오 년만.”
이제까지 온 것도 잘한 일이라며 엄마는 나와 할머니에게 상담원 일을 계속하겠다며 다짐하듯 설득시켰다. 회사에 가는 날에도 목감기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엄마의 몸은 결국 일 년이 지나 터져버렸다. 회사에서 단체로 지원하는 건강검진을 엄마가 받았을 때는 편도선에 암이 퍼져나간 지 말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엄마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이후에도 일주일을 더 출근했다. 상담원 복장을 하고 생기가 없는 입술에 빨갛고 빨간 립스틱을 채우는 엄마의 모습이 내게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서글퍼보였다.
“아빠만 살아있었어도…….”
아치 싶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가 화장을 멈추고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회사에 나가는 엄마가 싫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없었다. 그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집 현관문을 닫고 나갔다.
회사에서는 엄마의 수술비를 60%정도 지원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동안 묵묵부답이었다. 돈을 지원해주겠다는 전화 한 통에도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 학원에 가서도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하긴 하는데, 그러자니 지현이 학원비가 문제고…….”
잠결에 깨 물을 뜨러 가다 나는 안방에서 새어나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는 “안 된다. 걱정 말고 수술하려무나.” 라며 엄마를 나무라고 있었다. 아픈 자신의 몸을 챙기기 이전에 나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의 진심이 느껴졌다. 가슴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솟아올랐지만, 나는 꾸역꾸역 숨을 가다듬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엄마에게 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감정노동자’를 주제로 논술 말하기 수행평가를 하게 되었다. 사회문화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보았던 신문 사설의 상담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써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상담원이 된지 오 년, 아니 칠년이 지나서도 나는 정작 엄마를 너무 모르고 산 것 같았다.
“엄마, 엄마는 어떨 때 가장 힘들어?”
“진상 손님들이 계속해서 전화 걸어왔을 때가 제일 힘들었지.”
늦은 밤, 녹차를 옆에 두고 종이에 하나하나 받아 적어 내려간 엄마의 고충은 생각보다 자세하고 깊이 있었다. 나는 내 질문 하나하나에도 정성껏 대답해주는 엄마의 눈을 쳐다보았다. 눈, 코, 입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단지 주름이 좀 지고, 피부의 탱탱함이 조금 약해졌을 뿐이었다.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의 얼굴과도 똑 닮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예전처럼 엄마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다만 암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엄마, 수술 받자. 나는 무심결에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눈을 살짝 치켜뜨며 말했다.
“그럼 받아야지. 우리 지현이 모르고 있었구나? 엄마 수술받아서 열심히 나으려고 노력할거야. 될 때까지 해보는 거야.”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 그리고 내게 말해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듯 다정다감했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가 되어 울었다. 할머니는 어이고 우리 아가, 울지 마라, 하며 등을 쓸어내려 주셨다. 목소리, 사람을 울렸다 웃기는 마법 같은 그것은 어떤 장애물이 있던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아 그 사람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었다. 볼에 닿는 엄마의 작은 목울대가 내게 그렇게 다독이는 것 같았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창현고등학교 3학년 나유연
울음소리
남자가 흰 수건으로 검푸른 살점이 묻은 칼을 닦았다. 양동이에서 고등어 두 마리와 도로묵 한 마리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은 남자가 생선 위로 칼을 내리쳤다. 탁. 탁. 탁. 칼이 철제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가 철문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과 얽혀들었다. 공연이 끝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텐데. 잠긴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 남자가 서랍에서 색색의 알약들을 꺼냈다. 생선 토박에 알약을 집어넣는 남자의 위로 철문이 뒤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의 파도가 덮쳤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소리였다. 남자는 서둘러 흰 알약들을 남은 생선에 넣은 뒤 양손에 양동이를 들고 뒷문으로 나갔다.
축하하네. 자네에게는 잘된 일이야. 남자가 사장 밑에서 일한 7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박수소리가 남자의 귓가를 때렸다. 남자는 예상과 다른 반응에 고개를 숙였다. 남자의 손에 들린 종이의 ‘진단서’라는 글자가 자꾸만 희미해져갔다. 아쿠아리스트가 과호흡증이라니. 이참에 다른 직장도 찾아보게. 혹시 아나 더 좋은 회사가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지. 남자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곧 정규직으로 바꿔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장님이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을 때 사장님 편에 설 사람들을 가려준 게 누구였습니까. 남자의 말에 사장이 가볍게 웃었다. 숨기지 않는 싸늘함에 남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자네에게는 늘 고마워하고 있네. 하지만 정규직 한 명보다는 비정규직 열 명이 회사에 더 이득이더군.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 자네도 그걸 잘 알지 않나.
