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봉의 들고양이 떼 ＜소문의 덫, 4 ＞ (아세아문학, 2010. 봄호.)

[운영자]

연지봉의 들고양이 떼.

--소문의 덫 4.--

연지봉(蓮池峰)은 영진리의 농촌 마을에서 어촌 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봉우리 꼭대기가 평평하지만 늪지대여서 그냥 버려진 땅이다. 해안 쪽에서 봉우리를 오르려면 가파른 솔숲길을 지나야 하고 거기에다 그 길목에 서낭당까지 있어서 민가가 들어서기에는 그리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엔 늙은 노파가 무허가 초가집을 짓고 점집을 차려서 점이나 치고 굿이나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되었던지 타관내기인 천도술이 연지봉을 매입하고부터는 연지봉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연지봉의 늪지대에다 연못을 파서 물을 한 곳에 모으고는 수로를 만들어 물이 넘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물 빠진 땅들을 개간해서 수천 평의 밭을 일구었다. 연못의 물이 흘러내리는 물도랑 옆으로 논도 개간해서 수십 마지기가 되었다. 물이 풍부해서 천수답과는 달리 벼의 수확량도 많아 상답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이처럼 연지봉의 버려진 늪지대와 산비탈을 개간하여 밭과 논이 수 천 평으로 불어나고 해마다 소출이 늘어서 재물이 쌓이니 차츰 욕심이 생겼던지 천도술은 예전의 점집을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지었다. 천도술로서는 그동안 모은 재물도 있고 하니까 자신의 위세를 한껏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서낭당의 위쪽으로 절간처럼 당당한 기와집을 대하고 보면 어딘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연지봉의 지세가 너무 센 곳이어서 그런 곳에 집을 짓게 되면 곧 망하게 될 것이라고들 말했다. 더구나 늙은 무당을 쫓아내고 그 점집을 헐고 집터를 넓힌 것이어서 신벌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도 같이 나돌았다.

평소에도 연지봉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기억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연지봉의 바다 쪽 벼랑에는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6․25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공산군과 마을 좌익들이 바다를 통해서 도망갈 기회를 엿보느라 그곳에 토굴과 토치카를 파고 은신해 있다가 북진해 오던 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떼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그 때 죽은 시체들을 일일이 신분을 가려 묻어줄 입장이 못 되어서 팔다리가 찢긴 시신들을 마구잡이로 토굴 속에 던져 넣고 묻어 버렸는데 그렇게 버려진 시체들이 길 잃은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 때의 토굴과 토치카는 연지봉의 남쪽 기슭에 있었는데 바다와 개울이 합수되는 갯목에서 바로 올려다 보였다. 그 개울 옆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은 비라도 내리는 우중충한 날에는 죽은 혼령들이 병정놀이 하느라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고 했다. 아침에 보면 오래된 소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굵은 나뭇가지가 설해목처럼 불어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선지 귀신들의 병정놀이가 그냥 환청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불길한 내력이 있어서 그랬던지 해마다 젊은이들이 갯목 여울에 멱감으로 왔다가 물의 소용돌이에 빠져 죽는 일이 잦았다. 바다와 개울이 합수되는 갯목은 다른 곳보다 움푹 파여서 깊고 물의 소용돌이가 심했다. 그렇긴 하지만 물이 맑고 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여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 싶은 데도 익사사고가 자주 나는 것은 연지봉 귀신들의 장난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처럼 금기시 여기는 연지봉에다 고래등같은 집을 지었으니 천도술의 배포도 보통은 넘었다. 그가 처음 마을에 정착해서 그곳에 집을 지으려고 하자 말리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 집터란 묘 자리와 마찬 가지로 북쪽에 바람막이 산이나 언덕이 있어야 하고 좌우로 구릉이 있어서 아늑해야 한다. 남쪽으로도 들판이 있어 앞이 트여야 하고 더 멀리에는 너무 허하지 않도록 안산이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의 눈에도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집은 산봉우리에 등대처럼 우뚝 서서 독야청청이니 누구의 눈에도 좋은 집터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 전쟁 때 떼죽음 당한 귀신들이 들끓는 곳임에랴.

마을 사람들의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천도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근동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대목수를 초청해서 사방에서 좋은 목재를 구해다가 시골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큰 집을 지었다. 이곳 시골은 대부분 일자(一字)집으로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부엌이 딸린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 본채와 행랑채 문간방까지 딸린 미음자(口字)집이니 읍내의 양반 부자집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집이 완성되자 매우 만족한 표정이 되어 이곳저곳 다니며 집 자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시큰둥 여겨 별로 호응해 주지 않으니까 그는 바우재 쪽 언덕에서 자기 집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허. 저 집 한 번 잘 지었다. 거 뉘댁인고?”

