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같은 그놈
전창수 지음
1부
01. 한밤중에 들여다본 소멸
02. 그대 앞의 소멸
03. 아주 치열한 슬픔이
04. 남자일기
05. 여자일기
06. 그런가가 있다
2부
01.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1
02.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2
03.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3
04.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4
05.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5
06.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에필로그
07.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3부
01. 초록빛의 0
02. 초록빛의 돌
03. 초록빛의 물
04. 초록빛의 말
05. 초록빛의 글
06. 초록빛의 꽃
07. 초록빛의 너
1부
한밤중에 들여다본 소멸
거울 들여다본다 낯선 남자
무표정한 얼굴 누구인지 모를 조명발
정말 잘생겼군
독백 속에 시들어 버린 한줄기 光線
누구인지 알 것도 같은 안생긴 남자 하나
저게 누구지?
등 뒤로 낯선 남자 씨익 웃는다
바보같은 표정들 미로 속에 갇힌 거울
열중 쉬어, 차려, 뒤로 돌아
얼굴 찌푸린 낯선 남자 가만히
그를 들여다본다
헉, 나잖아? 놀란 눈에
성에가 낀다 안경 너머
뿌옇게 흐린 꿈 너머
그라고 하는 내가 있다
나라고 하는 너가 있다
2
거울 속에 갇힌
낯선 남자 하나
저게 누구지?
그대 앞의 소멸
어느 누구가 되든, 그대 앞에 무언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맞나요? 이 물건이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대답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라고 나는 추측하겠소.
어느 날 내 앞에 그가 나타나 저 말을 하던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이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럴까?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면? 그런 건가? 그리고 그에게 이 단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나요? 그가 계속 우물거렸다.
그는 별걸 다 기억한다면서, 계속 우물거렸고 나는 내가 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에게 별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대 앞에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정말 맞나요? 이 물건이 정말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추측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추측하겠지, 라고 나는 대답하겠소.
아주 치열한 슬픔이
나를 둘러싸고 누른 건 슬픔이 아닐까
슬픔이 아니다
나를 들처메고 벼른 건 기쁨이 아닐까
기쁨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깨운 건 절망이 아닐까
절망이 아니다
나를 일으키고 이룬 건 출구가 아닐까
출구가 아니다
나를 바람에다 재운 건 세월이 아닐까
세월이 아니다
나를 별빛까지 태운 건 버튼이 아닐까
버튼이 아니다
나를 깨우기만 하는 건 채움이 아닐까
채움이 아니다
나를 재우기만 하던 건 이별이 아닐까
이별이 아니다
남자일기
나는 이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 잘 알고 싶다. 알고 싶기 때문에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잘 모른다.
이 상황은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다. 기가 막힌 상황은 어딘가에서 이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이 남자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잠을 자는데, 나는 그 남자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남자가 상황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모르니까 이 남자는 내가 노려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이 남자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를 보지 않는다. 보지 않기에 그 남자는 지금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남자가 분명 좋은 남자라는 걸.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나는 생각해 봤는데,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 나는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그 남자를 사랑해 보려고 한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일일 텐데. 정말로 행복한 일일 텐데.
나는 남자다.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반한 남자다. 반했기 때문에 나는 그 여자의 남자가 된다. 남자가 되고, 나는 그 여자의 애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다. 이젠 나도 여자가 되려 한다. 나도 여자가 되려 하기 때문에 나는 남자가 되고 있다. 드디어 나도 남자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다. 나는 분명 남자였고 여자도 된다. 나는 정말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다.
여자일기
나는 이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 잘 알고 싶다. 알고 싶기 때문에 나는 이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잘 모른다.
이 상황은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다. 기가 막힌 상황은 어딘가에서 이 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이 여자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잠을 자는데, 나는 그 여자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여자가 상황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모르니까 이 여자는 내가 노려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이 여자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여자를 보지 않는다. 보지 않기에 그 여자는 지금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여자가 분명 좋은 여자라는 걸.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나는 생각해 봤는데,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일. 나는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자를 사랑해 보려고 한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일일 텐데. 정말로 행복한 일일 텐데.