남자는 사장의 말에 지난날을 떠올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으로 파업을 했을 때 남자는 그들의 반대편에 서서 사장을 도와주었다. 그 탓에 돌고래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자신의 동료를 두고 가지 않는다는 조롱이 남자를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무엇이라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런 형태도 갖추지 못한 목소리뿐이었다.
남자는 나가기 전 새로 들어온 신입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다. 남자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입은 의욕이 넘쳐보였다. 예전의 남자처럼. 남자는 신입에게 돌고래 먹이를 주는 일부터 가르쳤다. 쇼가 시작하기 전에는 먹이를 주면 안 돼. 왜죠? 신입의 물음에 남자가 자신의 배를 두르렸다. 굶주려야 목소리를 죽이고 말을 잘 듣거든. 얘네들은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살아. 그래서 매 끼니마다 간장약과 위장약을 챙겨줘야해. 신입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의 표정에는 여전히 새 직장에 대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그래도 돌고래들은 좋겠어요. 어쨌든 여기가 평생직장이잖아요.
쇼를 나가기 전 돌고래들이 대기하는 수조로 향하려는 찰나 공연 관리자가 남자를 급하게 찾았다. 남자가 무대 쪽으로 달려가자 신입이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무대는 이미 막이 내려가있었고 공연장은 새끼 돌고래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별 건 아니에요. 천장에 달린 공을 치는 재주를 부리던 중에 도약 지점을 잘못 잡았는데 하필 그 아래에 자기 새끼가 있었던 거예요. 뭐, 어미의 본능인지 다급하게 몸을 틀었는데 공연장 무대의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죠. 공연을 계속 해야 하니 돌고래 사체를 치워주셔야겠어요.
마취총에 맞아 격리될 때까지 새끼는 어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물 아래로 반쯤 잠긴 어미의 몸을 등으로 받쳐 수면 위로 올린 새끼는 금방이라도 목이 찢어질 것처럼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귀를 막은 신입이 말했다. 왜 저러는 걸까요. 저런다고 죽은 게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무대 위 피를 닦던 관리자의 부름에 신입이 수레를 가지러 갈 때까지 남자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자는 돌고래의 것과 비슷한 울음소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밖으로 나온 것은 남자 본연의 목소리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겠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 남자 한 사람뿐이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은광여자고등학교 3학년 오주은
어느 날, 목소리가 사라지다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꽂혔다. 눈을 떠보니 어제와 같은 천장이 나를 반겼다.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6시 10분. 평소보다 십 분 일찍 일어난 게 억울해 벽을 쳤다. 어젯밤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엄마에게 대신 알람을 맞춰달라 부탁한 게 화근이었다. 지금 다시 자봤자 십 분 후면 또 다시 일어나야 했다. 거칠게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를 부르려는데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 말문이 막혔다. 다시금 소리를 내려 목에 힘을 주어봐도 소용없었다. 2015년 5월 29일. 오늘 아침, 난 목소리를 잃었다.
랩으로 씌워진 토스트 위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엄마 오늘 회의 때문에 일찍 출근한다. 아침 꼭 챙겨먹고 가.’ 아침이 대수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지금 내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하는데, 아빠는 일찍이 출근을 한 뒤였고, 그렇다고 유학 간 누나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를 건다한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난 엄마에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놓고 집을 나왔다. 꽤 오랫동안 답장이 없었다.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에 이르기까지 우연치 않게 경비 아저씨를 만난 일만 빼면 딱히 목소리를 내야할 일은 없었다. 아니, 평소에도 경비와 마주친다고 해서 대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까딱 고갯짓만 하고나면 그만이었다. 골목에서 본 옆 집 아주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 방향을 바꾼 것도, 늘상 그래왔던 일이었다. 괜히 아는 척을 했다가는 대화가 길어져 골치가 아프곤 했다. 잘한 일이라 스스로를 칭찬하는 사이 내가 탈 버스의 문이 열렸다. 그럭저럭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등굣길이었다.
