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마조마 두근두근
우리를 설레게 하는 아이들
: 혁신학교 흥덕고 2년의 빛과 그림자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가는 실천 전략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비평준화 신설 학교의 아이들을 돌보아 줄 교육적 시스템이 갖추어질 수 없는 교육 구조 현실에서 온전히 선생님들이 책임지고 견디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선생님들은 그에 응전하고, 바야흐로 흥덕고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갔다. 친구가 공부를 하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함께 성장해 갔고 “혁신학교가 왜 그래?”에서 “혁신학교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_이만주
불신 가득한 눈빛들과의 첫 만남
요즈음 우리 교육의 큰 물결은 경기도발 학교 혁신이다. 그중 일반계 공립고등학교 학교 혁신 모델의 성공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직도 호사가들에게는 호기심과 냉소, 기대감 등이 뒤엉켜 있다. 물론 많은 언론 매체에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흥덕고등학교는 EBS에 방영된 ‘학교란 무엇인가’의 시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덕에 라이너 선생님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만 많은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지금도 자전거 타고 다니느냐며 EBS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그분들의 마음과는 달리 씁쓸하다.
흥덕고등학교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우리 안의 아픈 자화상과 마주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평준화 지역의 신설 학교, 50여 개 중학교에서 한두 명씩 모인 131명은 소위 좀 놀았다는 아이들, 언제부터인가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무기력한 아이들, 약 절반의 아이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이미 한 번 실패를 맛본 다수의 복학생 아이들로 구성돼 있었다. 입학식 때 악수를 하는 손과 안아 주는 몸에서 풍겨 나오는 담배 냄새, 혁신 학교? 얼마 못 갈 것이라고 냉소하는 아이들, 마음속 켜켜이 쌓아 온 불신과 증오의 눈들, 형형색색의 머리와 피어싱과 문신을 한 아이
들과 선생님들은 그렇게 만났다. 이름표와 장미꽃을 건네주며 13명의 학교 혁신 전사戰士들이 맞이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눈빛에는 불신과 분노가 가득했다. 마치‘너희들은 또 무슨 말로 우리를 이해시키려 들고 어떤 이중적인 모습으로 우리들을 가르치려 들 것인가’라고 묻는 듯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교사 살이 20여 년 내내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했고, 세번의 신설 학교를 찾아다니며 바닥을 치는 아이들과 부대껴 온 이력으로 이제는 어지간한 아이들에게 견딜 만한 내공이 쌓여 나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물론 혁신학교라는 곳에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과 신념도 있었다. 하지만 첫날의 직감으로도‘아, 만만치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실은 그 이상의 상황이 연속되었다.
바깥 사람들의 몇 가지 시선
어느 토요일이었다. 한 아이가 교무실로 뛰어와 흥분하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용은 친구를 만나러 다른 고등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그 학교 선생님이 용의가 불량하다며 학교를 묻고, 선생님을 묻더니 급기야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 비난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럴수록 너희들이 잘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로 달래 보냈지만 씁쓸했다.
언젠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CCTV에 찍힌 사진 몇 장을 들고, 학생인권부를 찾으셨다. 사연인즉 운영하시는 슈퍼에 도난 사건이 발생해서 CCTV에 찍힌 학생들을 찾으러 오셨다고 했다. 우리 학교에 오기 전 다른 여러 학교를 들렀는데 염색을 허용하는 학교는 흥덕고등학교밖에 없다며 사진 속의 학생이 염색을 했으니 우리 학교에 가 보라고 하셨단다. 다행히도 그 사진 속의 학생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었다.
용인 관내 경찰서에서도 우리 학교를 요주의 학교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경찰관이 학교에 오셔서 ‘이상하게도 흥덕고 아이들이 사고를 치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셨다.