나는 여자다.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반한 여자다. 반했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의 여자가 된다. 여자가 되고, 나는 그 남자의 애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자다. 그러므로 나는 여자다. 이젠 나도 남자가 되려 한다. 나도 남자가 되려 하기 때문에 나는 여자가 되고 있다. 드디어 나도 여자다. 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나는 분명 여자였고 남자도 된다. 나는 정말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된다. 그래서 나는 여자다.
그런가가 있다
오른쪽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왼쪽 눈에는 그런가가 있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통장잔고에 남은 무언가는 사람들의 왼쪽에 서서 그대들에게로 달려가고 살짝 내려앉는 그런가는 너의 뒤에 누워서 당신의 뒤로 달려간다 당신이, 당신이 어쩌면 무언가를 한다면 그런가가 무언가에게, 묻겠지 묻겠지
묻다 보면 살짝 기우는 어떤 것들은 무언가를 하게 되고 하다 보면 너의 다음 다짐을 살짝 알게 되다 보면 너의 다음 것들은 무엇이냐고 묻게 되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그런가에게, 또 묻고 있겠지 그렇게 너의 다음을 당신의 뒤로 나의 다음을 당신의 다음으로 기억하다가 그런가에게, 묻겠지 묻겠지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들면서 나는 너의 무언가를 살게 되고 그런가 뒤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날 나는 또 무언가를 살게 되고 그 다음 살게 된 어느 날에 나는 아마도 겉으로 외치다가 평소를 생각하겠지 나는 다음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걸 다음이 아닌 지금이라는 걸, 알겠지 알겠지
알고 있겠지
나의 두 눈이 어느 날 아주 아주 잘 보이게 된 어느 날을.
2부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1
1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 모두 떠났다>
- 황지우 시인은 그런 시를 썼지만
<내가 다가갔던 모든 사람들 / 어디 한 군데 다친 데 없이 / 모두 떠났다>
창 밖으로 한마리, 한마리, 새가 날고, 새가 날고, ……
2
나
는
날
면
서
울
고
있
다
고
말
한
다
새
똥
처
럼
․
․
․
3
TV 주말 연속극 이별장면
<주인공들에겐주름이박혀있다가진한화장기가있는가하면아주어린얼굴까지도있다푸석푸석한얼굴도아주가끔보인다눈물훔치는아낙네눈물훔치는여자애가끔은눈물을훔치는남성의얼굴상상속화면으로>
< C L O S E U P >
아 너무 길다
햇살 창문 딛고 내 방 꿰뚫는 순간.
수많은 여인이, 손에 손을 잡고
수많은 연인은, 손에 손을 놓고
걸어 가는 길
레즈, 호모, 사랑.
<신세대적 사랑은>
수많은 여인이, 손에 손을 놓고
수많은 연인은, 손에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
남자, 여자, 섹스
<구세대적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 손에 손 잡고
집에 걸어 가는 길.
섹스, 사랑, 오르가즘
<新舊의 조화>
4
나 는 여 기 서 멈 출 수 없 다 나 의 욕 망 을 새 가 날 듯
는 날
여 가
기 새
서 을
멈 S 망
출 욕
수 의
없 나
다 S E X 다
나 없
의 수
욕 출
망 X 멈
을 서
새 기
가 여
날 는
듯 날 가 새 을 망 욕 의 나 다 없 수 출 멈 서 기 여 는 나
5
욕망 감춘 그대 거대한 산 꼭대기
靜寂 깃든 허무맹랑한 폐허만 남아
지울 수 없는 그대 육체 위해 이제는
나의 욕망 새와 함께 날려 보내리
그러므로 이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 황지우 시인은 이런 시를 썼지만
그러므로 이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 * *
<그대 욕망의 육체 새와 함께 사라지다>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2
- Y와 K, 그리고 J에게
1
그 까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강남의 어느 커피숍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혜화동 어느 술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신의 눈은 아버님에 대한 기억으로 슬프게 빛났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서울의 S 병원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며 어느날 당신이 그런 편지를 보내셨을 때 저의 아픔은 그보다 작은 인내(忍耐)로 당신의 아픔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게는 당신과 함께 아파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의 아픔은 그만큼 커져 있었습니다 새와 함께 날려보낼 이 형편없는 구절(句節)들조차 Y와 K, 그리고 J란 이름으로 대신합니다, 이것이
詩가 아니길 바랍니다.
