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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성경의 힘 - 제155강 요한3서, 유다서
요한3서
청년들이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 그 CCM 같은 그런 시시한 뮤직을 하지 말고, 찬송가를 화음을 잘 맞춰서 한번 차근차근 연습을 해가지고, 여기 한 500곡이나 되니까 이걸 먼저 해 봐요.
이건 정말 그냥 단음으로 부르면 별로 재미가 없는데, 화음을 잘 맞춰 부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그런 찬송가 부르는 그 맛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맨날 그 CCM이 뭐냐, 시시한 뮤직이야 그게. 그런 거 하지 말고, 찬송가도 물론 별로 안 좋은 것도 있습니다. 저도 잘 안 불러지고, 좀 곡도 뭐 그런 것도 있어요. 그런데 대체로 오래토록 아름다운 곡입니다. 거의 명곡에 가까운.
그러니까 가능하면 이런 찬송가를 잘 불렀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 또 성가곡들도 있거든요. 아주 오래토록 우리 기억에 남는 그런 곡들을 배우도록 하세요.
그래서 다시는 그 예수찬미1000, 2000, 3000, 4000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런 거 배우느라고 성경 볼 시간도 없이 그러면 안 돼. 한 곡을 해도 정말 그저 화음을 잘 맞춰서 그런 걸 숙제로 줘가지고, 죽 그 노래하면 얼마 안가서 귀에 화음이 들리기 시작해요. 그러면 들리면 부르게 됩니다. 들리면. 처음에는 안 들려요.
그런데 자꾸 이제 귀를 기울이고 듣고 하면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저는 음치거든요, 음치. 음치인데도 지금 화음이 좀 된다는. 나이가 들어가도.
그러니까 젊은 청년들은 내가 보니까 다 노래 잘 해. 그러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그렇게 멋지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불신자가 나왔다가 처음 듣는 사람도 아주 감동되게 그런 노래를 좀 불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요한3서로 넘어갑니다. 요한3서.
요한3서도 요한2서와 별 차이가 없는데, 대상이 하나는 부녀였고 요한3서는 가이오, 사도 요한이 지도하고 길렀던 어떤 그런 교회 지도자인데,
[요한3서 1장]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간구한다는 것이지, 그게 다 된다는 보장 없습니다.
아 간구한 대로 다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이것이 교리로 만드는 게 아니고, 이걸 그냥 간구한다 그 말이에요.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저는 여기 뭐 마산에 제가 섬기는 교회가 있지만 그저 한 주일에 한 사흘 정도는 마산에 있고 이틀이나 사흘이나. 아니면 또 한 삼사일 또 여기 있고..
아니면 또 밖에 집회하러 이렇게 되는데, 여기 있으면서도 참 들려오는 소식이 아침에 봤죠? 그 목사님 만나가지고 또 좋은 사람 만나서, 플라스틱 다 없애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가 끝없이 올라오는데, 제가 지금 그런 걸 지금 모아가지고 책을 한번 출판할까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야. 혼자 읽기가 아까워요. 그렇다고 이름 있는 걸 갖다가 그 홈페이지에 올릴 수도 없고.
어떤 거는 제가요, 하도 글이 아름다워서 그 편지한 사람에게 내가 허락을 받았어요. 당신 이름을 내가 이름을 빼고 할테니까, 홈페이지에 올리고 싶다. 아 그래서 허락받은 그런 적이 있어요.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야.