경기도의회 소속 혁신학교 추진 의원 몇 분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과연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즉 현 입시 제도하에서 흥덕고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이에 대해 함께 참석한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재차 한 의원이 “그럼 학부모께서는 아이가 대학을 못 가도 괜찮으냐?”고 묻자, 학부모는 “괜찮다. 그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흥덕고를 통해서 알았다.”고 말해서 방문한 의원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어느 중학교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는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이 “너 그래 가지고 고등학교 어떻게 갈래?”라고 물으니, “괜찮아요. 흥덕고 가면 돼요.”라고 했단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에게 부딪친 과제는 ‘아이들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질것인가. 아이들에게 학교를, 선생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까. 학교 안보다 학교 밖에서 배회하는 일이 더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할 것인가’였다. 그러기 위해 처음 시도한 방법은 아이들과 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학식을 며칠 미루고 3일 동안 학교에서 예비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요 내용은 심성 훈련, 집단 상담, 놀이 프로그램이었다. 분위기는 역시 썰렁했다. 학교의 후미진 곳에는 담배꽁초가 수십 개씩 널려 있었고, 프로그램 진행과정에서 진행자나 선생님들과 아이들 사이에는 억지 춘향이 식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래도 12개의 모둠으로 편성하여 이틀 동안 진행된 심성 훈련에 아이들은 조금씩 반응을 하기도 하였다. 그 속에서 ‘학생생활규정’에 대한 모둠 토론을 진행하였고, 총회를 통해 용의 복장 규정에 대한 대략적인 틀을 만들었다. 물론 아이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의미로 여기는 듯했지만 아이들이 토론하고 결정한 규정이라는 점에서 개교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아이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참여와 소통의 학교 문화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용의 복장으로 인한 아이들과의 갈등 요인은 없어졌지만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형극의 시작이었다. 아이들 절반 이상이 흡연을 하면서, 학교 곳곳은 담배 냄새로 가득했고 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수업 시간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서성거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굉음을 울리며 학교 주변을 질주하였고, 선생님들을 폭력적 태도로 대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였다. 혁신학교가 왜 이러냐며 모든 잘못을 혁신학교라는 이유로 모면하려는 학생과 학부모,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에게 규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은 깊어졌고, 고민은 점점 쌓여 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상처는 커져 갔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가는 실천 전략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비평준화 신설 학교의 아이들을 돌보아 줄 교육적 시스템이 갖추어질 수 없는 교육 구조 현실에서 온전히 선생님들이 책임지고 견디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선생님들은 그에 응전하고, 바야흐로 흥덕고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밤잠 못 자고 우는 갓난아이를 달래다가 급기야 침대 위에 내던지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버리고, 천사처럼 잠자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듯 아이들을 다시 안는 매순간의 반복이었다. 그러면서 성찰하고 다짐과 오기를 키웠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를, 눈물을 닦아 주는 동료애와 각종 연수로 메워 나갔다. 교사 직무 규정과 윤리 규정을 통해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기 위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는 아픔을 참아 내야만 했다.
애초 교복을 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이들 스스로 교복을 원했고, 수차례의 학교 공동체 토론과 논의 끝에 아이들이 자랑할 만한 교복을 만들었다. 학교 비전 선포식을 통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선언을 하고 책무성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쳤다. 선생님들은 체벌하지 않겠다고, 욕설이나 비속어, 증오하는 말을 하지 않고 한명의 아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한 학기가 다 지날 무렵, 소수의 힘센 아이들이 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상황, 지속적으로 배움으로부터 도주하고 학교 밖에서 서성거리는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온 위기와 전화위복
그런데 이즈음 흥덕고의 분수령이 될 일이 발생했다. 몇몇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다른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온 일이 불거진 것이다. 우려했던 일이었지만 학교로서는 깊은 고민을 안게 되었다. 소수의 힘센 아이들이 학교를 지배하고 학교 문화를 왜곡시키는 상황에 대한 심각함과 혁신학교로서의 위상 사이에서 속앓이를 거듭한 끝에 결국 한 아이가 학교를 떠나고 몇몇 아이들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일단락될 때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은 학교 공동체 모두에게 무척 아픈 시간이었다.
“혁신학교가 이럴 수 있느냐”며 가해자 측을 중심으로 한 학부모들의 집단적인 저항과 외부 민원을 통한 압력, 선생님들에 대한 공격, 학부모들 간의 갈등 과정은 정말 캄캄한 터널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일을 통해서 학교 공동체 집단들은 학교를 만들어 가는 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내적 규범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1학기가 다 되어서야 흥덕인의 3대 약속인 ‘폭력 없는 학교, 담배 없는 향기로운 학교, 학습권 존중으로 함께 성장하는 학교’의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개교 1년차, 한 학기가 지나갔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여름방학 전 우리 학교는 자기 주동 동기 함양을 위한 통합 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10~15명씩 팀을 구성해 전국으로 흩어져 2박 3일 동안 스스로 기획하고 체험하는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말이 통합 기행이지 아이들은 여름 여행의 착각(?)에 여념이 없었다.
