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운율에 대하여
시조에서 운율은 절대적인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음수율을 3,4에 맞추어 물이 흐르듯 할 때 운율은 가장 잘 생겨난다. 고시조는 3.4조의 반복된 시어로 운율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종장에서는 어떠한가? 종장은 초장이나 중장과 달리 음수 배열이 3.5/4.3이다. 당시에는 창으로 부르기 위해 종장 말미를 역진으로 만들어 종장 반전의 묘미를 매듭지었다.
고시조는 대개 두 가지 형태로 운율을 만들어 낸다. 첫째는 허사(虛辭)를 많이 사용했다. 예를 들면 남구만의 ‘동장이 밝았느냐’의 종장을 보면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3.5/4.3)”처럼 끝내고 있다. 여기서 ‘언제 갈려 하나니’를 분석해 보면 ‘언제√가느냐’가 현대문법에서는 맞는 표기이다. 그러나 음수가 2.3이 되므로 허사 ‘하느냐’를 추가로 도입하여 음수를 ‘언제 갈려(4) 하나니(3)’처럼 만들었다. 운율을 추가하는 조치이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조식의 작품 ‘삼동에 베옷 입고’의 종장 역시 “서산에 해지다 하니/ 그를 설워 하노라” 역시 ‘그런 일이 서럽다’지만 음수가 4.3임에 불구하고 허사를 도입하여 반전의 묘시를 살리고 있다.
임제의 ‘청초 우거진 골’의 종장도 이와 같다.
“잔 잡아 권할 리 없으니 그를 설워 하노라”
이직의 작품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를 보면 종장이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을손/ 너뿐인가 하노라”는 ‘너뿐이다’로 끝나야 맞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하면 소절 하나가 모자라게 되어 시조의 격식을 벗어나게 되기도 하지만 운율을 맞추는 데 필요하지도 않은 말 ‘하노라’를 붙여서 형식을 지켜내었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이러한 허사(虛辭)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종장 마감 방식에 있어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현대시조에서는 실사(實辭)를 사용하면서 음수와 소절 모두를 살려내야 한다.
운율을 만드는 방법은 음위율이라든지 동일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서 만드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이고 이밖에 음수율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운율을 첨가하기 위해 말마디를 늘이거나 줄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홀로 뜬 별이’를 ‘호올로 뜬 별이’, ‘파란 하늘에’는 ‘파아란 하늘에’처럼 말마디를 늘이거나, 반대로 ‘우리 엄마’를 ‘울 엄마’로, 또는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아느냐’를 ‘널 사랑하는 내 맘을’처럼 줄여서 아름다운 운율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운율(리듬)이 딱딱하면 맛이 덜하다. 운율을 딱딱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시어가 한자로 우리말이다. 우리말은 부드럽지만, 한자어는 일반적으로 부드러움이 덜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예로서 ‘날카로운 눈빛’ ‘번득이는 눈빛’과 ‘냉철한 눈빛’ ‘섬광 같은 눈빛’은 서로 비슷한 말이지만 순우리말로 된 앞의 표현이 더 부드럽고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발굴하는 것도 시인의 몫이다.
시조는 형식, 메시지, 운율 등 삼박자가 맞아야 더 멋있는 미학을 창조할 수 있다.
첫댓글 고문님!
명강의 시조운율에 대해 배람합니다.
늘 강녕하시길 두손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