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1
1932년 7월 1일 프랑스 그르노블의 사도들의 성모 수녀원 에우제니아 라바시오 Eugenia Ravasio 수녀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사람들에 대한 내 사랑을 증명하려고 내 사랑하는 아들을 또다시 사람들에게 내줄 수는 없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이 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이제 내가 직접 사람들 사이에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가난을 취해서 온다. 보아라, 이제 나는 내 면류관과 내 영광을 치워버리고 보통 사람의 미천한 모습을 지녔다!" 에우제니아 수녀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과 보여주신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프랑스 그르노블 교구의 알렉상드르카이요 주교의 인가) 그 기록들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편집자 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중 작별 인사를 하시며 당신의 마음을 여시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6) 아버지의 이름은 아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 사이의 원래의 친밀함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기도할 때 하느님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아버지께 성령을 청하면, 그 기도는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셨다. 오로지 그분, 아드님만이 이것을 보증하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 18)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셨지만 - 예수님께서 이 말씀까지 하셨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 9) -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단지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이 “아빠와의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심을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기에, 예수님과 대화하고 성령을 부르며 날마다 성부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부 하느님을 어린아이처럼 의탁하며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성부께서는 20세기에 이탈리아 출신의 에우제니아 라바시오 수녀에게 당신을 직접 드러내셨다. 성부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말씀하시려고 그리고 우리 개개인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려고, 에우제니아 수녀에 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 특별한 계시를 두고 정말로 하느님께서 하신 것인지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프랑스 그르노블 교구의 알렉상드르 카이요 주교는 메시지와 인간 에우제니아 라바시오를 10년 동안 조사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는 경계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견고한 교의와 일치하는 아주 단순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께서 당신의 감동적인 사랑을 드러내실 장소 로 제 교구를 선택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에우제니아 수녀에 관해 듣고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당신의 충실한 사제 지라르 마티유를 보냈다. 지라르 마티유 신부가 에우제니아 수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빛이 환하 게 나왔고, 더욱이 바닥에서 50cm가량 공중 부양한 채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느님께서 이 영혼을 선택하여 계시하시는 것이 진짜임을 이 기적으로 보증하신 것이다. 그 결 과, 에우제니아 수녀를 통해 전해진 내용들 은 바티칸 시티의 페트루스 반 리에르데 총대 리 신부의 출판 허가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 는 마음을 활짝 열고 이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에우제니아 라바시오 수녀는?
1907년 9월 4일 이탈리아의 북부 지방인 베르 가모에서도 작은 마을 산 제르바지오 아다에서 태어났다.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기에 생존할 가망이 매우 낮아서 엘리자베타 라는 이름으로 즉시 세례를 받았다.
라바시오 가족은 소와 누에의 사육에 성공하여 부유하고 널리 존경받았으나 엘리자베타가 태어났을 당시는 그들의 은행이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 이 비참한 시기에 태어난 이 어린아이의 요람은 나무로 된 비누 상자였다. 아기는 '베티나'로 불렸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장해나갔다. 그녀의 어머니 펠리시티는 이 딸을 낳은 후 몇 년간 아팠는데, 그 때문에 자신의 딸 베티나를 지속적으로 탓하며 비난했다. 어머니는 베티나에게 자주 저주를 퍼붓고, 벌을 주고 이유 없이 때리며 슬프게 하였다.
블랙 마돈나의 기적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피에로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신앙심이 매우 깊고, 이 가족의 후원자였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미사에 가서 성체를 모셨다. 그러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과 하인들을 깨워 아침기도를 하게 했다. 그는 저녁마다 젊은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모두 불러 모아서 묵주기도와 영적 독서와 교리공부를 함께 하였다.
네 살이 되도록 베티나는 말하지도 걷지도 못한 채 나무 상자에 누워 지냈는데, 늘 열정이 넘치는 피에로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바라보면서 어느날 결정했다. 사크로 몬테 디 바레제Sacro Monte di Varese를 순례하기로. (사크로 몬테 디 바레제는 이탈리아 북서부 롬바르디아 주 바레제의 해발 807m 산 위에 있으며, 1604 년에 완성되었다. 15개의 성당이 있으며, 그중 15번 째 성당은 블랙 마돈나(검은 얼굴의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할아버지는 블랙 마돈나께 비참덩이인, 자신의 사랑하는 손녀를 치유하시든지 하늘 나라로 데려가시든지 해주시라고 청했다.
바로 그 시각 집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부인이 베티나의 "요람"에 다가왔다. 여전히 요람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부인은 일어나라고 말했다. 부인은 베티나의 옷을 입혀주며 엄마에게 달려가도록 용기를 주었다. 당연히 베티나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네 살의 베티나는 상자에서 기어 나와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는 기쁘게 손녀를 껴안았다. 기적이었다! 베티나는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고, 말하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베티나의 부모는 거룩한 산의 마돈나께 감사드리러 갔다. 그때 어린 베티나는 검은 얼굴의 성모상을 보더니 크게 말했다.