모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바캉스를 준비하는 모둠도 있었다. 할 수 없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개입하게 되었고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며 통합 기행을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 프로그램에 대한 성과보다는 우려가 컸다. 2박 3일 동안 함께했던 선생님들은 힘들었지만, 맘껏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팀에도 들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으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모둠을 해체시켜 2박 3일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당연히 아이들의 원성과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은 거친 숨결과 욕설들을 쉼 없이 토해 냈고, 제멋대로 산행을 이어 갔다. 먹을 것은 준비하지 않고 대피소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아이, 비닐봉지에 겹겹으로 옷가지와 운동화만 준비한 아이, 중간에 못 가겠다고 하는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갈 테면 가라고 협박해서 다시 걷고, 힘들다고 119에 연락한 아이들 때문에 대피소 관계자들에게 핀잔을 들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수행하는 마음을 담아 산행을 이어 갔다.
경이롭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산행 내내 소위 아이들의 문화 아이콘의 하나인 캔버스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약과였다. 산행 동안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가 하산하자 운동화로 갈아 신는 아이의 심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초행길에 야간 산행도 하고, 하산 길에 시원한 계곡물에 함께 멱을 감으면서 지리산 종주 통합 기행을 마쳤다. 그때 함께했던 아이들은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거의 낙오될 뻔한 상황에서 뒤쳐진 아이들을 찾으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 만나서 데리고 온 아이가 한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찡하다. “그때선생님이 다시 오셨을 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변화가 시작된 2학기
방학과 함께 개교 첫해 1학기는 이렇게 지나갔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지내고 나면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두근두근’일까, ‘조마조마’의 연속일까.
선생님들은 여름방학 워크숍을 통해 1학기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던 방학이었던가. 지난 1학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나보면 허탈하기도 하고 어떻게 지냈나 싶은 마음이었다. 눈물의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이었던 만큼 워크숍의 중심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이었다.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2학기에는 구체적인 생활 규범을 만들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를 보다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과 함께 선생님들은 65미터 번지점프로 1학기의 고생을 털고 2학기를 맞이했다.
2학기에는 흥덕인의 3가지 약속을 구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생활교육을 시켰다. 상습적으로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은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모든 선생님들이 5분 먼저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늦은 아이들은 별도의 교실, 일명 ‘성찰교실’에 모아 놓고 수업 시간이 빈 선생님들과 함께 운동장을 걸었다. 그렇게 하기를 일주일, 놀랍게도 아이들은 수업 시간을 지키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업 시간에 늦은 아이들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아이들이라도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아이들은 충분히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더 강한 방법으로 지도했으면 더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아이들은 그 과정 속에서 더욱 튼튼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변화일지 몰라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로서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일탈하면서도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을 간 보면서도 우리들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으로 안타깝고 불편한 진실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 사이에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출석 일수가 부족한 아이들이었지만 학교로서도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내야 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상처는 상처대로 남겨 놓고 떠나가는 아이들이 생긴 것에 대해 “그럴 바에야 애초부터 떠나보내야 할 아이들을 보냈으면 다른 아이들이 상처는 덜 받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함께 흘린 눈물과 땀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좀 더 단단해지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EBS의 빛과 그림자
EBS ‘학교란 무엇인가’ 제작 팀은 2010년 학기 초부터 9월까지 학교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학교의 모든 것을 촬영했다. 처음에는 학교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되고 방송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지만 정작 방송이 나가고부터 학교는 혼란스러워졌다. 제작 팀의 기획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것도 있지만 방송 내용은 우리에게 충격적이었다. 어찌 보면 그 프로의 상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흥덕고를 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방송이 나가고 많은 지지와 격려를 받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은 어쩔 수 없었다.
방송 시기가 고입 지원을 하는 시기였고,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여 학교 홍보를 했지만 그 방송을 보고 학교가 무섭다며 대거 다른 학교로 지원하는 사례가 속출 했으며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컸다.
