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자료.1
한미FTA는 어떤 미래를 빚어낼 것인가?
- 정부 논리 비판 -
정태인(성공회대 겸임교수,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졸속의 협상, 괴물을 낳다
4월 2일 오후 괴물이 탄생했다. 협상단은 영화로 치자면 진실을 은폐하는 한국 정부 역이 딱 맞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들은 마치 괴물과 맞서 싸운 송강호 가족인양 스타가 됐다. 한숨만 쉬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왕 영화처럼 흘러 가고 있으니 이제는 괴물을 죽일 차례다. 송강호가족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국민, 특히 한미 FTA로 가족마저 파괴될 수 있는 바로 우리 서민들이다.
(1) 타결 결과의 핵심 - 관세와 법.제도의 교환
괴물의 탄생이 미국 탓이라 해도 영화에서는 어디까지나 우연이다. 그러나 현실의 괴물은 정확히 미국 의도의 산물이었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미의회조사국 리포트 2006.5). 관세장벽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 결국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바로 미국 초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협상단이 자화자찬하는 성공은 ‘관세인하’이다. 예컨대 3000cc 이하 자동차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다는 것이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우리나라 자동차세제 개편 등 온갖 비관세장벽, 즉 우리의 법과 제도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요구대로 바꿔야 했다. 미국 차를 한 대라도 더 팔게 해 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 대형차의 소비는 진작되고 가뜩이나 문제 많은 우리의 대기는 더욱 오염될 것이다.
* 정부는 미국 자동차 수입이 5000대에 불과하니까(즉 무역 흑자를 들어) 우리의 법과 제도의 변경을 합리화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연간 25억 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는 농업분야나 엄청난 무역 역자를 보이고 있는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미국이 비관세장벽을 없애야 한다. 즉 우리 정부는 농업의 보조금 문제 등을 문제삼아 미국의 법을 고치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역조 분야의 미국 비관세장벽을 조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불균형은 한미 FTA 전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섬유의 관세 인하를 얻어 내기 위해선 엉뚱하게도 유전자 변형 생물체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하는 계획을 제출했다(정부는 부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돈 몇푼 벌자고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 목숨까지 내 맡기려 한 것이다. 또 5월에 수입하기로 약속한 뼈있는 쇠고기 수입을 위해 우리의 위생검역제도는 허수아비가 되어야 한다. 광우병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쇠고기, 그리고 다이옥신 검출로 상징되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수입은 한미FTA라는 괴물이 앞으로 가져올 ‘위험 사회’를 미리 보여준다.
미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예컨대 의약품 분야의 결과를 보자. 유시민장관이 야심차게 ‘약값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단서를 붙였다. 만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미국과 FTA를 맺으면서 미국이 요구한 여러 제도, 즉 의약품 특허기간 20년을 사실상 3-5년 연장하는 제도, 재심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가 약값 결정에 관여하는 제도를 만들면 이 정책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로 끝날 것이라고, 즉 사실상 사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과는 꼭 그렇게 됐다. 유장관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5년간 6000억원에서 1조원(의료단체의 주장으로는 약 10조원)의 추가 약값 지출이 불가피하다. 4월 4일 보건복지부는 피해액을 연간 1천억원으로 대폭 축소해서 발표했지만 이는 최저 약가제를 받아 들이지 않은 결과라고 하지만 실은 제약회사의 피해만 계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오스트레일리아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대체로 연간 5천억-1조원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는 충분히 자료를 공개해서 객관적으로 검증할 사안이다).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특히 불치병 환자의 가족에게는 치명적이다. 대부분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하는 우리 제약회사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복제약을 시장에 내놓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국민 모두가 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면 건강보험이 붕괴하는 건 시간 문제다.
* 의약품 분야는 초국적기업을 위해 법과 제도를 변경하여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한미 FTA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의약품 분야의 피해는 정부와 반대 진영의 추정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한미 FTA로 인해 의약품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연장될 것인가,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정부 6개월 vs 업계 3-5년)
미국 FTA의 목표, 오로지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변경은 이렇게 실현된다. 별로 저작권이 많지도 않고 더구나 수출은 더욱 어려운 여건인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 간다고’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렸다. 미국 문화 산업계는 앉아서 20년 동안 저작권료를 더 챙기게 됐다.
