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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自然) 속에 서린 시(詩)의 숨결
정용진
자연은 아름답다.
우주는 천지인(天地人)의 아름다운 조화에 의하여 미를 발하고 정연한 질서 속에서 운행된다.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거대한 사막과 평원,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구름 바람 안개, 바위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시의 제목들이요. 이 속에 시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선인들이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시를 짓고 풍월을 읊은 것도 그 산수와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에 여기에 심취되고 싶어서 이었을 것이다.
산중 무 일력(山中 無日曆)이란 말이 있다. 산 속에 있으면 세월 가는 줄 모르기 때문에 달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일찍이 성현 공자는 마음이 어진자는 산을 좋아하고(仁者樂山), 지혜가 있는 자는 물을 즐겨 찾는다(知者樂水)라고 가르쳤다.
불가에서는 산이 선(禪)과 통한다고 일깨워 주었고 예수께서도 산상에서 늘 깊은 기도를 드렸다.
산은 정(靜)이요, 물은 동(動)이다. 골짜기는 음(陰)이요, 봉우리는 양(陽)이다. 만학천봉(萬壑千峰)이 모여서 명산을 이루듯 구절양장(九折羊腸)이 합쳐서 대천을 형성한다. 백두가 그렇고 금강 설악이 그러하다.
압록, 대동, 한, 낙동강이 모두 이러하다.
음양오행(陰陽五行 .金 木 水 火 土), 정(靜)과 동(動)이 자연을 자연 되게 하는 핵심들이다. 옛 시인 송순(宋純)은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한간 맡겨두고
강산은 드릴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라고 읊었다.
자연의 영원함과 광대무변함을 인간의 삶 속에 연결 시키려는 순수함과 호탕함이 이 시 속에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룻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며 자연에 맡겨 부질없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노자(老子)의 사상등이 자연에 순종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철학과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자연은 시의 제목이요, 예술의 심볼 이기도 하다.
탈 자연을 외치며 자연 정복을 마치 인류의 염원인 것처럼 외친 것이 인간 본래의 심성(心性)을 잃고 각박한 현실의 세계로 빠지게 한 크나큰 동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을 혀지마라 어제진달 돋아온다
아해야 박주산채 일망정 없다말고 내어라.“ (韓濩 石峯)
아침산
한 밤을
정(情)의 열기로 달아오른
산이
실 비단 자락으로
젖가슴을 가리우고
태연히 서서 말이 없다.
언어중에 제일은
침묵이라
억년 세월
바람이 때리고
물이 밀어도
버티고 섰는 산
포근한 아침 햇살이
촉촉한 가슴에 머물자
비밀을 감쌌던
실안개는
수줍게 자리를 뜬다.
오늘도
아침 이슬에 젖은 채
창창히 서서
말이 없다. -정용진, <아침 산> 전문.
행운유수(行雲流水)가 시인의 이상향 이라면 산고수장(山高水長)이나 산명수청(山明水淸)은 시인묵객이 누리고 싶어 하는 현실의 세계다.
산머루
꽃사슴도
입 맞추는
솔 길 사이로
조각하늘이 열리면
그리움 못 견뎌
고목 등걸을 휘감던
산머루가 익는다.
바람이
세월로 흐르고
세월이
바람으로 흐르는
외진 산록
길 ㅤㅊㅏㅊ는
너의 옷 빛도
주홍으로 물들고
머루 향에 취한
이 저녁
산 노을이 붉다. -정용진. <산 머루> 전문.
단 풍(丹楓)
지금
줄리안 계곡에는
고목 가지마다
옮겨 붙는
불빛이 한창이다.
잎들은
그 영혼이
얼마나 투명하기에
한밤중
별들이 쏟아 놓은
눈빛만으로도
연정(戀情)의
타는 입술로 저리 붉었는가.
순간을 살아도
영원으로 물드는
나무들의
침묵의 언어들....