그래서 요한도 자기가 지도한 사람이 그런 이단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걸 듣고, 참 그리 기뻐한다는 거야.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그 당시 한 교회에 상주하면서 지도하는 그런 담임 교역자 제도가 없고, 전도 설교, 아니면 이 순회 설교를 잘 하는 분들이 나그네처럼 이래 돌아요. 도는데, 이런 분들은 이방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 교회가 그 사람, 그런 분이 와서 한 3일 정도 머물면서 한 지역 교회에서 설교하고, 그 다음 교회로 또 가는데,
그러면 거기 머물 동안에 그 먹고, 먹는 거 뭐 잠자리, 이런 것 좀 책임을 지고, 그리고 떠날 때는 다음 교회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여비를 이렇게 해드리는 게 그게 상식이었어요. 이것이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렇게 하는건데 그걸 이제 이 가이오라는 사람이 잘 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하는 것을 두고 어떻게 칭찬하고 있느냐 하면, 8절에,
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고, 예언자의 이름으로 예언자를 영접하면 예언자의 상을 받는다.’
마태복음 10장 41절, 42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진리를 위해서 함께 수고하자는 거예요.
아침에도 제가 그 방송선교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는데, 거기 참여하는 것이 함께 수고하는 거죠. 함께..
어떤 사람만 혼자 막 그렇게 혹사하게 하지 말고, 우리도 작은 정성으로 함께 맞들어서 하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그러잖아요. 혼자 뭘 해보면 그렇게 힘들고 외롭고 해요.
저도 이 일을 혼자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그래 지금은 이제 전국에서 각 지역에서도 이런 일들을, 노 목사의 뜻을 받들어서 우리도 해보자 하고, 지역 지역에서 이 센터를 만든 곳도 있고, 어떤 교회가 또 제가 하는 그대로 따라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해보고는 뭐라고 하느냐. 내가 목회자로서 이제사 이제 할 일을 찾은 것 같다, 내가 이제 정말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선다, 이런 말이 막 계속 들려오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좀 내가 이제 외롭지 않구나.. 내 생전에 그래도 열매가 보이고 싹이 보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여러분도, 이번에 오신 분들도 이걸 저 혼자 하게 버려두지 말고, 나중에 대세가 기울어져서 기독교 전체가 쓰러지면 나 혼자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함께 살아야 돼요 함께.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서로 상생하고 이웃 교회도 잘되어야 우리 교회도 잘되지, 다른 교회 다 안 되고, 우리 교회만 될 줄 아세요? 그렇게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 배워가가지고 절대 옆에 사람 말 하지 않고 자기만 딱 써먹는다고 그래.
어떤 사람은 목에 피가 날 때까지 가르치고 그걸 나누기 위해서 그, 한 30년이나 이걸 정리해가지고 전부 다 이렇게 나눠주려고 하는데, 자기만 딱 써먹고 옆에 사람 말도 안 하고 자기만 잘 되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희귀한 일이 아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는 거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게 왜 이렇게 안 퍼지는가 했더니, 그런 거예요 보니까. 30년이 됐는데 이렇게 안 퍼질 수가 없어.
하도 이제 내가 하는 게 시원찮으니까,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CTS에 불러내가지고, 그래 이제 좀 알게 하시는 것 같아요 알게. 극동방송에서도 좀 알게 되고.
처음에는 진짜 부산 사람들 안 오거든 원래. 부산 사람들은 예수님 와도 눈도 깜짝 안해. 와서 니나 가봐라 그러면서 아~ 참 어려운 곳이라. 지금은 안 그래요. 지금은, 극동방송에서 제가 한 십년 동안 매일 제 목소리가 나가고 하니까, 지금은 부산, 경남에서 약 40%가 와요. 여기 오는 분들의 40%가 부산, 경남에서 오는 거야.
그래서 그걸 보고 내가 아~ 그게 역시 방송과 전파의 힘이 막강하다. 그리고 지금 아까 우리 그 지사장님 말씀에 한 30%는, 시청자 중에 30%가 불신자라고 그러는데, 스님들이 가끔 전화가 와요. 그리고 만나자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자기는 교회는 안 나간다 하면서 정말 재밌게 달게 듣고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또 교회 안 나가고 이제 교회 나가다가 안나가고 낙심해 있었는데, 목사님 말씀 듣고 보니까 나가야 되겠네요. 이런 전화도 오고, 그래서 그 방송에 참여하는 것,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자는 거죠. 함께..