지적재산권, 자동차 세제변경 등 우리 법을 100개 이상 고쳐야 하는 경우(정부는 37-40개라고 주장)가 모두 똑같은 사정이다. 반면 미국은 주(州)법을 포괄적으로 유보했기 때문에 법 개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고 한국 기업이 한미 FTA를 들이대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요약하자면 이번 협상의 특징은 관세인하를 위해서 우리 법과 제도의 변화를 맞바꿨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수출의 증가를 위해, 또 “이런 쾌거를 이뤘다”고 국민에게 선전하기 위해 훨씬 장기적으로,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게 국민의 삶을 뒤흔들 제도 변화, 특히 건강과 관련된 제도의 변화를 주저없이 선택한 것이다. 혹여 차기 정부가 이런 흐름을 뒤바꾸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가 기다리고 있다. 초국적기업은 국민국가의 법, 나아가 헌법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2) 미국의 비관세장벽은 없앴는가?
반면 우리는 미국의 비관세장벽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적 비관세장벽인 무역구제제도를 보자. 수출업계가 제로잉 등 몰상식적인 이 제도로 인해 입는 손해가 매년 15억 달러라고 하니 이 분야가 우리 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16개 독소 조항을 다 바꾸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정부는 결국 미국 법을 고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법 개정이 필요없는 위원회 설치가 유일하게 얻은 것이라니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다.
그 다음으로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꼽는 것이 얀포워드(미국의 독특한 섬유의류무역 원산지 기준)이다. 정부는 86개 품목을 얀포워드 기준에서 제외시키겠노라고 호기롭게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 5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대부분의 수출 의류가 중국제로 취급당할테니 관세를 10% 이상 내린다 한들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 섬유분야의 경우 국내 전문가들(예컨대 섬유산업협회 등)도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결정이 내렸는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증언, 따라서 피해 규모 산정도 현재로는 불가능하다고... (대체로 산자부가 가장 엉터리 협상을 한 듯... 물론 포괄범위가 넓기 때문이겠지만)
자동차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서비스분야의 전문직 상호 인증은 비자쿼터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 해운 강국 한국의 배가 미국 연안을 다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역시 물거품으로 판명 났다(존스 액트).
(3) 개성공단 문제
북핵 문제와 연계하여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니 가상하기는 하다. 하지만 역외가공단지라는 추상적 이름이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싱가포르 및 EFTA와의 FTA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 전역을 역외가공단지로 인정했다. 더구나 이번 협상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북미관계, 북핵문제의 해결이 독립변수이다. 또한 환경문제와 노동문제가 따라 붙었으니 어느 세월에 개성공단의 한국 원산지 인정은 가능할 것인가. 그러므로 개성공단 문제는 한미 FTA에서 명백히 후퇴했다.
* 개성공단 문제 논쟁은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번 협상 결과는 ‘쾌거’가 아니라 엄청난 ‘후퇴’이다. 협상 결과에 대한 전형적인 粉飾이다. 개성공단 문제는 다른 나라의 경우 별 문제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였고 따라서 문제 자체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앞으로 FTA를 맺을 다른 나라들, 예컨대 EU도 한미 FTA의 결과를 문제삼아 쉽사리 한국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명백한 협상 실패이다.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한미 FTA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4) 한국 산업구조의 변화 - 중국을 뿌리친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까?
우선 산업구조의 변화부터 살펴 보자.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수준에서는 미국 서비스업 특화, 한국 제조업 특화가 일어난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첨단부문의 미국 특화, 범용 부문의 한국 특화가 일어난다. 특히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일반기계나 석유화학 산업에서 그런 현상은 정확히 나타날 것이다.
이 결과는 한국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와 정반대다. 제조업에서 중국이 쫓아 오기 때문에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우리 내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쇼크까지 필요하다는 것이 저간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나라가 범용 제조업으로 특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바로 코 밑까지 쫓아온 분야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숙원인 동시에 중국을 결정적으로 따돌릴 수 있는 분야인 기계 및 부품소재 산업은 한미 FTA로 오히려 구조조정 당하게 된 것이다.
(5) 외국인 투자는 증가할 것인가?
