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구려가 없어짐
백제가 멸한 뒤에 나당군은 여러 해를 두고 고구려를 침범하였으나 합소문 같은 위인이 있고 그 외에도 힘 있는 장영들이 있어 여러 번 나당 군을 쫓아 감히 범치 못하더니 이때 고구려에서도 먼저 신라를 조처하려고 한강부근에 있는 신라의 땅을 모조리 쳐 빼앗고 일번으로 당의 두려움을 막아 범치 못하게 하고 있더니 불행이도 합소문이 죽고 아들들이 서로 권세를 다투어 군사를 거느리고 서로 공격하다가 신라 무열왕(武烈王)의 아들 문무왕(文武王)이 이 기회를 타서 고구려 보장왕 25년에 다시 당의 군사를 청하여 가지고 고구려를 칠 새 고구려에서는 안으로 내홍이 일어나고 몹시 쇠약하여졌건 만은 오히려 3년 동안이나 두고 전쟁을 계속하다가 때마침 흉년이 들고 합소문의 아들 남생이 국내성(國內城)에 웅거하여 당군과 내통하여 항복하고 또 합소문의 대신 연정토(淵淨土)는 성 12와 호구 763과 인구 3,545를 이끌고 신라에 붙이니 이로부터 방어할 힘이 약하여졌다.
왕이 남생의 동생 나건으로 막리지를 삼아 적군을 막을 새 남건 남산이 남생의 아들 헌충(獻忠)을 죽이거늘 남생이 더욱 노하여 그 다음 아들 헌성(獻誠)을 당군이 부여성을 치거늘 남건이 5만군으로 부여성을 구원하니 당장 이세적(李世勣)이 평양성을 에워싸고 처서 함락되니 그 외 모든 성이 다 항복하고 왕과 모든 장영들은 적진에 쌓여 있으며 왕은 어이할 줄 몰랐다. 남건이 오히려 성문을 닫고 지키나 감당할 수 없는 고로 남건이 부득이 군국의 일은 부도 신성(信城)에게 맡기니 신성이 가만히 적진에 통하여 내통하여 가지고 약속하였던 적군이 성을 넘어 불을 놓고 소리를 외치니 왕이 이에 남산과 신하 98인을 데리고 적지에 나아가 항복하니 남건은 죽고 왕은 잡혀 고구려가 없어지니 역세가 28왕이요 역년이 705년이더라.
씩씩하고 장하던 고구려가 어찌하여 이렇게 쉽사리 없어졌는가? 천재하에 눈물 흘려 조상할 따름이다. 매국적 남생과 연정토는 그 죄악을 성토하여 나겠고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던 남건은 전절하지 못함이 가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