자 9절입니다.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런 미친놈이 있나 이게..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으뜸 되기를 좋아하면서, 이 사람은 으뜸 되기를, 항상 자기가 일등 해야 돼. 뭐든지. 거 으뜸 되기를 좋아하면서, 아니 자기가 잘 해서 으뜸 되면 누가 뭐래? 근데 남을 못 하게 해가지고 자기가 으뜸이라. 다른 사람을 하지 못 하게 해가지고, 자기가 일등하는 요런 참 못된 심리가 있다니까.
다른 사람도 잘하고, 자기도 잘해가지고 자기가 일등 되면, 그건 가치가 있죠. 딴 사람을 뭐 좋은 일 못하게 해가지고, 자기가 으뜸 되는 요런 못된 사람이 있어.
제가 그 비슷한 사람을 한번 겪어봤는데 참 피곤한 사람이야. 이 사람은 뭐든지 자기가 일등 해야 돼.
만약에 하다못해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도 자기보다 누가 많이 한 사람 있으면 못 견디는 거예요 그냥. 잠을 못 자.
그건 내가 볼 때는 그거는 뭐 내 생각에는 그건 마귀 같아 마귀. 그거는 신앙이 아니야 그냥. 허영과 다툼이죠.
아이구 내가 지금. 그런데 그런 사람을 보고 내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아 성경에 그런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또 보니까. 그래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구나..
그리고 뭐든지 그래. 뭐든지 너무 그저 일등주의 그거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대로는 스포츠 세계가 이게 항상 일등주의야. 이등은 별 볼 일 없죠? 뭐든지 그냥. 스포츠 세계는 뭐 냉혹해요 그냥. 일등만 그냥 각광받고 2등 3등은 그냥..
만약에 4등 해봐. 그러면 아무 빛도 없는 거예요 완전히. 노력은 거의 비슷하게 했을 텐데, 예를 들어서 그 올림픽이라든지 이런데, 100m 달리기 모리스 그린이라든지 뭐 칼 루이스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대개 다 왕년에 챔피언들인데, 100m 달리는데 10초도 채 안 걸리는 거죠. 빠르긴 빠른 거야 그렇죠? 그러면 100m 달리는 데 10초가 안 걸렸다는 건 10m 달리는 데 1초가 안 걸린다는 거 아냐 지금. 그건 정말 대단한 거죠.
그런데 그게 1등하고 2등하고 3등하고 4등 차이가 겨우 뭐 간발의 차이라 간발의 차이. 한 뼘, 두 뼘 차이 이러거든 그게? 그게 1등하고 4등하고 무슨 큰 차이가 납니까. 그런데 1등은 뭐 굉장하고 2등은 아무 것도 아니야. 4등은 아예 아무 것도 아니고 동메달도 없어 그거는.
아니 나 같으면 나무 메달이라도 하나 해줘야 돼, 그런 건. 그리고 모리스 그린, 뭐 칼 루이스 100m에 뭐 10초 안 되는 시간에 들어갔다 그러는데, 자기하고 나하고 한 10초 차이 밖에 안 납니다.
나도 보통 빠른 게 아니죠. 그리고 뭐 나보다 10초 빨리 가서 뭐 하는 게 없어, 가만히 있잖아요 거기, 그렇죠.
그걸 가지고 막 거기 금메달을 들어 안기고 그런 게 웃기는 거야 다. 아무 것도 아닌데 정말. 그거 빨리 가서 아무 것도 안 할 거면서 그거 한답시고 얼마나 밥 먹고 맨날 그냥 뛰기만 하고, 그런 그 스포츠 애들 그런거 시키지 마세요. 그거. 별로 가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거 다 시드는 면류관이야 다. 썩는 면류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애들 또 뭐 축구, 요즘 한국에 월드컵 이후로 막 애가 조금만 뭐 하면 축구 시킨다고 아이고, 그게 다 바보 축구나 하는거야. 다.
