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져오신 조선일보의 사설, 아주 전형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텍스트네요. 1인당 GDP가 대만에 역전당했다는 사실을 앞세워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 결론은 늘 그렇듯 "노조 때려잡고 규제 풀자"로 연결됩니다. 이 기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숫자의 함정'과 그 너머의 '진짜 의도'를 한번 차분하게 뜯어봅시다.
1. 현상과 본질 : '달러의 마법'과 '공포의 프레임'
이 기사가 말하는 껍데기는 "숫자가 줄었다"는 겁니다. 3만 6천 달러로 떨어졌고 대만에 뒤졌다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습니다.
이 지표는 '달러'로 환산한 GDP입니다. 기사에서도 슬쩍 언급했지만, 작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었거든요. 이건 우리 경제의 실력이 줄어든 측면보다 '달러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대외 환경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물건을 똑같이 팔아도 환율이 뛰면 달러 표시 소득은 줄어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기사는 이 '환율 효과'를 슥 지나치면서, 마치 우리나라가 '만성 저성장국'이라는 늪에 빠져 곧 침몰할 배처럼 묘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줘야 그들이 원하는 '독한 약(규제 완화, 노동권 약화)'을 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논리적 허점 : 노란봉투법이 잠재 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여기서 '합리적 의심'을 한번 해봅시다. 사설은 잠재 성장률 추락의 원인으로 '노란봉투법'과 '주 52시간제'를 정조준합니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과관계의 오류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호하자는 법이고, 주 52시간제는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자는 합의입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12년 전부터 시작된 '3만 달러의 덫'의 주범이 될 수 있을까요?
통계의 왜곡 :영국, 일본, 독일이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가는 데 2~4년밖에 안 걸렸다고요? 그 나라들이 그 구간을 지날 때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고 고금리가 유지되던 저성장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싹 거세하고 숫자만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건, 중학생 성적표와 대학생 성적표를 나란히 놓고 "왜 너는 대학생인데 전교 1등 못 하냐"고 다그치는 꼴입니다.
잠재 성장률이 떨어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인구 구조의 변화, R&D 투자의 비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된 구조가 더 이상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설은 이 복잡한 문제를 '노조 탓'이라는 아주 단순한 악당 만들기 프레임으로 치환해 버립니다.
3. 역사적·사회적 맥락 : 낡은 지도로 미래를 찾으려는 사람들
이 사설의 논리는 1970~8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경제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기업만 살리면 낙수효과로 다 잘 살게 된다", "성장을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그 낡은 믿음 말입니다.
맥락을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저출생과 고령화는 왜 일어났을까요? 미래가 불안하고, 노동 강도는 높으며,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결책으로 다시 "노동 시장 경직성을 해소(쉬운 해고)"하고 "규제를 철폐"하자고 합니다. 병의 원인이 된 처방을 더 강화해서 병을 고치겠다는 논리입니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4만 달러, 5만 달러 시대를 연 비결은 노동자를 쥐어짜서가 아닙니다. 촘촘한 사회 안전망 위에서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거든요. 조선일보가 부러워하는 그 '선진국'들의 이면에는 강력한 노조와 두터운 복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기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미디어 비평 요약
이 사설은 환율이라는 변수를 이용해 경제 위기감을 고조시킨 뒤, 그 책임을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안전망에 돌리는 전형적인 '기득권 옹호'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성장이 정체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해법은 노동자를 더 옥죄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인재가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낡은 지도를 들고 "왜 길이 안 나오냐"고 짜증을 내는 격인데, 이제는 지도를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