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님께 개인메일로 자문을 구했더니 카페에 제목을 남겨두어 부끄러운 글을 올립니다.
동래 땅은 한양에서 천리 먼 왜구의 침입이 잦던 변방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려 때는 정과정 곡을 지은 정서란 분이 귀양을, 조선 때 인근 기장과 철마는 고산 윤선도 등 여러 분들이 귀양살이 하던 곳으로 우암 송시열선생도 당시 글에서 동래는 학문을 할 만한 여건이 못 된다고 말했듯이 어느 성씨 할 것 없이 과거를 통한 중앙관계 진출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상신이 그렇게 많은 본관성씨인 동래정씨 조차 이곳 출신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향청과 향교를 중심으로 다른 지방의 鄕班(향반)들 보다 더 많은 실권(?)을 가진 성씨들의 위세가 대단했음이 여러 자료에 남아 전해오고 있습니다.
선조님 관직의 높 낮음에 관계없이(설령 아무도 관직으로 나간 분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후손들에게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해주신 고마움 분들이십니다. 그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방법을 불초 소생 재주는 없지만 알려지지 않은 선조님의 행적을 찾고, 잘못 알려진 과장, 과소 집안 역사를 바로 알자는 외로운 작업(?)을 수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비석탁본, 도서관, 세거지와 선영을 찾아... , 대부분 종친들은 전혀 관심 밖이라 무관심 하고 더러는 괜한 일을 한다고 심한 반대까지...)
이번에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에 있는 유적지가 수년 째 종손 측의 사정으로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어 종친들이 모두 관심을 가지도록 유적비를 세우고 선영을 정비하기로 종중 이사회의 결정을 이끌어 내고 현재 모금을 진행 중입니다.(사전에 유적지 비문 안을 작성하여 뜻있는 후손들에게 설명하니 목적에 찬동하여 예상사업비 50% 정도를 약정해 주심)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집안이지만 東萊五鄕(여산 송, 남평 문, 경주 김, 동래 정, 청도 김)이라는 자긍심하나로 면면히 선조님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한문을 잘 모르는 젊은 층도 알아야 하는데, 순 한글로 하자니 뜻글자인 한자특성이 묻힐 것 같고, 모두를 병기 하자니 비석의 크기 문제 등으로(규모가 커지고, 비용이) 고민이 많습니다.
여산송씨 대종회 대의원 송정동 님의 글을 다시 올림 -여운-
첫댓글 정동님께 부탁드립니다. 금년중으로 활동하신 동주공 종중의 기록물들을 카페로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