낯선 나그네들은 연지봉에 덩그렇게 지어진 대궐 같은 집을 쳐다보며 ‘그 집 참 잘지었구먼.’ 하고 동조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여러 날 되풀이 되니 지나가던 마을의 아이놈들은 그런 경우를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어서 제 놈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냉큼 끼어들곤 했다.

“저 집 요? 오관도사, 천도깨비, 천도사네 집이래요.”

하고 대답한다. 지맥을 살펴서 묘자리를 정하는 재주 있는 사람을 육관도사라고 하는데, 천도술은 좀 모자라는 육관도사라고 해서 오관도사라고 별호한 것이다. 재주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하고 그런 곳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다. 천도깨비란 연지봉 기슭의 솔숲에 날아다니는 도깨비불이 있어 그 도깨비와 한통속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고, 천도사란 말도 연지봉의 귀신들과 어울려 산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지껄이는 것을 귀동냥으로 엿들은 아이들이 그런 말로 천도술을 놀리는 것이다. 그러면 천도술은 긴 담뱃대를 막대처럼 휘두르며 호통치는 것이다.

“이놈. 오관도사, 천도깨비, 천도사라니? 이놈들 다시 말해 봐라.”

아이들은 그가 천도술이란 걸 빤히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고는 후닥닥 달아난다. 천도술은 나이도 나이지만 지나치게 뚱뚱 해서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는 날렵한 아이놈들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들은 잡는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뒤뚱거리지만 어림도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아이들은 혀를 내밀며 용용 죽겠지. 하고 달음박질을 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금방 망할 것이라고 이런저런 소문을 퍼뜨리지만 천도술은 날이 갈수록 재산을 늘려갔다. 한 때는 어른 머슴 둘에 아이 머슴도 하나 두었다. 황소도 두 마리나 길렀다. 가난한 농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각종 농기구도 갖추었다. 벼를 터는 타작기는 물론이고 새끼 꼬는 새끼틀, 가마니 짜는 가마니틀. 벼깍지를 바람에 날리는 풍구, 그리고 곡식을 빻는 발방아도 갖추었다. 그러니 주위의 농삿꾼들은 그런 농구기를 빌기 위해서 천도술에게 빌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들 몇 년이나 갈 건데.”

마을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그렇게 쑥덕거렸다. 마을에서 소문났던 부자들이 망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한 번 망조가 들면 3년을 넘기지 못했다. 마을에서 제일 부자이던 범수네 어른도 그렇게 망했다. 그 많던 재산은 모래밭의 물처럼 빠져나가고 가족들은 병들고 뿔뿔이 흩어지고 그 어른 자신도 결국 피를 토하고 죽던 것이다. 오랜 토박이 부자도 망하려 들면 순식간이다. 그런데 뜨내기 주제인 천도술이 얼마나 버틸 쏘냐 하는 게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천도술의 집안에는 이렇다할 우환도 없었다. 마을 부녀자들이 길쌈을 합네 하며 천도술네를 방문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천도술의 아내인 달천댁은 아주 안온하고 순박한 여자다. 친정집이 국도변에서 한나절 넘도록 걸어야 하는 깊은 산골인데 마을이 달천이라고 해서 그녀를 달천댁이라고 했다. 이웃들이 찾아오는 것을 반겨서 구운 고구마도 내놓고, 동치미 무도 내놓았다. 어떨 땐 메밀국수도 말아 내왔다. 국수틀이 있어서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국수틀에 넣으면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즉석 국수가 되었다. 머슴들을 시켜서 하는 일이라 마을 아낙네들은 그냥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대접을 해도 마을 여자들은 헐뜯는 뒷소리를 했다.

“세상에. 집은 크기만해서 텅 빈 곳간처럼 휑- 한데,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고 으스스 하기만 하더라고. 바람에 기왓장이 날리는 건지 우당탕 하는 소리도 들리고.”

그러면 다른 여자가 받았다.

“왜 아니람. 밀창에 쏴- 하고 모래가 흩뿌려지는 게. 산짐승의 짓 같기도 허고.”