서릿발이
영그는 하늘
땅거미가 내리는
어스름.
다리를 절고 가는 여인의
발자국 위로
추억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다. -정용진, <단풍> 전문.
줄리안 계곡 : 샌디에고 북쪽에 있는 계곡 이름.
선인들은 단풍의 그 우아한 빛깔에 취하여 “서리를 맞은 단풍은 2월의 꽃보다 붉다.”(霜葉勝於 二月紅花 . 杜子未)고 노래하였다.
또 낙엽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면서 땅에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구나, 감탄하였다.( 一葉落下 天下之秋) 이것이 곧 시인의 마음이다.
우리나라 에서는 금강, 묘향, 설악, 내장산의 단풍이 아름답듯이 내가 지금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이웃 줄리안 계곡의 가을은 사과밭과 더불어 심히 아름답다. 내 집 뜰 앞에 7백여주의 감나무들도 11월 서리를 맞은 이후 추수감사절 때에는 주홍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가을은 회상의 계절, 지난 추억들이 강물처럼 밀려오고 낙엽이 딩구는 섬돌 위를 옛님이 발소리를 내면서 오실 듯 기다림과 착각 속에 젖을 수 있음도 그만큼 그 마음과 정신이 맑고 투명하기 때문이리라.
가을풍경
간밤
별빛이
유난히 차게 밝더니
계곡에는
무서리가 내리고
돌배나무 잎이
자지러지게 무르익어
지나던 길손도
취하여 조는데
들길을 지나는 바람이
피리 소리가 되어
저무는 이 저녁
기인 산그늘이
주막에 붐비네
행낭을 밀고 가는
배달부의 발길에도
정든 사람들의
숨결이 가득한데
고령산 보광사(高靈山 普光寺)
타는 단풍에
가슴이 붉던
내 소녀는
지금
어느 길목에서
그리움에 취하여
잠을 청하는가. -정용진, <가을풍경> 전문.
산의 포근함 속에서 어머니 품의 따뜻함이 스며오고 사랑을 느끼듯 이야기 책을 읽듯 도란도란 흐르는 아버지의 근엄과 강인함 속에서 우리들은 또 하나의 인내와 투쟁 정신을 배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뚜렸한 변화를 통하여 자연의 질서를 가장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산이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이 자리하고 산자수명(山紫水明)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여! 야생화가 줄지어 늘어선 봄의 정경이나 수해(樹海)를 이룬 여름 산의 풍성함, 그리고 가을의 풍만한 성숙과 겨울 설원(雪原)의 웅장함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나 가을 속에 마음까지 붉게 물드는 단풍과 온갖 인연과 추억 속에 과감히 떨쳐 버리는 조락(凋落)의 모습이야말로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서울 근교의 단풍이 아름답기로는 경기 금강산이라 불리는 소요산과 고령산 보광사의 단풍이 일품이다. 고령산의 단풍은 경기 내장산이라 부르면 될까?
가을
한여름 뙤약볕
호미끝 같이
마멸된 모습으로
밭이랑 가에 나서본다.
ㅤㅎㅓㅎ여게 바랜
수숫대 사이로
낡은 군복처럼
차가운 하늘이 열리고
길 떠난 자식
돌아올 날 기다리며
선반에 얹은
햇 송편 솔 내음을
맡고 계실 어머님
간밤 남편을 따라
사립을 나서던
분이의 모습이 걸린다.
저무는 바람결에
울을 넘는
서러운 달
은수저보다 맑은 빛으로
낙엽을 밀고 솟앗을
내 고향 서릿발이여.
뽀오얀
저녁 연기를 밟고
먼데서
쿵쿵쿵
개가 짖는다. -정용진, <가을> 전문.
뒷산 계곡이 노을처럼 단풍으로 붉게 물들 때쯤 되면 상념의 날들이 가을 강물처럼 밀려 오고 스산한 바람이 빈들을 달려가면 추억이 낙엽처럼 쌓여가는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이때에 마시는 진한 커피 향이란 그리움 처럼 따스하다.