“선생님들은 불쌍하게 나오고 우리들은 나쁘게 나왔잖아요”라는 푸념과 “예전의 우리들이 아닌데 속상해요”라며 아이들은 방송사에 항의를 하기도 하였다.
학부모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재방송이 나갔고 관련 회사에서 판권을 구입해 명절 때 방송을 계속 내보냈고, 가족 친지들로부터 핀잔을 듣고 온 아이들의 원성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흥덕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들고 무서운 학교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학교에 지원하고자하는 중3 학생들이 있으면 말리는 담임선생님들도 있고, 우리 학교 근무를 기피하는 선생님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그럴수록 좀 더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교사의 길을 포기했다가 방송을 보고 교사의 꿈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는 한 예비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덕고의 이야기가 많은 사범대 예비 교사들에게 학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학교는 더욱 성장해 갔다.
개교 2년차 성장통은 계속되었지만
개교 2년차가 되고 288명의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2010년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 규범에 대한 경계를 세우게 되었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교 문화를 조금씩 인식해 왔지만 성장통은 계속되었다. 1년차에 비해 많은 아이들이 우리 학교의 가치와 만났지만 상대적으로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 역시 많아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흥덕고를 마냥 자유로운 학교로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부족했다.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막막했지만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우리 학교의 문화와 학교생활의 책임감을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 흥덕고의 가치를 이해하는 학부모와 더 엄격하게 아이들을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입장 차이, 그리고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학교 혁신에 대한 공감의 폭과 깊이를 넓고 깊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은 당연히 깊어졌다.
지속적으로 학교 질서를 어지럽히는 아이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과 규정은 규정을 부르고 결국 아이들을 학교에서 떠나보내게 된다는 입장 속에서 갈등과 토론이 이어졌다. 오랫동안의 토론 끝에 자유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3대 생활 약속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통해 다시 한 번 경계 세우기에 들어갔다. 무단결석 횟수와 흡연 횟수, 학습권 침해에 대한 단계별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사(담임)-학년-학생인권부의 교육 단계를 설정하고 해당 학부모들과의 상담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를 떠나 장기 위탁에 들어간 아이들과 전학을 가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아이들, 성장의 힘을 키우다
흥덕고의 대표적인 성찰 프로그램은 그 유명한 지리산 등반이다. 2010년 10월부터 시작된 지리산 등반은 다소 자학적인 탓도 있지만 고육지책苦肉之策이랄까, 무개념의 질주를 하는 이들을 일단 세워 두어야 했기에 시작한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의 끝에서 거침없이 쏟아 내는 욕설과 짜증 섞인 목소리들이 난무했지만 우리는 지리산을 갔다. 물론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많은 육체적 어려움을 주었지만 아이들의 심리적 자기 통제선을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흡연 학생들과 출결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이 주 대상이었는데 특히 흡연을 아이들의 제일 중요한 생활지도 문제로 설정하고 흡연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지리산 등반에 참여시켰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힘든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등산을 한 경험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행을 했는데, 지리산을 등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금요일 밤 11시경에 출발하여 새벽 4시경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천왕봉을 거쳐 내려오는데 약 12킬로미터, 10시간의 산행은 고통 그 자체였다. 2011년 12월까지 약 10번의 지리산 등반이 있었고 200여 명의 학생들이 지리산을 올랐다. 물론 교장 선생님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함께하였다. 가끔은 학부모도 동행했다. 지리산 등반의 중요한 효과는 아이들과의 관계 맺음이었다. 힘든 산행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와 교감은 지리산을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이야깃거리로 아이들과 관계를 지속시키는 매개가 되었다. 지리산 등반은 성찰 프로그램으로만이 아닌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을 이용해 종주 프로그램으로 진화시켰다. 학생자치회 임원들의 연대성과 협력성 강화 프로그램으로도 적용시켰다. 이래저래 지리산은 우리 흥덕고와는 인연이 깊다. 지리산 등반 프로그램은 2012년에 백두대간 종주와 해외 트래킹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은 알까? 산을 오르는 동안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어 보면 상당히 긴 시간을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는 것을. 찰나였을지라도 발끝에, 뜨거운 심장에 온 마음을 집중한 시간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이다.