정부는 미국기업이나 일본기업이 우리나라로 공장, 연구소를 이전시키는 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가 그런 결과를 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저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을 포함시키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세계은행의 2005년도 연례 보고서는 이런 주장을 간단하게 기각한다. 거의 모든 실증 분석에서 투자자 보호와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감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외국인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멕시코의 사례와 OECD의 2006년 보고서이다. 그러나 멕시코는 미국과 인접한 나라이고 임금이 대단히 낮다는 점에서 특수한 경우이다. 한편 최근 10년간 OECD의 사례를 분석한 논문은 중력모형을 사용했기 때문에 나라 간의 근접성을 과장하고 있다. 즉 EU 각 나라간의 교차 투자, 그리고 나프타의 경험이 직접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사례에 적용할 수 없다.
결국 강력한 배후 시장이라든가, 그 나라의 특유한 기술 및 인력, 즉 생산성 향상의 내적 능력이 없는 한 외국인 투자는 쉽사리 증가하지 않는다.
* 외국인 직접투자의 양을 결정하는 본질적 원인과 부차적 원인 중 세금 및 임대료 인하, 투자자보호 등은 부차적 원인에 속한다(동북아위원회 대통령 보고서).
(6) 공공서비스 분야의 유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서비스 분야는 서민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서비스 분야가 별로 개방되지 않은 데 대해서 아쉬움을 거듭 표했다. 정부 발표로 보면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 그리고 철도, 수도, 전기, 개스 등 네트워크 산업은 ‘포괄적으로’ 유보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 미국기업이 이익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흥미를 보이지 않았을 것라는 점, 둘째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미진한 부분은 우리 스스로 개방하겠다”) 한국 정부가 ‘자발적 개방’(unilateral opening), 즉 민영화 및 규제완화를 시행할 것이므로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예컨대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미국의 병원이나 대학교는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에 앉아서도 돈 잘 버는데 힘들여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해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법인화, 이윤송금, 한국 환자 진료, 건강보험 환자 제외 등 각종 특혜를 제시했다. 이 시범 사업은 언젠가 전국으로 확대할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인천은 곧 한국의 미래이다. 결국 한미 FTA는 한국 재경부의 계획을 시행할 훌륭한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될 것이다. 마치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가 IMF 요구 이상으로 민영화, 규제완화를 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비스 분야의 양극화이며, 불행하게도 서민들은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로부터도 배제될 것이다.
(7) 한미 FTA는 세계 최강의, 살아있는 FTA이다.
물론 정부는 이런 유추를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의 성격 자체가 이미 ‘실현된 미래’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한미 FTA는 서비스 시장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방하고 있으며 서비스의 현재유보에는 래칫 원리가 적용된다. 여기에 한미 FTA 특유의 ‘미래의 MFN'까지 추가됐다. 이 세가지가 어울리면 이 FTA는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현재 정의할 수 조차 없는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되고(네거티브 방식), 언젠가는 모든 서비스가 개방될 수 밖에 없으며(래칫 원리), 미래에 한미 FTA보다 더 좋은 조건의 다른 나라에 개방을 할 경우 그 조항은 한미 FTA에 소급 적용된다(’미래의MFN’).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갖췄으니 한미 FTA는 가히 세계 최강의 FTA이다.
(8) 기타 최근에 개발된 정부의 논리들
할 말이 없게 된 정부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첫째, 관세인하 만으로도 성공한 협상이라는 것이다(인하대 정인교 교수). 천만의 말씀이다. 관세 2.5%를 한꺼번에 내리고 이를 모두 가격에 반영한다 해도 소나타로 치면 50만원 정도 떨어지는 것이다(업계에서는 20-40만원 정도의 가격 인하 여력이 생긴다고 평가한다). 과연 이 정도로 혼다 아코드를 타던 미국인이 차를 바꿀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의 17배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17 곱하기 0은 0이다. 또 있다. 수출이 대폭 늘어나리라던 전자산업의 경우는 대부분의 관세가 0%에서 1% 남짓이다. 그나마 2% 가량의 관세가 붙어 있는 고급가전 일부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인 마킬라도라에서 생산한다.
둘째로 써먹은 논리는 ‘소비자잉여론’이다. 우리가 개방을 훨씬 많이 했지만 그 덕에 수입품 값이 그 만큼 싸졌으니 소비자들의 이익이라는 얘기다. 이 논리대로라면 뭐 하러 힘들여 협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 관세를 즉각 모든 나라에 대해 철폐하는 것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양보라고는 모르는 미국은 소비자 이익을 외면하는, 즉 경제학의 abc도 모르는 무지한 나라가 된다.