(말)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는 건 원치 않아. 가벼워보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상처에도 쉽게 튕겨져 나갈 수 있는 그런 가벼움이 난 좋아 넌 너무 무거워져 버렸어 너도 나를 좀 가볍게 해줄수 없겠니?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야 나도 너의 많은 면이 좋지만 네가 좋아하는 그것과는 다른 거잖아? 나 때문에 네가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2
제가 당신을 당황하게 했던 것만큼 당신 역시 저를 당황시켰습니다 제가 용납할 수 없던 당신의 감정들이 이제는 어리석은 변증법이 되어버리고 누군가가 저를 당황시킨 것처럼 당신을 당황시킨 것이 제 자신이었다면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이 또한
詩가 아니길 바랍니다.
(말) 하늘에 별 좀 봐. 유치하다. 하늘에 별 좀 봐. 유치하다니까. 하늘에 별 좀 봐. 왜 자꾸 그래! 하늘에 별 좀 봐. 정말 웃긴다. 하늘에 별 좀 봐. 그만 좀 해. 하늘에 별 좀 봐. ……. 너 내가 몇 번 말했는지 알아? 근데 왜 아직도 안 봐? 하늘에 별 좀 보란 말야!
3
세상에 좋은 詩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어리석음 때문에 쓰여진 詩들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보태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詩가 아닙니다 순수(純粹)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詩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詩가 아니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인 것만 같아 나 말하기 시작했지 감정에 대해서 나 소리내기 시작했지 노래처럼 흘러가는 그 말들을 나 노래하기 시작했지
4
당신이 당신의 아픔을 이야기한 것처럼 저 또한 저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아픔일지라도 그 아픔을 승화(昇華)시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억지로 짜맞춘 간곡한 노래들이 흘러듭니다 억지로 쥐어짠 눈물 억지로 지어낸 詩의 구절(句節)마다 억지로 흐르는 生이 아픔 속에서 흘러갑니다 그러나 이제 억지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詩가 아니길 바라면서
모든 말들이 무의미하게 흘러갑니다 마지막 연을 써내려가면서 아직도 못다한 저의 소명(召命)을 정리해봅니다 당신을 만났던 게 언제였던가요? 가을이었던가요? 겨울이었던가요? 다시 정리해봅니다 새와 함께 날려보낸 당신과의 기억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많은 말들을 줄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줄이기 위해선 더 많은 말들을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詩가 아니길 바라면서 당신을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해내야 합니다 당신을 어디에서 만났었죠? 카페였던가요 술집이었던가요? 아니면 …
… 그 어느 곳에서도
당신을 만난 적이 없었던가요?
이것이
詩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3
1
- 믿음 소망 사랑 중 그 중 제일은 사랑이어라
사랑
이라고?
믿음 없는 사랑도
사랑
이라고?
- 나는 널
사랑한 죄인.
2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만
나는 몰라요, 본질을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나는 눈 뜬 장님.
3
화장실 변기에 구역질하다
쏟아지는 헛물 켠 액체덩어리
내 한 몸 가누지 못해
결코 속 시원히 털어지지 않는
나에 대한 환멸, 환멸의 구조.
- 믿음 없는 삶, 삶들.