성찰 프로그램을 한 축으로 하고, 또 한 축은 학교 문화를 주도할 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학교의 의도적인 개입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핵심은 또래 관계 강화를 통해 학교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동안 실시했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시스템화하고 정교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진로 아카데미, 인문학 아카데미, 인권 아카데미, 학생 자치 학교, 또래 중조 프로그램 운영, 나눔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각 아카데미 프로그램에는 100여 명씩의 아이들이 꾸준히 참가하였다.
학생자치회 학생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일주일 동안 학생 자치 학교를 진행했다. 학생자치회는 부서를 팀제로 운영하여 축제 등 각종 행사를 거뜬히 치러 냈다. 개교 2년차의 큰 성과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학생 자치 능력의 함양이다. 아이들은 성취감에 스스로 성장해 나갔다. 나눔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번씩 두 곳의 봉사 터전을 방문하여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연간 약 350여 명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또래 중조 프로그램은 우리 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성균관대 갈등 관리센터와 경기도교육청의 협약으로 경기도 10개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또래 중조인을 양성해 갈등 관계에 있는 친구들을 화해시켜 학교 폭력 등의 예방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학교에 있는 20명의 또래 중조인 학생들은 학교의 평화 세력으로서 존중과 배려의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또다시 불거지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 해법의 실마리를 흥덕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학부모와 교사의 성장, 계속 진행 중인 흥덕고의 힘
아이들의 문제 한복판에는 가정의 문제가 있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담한 결과 가정환경의 결핍과 부모와 아이들 관계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흥덕고를 선택했다. 부모의 마음도 그랬다. 초기에 당신의 아이가 위험하다고 느낀 학부모는 학교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그러다가 혁신학교를 면죄부로 삼고자 하였다. 학교가 아이를 한없이 돌봐 주고 치료해 주기를 바랐다. 학교는 많은 한계에 부딪치면서 학부모들과 갈등을 겪어야했다. 그러면서 학부모 배움터를 통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했고 아이들과 함께 상담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도움을 받고자 학부모 명예 교사제를 운영하였는데 활동에 참가한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학생들의 생활 모습에 회의감과 불안감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직접 접하면서 내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모가 아닌 우리 아이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봄, 가을 두 차례 각 4강씩 열리는 학부모 아카데미를 통해 흥덕고의 가치와 새로운 학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학부모들 간에도 인식의 간격을 좁힐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나온 2년의 삶을 어찌 글로 다 하겠는가. 뒷담화로 점철되었던 교사의 삶 속에서 온전하게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살아온 삶이 얼마나 되었던가. 어찌 보면 감상적이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무작정 만나서 충격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어떤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약해질까 봐 힘든 내색을 안 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다른 학교 동료 교사가 “힘들지?”하고 물으면 “나보다 더 힘든 선생님들이 많아!”라고 대답한다. 체벌 안하고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데,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을 보고 머쓱해하기도 했다. 작년 여름방학 연수 때 놀이 치료 연수를 받으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울면서 털어 냈던 아픔들, 물론 돌아서서 흘린 눈물이 훨씬 많았겠지만. 그래도 교장 선생님의 흔들림 없는 철학과 동료 교사들의 지지와 격려는 우리 선생님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우리도 부쩍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이렇듯 어렵지만 견디며 지켜 온 공동체 간의 신뢰와 학생들의 성취동기와 주동동기 함양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갔다. 친구가 공부를 하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함께 성장해 갔고 “혁신학교가 왜 그래?”에서 “혁신학교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우리 학교는 선생님이 제일 좋다”라며 우리 선생님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인다. 자신 하나 건사하기 버거워하던 아이들이 친구들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아이들이 얼마나 바뀌었느냐며 계량화된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는 계량화된 수치가 의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은 결코 결과나 수치로 측정할 수 없다.
교사란 무엇인가? 교사는 필드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코치나 감독 같은 존재라고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흥덕고는 계속 진행 중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에서 지난 2년 동안 받은 흥덕고의 과분한 기대와 관심이 송구스러울 뿐이다. 다만 흥덕고의 의미 있는 실험이 새로운 학교 혁신의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교사들이여, 쫄지 말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이만주 jun0922@hanmail.net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아이들과 세상에 잘 쓰이는, 늘 깨어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숲이 되어 지켜요.
첫댓글 눈물이 나네요~~ 이런한 시도와 노력으로 교사도 학부모도 점점 성장해갔으면 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