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매원리를 상징하는 것은 왜관읍에서 매원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매화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매화나무를 마을에 심기 시작한 것은 불과 7~8년 전이었다.
칠곡군화사업의 일환으로 매원리에 시행된 이 정책은 애초에 매원리를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거(매화나무)를 지천면 신동 신리에 거다가 군화 사업하면서 반상회 회보에 나왔더라고. 군화사업 매화꽃이 왜 그리(신리)로 가느냐, 그래 군에 전화를 했어. 그래가 왜 꽃이 신동으로 가느냐 하니깐 답을 못하잖아요. 왜 그리로 가느냐에 대해. 그래가 매화꽃 군화사업은 여기 매원에 해라. 그래가 역사적 배경을 설명을 했어요.”
한 마을주민에 따르면, 처음에는 군화사업으로 지천면 신동 신리에 매화를 심기로 되어 있었으나, 역사적으로 매화를 매원리에 심는 것이 더 좋겠다는 매원리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매원리에 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전까지 매원리에는 매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매화나무는 하천을 따라 가로수로서뿐만 아니라, 소득 작물로 마을 사람들에게도 배분되어 각 가정에서도 매화나무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첨에는 소득 작물로 공급을 많이 했어요. 인쟈 밭농사 짓는 사람인 수를 해가 했는데 연세 많은 분들이 농사를 짓고 하니깐 아무 관리를 못 하는 거야. 제초작업도 하고 약도 지가(본인)하고 하니깐 회원을 몇 사람 (대표해서) 시켜 버렸어. 그래도 한 사람은 끝까지 한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했는데 결국은 관리를 못해서 지금은 여기는 소득 작물이 주원이 참외, 포도 이러니깐 매실에는 별로 이만큼은 소득이 안 나오니깐 관심이 솔직히 없어요.”
마을 주민의 말처럼 당시 각 가구당 3~4그루씩 배정하여 마을 사람들은 개별 가옥의 앞마당이나 뒤뜰, 개별 소유의 밭 등에 심었다. 그러나 7~8년 전 마을 사람들에게 매화나무 심기는 농사를 짓는 데 있어 귀찮기만 한 존재였다고 한다. 참외와 포도농사로 한창 바쁠 시기에 나무에 거름을 주고 제초작업을 해야 했으며, 모심기에 한창 바쁠 시기에 매실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각 가정의 매화나무는 한두 그루씩 사라져갔다.
참외와 포도 등의 소득 작물에 밀리기는 하지만, 7~8년 전 칠곡군화사업으로 매원리에 심어진 매화나무는 현재 잎이 무성하게 자라 매원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가 되어 있다. 매화 낙지형 매원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현재 매원리의 보배가 된 매화나무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정보제공] • 이동진(남, 1952년생, 매원리 거주, 전통마을보존회 회장) • 이효석(남, 1957년생, 매원리 거주, 매원2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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