"나에게 옷을 입혀준 부인이다!"
아버지 카를르가 딸의 사명에 관해 알게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베니타가 "아빠, 아빠께 말하는데, 나는 커서 선교사가 될 거예요." 하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5세의 어린 베티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임무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자매들 8명 중 맏이인 데레사가 결혼한 후, 베티나를 낳고 계속 몸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점차적으로 가정의 모든 일을 베티나 에게 맡겼다. 연약한 아이는 청소하고 물건을 사오고, 오빠들의 빨래를 차가운 아다 강에서 빨아야만 했다.
집에 남은 유일한 여자아이 베티나는 작은 침대가 있는 방을 혼자 사용했다. 그것은 실제로 가장 큰 고문이었다. “저는 밤에 혼자 있는 것이 늘 무서웠습니다. 그 공포감은 방에 혼자 있는 상황만 되면, 제 생의 마지막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은 그것을 원하셨기에, 수녀원에 와서도 2년간의 수련기와 2년간의 서원기를 제외하고 늘 독방이었습니다. ... 그 때문에 늘 공포감에 시달렸지요!”
할아버지 피에로
사랑스러운 이 어린 소녀의 유일한 피난처는 할아버지 피에로였다. 할아버지는 아직 어린 손녀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현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위대한 아버지의 상을 지닌 할 아버지는 손녀를 토닥이고 감싸주었다. 특히 할아버지 피에로는 베티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첫 이미지를 형성했다. 베티나의 영혼에 자신의 모든 영적 보물들을 부어주었다. 훗날 베티나는 "할아버지는 제게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며 다음과 같
이 상기했다.
"예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나뭇잎이나 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라.
그리고 항상 너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라.
하느님의 눈이 지칠 줄 모르고 너를 지켜보시기 때문이다….
베티나, 잘 보렴. 아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와서 흘러가는지 ….
만약 강물이 멈추었다면 고인 웅덩이가 썩었을 것이다.
네가 겪는 고통, 눈물, 갈등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왔다가 간다.
그러니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여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라.…
너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을 마음에 두지 말아라.
오히려 하느님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여겨라. 아무것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물들과 한 걸음, 한걸음 동행하신다.
분명 그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좋은 뜻을 갖고 계신다.
우린 늘 그 이유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용기를 잃지 말아라.
앞을 보며 고통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라. ”
나는 성부의 미소가 되어야 한다!
여덟 살에 베티나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안 일에 공부까지 해야만 했다. 3학년 때는 하루의 절반을 선생님의 집안일을 도와야 했는데, 그 선생님은 베티나를 부려먹었다. 때문에 베티나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창피를 당했고, 이렇게 인정했다.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시험에 합격했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베티나는 알고 있었다. 학업을 마쳐야 공장에서 일할 수 있고, 수녀원에 들어갈 지참금을 벌 수 있고, 계획했던 목표인 선교사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베티나는 울며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잠이 들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예수님께서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나의 아가. 누구든 절대 선생님이라 부르지 마라. 내가 너의 선생님이 될 것이다.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줄 터이니, 내가 너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외 너는 그 무엇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잠에서 깨어보니 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마침내 베티나는 가을에 시험을 통과했는데, 여름 방학 동안 비밀리에 공부를 조금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12세부터 20세까지 베티나는 키 크고 마른 몸으로 하루에 9시간씩 수건 공장의 베틀 앞 에서 일했다. 공장을 걸어 오가는 데 꼬박 2 시간이 걸렸고, 식사라곤 매일 차갑고 덜 마른 폴렌타 가루가 전부였다. 베티나는 공장에서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하고 바느질도 하다 보니 밤에 3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었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베티나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해서든 수녀원 입회 지참금을 버는 것이었다.
선교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베티나는 어느덧 용맹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으며, 아름다운 원칙을 가지고 살았다. “나는 성부의 미소가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눈물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위로 올라간다."
즉, 희생의 눈물이었다.
그래서 시련에도 불구하고 베티나의 내면은 계속 빛을 발하였다. 베티나의 말과 행동과 미소는 그녀의 단순하고 온화한 태도와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잘 드러내었다.
많은 젊은 남자들, 특히 베티나에게 반했던 공장 소유주의 아들 에우제니오 크레스피는 베티나가 1927년 가을 프랑스의 사도들의 성모 수녀원으로 떠났을 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Triumph of the Heart No. 91>에서
이정은 옮김
(마리아지 2021년 10 • 11월호 통권 23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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