그녀들이 말하는 산짐승이란 호랑이를 말한다. 언젠가 마을 아낙네가 서낭당에 가서 새벽 치성을 드리다가 호랑이를 만나 기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인데 그 호랑이가 이따금씩 천도슬네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하루는 말이네. 날씨가 잔뜩 궂고 빗방울도 날리고, 그런데 갑자기 담 밖에서 돌덩이를 집어 던지는지 기왓장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집이 흔들리고 뒤틀리며 묘한 소리가 나더라고. 어찌나 무섭던지 그저 덜덜 떨고 숨도 제대로 못 쉴 판인데. 달천댁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라며 위로를 하데.”

달천댁의 말인 즉은 집을 너무 급히 짓느라 미쳐 마르지 않은 재목을 써서 그렇다는 거다. 원래 집을 지으려면 목재를 구해다가 십여 년 묵히고 말려서 목재가 틀이 잡힌 다음에 대패질을 하고 자귀로 깎아내고 해야 하는 건데 그럴 사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들보와 기둥이 맞물리고 기둥과 문설주가 맞물리는 구멍이 처음에는 잘 맞았지만 나무가 마르면서 그 마르는 정도가 다르게 되니 서로 어긋나서 뒤틀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무슨 수로 믿을 것인가? 당장 집이 뒤틀리며 왕창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은데, 너무 놀라서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자 천도술이 대청마루와 안방과 건넌방의 쪽마루에 불을 밝히고는 헛기침을 하면서 마루를 발길로 탕,탕- 울리기도 하고 마당에 내려서서 지팡이로 땅을 꿍,꿍- 내려찍기도 하면서 인기척을 내었다. 그렇게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한 밤중에 귀신 쫓는 시늉이라고 여겨질 밖에 없었다.

“내사 분명 도깨비들이 장난질 치는 것 같고, 귀신들이 병정놀이 하는 것도 같고. 아무튼 누가 보아도 집터가 비정상인기라. 귀신이 자기들 놀이터에다 그렇게 큰 집을 지어 놓으니 시샘하지 않을 수 없제.”

마을 부녀자들은 한술 더 떠서 점괘가 용하다고 알려진 만월암의 남자 무당 최국사의 점괘를 전하기도 했다.

“그 집은 집터 때문에 망하거나 아니면 무당이라도 나와야 할 집이라네. 원래 점집이던 무당 기씨 할미의 넋이 떠돌고 있어서라누만. 천도술이 점집을 헐고 터를 닦을 때 신물이 나왔던 것을. 그냥 모른 척 아무렇게 묻어 버린 게 업보가 되었다데.”

최국사가 말하는 신물이란 무당들이 사용하는 무구를 말한다. 무당들은 흔히 청동 거울이나 방울, 신칼, 부채. 작두 같은 것을 사용한다. 거기다 철릭이나 징, 북, 장구 같은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아무렇게 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아낙네가 달천댁에게 직접 들은 말이라며 전하기도 했다.

“그런 업보 때문인지. 달천댁 말로는 이곳으로 시집 온 결혼 초에는 애가 잘 들어서지도 않고 어쩌다 힘들게 자식을 낳아도 백일도 되지 않아 탈이 난다는 거여. 흰 소복 차림의 노파가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앞치마에 무엇인가를 담아 나가는 꿈을 꾸는 다음 날이면 애가 죽어 있곤 했다네. 그 노파가 뉘겠어. 무당 기씨 할미의 혼령이제.”

천도술은 그런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달천댁을 향해서 호통치는 것이다.

“그런 쓰잘 데 없는 꿈 얘기는 두 번 다시 말라고. 자식새끼 죽는 게 어디 한 둘의 일이여. 집집마다 따져 보라고.”

하긴 그 시절엔 걸핏하면 천연두가 퍼지고 호열자가 돌고 해서 자식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낙들이 십여 명의 자식을 낳지만 반타작도 어려웠다. 그런데 유독 천도술네만이 문제인가? 그렇긴 하지만 아이를 잃을 때마다 똑같은 꿈이니 그냥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달천댁이 남편에게 슬쩍 따져 물었다.

“집터 닦을 때 기씨 무당의 신물이 있었소?”

“신물은 무슨 신물?”

“만월암 최국사의 말로는 그런 게 있었다는데.”

“그놈의 점쟁이. 내 집에 와서 그 신물인가 뭔가를 찾아내라고 해. 못 찾아내면 당장 좇아가 멱을 따 놓을꺼로.”

