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을 향한 수도자의 노정 (이상헌 평전)
5) 통일사상의 체계화, 뜻 위한 일념으로 병원 폐업하다
7. 뜻만을 위한 일념으로 병원을 폐업하다
이상헌에게 의사란 본분이요 천직이었다. 청소년기 인생을 놓고 고심하며 방황하던 시절, 그나마 미래의 꿈을 의사가 되겠다고 설정한 후 세브란스 의전에 들어가 위안을 삼았다.
군산 개정병원에 근무할 때 원리를 듣고 뜻을 알게 된 후 그는 바로 의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 문선명 선생의 만류로 의사로서의 생활을 지속하였다.
그후 군산에서 병원을 개업할 때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선생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이다. 또한 대전으로 병원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의 뜻과 섭리라면 한시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절대순종의 본이 되어 실행했다.
결국 대전에서 1962년 8월부터 1971년 7월까지 운영하던 병원을 완전히 접고 오직 뜻만을 위해 교회에서 일하겠다는 일념으로 8월 서울 상봉동으로 이사했다.
그가 천직으로 이어오던 병원을 폐업한다는 것은 본인으로써는 혁신적인 결단이었다. 그야말로 개인을 완전히 헌신하겠다는 뜻이 아니고는 실행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뒤 서울의 변두리인 봉천동을 비롯하여 면목동 등의 작은 집으로 전전하였다. 심지어 자녀들은, 북경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와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을 지낸 형인 이상은 박사 집으로 보냈다. 생활은 아내가 책임지고, 그는 전적으로 집필에만 몰두하였다.
형수는 아이들을 맡아주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명석했던 그가 교회에 치우치지 않고 학계로 진출한다면 남편인 이상은 박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세계적 석학이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재고해 보라고 은연 중 채근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의자가 있는 책상이 없어 밥상을 펼쳐 놓고 글을 쓰느라 바지 엉덩이가 다 헤질 지경이라, 한때는 허리디스크로 오랫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고려시대 마치 팔만대장경을 판에 각인하던 스님들이 한 자 한 자 각인할 때마다 염불을 외우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나가며 문선명 선생의 말씀과 원리를 새긴다 생각했고, 단락을 매듭지을 때마다 기쁨으로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