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입장에서 볼 때, 설악산은 단순한 산이 아닙니다.
우리가 등산에 관해 꿈꾸었던 그 모든 것이 집적된 곳이 바로 설악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설악산에 없는 것은 곧 우리나라에 없던 것이라해도 무방할 겁니다.
아래는 60년대 판본 관광기념첩을 통해 그 일부를 재현해 봅니다.
설악산 관광기념첩은 국내 최고로 발행되었습니다.
박물관 소장본만 해도 4,50여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설악의 전모를 복원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설악산 관광기념사진첩 중에 가장 갖고 싶었던 게 바로 이처럼 '흔들바위'를 담은 거였습니다.
비싼^^ 값을 주고 모셔왔습니다.
'관동'과 '탐승'이라는 표현 자체가 60년대 발행본임을 증거합니다.
그때는 관동지방은 설악산을 중심으로 놓고 나머지 명승고적지를 배치했기에,
관동과 설악은 거의 같은 개념입니다.
70년대 넘어서면 설악산을 두고서 이런 표현 쓰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산장도 없고 권금성 케이블카(1971년 완성?)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설악동 아래에 초등학교도 있고 맞은편에 목장도 있었군요.
초등학교가 살짝 보이는 사진도 갖고 있는데, 찾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육담폭포. 구름다리는 '풍치'가 가관이며...라고 적고 있는데,
구름다리에서 보는 풍치라기보다는 구름다리가 풍치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당시 시민들도 지금 우리게 놀이동산에서 그러하듯 스릴을 좋아했습니다...
1965년 6월 26일 개통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유료였습니다.
그 시절 설악산에서 돈들여 '개인'이 만든 인공구조물은 모든 게 유료였습니다.
미륵봉 금강굴 철제사다리도 유료였고, 시민들은 불만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불만이 터져 나온 건 1974년 국립공원이 주체 입장료가 생겨날 때였습니다.
'한국명산기'로 유명한 김장호 교수는 잡지(신문)에 공공연히 불만을 토로했죠.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산이 동대문 운동장이냐? 입장료를 받게'가 주제였습니다.
와선대 계곡입니다.
우측을 보시면 돌탑도 보이고요. 그 밑을 보시면...
돌탑은 등산객이 쌓았다고 보기엔 너무 잘 쌓았습니다.
아마 이곳에서 영업을 하던 분이 쌓은 거라 보여집니다.
당시 설악산 곳곳에서는 술과 안주 등을 팔던 노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를 보시면 통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가 있습니다.
이 것 역시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점하는 분이 만든 걸로 보입니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의 토대를 만든 김학주 교수가 쓴
'나와 서울대 중국어문학과 반세기'(명문당)에 보면,
1960년대 초 설악산 서울대 중문학과 졸업여행 사진 중에
저와 유사한 사진 한장이 있습니다.
사진을 찾으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흥사. 사찰의 구도가 복잡다단하지 않고 깔끔하니 좋습니다.
신흥사 앞에 길이 넓직허니 반듯한 까닭은 저시절 버스가 여기까지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찰의 권위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관광호텔. 지금으로 치자면 민박집보다 못합니다.
내국인을 상대로 한 우리말 명칭은 호텔이지만, 외국인용 영어표기로는 롯지(Lodge)였습니다.
관광을 직역^^해서 Sightseeing Hotel 이라고 하고 있는데, Tourist Hotel이라 정확하지 않을까요.
오른쪽 하단에 빨간 꽃이 핀 상록수는 무엇일까요?
얼핏 보면 동백나무같은데요....
비슷한 시기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설악호텔입니다.
호텔이 아니라 롯지가 맞습니다..~~~
저시절 돈이 없어 쩔쩔 매던 정부는 전국 경향각지에 호텔을 신축해서 관광수입을 꾀합니다.
이 호텔과 무등산 관광호텔 등은 같은 설계도로 만들어졌죠.
그 결과 조경도 같이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선은 어디일까요?^^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것이 가장 북쪽이고 내륙에서는 지리산 산록에 위치한 화엄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백 - 들어가는 말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주)넥서스)
경포대 호텔은 그래도 외관이 호텔스럽군요.
연못도 만들어서 비취는 모습도 만든 건 탁월한 기획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1965년 경포대 호텔 속사정은 어떠했을까요
1965년 설악산과 경포대 호텔에 관한 글을 읽으시려면 -> 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