아니 어린애들이 뭐 공을 차고 노는 건 좋은데, 다 큰 사람들이 하루 종일 공이나 뻥뻥 차고, 거 하나님한테 가봐. 너 뭐하다 왔어, 공 차다 왔는데요, 뭐하러 찼어 그거.
아, 그거는 뭐 아니 그래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축구는 정말 재미가 없는 게 어떤 거는 90분을 봤는데 한 골도 못 넣었어 양쪽 다. 빵대빵 이라. 정말 참 재미없죠.
내가 축구 룰을 만들면 그 골대를 좀 배나 넓혀버려. 그러면 좀 많이 들어갈 거 아니야 그렇죠. 축구 그런 거 애들 시키지 마세요. 그거 한다고 애가 얼마나 고생하고 그거. 그게 영원히 남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골프 뭐 요새 골프 붐이 일어나가지고 한국 비행기는 골프채가 무거워서 뜨지를 못해요 지금.. 그래서 비행기가 못 뜨는거야. 그래서 왜 못 뜨는가 보니까, 골프채를 너무 많이 실어가지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좀 내리고. 이거 실화입니다 실화. 바로 얼마 전에 그랬어요.
동남아시아에 가는 비행기가 못 뜨는 거야. 뒤적 뒤적하고. 그래 왜 안뜨는가, 그게 골프채 때문에 그래요. 골프채. 미쳤어, 미쳐..
아니 그거 뭐 하러 공을 그 조그만한 구멍에 집어 넣을라 그래. 아니, 참. 내가 보니까 그거 넣어놓고 또 걸어가, 거기까지. 그렇죠? 그럼 간 김에 가서 넣지 그래, 꼭 막대기를 쳐가지고, 그거 뭐 이글이고 파고 어쩌고 하는데 참. 그 애가 그거 넌다고 장단지가 통통 배가지고. 아무것도 아니야. 내나 꺼낼 걸 가지고 뭐 하러 집어넣어, 거기다가 또..
그리고 그 뭐 이봉주? 그냥 차타고 가라고 해 차타고.
옛날에 마라톤 전쟁 때는 그때 차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겼다는 말을 전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제 뭐 뛰어가서 엎어져 죽을지언정 가서 외쳤는데, 지금이야 휴대폰도 있고. 아 그거 차타고 가든지 하지 그걸 애가 그렇게 달려가지고 죽을뚱 살뚱 모르고. 그런 거 다 그거 부질없는 짓이라.
그리고 역도? 아니 무거운 쇳덩이를 뭐하러 들어 그걸. 맨날 들었다 놓을 걸 가지고. 그걸 들게 한답시고 애를 얼마나 살을 찌우게 해가지고 그 뚱땡이 누가 들고 가겠나 누가 그거. 남자 같으면 모르겠는데 여자를 갖다가 그걸 들게 한답시고 얼마나 먹여가지고 뚱뚱하게 만들어가지고 어떤 남자가 들고 가겠어. 그거.
그런 신부는 들고 문지방 넘어 갈 수가 없어요. 아마 거꾸로 신부가 신랑을 들고 가지 않겠나, 나는 늘 그게 걱정이라. 아니 진짜 자다가 생각해도 걱정이라니까.
그리고 농구도 말이야 그거 웃기는 거야. 아니 한국 사람처럼 좀 뭐 키가 1미터 60 이런 사람이 거기 높은 데 집어 넣으면 그야 기술이지 세상에 2미터 10, 2미터 20 이런 것들이 갖다 껑충거리고 하루 종일.
그리고 말이야, 그 자루가 밑이 빠졌어요. 그게. 공을 집어 넣을려면 밑에 자루를 보고 집어 넣어야지, 계속 밑 빠진 것도 모르고, 계속 집어넣어 멍청한 것들이..
여러분도 우습죠? 난 그걸 보면 밥을 못 먹어 우스워서. 그런 걸 뭐 일등 한답시고 참.
