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알피니즘을 생각한다
어느 로터리 모임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해서 나는 등산에 대해 말했다.
나는 연단에 서자 "사람은 산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첫 마디를 꺼냈다. 순간 분위기가 조용해지는 듯싶었다. 처음에 그날의 연사를 소개할 때 등산가라고 햇으니 사람들는 모두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진부한 이야기로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이날 강연에서 건강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건강은 등산의 주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등산이란 무엇인가? 대답이 간단할 것 같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하기야 등산이 무엇인가 묻는 것부터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이 등산이지 거기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싶다.
내가 사람을 산에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데는 그것대로 근거가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북한산 밑에 살며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백운대에 오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새삼 놀랐다. 그들은 그 봉우리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높이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평생을 산을 외면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등산이란 산과 사람의 만남이다. 그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등산의 역사가 시작됐고 이어서 '알피니즘'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것은 1760년 유럽 알프스의 초고봉 몽블랑과 제네바의 자연과학자 드 소쉬르와의 만남이었다. 만일 이 사실을 모르는 산악인이라면 그 사람은 이것 하나로 알피니스트로서의 자격이 없다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산과 사람의 만남에는 몇 가지 길이 있다. 사람이 산의 수려함이나 웅대함에 끌려 그 모습을 한폭의 그림으로 그리거나 문장으로 묘사하는 일과 또한 하나의 음악으로 작곡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에 『모던 페인터즈(근대 회화론)』을 쓴 존 러스킨을, 후자에 '알펜 심포니'를 작곡한 R. 슈트라우스와 '프랑스 산의 주제에 의한 교향곡'을 작곡한 댕디를 들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의 예술은 위대하지만 그들은 알피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산과 만나 직업을 바꾸고 산악인이 된 사람으로 에드워드 윔퍼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는 삽화를 그리는 화가였는데. 스위스 알프스의 그림을 부탁받고 갔다가 마터호른에 매혹되어, 끝내는 마터호른 초등의 역사를 성취하면서 세계 등반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알피니즘은 알피니스트를 낳는다. 알피니즘을 모르는 데서 알피니스트는 나오지 않는다. 말을 바꾸면 알피니즘은 선개념이고 알피니스트는 후개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등산가 아닌 등산가가 우리 주변에 범람하고 있으니 이것은 본인을 위해서나 산악계를 위해서나 불행한 이야기다.
등산은 물론 스포츠라는 장르에 속한다. 그러면서 등산의 세계라는 고유의 개념을 구사하는 스포츠는 등산뿐이다. 그러기에는 확실한 근거와 조건이 있는데, 알피니즘의 정신과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알피니즘'이라는 말을 언제 누가 '등산'으로 옮겼는지 분명치 않으나 이 양자의 뉘앙스는 반드시 같지 않다고 본다. '등산'은 말 그대로 '산에 오른다'는 뜻이며 알피니즘은 '알프스를 오르는 정신과 행위'를 뜻한다. 200여 년 전 유럽 알프스를 무대로 사람들이 등반활동을 벌였을 때 생긴 이 말은, 그 뒤 등산무대가 유럽을 벗어나 전 세계로 번져나가며 용어도 지역성을 탈피하고 일반화됐다.
등산을 산과 사람의 만남으로 규정하는 데는 그 양자간의 관계성이 있다. 그리고 이때의 만남이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른바 '만남의 광장' 따위의 만남이 아니다. 그 관계성이란 바로 등산을 특징짓는 조건으로 일컬어 '등산병'이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죽음의 지대』 서장에서 '등산-그것은 병인가'하고 물었다. 등산을 이처럼 일종의 병적 증상으로 보기는 그가 처음인데, 메스너와 오랜 산행 파트너였던 한스 카머란더가 그의 말을 받아 자기 산행기의 표제로 삼았다. 'Bergsuchtig' 즉 '등산병'이다.
알피니즘에는 확실히 병적인 요소가 있다. 여기서 병적이라는 말은 일종의 광(狂)이고 벽(癖)이며 욕망을 뜻한다. 한마디로 일에 미쳐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알피니즘이 인류문화에 나타나서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며 지구상에 공백지대를 볼 수 없게 만든 원동력이 다름 아닌 등산병이다.
한편 알피니즘은 문명사회와 상반되고 역행하는 인간의 생활양식이나 의식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발생 과정을 보면 양자는 마치 일란성쌍생아(一卵性雙生兒)나 다름없다. 즉 등산이 서구 근대화와 고동을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시작이 그럴 뿐만 아니라 등산을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고 나란히 성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20세기 후반에 지구상에 빈 곳이 없어지자 등산은 탈문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알피니즘의 고전적 의미가 퇴색하고 현대적 의미가 표면에 나섰다.
알피니즘은 무엇인가에 대한 큰 줄거리는 이런 것이겠지만, 그 역사는 인류 문화사 가운데 색다른 사건으로 기록되고도 남는 인간의 의식과 행위의 발달사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프랜시스 베이컨은 학문에 대한 수필에서 '배운다는 것은 희열이며 장식이고 또한 능력'이라고 했는데, 알피니스트가 알피니즘에 대해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불성(語不成)이다. 희열이나 장식은 고사하더라도 능력이 문제된다면 그것은 등산가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다.
알피니즘의 이해는 물론 지식과 체험을 예상하고 전제로 한다. 그래서 알피니스트는 꾸준히 선구자들의 산행기를 통해서 자기의 등산에 대한 지식과 체험의 폭과 깊이를 더해나가도록 할 일이다. 에머슨이 인간의 생활을 그가 언제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등산가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암시하고도 남는 말이다.
나는 서울 근교의 인수봉을 세계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우리만의 클라이밍 겔렌데며, 부산의 금정산은 한 여류 등산가의 태백산맥 단독 종주 시발점으로 높이 평가한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생각 없이 몰려가는 금강산을 고도가 설악산보다 낮다는 뜻에서 저평가하며, 백두산은 우리쪽에서 엄동기에 캠프를 전진시키며 올라야 백두산답다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의 열악한 자연조건은 세계 알피니즘의 무대가 되지 못했지만, 이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것을 알피니스트로서 평가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등산세계는 오늘날 급속도로 변질하고 있다. 그것의 보편화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세속화에 있다. 이것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이럴수록 알피니스트로서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알피니즘을 공부하는 일이다.
등산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여기 등산가의 자기 검증이 있다고 본다.
알피니즘은 제도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등산에 대한 것을 어떻게 습득해서 자기 생활의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등산학교와 등산연구소의 존재 이유가 여기 있다.
메스너는 등산을 더 이상 정복등산이 아니고 존재등산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 문명과 자연의 틈바귀에서 생존을 위해 안달하는 현대인의 존재의식은 알피니즘이 비로소 깨우쳐 주는 수밖에 없는 지경에 왔다고 나는 본다.
- 김영도,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pp. 225~229
___
•겔렌데 Gelande -
독일어인 이 단어 본래의 뜻은 '지면'이나 '지대'지만 등산에서는 빙, 설벽 등반이나 암벽등반의 훈련장을 의미한다. 겔렌데는 보통 고정된 확보지점이 만들어져 있다. 아무런 확보 없이 올라도 위험하지 않은 6~7미터 높이의 바위는 볼더라고 하는데, 이런 곳을 가리켜 겔렌데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 쓰이는 예다.
Pelton, Cache Cole & Magic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