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슬에게
잘 지내고 있지?
조금은 소식이 늦었구나.
여긴 봄이 한창이라 산색이 날마다 달라진다. 그곳은 주변이 산인지 들인지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곳인지 궁금하구나. 하긴 네 생활이 계절을 느낄만한 여유가 없겠지.
남자는 군생활은 3년하고 얘기는 30년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젠 이 말도 안 맞겠지. 2년 하고 40년 할려나. 내 경험에 의하면 내가 제대한지가 올 해로 꼭 26년인데 아직도 군 생활이 뇌리에 생생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일 것 같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잊지 못하는 기억이 더러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은 부모에 대한 거다. 불효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두고 서럽게 우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님을 서운하게 한 그래서 미안한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가 입대할 때 삼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사회든지 똑같다. 주변사람들에게 잘 하는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세슬이 네가 지금 생활하는 그곳은 네 인생에 있어 단한번의 기회란 걸 잊지 마라.
지금 네가 네 주변에 잘하지 못해서 그리고 그것이 네 마음 가운데 미안함으로 자리한다면 네 평생 동안 미안함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늘 나 자신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삼촌은 5월 23일에 입대를 했는데 훈련은 6월에 받았다. 아직도 논산벌의 그 지독했던 황토 먼지와 비가 왔을 때의 그 진창...포복, 철조망통과를 마치고나니 엠식스틴 약실까지 황토가 차서 총을 물에 씻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그렇게 무식하게는 않겠지. 근데 삼촌은 그때는 별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군대보다 군대 가기 전에 대학교 다닐 때 병영집체 훈련이란게 있었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머리 빡빡 깍고 10일동안 창원 39사단 신병 교육대에 입소해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 때 처음으로 총을 쏴봤다. 그것도 엠완으로 ...그 총은 반동이 엄첨 심하다 식스틴의 두 배 이상의 충격인데 총 소리도 무척 컸었다. 사람이 긴장을 하면 오줌이 마려운데 당시 조교들이 사선 아래에 대기 중인 우리를 보고 그 자리서 뒤돌아서 소변을 보라고 했는데 한 이삼십 명이 다 뒤돌아서 소변을 봤다. 십여미터 뒤에서 대기병력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부끄럼 같은 건 생각 나질 않더구나.. 덕분에 대기 병력들은 각양각색의 고추 구경을 잘했고...
그리고 또 기억 나는 건 화생방훈련인데 아예 방독면도 없이 무식하게 불을 피워 진짜 죽는줄 알았던...
평소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네게 글을 쓰려하니 어디서 샘솟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사단 신교대는 6주간 훈련을 받나? 삼촌은 4주 받고 후반 주특기 훈련을 7주 더 받았는데 보병은 6주로 끝나나? 그렇게 보면 한 절반은 한 것 같구나.
삼촌은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 군인법회를 본다. 그래서 비교적 요즘 군인들의 생활과 생각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네가 군대 가있고 좀 있으면 대용이가 가고 도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엔 대영이가 가는데 싶어 요즘엔 좀 더 마음이 쓰인다.
휴일에 가능하면 법당에 나갔으면 좋겠다. 종교를 권유하기보다 불교라는 문화를 접해 보는게 네 앞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세계인들에게 불교문화는 상당한 매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새 삼촌네는 참 바쁘다. 아침에 삼촌이 7시 15분쯤에 대영이 태우고 나오고, 다영이는 30분쯤에 학원차 타고 가고 외숙모는 40분쯤에 출근하고, 저녁에 다영이는 저녁 먹고 학원가서 10시 30분쯤에 오고 대영이는 10시에 마치면 거의 삼촌이 태워다 웅촌 학원에 내려다 주면 12시 20분쯤 집에 들어온다. 물론 너도 겪었을 테지만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교육관련 정책은 정말 너무 마음에 안 든다.
그러다 보니 다들 지쳐서 얼굴 보며 얘기 나눌 시간도 많지가 않다. 다들 바쁘게 사는 이유가 미래의 안락함이라고 했는데...중요한건 현재의 안락함인데...
아무튼 세슬이의 현재는 훈련병 신분이니 지시 받은 것 잘 이행하고 주변에 잘 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멋진 사나이가 되길 바란다. 이웃에 잘 한 기록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리 하늘도 기억해서 그 미래에 되돌려 준다고 한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훈련을 잘 마치길 빈다.
그럼 이만.
작은 외삼촌이 외삼촌 가족을 대표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