강마을
내 님이 사는 마을은
돛단배 밀려오고
따사로운 인정 머무는
버들 숲 강마을
동산에 돋는 해
머리에 이고
가녀린 손길을 모두어 가며
한 없이 한 없이
기다리는 마음
애달픈 사연 토해놓고
기러기 떼 떠나가고
파아란 강심에
깃드는 강노을
하아얀 모래밭
푸른 갈 숲을
끝없이 끝없이
가고픈 마음
외로운 초생 달
창가에 들면
멧새도 울음 멈춰
숲으로 드네
그토록 오랜 세월
고운 꿈 가꾸며
이 밤도 잔잔한 강마을
창가에 쉬네. -정용진, <강마을> 전문.
여강(驪江)은 그 물이 맑고 차기로 유명하다. 강변에 서있던 청심루(淸心樓)의 아련한 전설과 시인 묵객들이 남긴 명시들 그리고 마암(馬巖)에 우뚝 솟은 영월루(迎月樓)가 이를 대변해 주고도 남는다.
강나루
노을 붉어
하루가 저무는
강나루.
계곡을 따라 흐르는 종소리
종소리를 따라 내리는 강물
천만길 벼랑을
구르는 아픔보다
더한 진통의 밤은
침묵의 산을 낳고
청명한 공간에 삶을 부르면
티 없이 메아리 져
되돌아오는 언덕에서
온갖 번뇌로 젖어온
그 마음은
바람을 따라 흐르는 종소리
종소리로 내리는 강물
가오는 세월도
맴돌아 씻기는 길녁에 서면
님의 노래는
애닯은 노래
오늘도
머언 꿈길을 밀어가는
강나루. -정용진, <강나루> 전문.
여주의 조포나루는 마포, 광나루, 이포나루와 더불어 한강의 4대 나루에 하나다. 원효대사 나옹(懶翁)화상 무학(舞鶴) 대사의 얼이 서린 신륵사(神勒寺)와 마암(馬巖) 사이 은 모래 벌을 흐르는 여강은 마치 한폭의 실 비단 폭을 펼쳐 놓은 것처럼 곱고 아름답다. 이런 물을 먹고 자란 잉어와 쏘가리 그리고 쌀밥 맛이 일품인 것이다.
여강(驪江)
님은
명주 비단 자락
내마을 인정(人情)을
살포시 두르고
굽어도는
청실 강줄기
그리운 물결 소리
밤마다
애틋한 꿈을 싣고와
은 모랫벌
조포(潮浦) 나루를 건너는
님은
아련한 달빛.
내 누님의
속마음 같은
명주 비단자락. -정용진, <여강> 전문.
추강에 밤이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오노라 월산대군.
강처럼 인간의 삶 속에 유익을 주고 애환이 서린 곳은 없을 것이다. 옛 시인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은 대동강 가에서 송인(送人)이란 시를 이렇게 읊었다.
송인(送人)
비개인 강뚝엔 봄이 오구요 雨歇長堤 草色多
님 보내는 남포엔 이별가 울려난다 送君南浦 動悲歌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하리 大同江水 何時盡
이별후 눈물흘려 물결 보태네. 別淚年年 添綠波
선인들은 강이 앞에 가로 놓이면 천리 길 이라고 적강천리라고 하였다.
청산이 근엄해 보이는 것은 태초로부터 말이 없기 때문이요, 물이 항상 맑음은 주야로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다.
태양이 남성다움은 폭염을 발하기 때문이요, 초생 달이 애닯고 슬퍼 보임은 가슴을 도려낸 아픔 때문 이다, 바람은 소리로 말하고, 구름은 허공을 자유자재로 유유자적하게 떠다니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보이기도다.