버스카드를 찍고 딱 하나 남아있는 노약자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옆으로 와 무언의 눈짓을 주기 전에 얼른 눈을 감고 잠든 척 해야 했다. 두 정거장 쯤 지나갔을 무렵 실눈을 떠 주위를 보았다. 저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눈에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무언가 답답한 기분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탁한 바람에 쿰쿰한 매연 냄새가 실려 왔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누나가 뒤를 돌아 눈치를 줬다. 결국 다시 문을 닫고 휴대폰을 봤다. 엄마는 아직 답이 없었다. 여전히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선도부원을 지나 언덕을 오를 때도, 계단에서 마주친 교감을 피해 염색한 머리를 숨기며 달아날 때도, 문제집 넘기는 소리만 가득한 고3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도 내가 목소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가 없었다. 매시간 들어오는 선생님들은 수업만 하거나, 자습을 시키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재수는 없다’ 적힌 급훈 앞에서 아이들은 잠을 자거나 문제를 풀었다. 난 잠시 나뿐이 아닌 모든 아이들이 목소리를 잃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드르륵. 그 때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
‘목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공부나 해!’
집으로 돌아오는 하굣길에도 버스 안을 채우는 건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기계음뿐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목에 힘을 주었다. 으아아아악. 오랜만에 울리는 성대에 파동이 일었다.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쩌면 하루만의 것이 아닐지 몰랐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송호고등학교 3학년 오가희
들리지 않는 목소리
아빠의 수제화 가게 옆에 딸린 작업장은 너무나도 비좁았다. 언니와 아빠 사이에 멀뚱이 서 있는 나는 눈동자를 도륵 굴렀다. 눈앞에서 활개를 치던 가죽 가루들이 입 안에 잔뜩 들어서는 것만 같다. 나는 괜히 목 언저리를 쓸었다. 하지만 내 목을 죄어오는 텁텁한 먼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 늙은 남자랑 결혼은 무슨 결혼이여. 라스트에 가죽을 덧대던 아빠가 나지막이 말을 내뱉는다. 드디어 내 숨통을 조여오던 고요한 정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더욱 답답한 공기가 나를 에워싼다. 나는 슬쩍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가만히 아빠의 반응을 기다리던 언니의 인상이 팍 찌푸려진다. 고작 방 한 개 딸린 집에서 쫓겨난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야. 강남에 빌딩이 세 개나 있다고. 그런데 나이가 중요해? 날카로운 언니의 말투에 아빠는 입을 꾹 다문다. 그저 묵묵히 일을 쫓을 뿐이었다. 가죽을 뭉개는 매끄러운 연장이 형광등에 반짝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죽 가루에 뒤덮여 있는 공기가 얕게 흐트러진다.
언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갑자기 데리고 와서 결혼 허락해 달라 그러면 어떡해.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아까 전, 언니와 함께 이곳에 들어왔던 남자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랑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를 흘기던 남자의 모습은 꽤나 베짱이 좋아 보였다. 초라한 우리와는 달리, 너무나도 큰 사람이었다. 굳어지는 언니의 표정에 괜한 말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언니의 시선을 피했다. 점점 매서워지는 언니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핏 마주칠 때면,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묵묵히 연장을 내리치던 아빠가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중얼거린다. 지희 말이 맞다. 그리고 빌딩 세 개 때문에 결혼한다는 거여? 그게 무슨 말이여, 방구여. 일 때문에 쪼그라든 아빠의 등이 봉긋하게 솟는다. 나는 슬쩍 손을 뻗어 아빠의 어깨에 붙어 있는 가죽 가루를 가볍게 털었다. 허, 언니의 가느다란 입술 사이에서 헛웃음이 튀어 나온다. 그러니까 진작에 수제화 말고 다른 일 했으면 좋았잖아. 그리고 평소에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왜 이제야 아빠 노릇이야? 언니는 사나운 눈빛으로 아빠를 내려다본다.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니는 빌딩 때문이라고 하지만, 알고 있다. 생활고에 찌들어 보일러조차 틀 수 없는 우리 때문에 억지로 결혼하려는 언니의 마음을,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나와 아빠 때문에 희생하려는 언니의 다짐을. 그래서 나는 더욱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빠의 얼굴에 뭉쳐 있는 굳은살이 약하게 꿈틀거린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동공이 점점 짙어진다. 가슴 한 켠이 살살 아릿하게 저려온다. 나는 작게 가슴팍을 두드렸다. 아빠가 연장을 내리치듯, 나를 세게 두드렸다.
