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https://youtu.be/uiPha9yzPpg?si=-lT-xLt0YTGaHCna
https://youtu.be/KAIq6_dx12c?si=ZOqaSKUc2uyG7mA5
도산 안창호의 한반도가
미국으로 가는 뱃길에서 그는 넓고 넓은 바다에 우뚝 솟은, 웅장한 하와이섬을 보고
감격하여 이때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이라 지었다고 하며,
“나도 넓고 넓은 저 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섬 (도산) 과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리라.” 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1910년의 국권상실 전 안창호가 망명길에 오르면서 당시의 심회를 읊은 우국가사,
일명 「한반도 작별가」라고도 하는 가사는 조국을 떠나며 부른 이별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1902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중이던 안창호는 을사조약 등으로 국운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파악하고, 미국에 있는 한국인단체 공립협회(共立協會)의 대표로
1907년에 귀국하였다.
귀국하자마자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구국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 후 총독부의 무단정치가 강화되자 이를
망명을 하게 된 것이다고 합니다
첼리스트 박상민
1987년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사상 최초의 최연소 종신단원으로 입단하여
수년간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많은 연주활동을 해온 첼리스트 박상민은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뒤 매네스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백악관에서 연주를 하였다고 하며,
링컨센터와 케네디 센터 등에서도 독주회를 가졌으며,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줄리어드 오케스트라, 앨라배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습니다
박상민은 미국에서 하트위크 여름 음악제 초빙교수와 로원 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국내에서는 코리안심포니의 수석단원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하여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부산시향, 대전시향, 광주시향 등과
협연하였고, 비르투오조 현악 사중주단, 예음 실내악단, 뉴 아시아 사중주단,
화음 실내악단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