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잡하고 단순한데 끌리네”…시총 42조 로블록스, ‘초통령 게임’ 된 비결 3가지
윤진우 기자
입력 2021.04.03 06:00
누구나 즐기는 원초적인 재미
초딩도 원하는 게임 직접 만들어
친구들과 소통하는 SNS 기능까지
가장 진화한 메타버스 사례로 꼽혀
작년 3000억원 적자, 수익성 확대 숙제
로블록스 소개 포스터.
미국의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가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조잡한 그래픽에 단순한 게임 구성에도 직접 게임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로블록스가 청소년들이 머무르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됐다"며 "로블록스의 향후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2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로블록스의 시가총액은 370억7300만달러(약 42조원)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등교를 하지 못한 학생들이 로블록스에 빠지면서 1년 사이에 기업 가치는 8배 넘게 뛰었다. 로블록스는 지난달 10일 상장 당일 시총 43조원을 넘어섰다.
로블록스는 2004년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데이비드 바수츠키 로블록스 최고경영자(CEO)와 에릭 카셀(2013년 사망)이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2006년 첫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10년이 지난 2010년대 후반부터다.
로블록스는 현재 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로블록스의 지난달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수 1억6600만명이다. 이 가운데 16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블록스의 지난해 매출은 9억2390만달러(약 1조500억원)로 전년 대비 82% 늘었다. 업계에서는 로블록스의 매출이 올해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블록스의 인기비결을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했다.
① 원초적인 재미에 웃고 떠들면 시간 가는 줄 몰라
로블록스는 다양한 게임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이다. 로블록스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션(앱)을 모바일 또는 PC에 설치하면 5500만개가 넘는 게임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 각각의 게임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하는 기존 게임 플랫폼과 차별점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를 3차원(3D) 입체 가상세계에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한 그래픽과 단순한 게임 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잡하고 단순한 매력이 어린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제한시간 내에 탑을 오르는 ‘타워 오브 헬’의 경우 탑에서 떨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아바타 모습이 재미를 유발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누구의 아바타가 더 추하게 떨어지는지를 뽐내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이런 원초적인 재미가 어린이들을 자극하면서 이 게임을 즐긴 누적 이용자 수는 106억명을 넘었다.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로블록스는 국내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하지만, 단순한 구성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며 "원초적인 재미를 자극하는 게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로블록스 모바일 앱 실행 화면.
② 초딩도 직접 만든다…모든 장르 게임이 한 곳에
로블록스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누구든지 자신만의 게임을 제작해 불특정 다수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개발사가 만들어 유통사가 운영하는 기존 게임과 가장 큰 차이다.
로블록스는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로블록스 스튜디오’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사용법이 직관적이고 간단해 초등학생들도 자신의 이름을 딴 게임을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게임을 하던 이용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기능을 넣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는 로블록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게임 장르도 다양하다. 역할수행게임(RPG)부터 총싸움(FPS), 레이싱, 어드벤처까지 사실상 모든 장르의 게임을 로블록스 플랫폼 안에서 즐길 수 있다. 현재 로블록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룩헤이븐’은 역할수행게임, ‘입양하세요’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펫게임이다.
③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SNS 기능도 있어
로블록스는 게임을 뛰어넘는 소셜미디어(SNS) 기능도 품고 있다. 로블록스는 콘텐츠를 이용자가 직접 제작해 유통한다는 점에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와 비슷하다. 하지만 친구 관계를 맺고 함께 소통할 수 있어 SNS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로블록스가 지난해 청소년 이용자 3000명에게 설문할 결과 응답자의 62%가 로블록스의 주요 활동으로 ‘친구와의 대화’를 꼽을 정도다. 이들에게 로블록스는 단순한 게임 플랫폼을 넘어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기존 SNS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니다. 게임 내 메시지로 모든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이름과 이메일 주소 등 개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SNS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로블록스에서는 다양한 공연도 벌어진다.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 릴 나스 엑스는 지난해 11월 로블록스에서 콘서트를 열어 3300만명이 참여했다.
로블록스 앱 소개 화면.
◇ 가장 주목받는 ‘메타버스’ 사례, 수익성 확대는 숙제
로블록스는 게임과 SNS 기능을 넘어 가장 주목받는 메타버스(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3차원 세계) 사례로도 소개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말이다. 가상의 세계에 구축된 또 다른 현실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을 모으는 메타버스 사업이 관심을 받고 있다.
로블록스는 게임 내 아바타와 현실의 이용자가 적절히 조화되면서 메타버스 개념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게임 내에서 사용하는 가상화폐 ‘로벅스’를 개당 0.0035달러로 환전할 수 있어 현실과 가상세계를 충실하게 연결하고 있다.
정용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로블록스는 개발자 생태계, 현실 세계와 연동, 아바타 등 메타버스 구성 조건에 부합한 구성을 갖고 있다"며 "현실세계 화폐로 전환 가능한 로벅스도 메타버스 생태계 확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다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이용자의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인 만큼 수익성을 늘리는 데 한계가 따른다. 실제 로블록스는 설립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 손실은 2억6610만달러(약 3000억원)에 달한다.
로블록스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을 따내 아시아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인프라 등 투자가 늘어나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일 뿐, 언제든지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로블록스의 입장이다. 정 연구원은 "로블록스는 사용자와 개발자를 확보하는 측면에서 경쟁사 대비 우위에 있다"며 "광고, 마케팅, 이커머스가 접목되면 매출과 수익성은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