천도술이 길길이 뛴다. 아니면 말 것을 그렇게 길길이 뛰는 게 어딘가 수상하다. 최국사의 말로는 무당들마다 소중히 여기는 신물이 있기 마련이란다. 신이 내릴 때 신어미로부터 물려받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장만한 것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간직한 신물을 산자락 습지에 아무렇게 묻어 버려서 지금 반나마 썩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다.

최국사가 전하는 그런 점괘를 천도술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니 천도술의 말처럼 최국사가 직접 신물을 찾아내면 모를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달천댁은 남편 몰래 쌀과 돈을 보내서 액막이 푸닥거리를 부탁하곤 했다. 한 번은 칠월칠석이 되어 절간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만월암 최국사를 찾았다.

“액을 피하려면 액막이굿만으로는 어렵제.”

최국사의 말이다. 재물만으로는 처방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딸들 중의 하나를 신딸로 바치란다. 달천댁은 딸이 셋이고 끝으로 아들 하나가 있다. 미리 신딸을 바쳐 액막이를 하지 않으면 집안에 무당이 나오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당이 나오지 않으면 대가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가 끊긴다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막내아들이 죽는다는 말이니 그것만은 그냥 넘겨 버릴 일이 아니었다. 남편 몰래 액막이굿을 하고 돈을 내고 쌀을 내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자식을 신딸로 바치는 것은 달천댁의 몫이 아니다. 천도술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저냥 넘기다가 막내를 잃게 되면 이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달천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냈다. 그러나 천도술은 하늘이 무너질 테면 무너져 봐라 하는 식으로 고집 일변도였다.

최국사의 그런 점괘에도 불구하고 천도술의 뚝심이 통했던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오긴 했다. 자식 중에 세 딸들은 하나 같이 엄마를 닮아서 근동에서는 제일가는 미녀들이란 칭송을 들었다. 공부도 출중하게 잘해서 모두 읍내에 유학을 시켰다. 읍내에도 집을 하나 장만해서 식모까지 붙여서 학교에 다니게 했다. 자식들도 연지봉 집 때문에 이러저런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을 알아서 집에 오기를 꺼렸다. 그래서 아예 읍내에서 살게 한 것이다.

자식들에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맏딸 기옥이 중학생 때부터 바람을 피웠다. 사내들이 항상 꽁무니를 쫓아다니니 농촌에서 농사짓는 부모들이 그것 까지 알 까닭이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애를 덜컥 낳아 놓은 것이다. 사내놈은 겁이 나서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애비 없는 자식을 낳아 놓으니 이런 망신이 없다. 천도술은 애비 없는 자식을 고아원에 맡기라고 호통이지만 기옥은 죽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농촌집으로 들어오려고도 않았다. 자신의 일로 마을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연지봉 귀신이며, 도깨비며, 집터의 동티며, 그런 단골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게 싫다는 것이다. 달천댁이 남편 몰래 쌀을 팔고 패물을 팔고 해서 시내에다 작은 양품점 하나를 차려주었다. 그리고 애를 키우며 혼자 살게 했다.

둘째 기영은 고등학교까지는 잘 다녔다. 그러다 대학엘 진학하겠다면서 부모를 들볶기 시작했다. 계집애가 대학은 무슨.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더니 죽는다고 약을 먹었다. 이런 미친년이 있나? 죽지는 않았지만 위를 망쳐 버렸다. 얼굴이 노랗게 외꽃이 피어서는 매일 아픈 배를 안고 산다. 그러더니 결국 가출하고 말았다. 몇 년 후에 사내를 달고 왔다. 공장 기술자라고 했다. 맏딸 기옥에게 데어 버린 터라 두 말없이 결혼을 시켰다. 그리고 부모 속 썩이지 말고 멀리 나가 살라고 했다. 남편의 고향이 안양이라고 해서 그리로 가서 살게 했다. 딸 둘을 낳고 그런대로 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은 건데?”

“세상에. 아침에 일어나 멀쩡한 사람이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겠지요. 매일 사용하던 화장실인데. 그 물기에 미끈덩 넘어져선 척추를 다친 거라오. 사람이 척추를 다치니 온몸이 마비되고 그러니 창자들도 움직이지 못하고 한 달도 안 돼 그냥 죽은 거요.”

어이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과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기영일 보고 집안 부자겠다, 얼굴 잘 났겠다, 거기에다 머리까지 좋은데 이런 날벼락이 웬 거냐며 동정하는 척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끼리는 집터의 동티가 자식 대에 미친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지금이라도 집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무당의 넋만이 아니라 온갖 귀신들이 장난질을 친다는 것이다.