4
달리는 차창 앞유리 달려 든 벌레떼들
그들의 장례식은 와이퍼 와셔액의 축복으로
끔찍하게 고상한 방식으로 치루어진다, 흔적.
하나 없이. 소멸.
5
오랜 시간 매달린 흔적, 저것은 아마도
법대생? 고시생? 두툼한 안경 너머
희귀한 웃음 번득이며 결코
현실은 필요 없는 듯 오로지 책
속의 세계만이 무궁무진한 듯 하다
6
-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내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 나의 지금은 (?)
7
도서관 제 1 열람실, 불빛은 요란하게 모기소리로 윙윙거리고 창가 붙은 파리떼의 출현, 얼굴 들이대는 탁자 위 놓인 공부벌레들의 힘없는 잠, 오히려 맘 편하게 곤하였다
도서관 제 2 열람실, 부스대는 틈 비집고 막차를 놓친 인생은 어디로 가려 하는지 가방 챙기던 손길 꾸물대다 서둘러 걷는 걸음걸이엔 내일의 희망이 보일란다
8
어떤 사랑도 폐허의 자리는 있게 마련이고
그 곳의 악취는 깊이 각인되어 나 이제 돌아가지 못하리라
- 등 돌리면 그만인 사람들
- 바리케이트, 쌓다
9
긴긴 이별, 잠잠한 사랑
바다 속에서 나는 영원히 평온하다
- 절대적인 가식 포함된 절대적인 사랑으로
10
나에 대한 환멸, 환멸의 구조
끝나지 않으리라, 죽음 이후에도.
없을 삶들, 찾아가다 지친 곳.
소리없는 날들
그렇게 사랑하다
그렇게 그리워하련다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4
고개 쳐드는 사하라 무덤 위 곱게 놓여 시들지 않는 그 속(續)으로 나 들어가겠네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 따라 나 숨쉬고 있겠네 때론 모래폭풍 일으켜 나 살아있음 증명하겠네
그대 기다리며 시간 잡아먹는 소멸(消滅)과 외따로 놓여진 영혼 잡아먹는 생성된 물질의 활극(活劇). 푸르른 오아시스 옆 그대 잡아먹는 억척스런 꿈 사하라 무덤 위 어느 지점에 내가 있을까 나는 사하라 모래무덤 돌아가 사랑하겠네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5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그리움이라 하지 지하 라이움러서
않겠다 분출되어 간져라갈 다겠않
간절히 바라지만 만지르흐 이간시
그리움이라 하지 지하 라이움러서
않겠다 다겠않
(아래 첫줄은, 왼쪽 공간에서 오른쪽 공간으로, 뛰어!)
(다음 줄은 오른쪽 공간에서 왼쪽으로, 돌아가!)
(그 다음 줄은 양쪽에서 건너자, 그리움과 서러움의 공간을!)
(마지막 줄은 혼란일지도!)
시간도머물면 공 간이 되는것일까
다있난에계세 는 없 수할월초가내
그리움이라 하지 지하 라이움러서
않다겠
그대를 기다리는 소멸 ․ 에필로그
111
나같은 놈이 세상에 또 하나 있으면 나는 그놈을… 나같은 말투로 나같은 옷을 입고 나같은 표정으로 나같은 얼굴을 보고 나같이 밥을 먹고 나같이 생각하는 그런… 놈을 보면
22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바람은 불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았다 어둠도 오지 않았다 태양도 뜨지 않았다
시간도 가지 않았다 사랑도 하지 않았다 이별도 하지
않았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
았다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오지 않았다 나는 죽어
죽지 않았다 시간 속에 어느덧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3
(111 -> 22 -> 3)
난 스타일리스트가 아냐, 난 詩이고 싶을 뿐, 뿐, 뿐.
(메아리가 내게 돌아올 때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사.