더 웃기는 것도 있어요. 하키. 차라리 마당을 쓸라 그래. 마당을.
아니 뭐 하는 거야 도대체 그게.
이런, 바울이 말하기를 그런, 그런 경주라는 건 다 썩는 면류관이고 시드는 면류관이야. 우리가 좀 가치 있는 경주를 해야지 그런 걸 가지고 일등주의 해가지고 뭐 2등은 아무 것도 아니고..
여러분 축구선수 중에 이 지구상에서 그래도 뭐 좀 명성을 날리는 건, 한 열 명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전 세계에 한 열 명 안팎이야. 여러분, 이름 대봐요 뭐. 호나우도하고 베컴하고 호나우딩요하고 뭐 몇몇 사람 아닙니까?
그 축구를 해가지고 무슨 성공할 수도 없고, 그 자체가 명성이 날려도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잖소. 그게. 그러니까 아이들 키워 가지고 기껏 그런 걸 시킨다는 거, 엄마들이 좀 생각을 해봐야 돼. 저는 그런 일등주의 뭐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제가 보니까 교편 잡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딸들도 둘이나 교사로 있는데, 일등하는 애들 속아지가 못 된 애가 많아요. 특목고 애들 또 못된 것들이 많다는 거야.
차라리 뒤에서 몇 등 이런 애들이 인간성이 좋아요. 여러분, 그 1등부터 5등, 뭐 3, 4등 그 정도까지는, 학교 가서 앉아있을 만합니다. 그거 뭐 시험도 치면 점수도 나오고, 칭찬도 가끔 받고, 상도 받고, 박수 받고 하니까 한데..
진짜 어려운 게요. 뒤에서 5등까지. 이 사람들은 그 과목 중에 한 3분지 2는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앉아있어 거기에. 그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도시락 두 개 싸가지고..
어떻게 여러분 한번 생각해봐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그것도 한해 두해도 아니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할려면 12년간을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 인내심 한번 숭고한 거죠, 그렇죠? 그리고 시험 칠 때마다 손바닥 스무 대 맞고, 운동장 열 바퀴 돌고 또..
그래도 또 점심시간 되면 와 이리 좋노 하고 뛰어다니고..
소풍 가봐 또. 마이크는 제 차지지 또. 항상. 그런 사람들이 인간성이 좋은 거야. 그 사람들은 이미 부끄러운 걸 이미 다 초월했죠. 이미 다..
근데 막 그 일 이등 하는 사람들은 막 일등하다 이등하면 죽는 줄 알고, 막 수면제 사가지고 자살한다 그러고. 아이고 다 미친 것들이야 그거 다. 못된 것들.
그래서 저는 그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매력 있다고 봅니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건 좀 곤란하지만 대개는 사실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고, 수업 진행방식이 잘못된 거야. ‘알았어?’ 하면 ‘예!’ 하니까 거 아는 놈은 다섯도 안 돼요. 그게..
그런데 진도를 나가버려 그게 진도를. 사실 조금만 더 설명했으면 다 알 수 있는 건데. 제가, 저도 아이들 가르쳐보고 교회에서도 가르쳐보고 해보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기 제 강의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수업 진행방식이 좋으니까,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있어도 여기 못 듣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조는 사람도 없잖아요 이게. 여기 와서 졸면 기적이야 그건 정말..
교사들이 시원찮게 가르쳐 놓고 등수를 매겨가지고. 저는 정말 교원평가제 해야 돼 정말. 교사가 진짜 엉망이 많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교수도, 신학대학 교수도 내가 볼 때 교수도 빵점짜리야 진짜. 저래가지고 어떻게 교수가 됐나 할 정도로 지식도 없지만 가르치는 능력도 형편없는 사람이 교수가 돼가지고..