그래도 천도술은 끄떡없다. 그런 게 다 제 팔자지 집터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셋째 딸 기순을 들먹였다. 초등학교 선생인 기순은 동료 교사인 남편을 만나 그저 탈없이 잘 살고 있다. 아직 자식이 없는 게 험이지만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 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아들 기범의 경우도 별 문제가 없었다. 교육행정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중학교 행정실 서기로 근무했다. 몇 년 전에 셋째 누나가 중매해서 초등학교 선생을 아내로 마지해서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두었다. 그런데 무슨 집터 타령인가? 첫째나 둘째딸의 경우도 그랬다. 요즈음 세상에 이혼하는 일도 흔하고 남편을 먼저 여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다. 특별하달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집터 탓이냐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그렇기도 했다. 모두 생각가질 나름이란 말이 그르지 않았다. 천도술이 그렇게 줏대 있게 대처해서 그랬던지 세월이 지나면서 집터며, 도깨비며, 귀신이며, 무당이며, 말도 많던 소문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니 거의 없어졌다. 그만큼 시대가 개명되었다고 할까? 텔레비전이 일상화되고,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한 집도 제법 되었다. 그러니 머슴도 구할 수 없어서 월급을 주고 관리인을 고용해야 했다. 천도술은 아예 문간채를 뜯어버리고 개축해서 관리인의 숙소로 만들었다. 전엔 자랑스럽게 여기던 농기구도 모두 없애고 곳간을 새로 지어 트랙터의 차고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우재 쪽 능선으로 큰 길을 내어 자식들의 승용차가 바로 집 마당까지 들어오게 했다.

천도술을 가리켜 오관도사니 천도깨비니 흉보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변했다. 얼마 전에는 마을의 리장이 찾아와서 노인회 회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회장은 무슨. 천도술이 펄쩍 뛰어도 경노당 노인들이 그렇게 결정했다며, 노인회장 자리는 추대하는 자리라서 거절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천도술은 그들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 마을의 행사에 기부금깨나 내놓으라는 수작이다. 나이로 따지면야 노인회장 자리를 못 맡을 것도 없지만 그걸 빌미로 돈을 뜯겠다는 것이니 그건 질색이다. 이제나 저제나 천도술이 인색한 것은 한결 같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등을 돌린다. 물론 시골 농삿군의 재물이란 게 얼마나 될 것인가? 땅마지기 있다고 해 보아야 요즈음 같은 세태엔 돈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인색하게 굴며 억척으로 돈을 모아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장 보다 한 급 위인 회장이라 부른다.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 소리를 듣는 판인데 연지봉 대지주를 회장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회장님이 되었다. 오관도사, 천도깨비, 천도사에서 격이 한 참 높아진 셈이다.

리장은 천도술이 노인회장이 된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긴하게 의논 드려야 할 일이라며 말을 꺼냈다.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연지봉으로 오르는 산책길에 서낭당이 있지 않습니꺼?”

“그게 아직도 있남?”

천도술은 바우재 쪽으로 큰 길을 내고부터는 소나무 비탈길을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요즈음엔 서낭당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건물이야 삭아서 내려앉았지만 그 자리야 없어지겠습니꺼?”

“그야 그렇겠네만.”

“그 자리에 대나무가 우거져서 숲이 되었구먼요.”

리장은 그렇게 운을 떼었다. 해풍이 강한 바다 옆의 산언덕에는 해송 말고도 가는 대나무 가 잘 자랐다. 키만큼 자라는 대나무가 억새풀처럼 숲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이곳 서낭당 자리도 그처럼 대나무 숲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곳에 들고양이가 들끓었다. 수십 마리가 넘었다. 처음엔 마을에서 키우던 한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집을 떠나서 떠돌다가 점차로 떼를 이루더니 마침내는 서낭당 대숲에다 집단서식처를 만든 것이다. 그게 말썽이 되었다. 밤에 마실 나갔던 사람들 중에서 골목길에서 뛰쳐나오는 고양이를 만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눈에 파란 인광이 번득이는 고양이가 불쑥 나타나면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고양이들은 낮에는 대숲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여러 마리가 함께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공연히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엔 도깨비불이 기승이었는데 이젠 그게 고양이로 둔갑한 모양이라고 쑤군거릴 정도였다.