물은 흐르다가 그 앞에 홈패인 웅덩이를 만나면 그져 지나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가득 채우고 난 후에야 앞으로 흘러간다.
맹자는 이 교훈으로 제자들을 교육하였으니 이를 일러 영과이진(盈過而進)의 교훈이라 일컫는다.
또 노자(老子)가 물을 범상하게 보지 아니한 것은 물은 둥근 그릇에 담으면 그 모양이 둥글어지고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나지며 갈라놓았다 함께 놓으면 곧 합쳐지는 원리를 높이 평가 한 것이다. 그는 대나무를 굽혔다 놓으면 곧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도 유심히 살폈다.
호수 또한 그리움의 상징에 하나다. 연인의 눈빛 같이 푸른 호수, 둘러선 청산에 안겨서 가슴 떨어 주름 짓는 호심의 정은 사랑과 추억이 함께하는 곳이리라.
월산대군은 세조의 장손, 덕종의 아들로 성종의 형이다. 한명회의 계략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자연과 풍월로 벗을 삼고 시를 읊으면서 한세상을 보냈다. 성종은 형을 극진히 대했고 왕을 못한 회한은 낚시를 하여도 강물만 차고 고기도 못 낚은 채 무심한 달빛만 빈 배에 싣고 돌아온다고 그의 심경을 은유적으로 노래하였을 것이다. 추강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달빛아래 출렁거렸겠지만 인간 만사의 허무감은 달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산정호수(山井湖水)
흐르는 세월 머물러
천년 햇살 빛나고
갈바람 멎어
산 그림자를 담는
너는
하나의 거울
솔개보다
깊프른 눈매로
가냘픈 멧새의
숨결에도
가슴 떨어
붉게 물드는 마음이여.
내 뜻 청산되어
너를 품어
태고의 신비를 묻는
가을 한 낯
초연한 걸음으로
산을 넘는
한줄기 푸른 구름. -정용진, <산정호수> 전문.
산정호수는 그 이름이 고운 것처럼 풍광이 수려하다. 그 정경이 마치 산광수색(山光水色)의 표본이다.
푸른 호심에 노를 저어가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고 낭만적 이다. 내가 젊은 시절 우석(友石)학원에 봉직할 때 철운(鐵雲) 조종현(趙宗玄) 시조시인께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는데 나를 부르시더니 나의 시 산정호수 중 “내뜻 청산되어 너를 품어”는 시의 절창이다. 칭찬하신 기억이 새롭다. 이분은 미당 서정주 시인과 함께 중앙불교 전문학원(동국대 전신) 을 나오셨고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의 엄친이시다. ‘자정의 지구“라는 시조집을 펴내셨고 그 후 신기옥(申基玉)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내 시 산정호수를 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산정호수는 단풍도 아름답다.
금강산의 서리를 맞은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작가 정비석씨는 금강산 기행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붉게 물 든 단풍의 모습을 보고 “옷을 훨훨 벗어 쥐어짜면 물에 훵궤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고 하였을까?
코로나도 아일랜드
하늘 밭 가득한
면화 구름
진종일 출렁이는
쪽빛 물결에
발을 담그고
싱그러운 가슴을 스치우는
바람소리
파도소리
코로나도 아일랜드
낮선 행객들의
눈빛이며
옷 매무세를
눈여겨 살피면서
갈매기들은
추억을 물어 나르며
소리치지만
석양
능금빛 햇살을 가르며
솟구치는
서녁 바다
돌고래 떼들의
매끄러운
그 몸빛이 눈부시다. -정용진, <코로나도 아일랜드> 전문.
샌디에고 남단에 있는 섬이름.
가을 백사장
누가 걸어갔나
은빛 모래밭
외줄기
기인 발자국.
언제 떠나갔나
자국마다 고인
애수(哀愁)
가슴을 두드리는
저문 파도소리. -정용진, <가을 백사장> 전문.
