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4장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에 헌신하다
6. 중동에 심은 평화의 씨앗
문선명은 종교 지도자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분쟁과 갈등을 모른 체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폭탄과 테러, 갈등과 미움이 난무하는 중동으로 건너가 화해와 협력으로 이끄는 일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예루살렘선언, 예수님 대관식, 중동평화운동(MEPI)은 분쟁을 평화로 이끈 대표적인 일이었다.
문선명이 중동에 간 것은 1965년이 처음이었다. 그때 전 세계 40개 나라의 120곳에 성지를 정하는 세계 순회 노정을 떠났다. 세계를 순회하는 목적은 한국에서 출발한 통일사상을 세계로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그 기간에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등 중동 일대와 그리스 등을 순례하면서 성지를 택정했다. 그런 후 1960년대 말에 유럽 신도들에게 중동으로 건너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1969년부터 유럽의 통일교 선교사들이 중동으로 파견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준 다뷔(June Darby)가 요르단으로, 레스터 칠만(Lester Chilman)이 이집트로 갔으며 그 외에 많은 선교사들이 차례차례 이란, 터키, 레바논으로 갔다. 그러나 그들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미국과 세계에서 통일교가 환영받았던 것에 비해 중동은 시련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으며 일본 선교사가 추방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그러함에도 미국 선교사들의 진출로 차츰 안정을 찾아가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갔고, 교육, 봉사활동 등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또 사회, 정치 지도자들과의 교류를 넓혀 선교의 기반을 닦아나갔다. 1980년대에는 신문도 발행하기 시작해 1983년 3월 7일 [미들이스트타임스Middle East Times]가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서 창간되었다.
1990년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략해 걸프전이 일어나자 문선명은 「카이로선언」을 통해 전쟁의 중지와 종교화합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선언으로 통일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으며 많은 이슬람인들의 호감 사게 되었다. 1991년 무슬림 지도자 40명을 뉴욕으로 초빙해 수련회를 열었고 1992년부터는 축복결혼식에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1992년 4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1,265쌍 축복결혼식에 43쌍의 무슬림이 참여했는데 이는 세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학자 총재 역시 중동평화에 온 힘을 쏟았다. 세계평화여성연합(Women's Federation for World Peace:WFWP)을 만든 뒤 공동 창설자로서 1993년 중동을 방문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참부모와 성약시대'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런데 강연에는 이슬람도 모하메드도 언급하지 않자 청중의 절반이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예루살렘에서는 유대교인들의 반대로 강연회장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부랴부랴 장소를 옮겨야 했고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강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중도에 퇴장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강연을 마쳤으며 축승회에서도 당당하게 손님들을 맞았다.
한 총재를 비롯한 여성들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4년 문선명은 일본의 여성 신도 10명씩을 세계 각국에 파견했다. 그녀들은 가정을 떠나 3년 동안 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사명을 짊어졌다. 25차에 걸쳐 모두 16만 명이 참여한 제주도와 구리 수택리에서의 수련회에서 문선명은 여성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여성의 길은 딸로서의 길, 자매로서의 길, 아내로서의 길,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네 입장을 훌륭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위하여 사는' 길입니다."
교육을 마친 일본 여성 신도들은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등 중동 각지로 떠나 각자 맡은 사명을 다했다. 그녀들은 낯선 땅, 모래 바람이 불어오는 유대 국가, 이슬람 국가에서 헌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여 년 동안의 헌신은 모두 세계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길고 긴 고난의 과정과 투쟁을 거쳐 유대인과 이슬람인들은 문선명이 부르짖는 화해와 통일사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중동에 평화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중동평화운동을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회해시키는 것이었다. 2003년 4월 문선명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한 행동을 회개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또 기독교인들에게 교회에서 십자가를 내리라는 저돌적 지시를 내렸다. 일부 기독교 목사들은 그 말에 공감해 용감하게 교회에서 십자가를 떼어 냈다. 이로 인해 기독교 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문선명은 예루살렘선언문을 작성해 선포하는 일을 밀고 나갔다. 예루살렘선언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한 행동에 대한 사과문이기도 했다.
2003년 5월에 문선명은 미국성직자지도자회의 (ACLA) 123명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아브라함에 뿌리를 둔 종교들(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간의 화해의 문을 열어 중동에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했다. 중동평화운동 지도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온갖 일을 했다. 엘리트 지도자들과의 대회와 세미나, 행진, 집회, 교육, 봉사활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그러자 곧 모든 계층의 사람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 권력자들과 투표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까지 평화운동에 동참했다. 이러한 공감과 화해를 기반으로 5월 18일에 예루살렘의 인터콘티넬호텔에서 문선명이 제안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200여 명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유대교 지도자들이 참석했으며 선언문이 완성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쌍방의 신자들은 이해와 조화, 화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의 과거의 어두움을 회개하며 함께 밝은 미래를 추구하기를 희망하며 더 나은 세계를 열망하면서 고통 받아왔던 모든 사람들의 바람을 생각한다. 이 땅에서 오늘 하나님과 평화로운 세계와 전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로 합하여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ㅡ. 두 신앙은 각각의 믿음으로 인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를 겪었다. 우리의 신앙이 박해받거나 다른 이의 신앙을 박해했을 때 무고한 이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순간으로부터 우리의 삶의 모든 미래의 역사를 정화하기 원하는 이 선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다.
ㅡ. 우리는 평화와 선의의 시대에 선두가 되어 지금은 영계에 있는 예언자, 성인, 현자 그리고 우리 종교의 창시자와 함께 일할 것을 희망한다.
ㅡ. 우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고대의 사건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를 마지막으로 십자가 처형이라는 짐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것을 원한다.
ㅡ. 오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친다. 우리는 평화로운 세계와 이상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참부모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한 가족을 이룰 것이다.
문선명의 사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탄절 바로 직전인 12월 22일 예루살렘의 한 공원에서 예수님 대관식(왕권 즉위식)을 거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관식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왕권을 봉헌하는 집회로, 예수님을 그가 본래 서야 할 위치로 회복시켜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즉 십자가를 왕관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2003년 12월 22일, 세계 70여 나라에서 모인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를 포함해 3만여 명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예루살렘 국립공원에서 열린 초종교초국가평화의회(Interreligious and International Peace Council:IIPC)행사에 참석했다. 대회의 주제는 '중동과 세계평화를 위한 열린 대화'였다 대회는 기도와 연설, 다양한 축하공연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참 목적은 초종교적 화해이자 유대인과 예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의식은 성스럽게 진행되었으며 70여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은 그 모습을 경건하게 지켜보았다. 예루살렘 시장을 지낸 엘라이저 글라바흐(Eliezer Glaubach)는 중동 평화를 위해 문선명이 뿌린 노력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나는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유대인입니다. 나는 우리 모두를 함께 불러 모아 인류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문선명 목사님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 성스러운 엘리제의 땅에서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진정한 수고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진정 평화라는 이름으로 예루살렘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선명 목사님이 한 일입니다."
예루살렘선언에서 시작된 성지순례는 '중동평화이니셔티브(Middle East Peace Initiative:MEPI)'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전에는 미국의 성직자지도자회의(ACLC)가 주도했으나 이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성직자들도 참가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에 열린 33회 MEPI 행사에는 전 세계 40개 나라에서 200여 명이 모이는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다.
문선명이 중동에 첫발을 디딘 것은 47년 전이다. 뜨거운 모래바람의 나라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감격과 아픔은 생생했다. 그때 문선명은 중동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성지를 정하고 모든 나라들이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세계를 만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비록 그곳에서의 테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통일교 신도들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심은 평화의 씨앗은 열매를 맺어나가고 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