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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 錦北正脈 ]
* 위 치 : 경기도 안성시
* 산행일시 : 2022년 10월 09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 회차 : 금북정맥 07-02
* 산행코스 : 배티고개~서운산(인증)~엽돈재~부수문이 고개~위례산(인증)~우물목 고개~사리목고개~성거산~만일고개~유왕골고개~(접속)~각원사(약 22.4km/7시간 30분)
* 산행시간 : 08:34~14:27 (산행 05시간 52분/휴식시간:08분)
* 산행속도 : 4.37 km/h
* 산행거리 : 25.07km
* 날씨 : 비.
* 기온 : 14℃
* 약수터 정보 : -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산행 난이도 : 고도차: 보통 , 거리:상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 조망.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2m)에서 남하하여 충청남도 태안반도 안흥진(安興鎭)까지, 연장거리 295㎞에 이르는 산줄기로 한반도 13 정맥의 하나이다.
이 산줄기는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므로 금북정맥이라 한 것이다. 이 산줄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사면으로는 안성천·삽교천이 흐르고, 남쪽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오늘은 금북정맥 2번째 구간을 가는 코스이다.
일기가 계속 변하더니 전날까지만 해도 오후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는데.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별다른 경치도 없을 것 같고 비가 오면 풍경 사진도 담을 수 없어서 작은 디카를 가지고 왔더니
밝지 않고 어두워서 대체적으로 흔들린 사진이다.
배티고개에서 내렸더니 비가 와서 우의를 준비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배티고개 사진을 담지도 못했네요.
이것저것 준비를 하나 보니 제일 늦게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육산이고 오르막이 있는 곳은 몇 곳만 있고 평탄한 능선길이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평균속도 시간당 4km 이상의 속도로 산행이 되었다.
아무래도 비도 와서 어디 앉아서 쉬기도 어렵고 하여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해서 속도가 다들 빠르게 나온 듯하다.
배티고개
배티고개는 조선시대 반역의 뜻을 품은 신천영(申天永)의 무리와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의 의병이 싸운 고개인데, 신천영이 패하자 그 고개를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티]라 하였고, 음이 변하여 배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은 믿을 수 없고, 배나무와 관련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배티의 ‘배’를 이(梨)의 뜻으로 보고 한자화한 지명이 이티[梨티]이다.
전국적으로 배티 또는 배티가 전부 요소로 쓰인 지명이 더러 발견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배고개·뱃재와 함께 쓰인다. 따라서 배티나 배티고개는 ‘배나무가 있는 고개’로 풀이할 수 있다. 배티마을에 있는 배티고개도 마을 어귀에 돌배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배티나 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나 배티고개는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작은 활엽수 참나무 군락이 있는 곳이다.
구름도 많고 비도 내려서 길은 어두워서 사진이 잘 담기지 않았다.
셔터 속도가 느려서 많이 흔들렸다.
1시간이 되지 않아서 첫 번째 봉우리 서운산에 도착을 했다.
비가 오는데도 이렇게 몇몇 사람들은 앉아서 점심을 해결하는지 막걸리를 마시는지 군데군데 모여 있다.
저곳 위가 서운산 정상이다.
서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서쪽으로 조망되는 곳으로 안성시 서운면 쪽의 모습이다.
서운산 정상이다.
가까운 곳에 서운면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제법 많이 찾았다.
서운산(인증)
높이 : 548m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있는 서운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산이 높지 않아 가족동반 산행지로 적당하다. 4월초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 들어서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산 입구에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청룡사가 있다.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해서 산 이름을 서운산, 절 이름을 청룡사라 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청룡사 앞길을 따라 토굴암과 산성을 거쳐 정상에 오른다. 토성에서부터 정상 사이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있다.
능선이 부드러워 초행자도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청룡저수지, 청룡사, 토굴암, 좌성사, 서운산성, 마둔저수지, 석남사 등은 흥미로운 볼거리다.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의 경계에 선 서운산은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지녔으며 봄이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아름다운 산이다.
서운산에 위치한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고 한다. 서운산 동북쪽 기슭에는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창건한 석남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염거국사와 혜거국사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 갔다.
서운산에서 뻗은 서쪽 능선으로는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싼 서운산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성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홍계남과 이덕남이 안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군사요충지로 성 안에는 두 의병장의 대첩을 기념한 기념비와 석불이 있다.
다음은 엽돈재로 향한다.
서운산에서 엽돈재까지는 약 5.4km 정도 된다.
이곳이 엽돈재이며 배티고개에서 약 8km 정도 되며 2시간이 조금 못되었다.
비가 와서 사진도 많이 찍지도 못하고 흔들려서 그냥 흔들린 사진으로 산행기만 쓸 정도이다.
저기 이정표가 있는 곳 우측으로 바로 등산로가 있다.
저기 저곳에 약 5m 못 미쳐 우측으로 등산로가 있는데 저곳으로 가면 임도로 등산로를 잘 못 갈 수 있다.