리장은 서낭당 들고양이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얼마 전에 이곳에 피서를 왔던 젊은이가 애인과 더불어 어스름녘에 그 숲길로 산책을 나갔다가 고양이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눈에 불을 켜고 일제히 달려드는 고양이의 기세에 놀라서 여자는 아예 기절을 하고 남자는 얼굴 여러 곳을 긁혔다는 것이다. 긁힌 자국이 심해서 고양이의 짓이라기보다 살쾡이의 짓이 아닐까 의심이 간다고도 했다. 고양이가 집단 서식하니 그걸 노려서 살쾡이 같이 큰 짐승이 고양이를 노려서 숨어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름철에 피서 오는 손님들에게 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도 좋지 않고요. 대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서낭당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꺼? 산책로를 좀더 넓히기도 하고요. 그 기회에 고양이들을 모두 쫓아 버리면 좋겠고요.”

리장이 말하려는 요점은 그것이었다. 천도술은 워낙 엉뚱한 제안이라 무엇이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서낭당도 연지봉 기슭이라 천회장님 땅입니다요. 그러니 회장님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합지요.”

천도술은 연지봉이 자신의 땅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산기슭 벼랑과 서낭당까지 자신의 소유인 줄은 몰랐다. 그런 것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생각 좀 해 보세.”

천도술을 그렇게 얼버무렸다. 서낭당을 새로 짓는 것이라면 몰라도 아예 없애버리는 일에 자신이 관여하기에는 어딘가 떨떠름했다. 더구나 이웃 마을인 방내리에서는 국도변인 홍질목의 길을 넓히느라 서낭당을 헐게 되었는데 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상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돈을 나누어 갖기에도 그렇고 해서 마을 노인들이 부부동반으로 중국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중국에 가서는 아예 암소 한 마리를 잡고 푸짐한 잔치까지 벌였는데 그게 동티가 되었던지 여행을 다녀 온 후에 다섯 명이 심하게 앓았고 그 중에서 둘이나 죽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우스개처럼 퍼져서 ‘서낭당 팔아서 중국여행 가세’ 하는 말이 영진리 마을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는 터였다.

“아무튼 회장님만 믿겠습니다요.”

리장은 서낭당의 들고양이가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회장님만 믿겠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 했다.

그렇게 리장이 다녀간 지 며칠 후였다. 넷째인 기범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 왔다. 작년인가 아들의 직급이 높아져서 행정실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짓는 큰 중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왔었다. 건물을 새로 짓는 학교로 전근되는 것은 그만큼 신임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하필 연지봉 남쪽 기슭인 갯목에서 물에 뛰어든 것이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갯목의 갯바위에서 훌치기낚시를 하던 낚시꾼의 낚시에 엉뚱하게 사람의 시체가 끌려 나왔다. 이게 웬 시체인가? 갯목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천도술의 막내였다. 읍내의 중학교에서 행정실장인가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하필 이곳까지 와서 물에 뛰어들다니.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소문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빚보증을 서서 막대한 빚을 지게 되어서 아내와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마침 근무하던 학교의 건물을 새로 짓고 있었는데 몇 푼의 돈을 만회해 보려고 건축 자재의 일부를 빼돌린 것이 들통 났다고도 했다. 학교 교장과 같이 한 행동인데 혼자서 혐의를 홈빡 뒤집어쓰게 됐다고도 했다. 그래서 검찰에 불려 다니며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몇 년 감옥살이를 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아버님께 돈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고 새벽같이 떠났는데요.”

며느리의 말이다.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를 하러 새벽같이 찾아왔다가 아무래도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갯목의 갯바위에 올라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끝도 없이 했던 모양이다. 돈에 인색한 아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아무튼 아비에게는 찾아오지도 않고 갯목의 갯바위에 앉아 물의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그냥 뛰어든 모양이었다. 집안에 무슨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던 천도술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었다.

“뭐여. 몇 억도 안 된다며?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해?”

기막힐 노릇이었다. 그동안 꿍쳐 놓은 돈이 어디 한두 푼인가? 마을 사람들에게 인색하다고, 자린고비 같다고, 사람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그런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내 대에 다 쓰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돈은 필요하다. 고아로 자란 젊은 시절, 돈 때문에 겪은 온갖 고통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돈이란 쓸 데가 있던, 없던 지니고 있어야 하는 종류다. 죽고 난 후에 자식들이 모두 나누어 갖겠지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쓰던 상관이 없지만, 돈이란 필요한 것이다. 천도술은 그렇게 생각했다. 요즈음은 누구나 세끼 쌀밥을 먹고 산다. 돈이 많다고 네끼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쌀 대신 금으로 만든 금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는 신분상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돈이란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천도술은 그렇게 믿어왔다. 그렇다고, 돈이 그렇게 중하다고 하더라도, 자식과 바꿀 수야 있겠는가? 못난 자식. 죽게 된 자식을 위해서 써야 할 돈을 안 쓸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인가? 못난 자식. 천도술은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하는 심정이었다.