그러니까 학생들을 탓할 게 아니라고 사실은. 정말 강의 못하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성적 좀 떨어졌다. 그것 가지고 뭐 그리 탓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또 공부 되게 못하다가 거 어떻게 또 뭐 선생님 한분이 격려하니까 또 새로 일어서기도 하고 그런건데.
지구상에서 굉장한 인물들이 일 이등 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혹 있지만 대체로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보통 사람이에요, 보통 사람.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위대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뭐 여러분 자녀들이나 여러분 자신이 성적 좀 낮다 해가지고 너무 쉽게 포기할 필요 없어요. 또 다른 길이 있는 거야 얼마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한번 또 나이가 들어도 재수 할 수도 있어요. 제가 29살에 고등학교를 갔으니까. 그러니까 뭐 얼마든지 뭐 또 희망이 있습니다.
꼭 같이 뭐 그리 경쟁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오래 전에 읽은 글 속에 보니까, 하버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33수를 한 사람이 있어요. 33수. 33수를 해서 들어갔다니까 결국 들어갔어. 그러니까 뭐 재수 뭐 전혀 문제 없습니다. 재수 괜찮아요. 3수? 오케이. 4수 5수 뭐 괜찮아요.
자, 10절입니다.
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 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이런 못된 놈들이 있어요. 교회 안에도..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그래서 여기도 역시 방문하겠다는 거죠.
이단이 하도 설치니까. 아마 이 요한이 편지를 쓸 때는 연세가 한 100살 안팎 될 땐데요. 그런 나이에도 하도 이단 사이비가 설쳐대니까, 교회를 위해서 애태우면서 교회를 염려하고 기도하면서 또 이 편지를 쓰면서 찾아 방문하고 그런 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저리죠.
그리고 요한이 쓴 편지가 이 세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제가 볼 때는 뭐 30통도 넘어 썼을 겁니다. 다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보존된 것만 해서 요한 1, 2, 3서 이 정도죠.
그 당시 교회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교회는 쓰고 어느 교회는 안 쓰고, 여기 교회가, 교회가 지금 이름 있는 교회가 아니거든 전부다. 어떤 부녀, 사랑하는 가이오, 뭐 이런 사람들에게, 다 가정교회 작은 교회 이런 교회에 다 편지를 쓰면서 돌보는 그런 교회를 돌보는 요한의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죠.
자 그 다음 유다서로 넘어갑니다. 유다서.
유다서
유다서는 이단문제를 가지고 기록한 서신인데, 유다라고 하는 이 유다가 누구냐..
유다가 꽤 여럿이 있어요.
첫째 우리가 잘 아는 게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는 죽었으니까 해당이 안 되고,
그 다음에 예수님 친동생 유다가 있어요.
또 세 번째는 다대오라는 유다가 또 있어요. 다대오의 다른 이름이 유다예요.
그래서 셋 중에 가장 개연성 있는 분이 다대오라 하는 유다라고 보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봐요.
전에는 어떤 책을 통해서 예수님의 동생 유다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볼 때 내용을 보고 그리고 제가 이란을 갔을 때 이란 북부 터키와 접경지역 멀지 않은 곳에 거기에 다대오의 순교 기념교회가 있고,
그리고 내용면에서 볼 때 바벨론에서 썼다고 하는 베드로후서와 내용과 문체, 용어 이런 게 많이 일치해요.
그래서 두 사람이 교분이 있었지 않았는가..
그렇게 보면 베드로도 바벨론 하는 것이 영적 바벨론 로마가 아니고 그냥 바벨론이고, 유다라는 분도 다대오라는 유다가 함께 가까이서 서로 교제하면서 설쳐대는 이단들에게 넘어가지 말도록 편지를 쓴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유다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여기 ‘야고보의 형제’라고 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 동생 유다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는 거거든요.
그런데 내용으로 볼 때는 다대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여기 ‘더욱 많을찌어다’ 하는 것도 베드로 용어하고 같죠?