이렇게 이정표가 있어서 길을 잘못 찾을 가능성이 많다.
부소산으로 가는 길은 이곳에서 임도가 아닌 뒤쪽 방향 5시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엽돈재
엽돈재의 유래는 옛날 산적들에게 삥을 뜯기고 통과하는 고개라는데서 유래함
충청북도 진천군의 배곡면 갈월리와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현재 3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안성에 사는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왜군과 접전하여 승전한 곳이다. '엽둔재' 인근에는 홍계남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협탄령(脇呑嶺)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 서쪽 협탄소(脇呑所)에 있으니, 직산현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서쪽 38리에 있다. 대문령에서 뻗어 와서, 한 줄기는 길상산(吉祥山)이 되고, 한 줄기는 보련산(寶蓮山)이 되었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지명과 함께 '직산계 청룡동 38리'라는 주기가 있다. '협탄(脇呑)'은 이곳에 '협탄원(脇呑院)'이라는 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여지도서』에 협탄원에 대해 "관아의 서쪽 24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만뢰지맥분기점이라 한다.
처음 들어보는 지맥이다.
부소산이다.
가다가 이곳으로 잠깐 들어와야 한다.
엽돈재에서 이곳까지는 약 165km 정도 된다.
부소산(扶蘇山, 459m)
부소산은 백제 온조가 최초로 도읍으로 세운 위례성이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있었다는 설(說)에 기반하 여, 위례성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부소산으로 불렀다는 설인데, 왜 위례성 동쪽에 있는 산이 부소산인지는?
또한 단군의 아들 부소의 이름을 붙혔다거나 부여족의 이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명쾌하게 왜 부소산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못한다. 암튼 앙증맞은 표지석이 산꾼을 맞이 해준다.
이곳은 부수문이고개라 한다.
길 터널 위로 금북정맥이 이어진다.
부수문이고개
부수문이고개로 가끔 표기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소문이고개가 맞는 듯 하다. 표지목이나 안내석은 없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부소치(扶蘇峙) 또는 부소령(扶蘇嶺)이라고도 적혀 있다고 하며,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부소산 아래 이곳에 성문을 세웠다고 하여 부소문이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군단(軍丹)이는 뭘까? 옛날 백제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을 군단이골이라고 한다.
능선길 바위에는 움푹파인 석정에 물이 고여있어, 산꾼들이 스틱으로 물속으로 넣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위례산이다.
이곳까지는 약 13.5km 정도 되고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 제법 비가 내린다.
안개가 끼기 시작하여 풍경도 잘 담을 수 없다.
위례산(인증) (慰禮山, 523m)
산 정상 부근에 위례성이 있어 위례산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며, 직산 위례성, 검은산, 신산(神山)
으로도 불린다 정상에 위례산 표지석이 위례산성 표지석 보다 작다.
우물목고개가 아닌가 한다.
별도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고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작게 우물목고개라 붙어 있다.
우물목고개
우물목고개 : 도촌에서 입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위에 우물이 있어 우물목고개 또는 정항령(井項嶺)이라고 했다고..
"고개 위에 우물이 있으므로 우물목고개 또는 정항령이라 하였다. 그 우물이 지금도 남아 있으나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을 서쪽 14리에 정항원(井項院)이 나오는데, 우물목고개 인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군사도로를 따라서 성거산 쪽으로 올라야 한다.
군사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성거산 쪽으로 성지가 있다.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유촌터라 한다.
19세기 초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신앙 활동을 했던 곳이라 한다.
이렇게 군사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군부대 쪽 옆으로 성거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사리목고개
사리목 고개 : 도촌에서 성거읍 천흥리로 넘어가는 고개 길의 모양이 꾸불꾸불 하여 새끼를 사리어 놓은 것 같이 생겼는데 속설에 사리목과 통한다하
여 흔행길은 일체 다니지 아니하며 대원군 섭정시 천주교인들 박해할적에 이곳에서 은신한 사람이 많으면 경상 전라도의 사람도 이곳에서 피난했고 교인들의 연락처로 이용됐으며 불란서 신부도 세명이나 있었다 한다.
수촌(秀村) : 뺄터. 납안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수려하고 빼어났다 고 하여 뺄터라고 했다 전한다.
도촌(道村) : 소학동(巢鶴洞)이라고도 하며 납안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사리목과 가깝고 옛날에는 상북에서 제일 큰 부락이었다고 한다. 대원군 섭정시 병인교란때 경상도 내포방면 천주교 교우들이 많이 살았고 불란서 페롱권신부, 리델이신부, 칼레강신부 등이 이근천에서 피신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천주교인 중 5인이 체포되어 공주 영문에서 사형되었다 한다. 사형자는 최베드루천여, 최라자로종여, 배문호, 고요셉, 체서방며느리로 목천군 북면 소학동에 살다가 본읍 포교에서 잡혀 공주로 옮겨 11월 8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납안이(納安) : 도촌 아래에 있는 마을로 위례성 전투에서 전사한 무덤이 수백기있는데 돌무더기로 되어 있다.
