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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의 돼지와 디케의 눈물
간호윤. 인천신문 논설위원
민심을 전달 못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야당이 17.15%p 격차로 예상 밖 낙승’이 주는 의미를 새기며 이 글을 쓴다.
“형광등 100개 켜놓은 아우라” TV조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묘사한 말이다. 엊그제 이 ‘참(站)’에 “윤 대통령 부친 반야용선 태운 연기 ‘용의 입 모양’ 화제라는 제하의 기사를 읽으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는 글을 썼는데, 또 이와 유사한 기사가 뜬다. “예술의전당 깜짝 방문 한동훈 장관 대박”이란 서울신문 기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나타난 그의 등장에 공연장이 술렁였고,…한 장관은 연예인 못지않은 뜨거운 인기를 자랑했다.” “관객들이 ‘한동훈 봤느냐’, ‘대박이다’라며 웅성댔기 때문이다.” “평소 국회에서 의원들의 말을 토씨 하나 안 놓치고 적극적으로 상대하는 모습 그대로…사진 요청 멘트를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응대하며 …분홍색 프로그램북을 손에 꼭 쥔 한 장관은…어떤 시민은 ‘조각 같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인용하기 민망하여 이만 줄인다. 요즈음 외국 언론의 한국발 기사는 혹독하다. <네이처>는 “한국 R&D예산 삭감, 대통령이 말바꿔”, <디플로매트>는 “한국 돈만 내고 미국에 할 말 못해”…따위, 한국이 세계 뉴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는 김건희 씨를 ‘콜걸(call girl)’, 워싱턴포스트는 ‘빨래 건조대(clotheshorse)’라고 비아냥거리고 바이든 대통령 기자회견문에서 윤 대통령을 ‘Yoon’이 아니라 ‘Loon’으로 표기하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9월30일자)는 ‘한국의 걱정되는 민주주의 침식(The Worrying Democratic Erosions in South Korea)’이란 칼럼에서 이 정부에서 벌어진 검찰의 뉴스타파 사무실과 JTBC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야당 정치인에 대한 보복 등을 지적한다. MBC 임현주 기자의 자택 압수수색에는 “이번 혐의는 한국 법무부장관의 개인정보를 다른 언론인에게 전달한 혐의”라는 구체적 사항까지 명시하고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 개탄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침식되고 법치가 무너지는 이런 상황에, 주무부처 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을 다룬 저것이 언론기사인가? 조선 왕조시대에도 ‘법귀행 부재각 유기제 엄기령(法貴行 不在刻 裕其制 嚴其令, 법의 귀함은 행하는 데 있지 가혹한 데 있지 않으니 제도는 관대하고 법령은 엄격히 한다)’라는 12글자를 수령들로 하여금 체득케 하였다.
또 관리라면 ‘법불아귀 승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이란 8자를 마음에 새겼다. 모두 법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이란 자가 검찰공화국을 만든 장본인으로 방자한 태도로 법을 유린하며 공직자의 품위유지의무 위반, 국회의원 능멸, 정치중립 위반, 인사검증 실패, 피의사실 유포, 압수수색 공포,…등 파면이나 탄핵사유가 차고 넘쳐 차마 눈뜨고는 못 볼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 (기레기, 혹은 레거시) 언론은 마치 폭풍우 들이친 배에서 인간들이 우왕좌왕 난장판인 저 한쪽, 한 돼지가 유유히 죽을 먹는 형국이다. 헬레니즘 철학자 필론[Pilon]은 그 돼지를 보며 말한다. “현자는 저 돼지처럼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우리 언론은 저런 현자인양, 법치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파괴되는 데도 흐트러짐 없이 ‘찬(讚)한동훈가(歌)’를 부른다.
법을 지키는 정의의 여신이 디케[Dike]이다.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은 개인 간 권리 다툼 해결을,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제재를 의미한다. 또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론의 돼지들’로 인하여, 저 ‘디케의 안대’가 훼손되는 법 정의를 보며 흘리는 눈물 가리개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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