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몇 주 전, 딸이 이번 추석 연휴는 우리 가족 모두 함양 용추계곡에서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공기 좋고 산수 좋은 곳에서 연휴를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아들 가족과 우리 내외 다 함께하기로 했다. 함양 용추계곡 오토캠핑장은 평소에 딸 가족이 잘 다니는 곳이다. 방학 기간이나 연휴가 겹치는 날이면 자녀들과 함께 며칠 씩 쉬었다 오는 곳. 그래서 그곳에 정이 들었나보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드리고 나서 형님과 함께 미사에 참석한 다음 성묘하러 가는데 11시가 다 되어 간다.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산소가 있는 도곡은 외곽도로로 해서 광주대 쪽으로 가는 것이 길도 넓고 좋기는 한데 오늘은 성묘 차량이 밀릴 것 같아 남평 방향으로 우회하여 가니 통행이 수월하다. 양지바른 길 주변에 모신 부모님 산소에 들러 성묘를 드리는데 뜨거운 햇살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예전 같으면 추석이 되면 긴팔 옷을 입고 다녀야 되는 시기인데 올해는 왜 이리 더운지? 부모님과 형수님 그리고 형님과 조상님들을 모신 네 곳을 찾아 성묘를 끝내고 동생 집에 들러 식사를 하는데 밥상이 그득하다. 그 바쁜 중에도 해년마다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스레 차례와 제사를 드리는 동생을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와 함양으로 출발 하는데 4시가 다되어 간다. 이 시간은 다른 해 같으면 처갓집에 가야하는 시간, 그러나 올해는 내 생전 처음으로 처가가 아니라 야영장을 향해 달린다.
아들과 딸 가족은 먼저 가고 우리 내외 서둘러 출발하여 88도로를 타고 가는데 순창으로 가는 길목에 이르니 차들이 죽 밀려 있다. 안내판을 보니 5km 정체란다. 이때부터 거북이걸음을 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대구로 가는 귀성 차량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고 혹시 사고가 난 게 아닌가 하며 답답하던 정체 구간을 벗어나고 보니 그 원인을 알겠다. 차량 사고가 아니라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4차선으로 이어진 도로라 소통이 원활하다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단선으로 좁아져 정체가 일어난 것이다.
명색이 고속도로라는 길이 단선으로 만들어져 명칭만 요란하게 88고속도로, 5.18직후 동서 화합을 위해 만들었다 하는데 과연 이 길을 만든 후 동서화합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도로 개설 당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아 단선으로 만들었다지만 이, 삼십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들, 좁은 길도 문제지만 처음에 좀 반듯하게 만들어 놓았더라면 차후에 확장 공사할 때 돈도 덜 들고 편리할 텐데 요리구불 저리구불 국도만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뜯었다 고쳤다 예산 낭비에 악순환만 되풀이 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사고로 이어지는 피곤한 길, 그래서 살인도로라는 악명을 얻었나보다.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뭣 하러 이 위험하고 불편한 도로를 타고 먼 곳까지 캠핑을 다니는가 싶기도 하고, 주행 속도 50~60km 구간에서는 은근히 짜증이 난다. 광주에서 함양 캠핑장까지 두 시간 반이면 된다 했는데 도착하고 나니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캠핑장 입구에 당도하니 갓 돌 지난 우리 손주를 등에 업고 아들과 손녀가 나와 기다리고 서 있다. 캠핑장에 모여 있던 우리 가족들의 환한 모습을 보니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로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기분이 밝아진다.
어릴 때는 애들이 부모가 어디를 가든 곧잘 따라다니다가도 좀 크면 같이하려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손녀들은 다르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만에 지리산 백무동 야영장을 시작으로 큰애는 자사고, 작은애가 중2가 되도록 지금까지 줄곧 부모와 함께하는 캠핑족이 되었다.
자연은 거짓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자연,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그들이 어떻게 계절에 적응하고 순응하는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 우리 애들, 그러다보니 착한 심성에 부모 말 잘 따르고 이렇게 늘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캠핑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나 보다.
거기게 우리 애들은 정이 많은 효녀들이다. 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따르다가도 초등학교 졸업할 정도면 차츰 멀어진다는데 우리 손녀들은 그렇지 않다.
