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 보세요.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1944년 금강산서 만난 만공스님의 ‘눈빛’ 잊혀지지 않아
“불자는 조상과 조국, 사회, 불도의 은혜 생각해야”
-여러 선지식들과 함께 공부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스님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러 선지식을 모신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1944년에 금강산 유점사에서 만공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었는데, 만공스님은 눈에서 밝은 빛이 났습니다. 도인의 풍모 그 자체였습니다. 또 저의 사형(師兄)인 성철스님도 참 열심히 정진하셨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저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혜스님은 범어사 금어선원에서의 정진을 비롯해 해인사 백련암, 표충사, 각화사 태백선원, 고운사 고금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46안거를 성만했다. 숫자 이상의 의미 그 자체다.
만공스님
-대법사를 중창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법사는 원래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표충사(表忠祠)라 불렸습니다. 표충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이곳을 대법사로 바꾸고 불사를 했지요. 처음 왔을 때는 허물어져 가던 전각 5-6채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라 문무왕 10년인 668년에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학이 남쪽으로 날아와 앉은 타에 절을 지은 곳이기도 합니다. 오자마자 불사를 시작해서 현재 대웅전과 보광전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수행처로 삼은 것은 사명대사의 뜻을 잇고 불자들에게 삶의 바른 도리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혜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밀양 대법사 전경.
대법사 마당에는 사명대사가 심었다고 알려진 수령 400년이 넘는 모과나무가 서 있다. 또 마당 한가운데 모셔진 탑에도 4면에 사명대사의 진영을 새겨 넣기도 했다.
사명대사에 대한 지혜스님의 존경심은 대단했다. 계속해서 ‘사명대사 정신’을 강조했다. 사명대사는 밀양출신으로 스승인 서산대사를 모시고 임진왜란 당시 많은 백성을 구출해 냈다.
1575년(선조 8년)에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초빙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에 주석하던 서산대사 휴정의 법을 이었다. 특히 1604년(선조 37년)에는 왕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하기도 했다. 지혜스님은 이러한 사명대사의 정신을 되새겨 불교가 사회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밀양 표충사에 모셔져 있는 사명대사 진영.
-출가자의 본분은 무엇인가요?
“출가인의 본분은 바로 수행정진에 있습니다. 불법은 곧 마음이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대도(大道)의 문은 어디에도 다 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크게 정진해야 합니다.”
스님은 “대각(大覺)이 보명(普明)하니 산색(山色)은 부처님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이다. 보이는 만물(萬物)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밖에 진리(眞理)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 스님들은 수행정진(修行精進)이 진리(眞理)에 근본(根本)이요,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고 묘법(妙法)은 무생(無生)이며 연화(蓮花)는 무영(無榮)이다.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생(無生)에 안주하여 무염(無染)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無上菩提)요 무애해탈(無碍解脫)이며 무한생명의 자체구현(自體具現)이다”고 설했다. 스님은 또 “일심(一心)이 상청정(常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개(蓮花開)이다. 승려는 수행정진 대성불(修行精進 大成佛)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체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벗고 산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요 해탈이며, 만 생명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지혜스님은 출가자의 본분이 수행정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 불자의 본분은 무엇인가요?
“불자는 네 가지 은혜를 갚는 것을 본분으로 해야 합니다. 조상과 조국, 사회, 불도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불자들은 우선 생명을 심어준 조상을 위하는 마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인연을 틀로 엮어 만들어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런 진리를 깨우쳐주는 불도를 깊이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소중히 여긴다면 조상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요, 국민이 됐으니 나라에 충성하고 불도와 인연을 맺었으니 진심으로 부처님의 법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가정이 평안하고 사회가 평화롭고 국민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인으로서, 경제인은 경제인으로서, 교육자는 교육자로서의 본분사를 잊지 않고 행할 때 국가가 바로설 수 있다고 강조한 스님은 “허상을 좇지 말고 사회 속에 주어진 인연의 본래 모습을 득하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혜스님은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야지 ‘정치꾼’이 돼서는 안된다”며 “국민이 국가에 대한 충(忠)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정치인은 바르게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하심(下心)’에 대해 많이 강조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하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화합하기 위해서는 하심해야 합니다. 하심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크게 비우는 것입니다. 선방에 앉아서 30년 40년 넘게 공부했다고 해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평생 공부가 헛수고가 됩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데,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부처는 또 어떻게 보겠습니까? 부처님 법의 근본은 발심하고 원력을 세워서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지혜스님의 출가본사인 범어사 일주문의 모습.
