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기 베버는 유랑가극단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각 도시를 순회했기 때문에,일찍이 여러 도시의 음악과 그 도시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접할 수 있었다.그중에는 잘츠부르크 주교의 궁정음악가 미햐엘 하이든(요제프 하이든의 동생),빈의 요한 네포묵 후멜과,요제프 하이든도 포함되어 있다. 베버는14살 되던 해에 그의 첫번째 오페라〈숲의 소녀(Waldmädchen)〉를 작곡하고,이 작품은 성공리에 상연되었다.이처럼 어린 나이에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그는 채18살이 되기도 전에 브레스라우의 시립가극장의 악장으로 임용된다. ▲ 왈츠<무도회의 권유> 이 작품은 그의 부인 카롤리네 브란트에게 헌정되었는데,이 곡에는 작곡가 자신의 상세한 프로그램이 전해지고 있다.그 내용은 무도회에서 한 젊은 신사가 숙녀에게 접근하여 말을 건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마디: 1~5).숙녀는 완곡하게 거절하다가(마디: 5~9),신사의 간청(마디: 9~13)에 응하게 된다(마디: 13~16).신사가 대화를 시작하고(마디: 17~19),숙녀가 대답한다(마디: 19~21).신사는 더욱더 진한 감정표현을 한다(마디: 21~13).숙녀가 온화하게 이에 응한다(마디: 23~25). 바야흐로 두 사람은 춤에 관심이 쏠리고,신사가 숙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춤을 청한다(마디25~27).두 사람이 무대에 등장한다(마디: 29~31).춤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마디: 31~35).두 사람은 화려하게 왈츠를 춘다.신사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숙녀가 이에 답례한다.두 사람이 퇴장하고 이윽고 정적이 흐른다(마지막). 남녀간의 스캔들을 야기할 수도 있는 왈츠는1792년 이후 베를린의 무도회장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장르였는데,베버는〈무도회의 권유〉의 성공으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는다.베버가 이 곡에서 구사한 왈츠 곡의 연결형식은 후에 빈의 라네르(Joseph Lanner)와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의해 계승·발전된다. ▲ 콘체르트슈티크(Konzertstük) 피아노 작품인〈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바단조, Op.79)는 단일악장으로 구성된 기악협주곡의 새 장르인“콘체르트슈티크”의 시초이다. 당시에 통용되던 피아노 협주곡은‘소나타 형식-3부 가요형식-론도 형식’이라는 형식적 틀에 맞춰3악장 체계로 구성하는 것이 관습이었는데,베버는 이에 반해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4개 악장을 연결시켜 곡을 만든 것이다.
▲ 독일 낭만 오페라의 기수
베버의 오페라<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1821)>·<오이리안테(Euryanthe,1823)>·<오베론(Oberon,1826)>등이 있는데,그 중<마탄의 사수>는 독일 낭만 오페라의 기수로 불리고 있다. 또<오이리안테>에서 개발된 라이트 모티프(Leitmotiv :시도동기,유도동기_음악상의 동기에 의해서 어떤 인물,상념,장면 등을 나타내는 것)는 멘델스존의<한 여름밤의 꿈>과 바그너의 모든 악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최초로 지휘봉 사용 베버는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하여 근대 지휘법 발달에 기여한 지휘자로도 유명하다.즉,이전에 박자의 유지가 피아노(쳄발로)나 악장(바이올린 주자)에 이루어졌던 데 반해,베버는 악단 앞에 서서 지휘를 한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그는 팔을 흔들어 박자를 맞추었고,그의 손에는 오늘날의 지휘봉이 아닌,악보를 둘둘 말은 종이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공공 연주회 시도 그외에 베버의 업적으로서 주목해야 할 것은,그가 당시 일반 시민계급을 상대로 한 공공 연주를 계획하고 조직한 최초의 음악인 출신의 공연기획자이며,당대 최고의 명성을 날린 피아니스트,유능한 음악감독,그리고 무엇보다도(호프만과 더불어서)음악가,문학가 및 음악 저술인이라는1인3역을 담당하는 새로운 예술가 유형의 선구자였다는 점이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하),pp.128~132> <Wikipedia> ●감상: <마탄의 사수_사냥꾼의 합창> <무도회의 권유> 하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