1년 전이던가, 남원 춘향묘 앞 계곡에서 우리 가족과 처남 처제를 비롯 대 가족이 모여 나의 칠순을 기념하기로 하던 날, 자리를 잡으려고 우리가 먼저 당도하고 보니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에 여유가 있다. 그래서 모두다 모이기전에 구룡계곡에 다녀오려고 길을 나서는데 둘째 손녀 지호가 할아버지 혼자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따라 나선다. 구룡폭포까지 다녀오려면 6km이상 만만치 않은 거리인데 1년에 등산 한 번 안하던 애가 선뜻 따라나서니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어디 그뿐인가, 캠핑장 주변에 등산로가 있으면 산을 좋아하는 내가 같이 가자는 말 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따라와 동행해 준다. 그 마음 씀이 얼마나 착하고 예쁘던지. 이렇게 자연의 품안, 부모들의 품안에서 보고 배운 우리 애들 인정 많고 의리 있고 배려할 줄 아는 효녀로 자랐다.
또한 애들이 성실하여 공부도 열심히 해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글짓기도 잘 해 백일장이나 독후감, 글 짓는 대회에 나가면 빠짐없이 상을 받아 온다. 이런 것들도 다 자연과 엄마 아빠와 함께한 그 시간들이 우리 애들의 정서와 감성 사고와 인지의 발달에 일조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때로는 이렇게 온 가족이 복잡한 일상을 피해 공기 좋고 산수 좋은 조용한 곳에서 머리도 식히고 얼굴 마주하고 화목한 시간 가진다는 게 얼마나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孔子는 仁者樂山(인자요산), 智者樂水(지자요수)라 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니, 예부터 자연에서 보고 배운다는 말이 실감되어지는 옳은 말이다. 풀어보면 어진 사람은 중후하게 의리를 지켜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산을 닮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치에 통달하여 두루 막힘이 없는 것이 물을 닮았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어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애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빠져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든 가족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로 인해 애들은 오락이나 유해 사이트에 빠져 패쇄 된 공간에서 부모와의 대화는 실종되고 대인 관계도 단절돼 혼자 지내다보니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가 되어가고 난폭한 성격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렇게 야외에서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애들에게 음식 만드는 것도 가르쳐서 요리하는 기쁨도 알게 하고 설거지도 함께 하며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한 교육이다. 오손도손 정다운 대화를 통해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애들 주변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어보고 서로의 생각을 알아 이해하고 수용하는 좋은 시간을 갖는 다면 자녀들의 성장이나 인성 발달에도 좋고 부모에게도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휴식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도 풀고 집에 돌아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애들은 학업에, 부모는 직장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다.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사람은 이 안에서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 사랑은 주는 것, 진정한 사랑은 몸과 마음 모두를 내어 주는 헌신, 희생과 봉사다. 우리 부모의 세대들은 그 많은 자식들 낳아 지금보다는 열배 스무 배의 어려운 세상을 살아왔지만 자식들에게 있는 것 다 내어주고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건 없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이 바로 부모들의 사랑이다. 우리 딸 내외도 애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누구보다도 각별하고 자식들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도리요 의무, 사랑은 느끼는 것, 부모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녀는 절대 비뚤어지지 않고 감사할 줄 안다.
그러나 가족 간에도 자기 생각만 내세우고 자기 편할 대로 행동하며 받으려만 하고 의지하려고만 한다면 그건 가족으로서 자격 상실이고 직무유기이며 짐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가정은 서로 기대고 위로 받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공간이다. 마음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 가족이라고 해서 다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운 말씨, 부드러운 말투로 가정이 늘 온화한 분위기가 유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잘못한 일이 있으면 반성하고 회계하여 같은 잘못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 (부분적으로 생략)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중략)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중략.
내가 아이였을 때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레저문화의 변화로 캠핑족들이 날로 늘고 있는 추세, 그에 반해 오토캠핑장도 많이 생겨났지만 수요가 공급을 따르지 못하는 듯, 주말에 이름 있는 캠핑장은 예약하기가 엄청 어렵다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돈과 관계되는 폐해도 있다. 어떤 사람은 억대에 가깝다는 캠핑카를 몰고 오고, 또 오토 캠핑하는 사람들도 좋은 텐트에 비싼 집기를 전시해 놓고 자기가 얼마나 잘사는가를 보여 주는 과시형 캠핑족들도 있다. 그것을 보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 이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이다.
