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의 자락에 위치한 태평사는 주지승(住持僧)의 말에 의하면 지금의 자리에 고려시대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가 6·25 동란이 끝난 후 나주 교도소에서 일하는 불자(佛者)의 꿈에 지장보살, 관음보사리 연속으로 현몽(現夢)되어 지금의 태평사의 위치에 와서 파보니 연좌(蓮座)와 탑파(塔婆)의 상륜부(相輪部)가 나오고 지장보살이 나왔다한다. 옛날의 절터였다는 증거가 되는 6각주초(6角柱礎)가 대웅전 앞 화단에 있으며 뒷 암벽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그러나 고기(古記)에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내력이 확실치 않다.
지금의 태평사는 1956년에 금명스님이 설립하였으며 산정을 향하는 계곡으로 올라가다 중턱에 이르러 터를 잡고 있는데 요사 채가 2채이며 대웅전만이 있는 작은 사찰이다. 요사채는 서민의 살림집 유형이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석가모니불 및 보살입상 2구를 봉안하고 있다.
태평사 가는 길
태평사 입구
태평사 전경
태평사 범종각
태평사 대웅전
태평사 대웅전앞 석등
태평사 대웅전 벽화
태평사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보살상
태평사 독성탱과 산신탱
대웅전의 향우측 벽에 독성탱과 산신탱이 모셔져 있다. 독성(獨聖)은 범어로 pindolabharadvaja인데, 빈두로파라수(賓頭盧頗羅隨)로 음역되는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이다. 이 분은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으로 나반존자(那畔尊者)로 잘 알려진 분이다. 흰 수염의 늙은 나반존자가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 속에 앉아있는 형상으로 주변에 동자승이 표현되어 있다. 신중탱화와 같이 조성한 것으로 금어(金魚)는 귀봉 홍선(龜峯 弘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