바울 같으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이렇게 하는데, 베드로는 ‘더욱 많을찌어다’ 하고 유다도 ‘더욱 많을찌어다’ 이렇게 해요.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거기 줄 그으세요.
이단은 대개 가만히 들어옵니다.
여러분 교회에도 신천지 이단 이런 사람들은 가만히 들어와요. 가만히..
일반 신자처럼 가장을 해가지고 가만히 들어오는 거예요. 여기도 또 있을 겁니다. 가만히 들어온 자.
번번이 한둘씩 있었어요. 아예 공식적으로 파송을 하는지 그렇게 들어와요.
..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12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애찬의 암초’라는 말은 밥 먹다가 돌 씹는 걸 말합니다. 말이 거창하죠? 애찬의 암초요..
..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4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래서 아무 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훼방하는 그런 이단 사이비에 대해서 아주 혹독한 말을 쓰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이 참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이단 사이비가 이렇게 막 사람들을 미혹하고 막 흔들기 위해서 다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는 거야.
여기 분별하는 거, 이단 사이비를 분별하는 어떤 기본 기준이 있는데요,
자 앞을 보세요. 따라 합시다. 진리는 역사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예수님 때 전부터 아니면 아브라함 때부터 쭉 오랜 역사를 통해서 검증 받아온, 역사적으로, 또 역사와 함께 하고 역사의 방향을 이끌어 오고, 이렇게 역사적으로 어떤 역사적인 근거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그게 이단이라는 거야. 이단.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신흥종교=사이비종교’입니다. 역사성이 없잖소.
예를 들어서 신천지 같은 게 그 안식교회라고 하는 그 안식교라는 이단에서 거기에서도 삐어져 나온 유재열의 어린 종 장막성전 이란 데서 또 거기에서 또 삐어져 나온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성이 없고 엊그저께 생겨난 거야 엊그저께.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이게 이단이라는 거야.
기독교는 예수님 이후로부터 줄기차게 수많은 비판과 환난과 시험과 십대 박해와 이런 걸 다 거쳐서 역사성을 가지고 역사의 맥을 이어 왔다온, 정통성을 이어 왔다는 거야. 역사성이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진리는 보편적이다.
그 보편적이란 말은 언제 어디서 누가 봐도 보편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동양이나 서양이나 뭐 흰둥이나 노랑둥이나 검둥이나 뭐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같은 진리에 공감하는 보편성이 있으니까.
세 번째 진리는 윤리적입니다. 윤리적.
여러분 신천지 사람들은 거짓말 밥 먹듯이 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데, 내가 물으니까 어째서 그렇게 거짓말을 하냐고 물어보니까, 구원의 사역의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거짓말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들은 공식적으로 거짓말 한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물어 보니까. 윤리가 아니에요, 윤리가 아니예요 벌써. 모든 거짓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나오는 거야 마귀에서. 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라.
얼마나 그동안에 우리 교회가 성도들을 잘못 가르쳤는지 그런 것도 분별 못하게, 역사성도 없고, 보편성도 없고, 윤리도 없는 그걸 갖다가 진리라고 따라갈 정도로, 성도 교육을 못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솔직히.
그래서 참 솔직히 정통이라 하지만 거의 뭐 깡통 같은 정통도 많다는 거야.
그러니까 결국 그런 이단 사이비가 설치는 거죠.
그래서 이단을 뭐 이단이 잘못된 것은 말할 거 없지만, 이단을 탓하기 전에 우리 교회가 너무 성경을 바르게 못 가르쳤다는 거예요.
옛날 뭐 글도 모르고 책도 없을 때는 교육을 할라도 어렵지만, 지금은 글도 다 읽을 수 있고 학벌도 높고 책도 있고 교재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이걸 바르게 가르치지 못해가지고 이단에게 양들을 빼앗겼다는 것은 순전히 목사들이 책임을 져야 돼요. 정말.
유다서는 그런 이단을 경계한 책이다. 이렇게 아시면 되겠습니다.
이제는 요한계시록 한권 남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