막내아들 기범이 죽자 오래 전의 소문들이 다시 살아나 날개짓을 치기 시작했다. 기가 센 집터가 문제라느니, 기씨 무당의 혼령이 앙갚을 한 것이라느니. 전쟁 때 죽은 원귀들이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것이라느니. 그런 소문들이 날개를 달고 떠돌았다. 달천댁과 세 딸들은 만월암 최국사에게로 달려가 점을 치고 살풀이굿을 하고 온통 부산을 떨었다. 천도제 지낼 날을 받고 제물을 장만하고 일할 사람을 물색하고, 물색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 잔치라도 벌이는 줄 알 정도였다.

전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질만도 한데 천도술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는 아예 집에 붙어 있지도 않았다. 천도술은 아들이 뛰어 내렸음 직 싶은 갯바위에 혼자 앉아 있곤 했다. 날이 캄캄 어두울 때까지 물의 소용돌이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러다 저 영감도 물속 귀신이 될라. 갯목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쑤군거렸다.

어둠이 깊어갈 수록 갯목 여울의 소용돌이 물소리는 파도와 더불어 더욱 크게 들려왔다. 때때로 센 바람이 소나무 숲을 스치면서 나뭇가지가 불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물속에서 기범의 혼령이 물귀신처럼 불쑥 솟구치던지 아니면 소나뭇가지를 타고 예전의 도깨비불처럼 천도술에게로 훌쩍 날아올 것만 같았다. 아버지. 돈이 그렇게 중하오. 아들 목숨 보다 중하오. 그런 원망의 말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원망하는 자식놈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것이다. 전쟁 때 죽은 귀신들의 넋처럼, 도깨비불이 되어 가족의 눈에 어릿대기라도 한다면 두려우면서도 반가운 그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예전엔 귀신도 많고 도깨비도 많았었지. 천도술과 가까이 지내던 상표 어른. 그 어른은 술을 어지간히 좋아했는데, 긍게벌에 추수하러 갔다가 술이 억병으로 취해서는, 갯목 개울을 건너는데, 도깨비 서너 명이 달려들어 지겟다리를 움켜쥐고 늘어지는데, 쌀 세가마를 지고서, 그걸 뺏길까봐. 이것 놔라. 이것 놔. 그러면서 밤새도록 싱갱이질을 했는데, 새벽녘이 되어 으스스 정신이 돌아와 보니 도깨비란 놈들이 지게 멜빵을 개울가 말뚝에 매어 두었더라고. 그길로 시름시름 앓더니 일년을 넘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었느니. 그 도깨비들이라도 아들 녀석과 더불어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천도술은 귀신이든, 도깨비든 한번도 보지 못했고 믿으려 들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모든 것들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살아서 생생하던 생명이 죽어서 잿불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데서야. 천도술은 그래서야 되겠는냐고 곱씹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혼령들을 위해서 고사라도 지내보았으면. 예전 이웃들의 지청구가 떠오른다.

“이 사람아. 그만큼 큰집을 짓고 살면 고사라도 지내야지. 죽은 귀신들이 뭘 먹고 사나. 연지봉 주인답게 크게 고사라도 지내라고.”

“난 그런 것 믿지 않네.”

“ 허, 이 사람. 믿고 말고가 있남. 그 고사 음식 남이 먹나. 내 이웃들 몫인데. 뭘 그리 아끼나?”

이웃들의 타박이었다. 하긴 그렇지. 잘 사는 집에서 고사를 크게 지내면 그 음식이야 모두 가난한 이웃들의 몫인데.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쓸 데 없는 짓들이고 남이 잘되니 배 아파서 하는 말로만 여겼다. 그렇게 베풀었더면 자식들 마음도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았으리. 그 까짓 돈 몇 푼이나 된다고.