은빛 파도를 양 날개로 달고 수정 같은 물결에 둘러싸인 섬은 낭만의 요람이다. 더구나 코로나도 아일랜드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델 코로나도 호텔이 고색창연하게 해풍을 맞이하며 서 있다.
미의 창조는 하늘과 땅과 인간(天地人)의 고귀한 합작이다. 이는 신의 작품 중 단연 으뜸이요 명품이다. 코로나도 아일랜드는 분명 태평양의 보석임이 분명하다.
시원한 해풍에 머리를 빗은 잘 뻗은 야자수들... 바다의 낭만과 광대무변한 기상이 절정을 이룬다. 하늘을 찌르며 길게 늘어선 야자수들, 남국의 향수가 물씬 풍긴다. 줄지어 섬을 맴도는 요트들의 행진이 갈매기 떼들의 무리와 함께 어우러져 저녁노을 속에 서정을 불러 온다. 잠속으로 빨려드는 코로나도 섬의 불빛이 유난히 밝고 윤기로 가득하다.
사막일기
아련한 지평선
목마른
사막에 서면
나는 어느새
사막이 되어
가슴 깊이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은빛 바다에
출렁이는
바람의 물결
황금햇살이
내려 꽂이는
사막에 서면
나는 목이 마르고
문명 속에서
고갈 되어가는
생명의 아픔.
지금
사막에서는
달아오른 태양이
능금덩이로
익어가고 있다.
사망에 서면
나는 광야가 되고
사막에서는
물소리가 들린다. -정용진, <사막일기> 전문
죽은 것 같으면서도 살아 있는 곳이 사막이다. 알알이 흩어진 것 같으면서도 똘똘 뭉쳐 있는 곳이 또한 사막이다.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백사장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는 겉은 말라붙은 것 같으면서도 생명의 아우성이 주야사시를 어우르는 곳이다.
꽃노을
연지 찍고
곤지 찍고
간밤
꿈길을 밟고
님 만나러 가는
구름 한 점.
서산 마루를 오르다
발이 부르터
옷깃에 배인
붉은 꽃노을.
연지 찍고
곤지 찍고
그리움 품고 자란
내 아씨는
애련의 설움
옷고름에 씻고
저녁마다
수줍어
가슴 달아 오르는
붉은 꽃노을. -정용진, (꽃노을> 전문
자연 속에는 땅위에 꽃과 하늘에 비온 후 찬란하게 솟아 오르는 무지개와 석양에 연분홍으로 채일을 치는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꽃이 흙 속에서 피워내는 무지개라면 노을은 하늘이 피워내는 꽃이다.
석양
떠나는 마음
애닯어
하늘에는 꽃구름
장밋빛 꽃구름.
가는님 설어워
여인의
하아얀 머플러 위로
붉게 물드는
수줍은 속마음.
솔개는
텅비인 산마루를
외로이 맴돌고
홍포(紅布)를 걸치고
초연히
발걸음을 옮기는
석양(夕陽).
저문 하늘에는
장미빗 꽃구름. -정용진, <석양> 전문.
청산 자락에 붉은 유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은 저녁노을이 서녁 하늘을 덮으면 옛님의 생각이 떠오르고 두고 온 고향 모습이 눈에 어리어 망향의 정이 깊어진다.
자연은 인간들에게 삶의 고귀함과, 젊음의 강인함과, 늙음의 엄숙함과, 죽음의 진지함,을 무언으로 일러 준다.
마른 땅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자라서 원숙한 향을 발하며 성숙한 이후 낙엽을 떨구고 나목(裸木)으로 서서 지난 한해의 성장을 감사하며 또 하나의 새해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운다.
나목(裸木)
그리워 애탄가슴
님 찾아 떠돌다가
길 잃어 잎 떨구고
너 홀로 선 자리에
차가운 서릿바람
돌아와 서성이네
구르는 낙엽소리
가을이 깊었는가.