* 경쟁효과와 경쟁역효과를 동시에 반영하려면 ‘소비자 잉여’(정확하게는 소비 측면)와 ‘생산자 잉여’(생산 측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는 부문 부문 별로 그 효과를 추정해야 할 일이지 추상적인 논리로 선험적인 답을 도출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부분 분석이 끝난 후에는 다시 거시 경제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의 경제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CGE 모델을 사용하여 FTA 결과의 방향과 상대적 크기만을 측정할 수 있을 뿐인데 현재 KIEP의 추정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영향력 평가팀은 한미 FTA는 0.22 - 0.28%의 GDP 증가, 15만명 정도의 실업을 낳을 것으로 추정했다.
셋째 새롭게 개발된 논리는 아니지만 이제 전가의 보도가 된 경쟁효과론이다. 심지어 의약품 특허를 사실상 3-5년 연장한 것이 우리 제약회사의 신약개발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이화여대 최원목교수). 그러나 신약개발에는 20년이 걸리니 이를 감당할만한 모험투자자가 다수 존재해야 하고 충분한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당연히 제약업계는 갈 곳이 없다. 경쟁효과는 언제나 이러한 ‘경쟁역효과(anti cometition effect)'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과연 관세를 대폭 내리고 비관세 장벽을 없앨 경우 미국기업과 경쟁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산업이 얼마나 될 것인가.
대안은 있는가?
궁지에 몰리면 정부 쪽은 언제나 “그럼 대안은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물음은 첫째로 중국과 일본이 먼저 맺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즉자적 질문(대통령의 ‘전가의 보도’), 그리고 둘째로 미국을 도외시 하는 생존 전략이 가능한가라는, 조금 더 장기적인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쓸 데 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과의 FTA는 미국도 원하지 않는다. 현재의 제조업 관세를 없애면 미국의 범용 부문, 특히 섬유, 기계, 전자(장차 자동차도) 중 중저가 부문은 완전히 구축되고 농산물에서의 이익도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80년대부터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해서 역내 생산체계가 완성됐고 나프타 이후 멕시코와 미국에 대공장을 이전시킨 일본의 경우 FTA의 이익은 별로 없다. 반면 한국보다도 경쟁력이 없는 일본 농업은 초토화되기 십상이다. 제조업의 이익이 농업의 손해를 만회할 수 없다. 그래서 2005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가 미일 FTA는 시기상조라는 선언을 했고 아베 총리가 그 기조를 바꿀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은 사실 외교안보적 측면이 포함된 역내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FTA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두 측면을 들여다 봐야 한다. 첫째는 모든 FTA는 산업구조조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것이 지역 내 역학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첫 번째가 다분히 경제적 측면이라면 두 번째는 외교안보적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은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는 두 번째 측면을 주로 들여다 보자. 2월에 발표된 아미티지 리포트가 명확하게 보여 줬듯이 한미 FTA는 미일동맹의 보완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FTA의 속성 중 하나인 MFN의 존재로 인해 한국은 이제 역내 국가와도 한미 FTA에 버금가는 FTA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은 한국을 지렛대로 경쟁적 자유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다른 나라가 뒤이어 미국과 FTA를 맺는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도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s) 전략을 관철시키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역내의 국가가 전부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원래 미국의 전략인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는 사명을 달성하게 된다.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미국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으로선 최선의 그림이다.
*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FTA에 이어 중국, 일본, EU와 FTA를 맺어 FTA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무식한 이야기이다. 허브와 스포크 전략은 스스로 대규모 시장과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가까운 지역에 배후시장을 가지고 있어야 성립한다. 멕시코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FTA를 맺었지만 어느 누구도 멕시코를 FTA의 허브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500억 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내면서도 여타 국가와는 모두 적자를 기록한 나머지 결국 FTA 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멕시코의 현실이 우리의 미래이다.
이제 동아시아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꿈은 사라진다. 적어도 아시아가 독자의 사회경제체제를 형성하여 미국 및 EU와 3자 정립함으로써 최대의 이익과 동시에 세계의 안정을 도모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한미 FTA는 동아시아의 자체 지역주의를 무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대안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방법에 FTA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FTA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 한다면 역내 국가가 모두 모여 미래의 모습에 최소한의 합의를 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역내의 각종 격차를 줄이는 다자간 FTA 형태가 유일하다. EU모델이 이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형 FTA와 같이 대단히 세밀하게 항목이 나뉘어져 있는 형식으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지극히 어렵다. 마치 미지수에 비해 식의 개수가 부족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미국과 같은 강력한 힘이 이를 강요한다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연전에 무산된 FTAA가 그 예이다.
