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서른아홉 번째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삶은 기다림이 사라지면 지루해진다. 삶은 기다림의 긴 여정” 안귀숙 시인은 우리네 삶이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내일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기다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혼기가 지난 딸이 언제 듬직한 사윗감을 데려오나 기다리고 있고, 손주들이 탈 없이 자라 큰 인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희망이고, 기다림이 없는 삶은 단지 연명에 불과합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네 일상은 쓸쓸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지요.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하고,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 등을 조성한다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입니다. 장 담그기는 ‘기다림’입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최소 3개월 이상 걸립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 여러 해의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식탁에 장이 없으면 식탁이 차려지지 않을 만큼 우리는 ‘기다림’을 먹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 기다림에는 여러 가지 맛이 어우러지는 화합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게 우리네 정서요, 민족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빨리빨리’ 문화가 사회 주류를 이루면서 산업은 발달했지만, 우리네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이 없어 사회적 질서도 무너집니다. 아랫집 노인이 끓이는 된장국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