낯익은 동산 떠나
그대를 찾았노라
부르는 그 음성이
티없이 메아리져
아련한 추억들이
들길에 번지는데
그대의 발자국에
가을이 쌓여있네. -정용진, <나목> 전문.
나목은 벗은 채로 회색빛 저물어가는 하늘을 응시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가지 사이로 요란하게 빠져나가는 겨울바람 소리와 온 누리를 가득히 덮는 찬 눈을 맞으며 말이 없다. 모든 생각들을 가슴속에 갈무리 하였음이리라.
설일(雪日)
벗은 등걸
검은 나뭇가지 위로
백학이 내려앉듯
흰 눈이 쌓이고 있다.
재색 구름이
은빛 하늘로
승화하는
섣달 그믐.
명일을 세러
낯익은
고샅을 들어서는
누님의 동정같이
하아얀 겨울.
머언 강언덕엔
설어웠던 시간들이
밀려가는
저문 강물소리.
눈이 내리는 날에는
꿈이 꿈을 만나서
꽃이 되고
한(恨)이 한을 만나서
꿈으로 익는
설렐임이 있다.
나목 가지마다
생명이 움트는
숨결이 들리고 있다. -정용진, <설일> 전문.
설한부(雪寒賦)
초겨울 눈송이들이
마른 가지위로
고기비늘처럼
번쩍이며 내리는데
새끼들이 잠든 동굴
길 잃은
늑대의 울음 소리가
계곡을 가른다.
바람을 앞세우고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산을 내려오는
차가운 달.
창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젖어
옛님의 숨결로 떨고 있는
촛불이 애처롭다.
한 세기를 잠재우고
새 시대를 일깨우는
여명(黎明)
지금쯤
어느 곳에서
태반의 아픔을 찢고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가. -정용진, <설한부> 전문.
이 시는 제 8회 한국 크리스천 문학상 대상 수상작품임.
눈은 겨울의 꽃이다. 은색 달빛이 부서지는 여름밤 지붕위에 하얗게 피어 오르는 박꽃 같은 겨울 눈 송이들... 눈은 벗은 나뭇가지 위에 피어오르는 겨울 꽃이다. 추운 겨울 깊은 꿈속에서 깨어나 성애가 가득서린 유리창을 닦고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산천을 가득히 덮은 눈속의 풍경은 겨울의 신비와 자연의 변화에 커다란 감동을 준다.
춘풍추우(春風秋雨), 하염동설(夏炎冬雪)은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요 진리다.
그렇기에 옛부터 매화의 용모, 난의 자태, 국화의 향기, 대나무의 소리(梅容,蘭瓷,國香,竹聲)는 사군자로 송죽매(松竹梅)의 세한삼우(歲寒三友)와 더불어 충절과 지조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成三問)의 호가 매죽헌(梅竹軒)으로 극형으로 죽어 가면서 절개를 굽이지 아니하고 사후 낙락장송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굳은 결의와 의지의 표현 이었을 것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水石松竹月)와 어부 사시가,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퇴계 이황의 도산12곡, 율곡 이이의 고산 구곡가 등이 모두 자연과 벗하며 학문에 몰두하고 벗과 교유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가운데 삶의 진리를 진하게 노래한 시들이다. 떠나는 바람과 구름이 그들의 벗이었고 달과 별, 그리고 강, 바위와 바다가 그들의 마음이요, 지조이기도 하였다.
내벗이 몇이나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오르니 귀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더있어 무엇하랴. -고산, 윤선도
송림에 눈이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가지 꺾어내어 님에게 보내오져
님이 보신후에야 녹아진들 엇더리 -송강, 정철.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삼하료. -퇴계. 이황.
고산구곡담을 사람이 모르든이
주모복거하니 벗님네 다오신다
어즈버 무이를 상상하고 학주자하리라 -이이, 율곡.