소멸 -> 0 -> 탄생 -> 영 혹은 일
<이상, 광란의 詩에 대한 진찰 끝>
3부
초록빛의 0
빛이 빛을 쪼여 한낮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빛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빛에게 말한다 내게 바람을 달라 내게 비를 달라 내게 구름을 달라 그 빛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숲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이야기는 저 바다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사랑을 하기만 하고 싶던 그 날에 나는 삶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바다에게 투정했더니 바다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꿈이냐고 꿈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초록빛의 돌
돌이 돌이 되려 돌의 모든 걸 말하고 있다 그 돌은 내게 모든 걸 다 말하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돌에게 말한다 내게 돌을 달라 내게 돌을 달라 내게 돌을 달라 그 돌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돌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돌이 되려 돌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투명한 돌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돌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돌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돌은 저 돌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돌이 돌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돌이 되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돌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돌이 되려 하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돌에게 투정했더니 돌은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돌 위에서 돌을 뽐내며 돌이 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인 듯 땅인 듯 바다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돌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돌에 돌이 되려 했는데 돌은 내게 돌이냐고 돌인 거냐고 나는 뭐냐고, 라고 뭐냐고, 라고
초록빛의 물
물이 물을 부어 물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물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물에게 말한다 내게 물을 달라 내게 물을 달라 내게 물을 달라 그 물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물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을 마시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맑은 물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물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물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물은 저 물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물이 물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물을 마시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물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물을 주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물에게 투정했더니 물은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물 위에서 물을 받으며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이제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지금에 물을 마시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물이냐고 물인 거냐고 나는 그럴 거라고 그럴 거라고
초록빛의 말
말이 말을 하려 말의 모든 걸 말하고 있다 그 말은 내게 모든 걸 다 말하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말에게 말한다 내게 말을 달라 내게 말을 달라 내게 말을 달라 그 말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말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하러 사람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말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말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말은 저 말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말이 말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말을 하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말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말을 하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말에게 투정했더니 말은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말 위에서 말을 뽐내며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인 듯 땅인 듯 바다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자연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말에 말을 하려 했는데 말은 내게 말이냐고 말인 거냐고 나는 맞겠지, 라고 맞겠지, 라고
초록빛의 글
글이 글을 쓰려 글의 모든 걸 새기고 있다 그 글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글에게 말한다 내게 글을 달라 내게 글을 달라 내게 글을 달라 그 글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글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러 사람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글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글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글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글은 저 글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글이 글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글을 쓰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글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글을 주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글에게 투정했더니 글은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글 위에서 글을 받치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나중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에 글을 쓰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글이냐고 글인 거냐고 나는 아마도, 라고 아마도, 라고
초록빛의 꽃
꽃이 꽃이 되려 꽃의 모든 걸 말하고 있다 그 꽃은 내게 모든 걸 다 말하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꽃에게 말한다 내게 꽃을 달라 내게 꽃을 달라 내게 꽃을 달라 그 꽃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꽃이 되려 꽃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투명한 꽃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꽃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꽃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꽃은 저 꽃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꽃이 꽃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꽃이 되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꽃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꽃이 되려 하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꽃에게 투정했더니 꽃은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꽃 위에서 꽃을 뽐내며 꽃이 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꽃인 듯 꽃인 듯 꽃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꽃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꽃에 꽃이 되려 했는데 꽃은 내게 꽃이냐고 꽃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초록빛의 너
나는 네가 되려 너의 모든 걸 말하고 있다 그 너는 내게 모든 걸 다 말하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너에게 말한다 내게 너를 달라 내게 너를 달라 내게 너를 달라 그 너는 그럼 나는 너에게 내가 가진 모든 나를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되려 나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투명한 네가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너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너는 저 나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너가 너가 아니게 된 어느 날에 돌이 되고 싶어 하던 그 날에 나는 너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너가 되려 하지 않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너에게 투정했더니 너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너 위에서 너를 받으며 너가 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너인 듯 나인 듯 우리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온 그 너는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너에 너가 되려 했는데 너는 내게 너이냐고 너인 거냐고 나는 그럴 거라고 그럴 거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