그렇다면 무슨 길이 있을까? EU의 경험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역내의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사업을 다자가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신뢰를 쌓고 여기에 기초해서 점진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길이다. 동아시아라면 역내 철도, 역내 에너지망, 역내 IT 망, 친환경인프라, 나아가 IT 표준 등을 공동으로 건설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내 국가간 경제력 격차, 사회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FTA 방식은 약한 나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물론 공동의 위기라든가(외환위기 때 맺은 치앙마이 협정이 그 예이다), 아니면 커다란 공동의 이익이 생길 때(북한 연안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든가^^) 합의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예외적이라면, 공공재일 수 밖에 없는 네트워크 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간의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아시아형 FTA 논의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이 새로운 FTA 유형은 철저히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며 동시에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내용이 확보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물론 한미 FTA는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한국경제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공동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무산시킨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뿐 아니라 아시아의 대중을 위해서도 한미 FTA는 중지해야 한다. 현 정권은 역사에서 한국 민중의 삶을 파괴한 주범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장 서 가로막은 무지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내 인프라의 건설, 역내 미개발 지구의 공동 개발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또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될 일은 너무나 많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경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유명무실하지 않고 실제로 굴러갈 다자간 체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야말로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이 체제가 성립될 최소 조건은 간단하다. 이 체제를 받아 들여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중국 또한 미국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국내 사정 때문에 극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고 또 어떤 계기에 의해 좌절될 수도 있지만 최근 6자 회담이 결국 ‘북핵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과정도 이러한 관점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아세안을 시작으로 동북아 3국,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그리고 인도를 이으려 하고 있다. 미국은 에이펙(APEC)을 통해 아시아 중심의 공동체를 소극적으로 견제하고 다자간 협의를 ASEAN+3(한중일)+3(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인도)로 확대하는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일본에게 이러한 다자간 틀은 다분히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양자간 FTA가 적극적 아시아 점령 전략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견제하는 다자간 틀을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양국의 패권을 모두 원하지 않는 나라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위로부터 러시아, 아세안, 인도가 바로 그들이고 상대적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는 한국이 이들과 할 수 있는 협력사업은 대단히 많다. 즉 아시아의 종축을 먼저 형성하고 강대국들과는 아시아의 인프라망을 건설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중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FTA를 설계하여 전체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FTA를 중지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시작하지 않아야 했을 일을 시작했고 또 타결까지 됐다. 그래도 중단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잠긴 비용이 아까워서 잘못된 결정을 고집하면 더 큰 손해를 볼 뿐이라는 것이 경제학이 가르치는 바이다.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한미 FTA를 한일 FTA처럼 중단시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 일본, 중국, EU, 캐나다와 동시에 FTA를 추진하는 상태가 된다.
한국이 그리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 나라는 한국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미국과 먼저 맺으면 MFN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FTA도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되므로 미국은 원래 계획대로 맨 마지막으로 미뤄야 한다. 현 정부의 원래 계획, 즉 한일 FTA를 높은 수준으로 맺고 이후 중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도 포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전략으로 공동체 형성 보다는 대 중국 압박 전략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 국민투표에 의해 FTA의 체결을 막는다면 미국으로서는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미국과의 FTA를 꺼리는 상황에서 아시아의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미국이 그래도 매달릴 곳은 한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중국과의 FTA를 산관학 연구로 격상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미국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중국과 EU와의 FTA도 가능한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틀에 의해서 진행시켜야 한다.
오히려 한-중-일 FTA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각국의 격차, 각국 내 지역별, 계층별 격차를 줄이고, 사회문화적 협력을 증대하며 역내 개발 및 표준화를 명시하는 아시아형 FTA(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언어의 혼란을 피하는 길이겠지만 현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를 정립하는 사전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미국의 압박이 거세져서 공동체 형성에 절대적인 방해가 된다면, 한중일이 동시에 미국이나 EU와 협상을 한다면 현재와 같은 독소조항은 대부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한중일 FTA가 역내 국가간 격차를 줄이고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진보학계부터 시작해서 국가 간에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