사위와 아들이 정성스레 오븐에 구운 닭고기와 숯불 삼겹살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니 유난히도 크고 둥근 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올해 보름달은 지난 칠월 백중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달이란다. 이 맑은 달을 보고 있노라니 옛 고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
觀花色 看月色 雖云好?不如 家族和顔色?
꽃빛 달빛 곱다하나 우리가족 화목한 얼굴빛만 못하고
彈琴聲?落棋聲 雖云好?不如?兒孫讀書聲???????????????????
거문고 타는 소리 바둑돌 떨어지는 소리 좋다하나 자손들의 책 읽는 소리만 못하다
?
우리 손주 예찬이의 재롱과 우리 가족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좋은 시간 보내다가 추석상 차리느라, 운전하느라 피곤한 집사람과 콘도에 들러 아들 가족과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맑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동쪽 산위에 붉은 노을이 떴다. 산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일출이 조금 지난 듯. 아름다운 아침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높은 산들이 죽 둘러 있고 저 앞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금원산이 용추계곡을 감싸고 있다.
오늘은 집사람과 아들과 함께 1,331m 기백산에 오를 예정이다. 산은 높은데 현 지점의 해발 고도가 있어서 별 어려움을 없을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일찍 출발하여 일주문 앞에 주차하고 일주문을 지나니 50m 전방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옛날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무등산을 몇 번 다녀 데리고 다닌 후로 거의 30년이 지나 아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다. 다행히 등산로가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 별로 불편함은 없지만 아들은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괜찮냐고 물었더니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며 저도 아빠를 닮아 하체가 튼튼하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간혹 이런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한다. 반갑고 좋은 일, 아들이 어느새 우리 집안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산행이 처음은 좀 힘들고 어렵지만 몇 번 하다보면 몸에 얼마나 좋은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4Km를 걸어 기백산 정상이 바로 눈앞이다.
기백산은 함양과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며 일명 지우산이라고도 불리운다. 기백산 주위에는 지우천이 흘러 계곡을 이루고, 또한 크고 작은 암반과 소가 많아 수량도 풍부하다. 기백산으로 오르는 주 등산코스에는 용추사와 용추계곡 용추폭포가 있고 심원정 일대에는 바위와 노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백산은 크고 작은 계곡 중간 중간 아름다운 경관이 많으며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다. 심원정에서 용추폭포에 기르기까지 기암괴석과 함께 산세가 웅장하며 특히 정상에서 금원산까지의 3km 정도에 달하는 능선의 억새가 장관이다.
기백산의 유래는 이십팔수 별자리중의 하나로 청룡이 다스리는 동쪽의 일곱 번째 별자리인 기(箕)와, 음양 가운데 양인 남성적인 산세로 보아 흰 것을 의미하는 백(白)자를 써 기백이라 했다고, 기백산은 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안다는 뜻으로 지우산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편에 1,352m 금원산, 눈앞 건너에는 1,184m 거망산, 내일 탈 예정인 1,192m 황석산의 수려한 암릉 두 봉우리가 뚜렷하게 솟아있다. 정상 푯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하려는데 웬 날개개미가 그렇게 많은지,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정상을 뒤로 하고 시흥골 입구를 향하여 가는 능선 길에는 두 군데의 암봉이 있다. 첫 번째 암봉에 올라 보았더니 크고 납작한 바위들이 마치 사람이 쌓아 놓은 듯 층층이 포개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 바위를 책 바위라 한다고. 바위 위 여기저기에는 산양들의 배설물이 널려 있고 보이지는 않지만 아기 산양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애기 양들이 어미를 찾는 듯, 사람들 소리에 어미 양들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저 어미 양들의 속은 얼마나 탈까? 영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적군들의 눈을 피하여 한 가족이 숨소리조차 죽이며 숨어 있는데 놀란 아기의 울음소리.....