퇴계 이황과 이이 율곡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대 유학자요, 종교가 발원 지방에서 푸대접 받고 다른 곳에 옮겨가서 발흥되었듯이 유학과 주자학이 이황과 이이에 이르러 더욱 깊어지고 넓게 완성 되었다.
이퇴계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사상을 핵심으로 주장하역고, 말년에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도산12곡을 지어 불렀다.
이율곡은 기발이승 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역설하였으며 말년에는 황해도 구월산에 은거하여 고산구곡가를 지어 부르고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그의 모친 신사임당은 우리민족 어머니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분이다.
이황 율곡 두 분 다 대제학을 제수 받았으니 그 지와 덕을 가늠할만하다.
선인들이 인격을 가늠하는 자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들었다. 부모로부터 육신을 물려받고, 삶을 통하여 언변을 수련하고,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익히고 사물에 대한 판단력을 쌓아서 바른 삶을 살아가는 가늠자로 삼았던 것이다. 천품의 인(仁)과 탁마의 지(知)와 불굴의 용(勇),을 지녔다면 어느 누가 그를 대장부라 아니하며 선비라 아니 불렀겠는가.
덕인들이 지조와 인품을 천하의 달덕으로 삼은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위
내가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燐)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 언 원노(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청마, 유치환 <바위> 전문.
청마 유치환은 “깃발“ ”바위“ ”생명의 서“와 같이 서정성이 강하고 지조를 강조하는 명시들을 많이 남겼다. 인간의 정서가 조석으로 변해가는 이 시대에 제시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는 이영도 시조시인 과의 기인 사랑의 대화로도 유명하다.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매죽헌, 성삼문.
이 시조는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다가 동료 김질의 고자질로 세조에게 발각되어 31세에 사육신들과 함께 한강 백사장에서 거열형을 당한 성삼문의 시조로 지조와 의지와 결의가 돋보인다. 강변에 널려진 사육신의 시신들을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주워 모아 삼각지에 묻어준 것이 오늘날 사육신묘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희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봉래, 양사언.
양사언은 회양 군수로 갔다가 금강산에 반하여 스스로 호를 금강산 여름이름인 봉래라 짓고 일생을 금강산에서 지낸 분으로 유명하다.
소나무
굽이굽이
주름진 산허리
마디 없는 세월을
벼랑에 서서
상록의 눈빛으로
고고한 천품.
춘하추동
사계를
하늘 향한
지조로운 몸매로
천년 광음을
품에 안아
빗살로 가르네
그 심중은
얼마나 깊고 넓기에
바람이 깃들면 청아한 가락으로
메아리져 흐르는가.
동천(冬天)
순백의 눈발에도
늘 푸르러 그윽한
향으로 번지네
오늘도
설원에 청청히 서서
침묵으로 말하는
소나무여. -정용진, <소나무> 전문.
산은 수림을 키우는 정성으로 그 자태와 덕이 나날이 높아지고 물은 낮은곳 만을 향해 스스로 몸을 낮추지만 끝내는 맑고 깨끗한 호심과 깊고 푸른 망망대해를 이루는 초연함을 보여준다.
“뜰 앞에 서있는 한그루의 나무는 하늘을 찌르는 것이 그 마음이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한줄기 샘물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 그 뜻이다.(庭前盤樹 衝天心 巖下細川 達海意)라고 선인들은 일렀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리고 사시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는 정정이 혼란한 시대에 살면서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오우가” “산중신곡”등을 지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고산처럼 많은 선비들을 사약을 내리지 말고 유배를 보냈더라면 얼마나 많은 명시들이 나왔을까 안타갑기만 하다.
대숲소리
태고의 바람이 깃을 펴는
대숲의 물결 속에는
겁(怯)에서 겁으로 흐르는
침묵이 있다.
굽은 세상을
늘 상 곧추서서
마디마디 다져진
지존의 자세여
천공(天空)을 우러르며
스스로
푸르고 누르게 여무는
대숲에는
열반의 문을 열어 놓고
우주의 섭리를 받아드리는
마음을 비워둔 도량이 있다.