천도술은 그렇게 갯바위에 혼자 앉아 예전의 도깨비며 귀신들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리하여 물속에서 불쑥 솟구칠 아들의 넋도 만나기를 바라지만, 개울 건너 들판의 과수원 너머에 새로 난 고속도로의 진입로가 있어서 그리로 나오는 자동차들이 구라미 언덕을 넘으면서 곧장 갯목 마을 쪽으로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쏘아대는 바람에 귀신들이며 도깨비들이 나타날 빌미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몇 며칠을 기다려도 헛수고였다.

몇 날이나 기다리다 지친 천도술은 구라미 언덕에서 쏘아대는 자동차의 불빛을 원망하며 오솔길을 돌아서 어촌마을의 주막으로 갔다. 헛헛한 속을 술로라도 풀어야 했다.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주모가 조심스런 표정을 짓는다. 천도술의 막내아들 죽은 이야기는 마치 수십 년 전부터 기다려 온 소문이 실현되기라도 한 듯이 온통 화제였다. 연지봉 귀신 이야기와 더불어 두고두고 회자되리라.

“술 주소. 좋은 안주로 말이요.”

서너 사람의 술꾼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뜬다. 자식 잃은 노인의 아픈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는 배려다. 몇 주전자의 술을 비워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한 번도 술집에 와서 술을 마신 기억이 없다. 술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집에서 담근 술 몇 잔으로 그 자신을 챙기곤 했다. 부자가 된 그의 몸가짐이 그만큼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술집을 나서니 연지봉 자신의 집이 덩그렇게 올려다 보인다. 워낙 외진 곳이라 늘 외등을 밝히고 있어서 높다란 지붕의 윤곽과 붉은 벽돌담 그리고 푸른 대문이 뚜렷이 보인다. 그 불빛을 보면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저 집이 언제 망하는가를 기다려 왔을 것만 같다. 전에는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가파른 솔숲 비탈길로 오른다. 서낭당 가까이에 이르자 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쏴- 들린다. 그러자 문득 서낭당의 대숲 사이로 파란 불들이 어른거린다. 야광이 철철 흘러넘친다. 들고양이들이 무너진 서낭당에 대량 서식하고 있다는 말은 이미 리장에게 들었다. 그러나 평소 늦은 시간에 다니지 않은 터라 그런 광경을 직접 목격할 일이 없었다. 파란 불빛이 사람의 발길을 의식했던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하나가 아니고 수십 개나 된다. 아니 숨겨진 것들을 합치면 수백 개인지도 모른다.

예전엔 호랑이가 나왔었다지. 새벽에 치성 드리던 아낙네가 호랑이의 눈에서 철철 떨어지는 불빛을 보고 살려 달라고 빌고 빌다가 기절했다지. 아침에 깨어나 보니 다친 곳은 없고 호랑이 발자국만 있었다지. 호랑이가 산신령의 현신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깊은 산중도 아니고 바닷가 벼랑까지 호랑이가 나타났다면, 그 서낭당 신령이야 영험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부의 아낙들이 자주 와서 치성을 드리던 곳이지만, 그런 영험도 시대가 지나면 달라지는 것인지, 지금은 치성 드리는 아낙도 없고, 무너진 서낭당 자리에 고양이들만 득실거린다. 그런데 혼령의 문제라면 고양이라고 해서 호랑이만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을까?

천도술은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래, 고양이도 서낭신의 현신이라면, 저렇게 파란 인광을 내쏘며 바쁘게 움직이는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가 가난 속에서 힘들게 살아간 마을 사람들의 넋을 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부자가 된 그를 시새움하면서, 인색하고 몰인정한 그를 원망하면서 죽어갔을 이웃들. 돌이켜 보니 자신은 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도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쌀 한 됫박 선심 쓴 기억도 없다. 가난한 떠돌이가 남의 마을에 정착해서 그만큼 부자가 되었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지. 자신의 재물만 챙기면서, 비난할 테면 해라. 내가 빚진 것 없는데. 그러면서 보릿고개 때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들고양이 한 마리 정도로 가볍게 여기었지. 그러니 죽은 망자들의 넋을 담고 있는 저 들고양이들이 모두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할키고 목줄을 물어뜯는다 해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서낭당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란 불빛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그러다 자신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기 시작했다. 키작은 대나무들이 촘촘히 자라고 있어서 파란 불의 실체는 잡을 수 없었지만 불빛의 동그란 윤곽만은 점점 또렷해 왔다. 어쩌면 그 불빛 속에 자신의 막내아들 기범의 혼령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의 귀신불, 도깨비불이 지금은 고양이의 몸속에 스며 있을 것 같았다. 천도술은 그 불빛들을 향해서 계속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