쾅, 하고 닫히는 문 소리가 작업장을 울린다. 언니가 서있던 자리는 휑한 공기만 맴돈다. 나는 아빠 옆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떻게, 저대로 놔둘 거야? 나의 물음에도 아빠는 조용히 일을 시작한다. 나는 아빠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아빠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라스트를 한쪽에 두고 갑피를 앞에 놓는 아빠의 손이 거칠고 투박하다. 너희가 어릴 적에는 이 일이 최고였는데…. 공허한 아빠의 말끝이 허공에 조각조각 흩어진다. 나보다 아빠가 더욱 가슴 아프겠지. 저 거친 손으로 몇 십년을 지켜낸 딸인데. 머릿속에 쉴 새 없이 구두를 만들던 아빠의 모습이 파라노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아빠도 지금처럼 오래되어 녹슨 연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 밤새도록 연장을 내리쳤다. 언니는 알고 있을까. 자신 뿐만 아니라 아빠도 우리를 위하고 있다는 것을. 아빠는 우리를 향한 다정한 목소리 대신, 끊임없이 연장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피어오른다. 나는 감정을 애써 꾹 참아냈다.
텅텅, 갑피를 내리치는 소리가 내 고막을 찌른다. 나는 두 손으로 귓구멍을 약하게 틀어막았다. 생각보다 큰 소리라, 계속 들으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빠는 나를 힐끗, 보더니 바삭하게 마른 입술을 오물거린다. 언제까지 망치질을 해야 하는지 알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탁한 눈빛으로 연장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이 약하게 요동친다. 쥐고 있던 연장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준은 없어. 그냥 내가 됐다, 싶을 때까지 하는 게 망치질이야. 나는 머리 위에 내려 앉은 묵직한 공기를 털어냈다. 하지만 이미 머리카락 속까지 뒤엉킨 질척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야 두어 번 찍고 넘어갈 수준이 됐는데, 다시 열댓 번은 두드려야 쓰겠어 덧붙어진 아빠의 공허한 웃음 소리가 쓰게 들린다. 텅 빈 그 속은 아빠의 허한 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푸욱, 떨구었다. 다 낡아 헤진 아빠의 신발이 내 가슴을 쿡쿡 건드린다.
감았던 두 눈이 번뜩 떠진다. 눈앞은 온통 캄캄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죄어오는 머리를 꾹 누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훅, 입 안에서 터져나오는 숨결이 들떠 있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콧망울을 스윽, 훔쳤다. 찡한 코끝이 내 손가락을 따스하게 한다.
끼익, 하고 열리는 문 소리가 내 고막을 긁는다. 나는 얼떨결에 이불 속으로 몸을 묻었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검은 형체가 들어선다. 눈대중으로 보니 아빠인 것 같았다. 아빠는 나를 지나쳐 언니에게 다가간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빠르게 눈으로 쫓았다. 아빠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빠는 곤히 자고 있는 언니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이불 끝자락을 접어 발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들고 들어왔던 종잇장을 갖다 대곤 뭉툭한 연필로 언니의 발바닥을 따라 그린다. 받침대가 없어 삐뚤삐뚤 할 텐데도, 아빠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달빛에 물든 종잇장 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가 꿈틀거린다. 지연이 결혼 신발.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하게 알 수있었다.
문득, 어릴 적,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희야, 새 신발을 선물한다는 건 조은 길로, 좋은 곳에 가라는 뜻이야. 그러면서 아빠는 자신의 직업이 참 좋다고, 자랑스럽다고 했었다. 나는 멍하니 아빠를 눈에 담았다. 언니를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이 잔뜩 물안개 끼어 있었다. 마치 아예 언니를 떠나보내려는 것처럼, 아빠의 눈가는 달빛줄기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빠는 언니를 향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얼른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눈꺼풀을 내렸다. 아빠의 쓸쓸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