하늘땅이 눈 덮여
삼라만상이
벗은 몸이 될 때에
비로서 일어서는
대숲의 바람소리
마른 바람소리.
멀고 가까운 곳에서
생명이 피고 지는
진통의 깊은 밤
대숲 소리를 들으면
정토(淨土)의 길이
청정(淸淨)에서 온다는 것을
그는
사각사각
몸짓으로 일러준다.
대숲 속에는
생명의 윤회가
숨결로 살아서
겁의 세월을
가득히 차오르는
무량(無量)의 충만이 있다. -정용진, <대숲소리> 전문
고산과 송강은 우리나라 시가문학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자연을 읊었고 훈민가를 지었으며 송죽을 노래하였다.
쇄인냥 억센등걸 암향부동(暗香浮動) 어인 곧고
눈바람 분분한데 봄소식을 외오가져
어즈버 지사고심(志士高心)을 비겨볼가 하노라 -위당(爲堂), 정인보
위의 시조는 30여년 전 고등학교 때 배운 것으로 기억되는데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위당의 “순국선열 추념문“ 육당(六堂) 최남선의 ”기미독립 선언문“ 춘원(春園) 이광수의 소설 ”유정“ ”무정“은 그 당시 한국의 3천재의 명작으로 불리 울 정도로 유명하였다.
춘매(春梅)
지루한 겨울잠
뜬눈으로 지새우고
앞산 잔설이
토해내는
매서운 서릿발에
화사하게 웃고 섰는
춘매 옛 등걸
갈 것이 가고나면
올 것이 못 올 것인가
게으른 선비의
늦잠을 깨우는
그윽한 향
손 시린 호문목(好文木)
올해도
글 읽는 소리
고을가득 넘치오라. -정용진, <춘매> 전문.
소나무와 대나무는 매화와 더불어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만인의 사랑을 받았으나 소나무가 의인화(擬人化)되어 지조에 비유된 반면 대나무는 종교적 특히 불교의 청정(淸淨)에 상징되어 죄가 없는 깨끗함에 상징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선인들이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슴 속에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결코 향기를 파는 법이 없다. (桐千年恒藏曲 梅一生寒 不賣香)라고 노래 한 것이 의미심장한 가르침이다.
현대인들이 기계 문명 속에서 편리를 얻은 반면 순수무잡(純粹無雜)의 고귀한 정신을 상실한 것이 큰 불행이다.
나는 태어나기도 산수가 수려한 여주(驪州) 남한강(驪江)변에서 태어났지만 발디 마운틴이 자리한 온타리오에서 농장을 경영 하였고 늙어서는 팔로마(Ploma)산자락이 내린 샌디에고 북부 Fallbrook(秋溪洞)에서 자연과 더불어 시를 쓰고 인생의 여정을 보냄을 신에게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나의 여동생 정양숙 시인과 현재 원주 치악산 토굴에서 홀로 살며 시와 수필을 쓰고 있는 정용주 시인과 세 자매가 국내외 시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심히 기쁜 일이다.
산울림
산에 올라
너를 부르니
산에서 살자한다.
계곡을 내려와
너를 찾으니
초생 달로
못 속에 잠겨있는
앳된 얼굴.
다시 그리워
너를 부르니
산에서 살자한다.
계곡을 흐르는
산들바람에
피어나는
꽃 송이 송이들의
짙은 향기
다시 그리워
너를 부르니
산에서 살자 한다.
- 정용진, <산울림> 전문.
이 시는 작곡가 권길상 선생에 의하여 가곡으로 작곡 되었음.
오늘 아침에도 창을 여니 안개 낀 앞산이 문 앞으로 다가선다.
뜰 앞 장미향이 짙게 스며온다. 아름답다.
참고문헌 : 역대시조선(이기문). 한국의 명시(황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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