공부한 자가 하심하지 못하면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 질책이다. 스님은 계속해서 하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심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자기 마음자리를 본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보게 되면 다른 사물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하심이라는 것은 원래 좋은 일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기 자신은 나쁜 일을 다 받아 자기 몫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하심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기 살기로 천길만길 떨어지겠다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하심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로 알겠다는 원력이 있어야 해요.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입니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면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곧 부처인 것입니다.”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은 “지혜 큰스님은 원로의원으로 추대되고 나서도 하심으로 항상 범어문중을 살펴주시는 자비로운 어른”이라며 “수행자들은 항상 화두일념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귀뜸했다.
주석처인 보광전 앞에 선 지혜스님.
-스님과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세상은 얼음처럼 차고 불같이 덥습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공부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공부라는 것은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이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공부를 바로 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의 진정한 힘은 인내심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내심의 참뜻은 바로 하심이에요. 끊임없이 자기를 낮춰야만 인내심이 생깁니다. 인내심이란 바로 마음자리를 보는 것입니다. 공부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심을 하려면 마음자리를 제대로 봐야 하는데 그건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 어디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 깨달은 사람은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자기 안에는 광명천지가 있어요. 공부하는 이유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중생을 위하는 일인데, 자기 마음자리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2009년 동산스님 열반재일에 모인 스님들의 모습. 맨 앞 가운데 앉은 분이 지혜스님.
부처님의 출가 제자 가운데에는 수행과 지혜가 특출한 10대 제자가 있습니다. 그 중 아나율과 목건련은 천안통과 신통을 얻었는데, 그 신통력의 본질은 다름 아닌 지혜입니다. 10대 제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가르침은 바로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공부해 보세요,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세상의 이치가 보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 내외중간(內外中間)도 없고, 있는 곳도 없고, 있지 않은 곳도 없어요. 우리가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모양도 없고 바탕도 없어서 아무런 걸림이 없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해 보세요, 어찌 진리를 얻지 못하겠습니까?”
-공부를 하다 장애에 부딪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반드시 고비가 있습니다.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아요. 저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르니 담을 수 있는 것도 다르겠지요. 그렇다고 그릇 크기가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입니까. 그릇의 크기는 다름 아닌 마음의 크기입니다. 마음을 크게 하려면 마음자리를 봐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사물을 밝고 넓게 보면 마음도 커집니다. 밝고 넓은 것이 바로 태어날 때의 본모양이요, 마음자리입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진한다면 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강조하는 스님의 말씀에는 아직도 힘이 있었다. 결코 사구(死句)가 아닌 살아 숨쉬는 활구(活句)였다.
“육신은 허망한 것입니다. 마음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요. 죽고 나면 모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는데 집착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은 보려고 하지 않고 육신에 매달립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주관과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진실은 마음에 있습니다. 물 한 방울도 담을 수 없는 그릇으로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어요. 윤회와 번뇌는 벗어나기 어렵고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기 힘든데, 살아있을 때 마음으로 살아야지 몸뚱이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거침없는 법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은사 동산스님이 써 준 글귀를 소개한다. ‘천고방양(千古榜樣)’이다. ‘먼 후세에까지 남는 모범이 되어라’는 은사스님의 유훈과도 같은 글귀를 보며 지혜스님은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자 스님은 동산스님이 내려 준 글 '천고방양'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혜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마당으로 나오니 세상은 더 뜨거워져 있다. 굽이 굽이 이어진 산자락들을 보아도 더위가 쉽게 식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지혜스님의 시원시원한 말씀에 몸과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더운 동네’ 밀양에 얼음골이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듯이 지혜스님의 할(喝)과 방(棒)이 있어 불자들은 오늘도 영취산 자락 대법사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