아들이 책바위 암릉을 오르며 자꾸 무섭다한다. 다치면 어쩌려고 이런 곳을 다니느냐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듯, 그런 것은 나와 엄마를 닮지 않은 모양이다. 널찍하고 편편한 바위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데 주위에 산양의 배설물만 없다면 그야말로 칠성급 호텔이다. 시원한 바람, 서늘한 기온, 단 시계가 흐려 앞에 펼쳐진 수려한 산하를 뚜렷이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산에 오른 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난 후의 좀 이른 점심이라 그런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시흥골로 하산, 좀 전에 오르던 등산로보다는 경사가 좀 더 있는 듯,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시흥골 계곡 끝자락에 이르니 이끼에 덮힌 형형색색의 암반이 아름답기도 하고 급경사 암반 위를 덮고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이 어지간한 폭포에 못지않은 좋은 경관을 이룬다. 위에서 끝 부분이 50~60m에 달한 듯. 바위가 예뻐 보여 신발을 벗고 흐르는 물 중심의 이끼를 밟았더니 미끄러워 휘청, 큰 일 날 번했다. 여기서 넘어졌으면 그대로 급전직하, 그야말로 생사를 가름 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텐데, 놀란 아들, 거기에서 얼른 나오세요. 한다. 무모한 짓이다. 미끄럽고 위험하다는 걸 예견하고 밟았기에 몸에 중심을 잡아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세 사람 주변의 반반한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쉬는데 물이 너무 차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집사람은 시원하고 좋다며 계속 담그고 있는 걸 보면 그것도 체질인가 보다.
이어 하산, 그곳에서 얼마 걷지 않아 등산로 끝 지점 사평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수망령 고갯길, 왼쪽은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차도다.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 산행시간 4시간, 내일 산행이 있으니 적당한 산행이다. 사위에게 차를 가지고 오라하여 캠핑장으로 갔다가 우리 가족 모두 용추폭포 구경에 나섰다. 깨끗하고 풍부한 많은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 무등산 용추폭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 가족 모두 폭포 앞에 모여 사진을 찍고 이제는 거창에 있는 수승대 관광지로 향한다.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위치하는 화강암 암반으로 깊고 긴 계곡과 주변 임야와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수승대’ 명칭과 관련하여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하여오고,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된 장소적 상징성이 큰 명승지이다.
수승대에 들르기에 앞서 담장 벽화가 예쁜 황산 마을에 들러 사진 몇 캇 하고 수승대에 입장하는데 오늘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울창한 송림과 시원한 계곡 거북바위가 볼거리이기는 하나 위에 소개된 대로 입장료를 받을만한 명승지는 아닌 것 같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앞집 텐트에서 보내온 회와 애들이 준비한 고기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일 황석산을 등정키로 성당 형제들과의 약속이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이다. 얘들은 점심 먹고 귀가할 예정이고 나와 집사람은 성당 식구들을 만나 황석산 등산에 나섰다. 어제 오른 기백산보다 약간 낮은 산이지만 경사도 있고 산행 거리도 길어 훨씬 더 힘이 든다. 그러나 산 정상을 비롯 주위 능선에 펼쳐진 암릉과 산성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암릉을 타는 스릴도 맛볼 수 있는 멋진 산이다. 내려오는 길이 가파러 집사람 걱정을 했는데 오를 때보다 몸이 풀려 발이 가볍다 한다. 참 대단하다. 5시에 하산,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나니 날이 어두워진다.
연 이틀간을 산행하고 돌아오며 야간 운전을 하던 집사람, 주행이 평소 때와 같지 않고 왠지 불안하다. 피곤해서 그러나 싶어 내가 “잠이 오는가?” 했더니 도로가 좁아 눈을 부릅뜨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을 하고 있다 한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확장을 위해 여기저기 공사가 이어지는 바람에 더 좁아진 도로가 밤이 되니 시야도 좁아지고 압박감은 더한데 거기에 반대편에서 오는 차의 불빛이 눈에 들어와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운전자들이 기피하는 길이 바로 이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정이 이런데 기왕 시작한 공사, 예산이라도 제대로 배정해 공사 기간을 적정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시작한지가 몇 년인데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어느 세월에 제대로 된 도로가 뚫리게 될는지 기약이 없다. 이런 88도로를 벗어나 시원하게 뚫린 담양 4차선 도로에 들어서니 긴장이 풀리고 해방감이 든다.
이렇게 올 추석 연휴는 얘들 덕택에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보낸 즐거운 명절이었다.
이 모든 것들 우리 가족들의 가슴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응원 횟수 0
첫댓글 증(질투나서 증발의의미임 ... ㅋㅋ)말 질투나는 가족임니다 ..
주희님의 사랑이 있는 곳 ,,,,,,,,,,
여기가 사랑의 의미를 찿고자 하여 모인 곳입니다ㅜ ......... ㅎ ㅎ ㅎ
옛날에 티비에서본 서부 개척의 배경이된 시리즈물이 생각나네여 ---- 30년 전에 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