산신제 : 납안부락에서 10월 또는 정월에 택일하여 지내며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 지낼 사람을 선정하며 돼지머리 삼색실과등을 제물로 하고 각호의 소지를 올려 주며 밤 10시경 제를 올리고, 제를 지낸 음식은 나누어 먹는다.
선정된 제관들은 탈없이 지내야 하며 몸 가짐을 삼간다.
성거산이다.
아담한 정상석이다.
이곳에서 각원사까지는 약 2.7km 정도 남았다.
이곳까지 약 18km 정도 되고 4시간이 소요되었다.
성거산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이 만일 고개가 아닌가 한다.
응급구급약도 비치되어 있다.
만일고개 [ 晩日-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 중턱에 만일사(晩日寺)라는 절이 있어서 만일 고개라고 하고, 절을 매일절이라고도 하여 매일 고개라는 이름도 있다. 한자로 만일령(萬日嶺)이라고도 한다.
만일 고개의 해발 고도는 약 350m이며, 좌표는 북위 36도 50분, 동경 127도 12분이다. 성거산의 서쪽 능선에 접해 있으며, 만일 고개의 서쪽 능선에는 겉마 고개가 위치해 있다. 만일 고개 부근의 지질은 흑운모 편마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으로서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것이다.
성거산 등산로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의 동쪽 능선에는 성거산이 있다. 성거산의 북쪽 능선에는 사리목 고개와 우물목 고개가 있다. 고개의 남쪽에는 겉마 고개와 유왕골 고개가 있다. 고개의 북쪽 비탈 근처에 있는 만일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이정표에 작게 만일고개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가다가 각원사로 바로 하산을 하지 않고서 왕자봉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쉬지 않고 가다 보니 어느새 평속이 4.4km까지 나온다.
갈림길에서 왕자산 그리고 그 뒤쪽으로 벌명당산까지 왕복2km를 다녀왔다.
유왕골고개 [ 留王- ]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유량동과 목천읍 덕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이곳에 와서 농사를 장려했기 때문에 유왕골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고려 태조인 왕건이 태조봉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왕골이라고 부른다 설이 있다.
해발 고도는 약 345m이며, 좌표는 북위 36도 49분, 동경 127도 12분이다. 태조봉[422m]의 북쪽 능선을 따라서 약 1.4㎞ 전방에 위치하며, 고개의 북서쪽에는 성거산[573m]이 있다.
유왕골 고개 부근의 지질은 호상 흑운모 편마암으로서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것이다. 천안 지역에는 호상 흑운모 편마암이 널리 분포한다. 현미경 관찰에 의하면 석영, 흑운모, 사장석, 정장석 등이 주 구성 광물이며, 부성분 광물로는 석류석, 철광물 등이 보이고 약간의 규선석, 견운모, 녹염석, 저콘(Zircon), 녹니석도 보인다.
유왕골 고개의 서쪽 비탈에는 각원사와 성불사가 있으며, 북동쪽에는 유왕골이 있다. 유왕골 고개에서 태조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표지판도 없는 벌명당산 정상이다.
등산로로 해서 벌명당산으로 갔다가 뒤돌아가는 길에 이곳 왕자산으로 올랐다가 금북정맥 길로 향했다.
왕자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 이후로는 카메라가 젖어서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가끔 사진을 담을 때 손수건을 꺼내서 랜즈 물기를 닦았는데.
이제 손수건도 다 젖어서 담을 수 없었고.
금북정맥길에 정자 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우측으로 각원사로 해서 하산을 했다.
각원사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에 자리 잡은 남북통일 염원 사찰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유량천, 산방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 오르면 천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을 중심으로해서 군사양병을 했다는 설에 인연하여 '태조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각원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기위해 1977년 5월 9일 이 곳 태조산 중봉에 봉안하였다.
청동대불은 높이15M, 둘레30M, 귀길이175cm, 손톱길이 30cm, 무게 청동 60ton의 청동좌불은 태조산 주봉을 뒤로하여 서향을 바라보며 자비의 미소로 많은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좌불 좌측에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웅보전과 요사채를 비롯한 사찰건물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에 자리 잡은 남북통일 염원 사찰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유량천, 산방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 오르면 천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을 중심으로해서 군사양병을 했다는 설에 인연하여 '태조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각원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기위해 1977년 5월 9일 이 곳 태조산 중봉에 봉안하였다.
청동대불은 높이15M, 둘레30M, 귀길이175cm, 손톱길이 30cm, 무게 청동 60ton의 청동좌불은 태조산 주봉을 뒤로하여 서향을 바라보며 자비의 미소로 많은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좌불 좌측에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웅보전과 요사채를 비롯한 사찰건물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
국내 최대 좌불 남북통일기원청동대불
‘태조산각원사’는 절집의 규모도 크지만 국내최고 크기의 불상이 유명하다. 각원사는 몰라도 천안의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이라하면 알 정도다.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사찰을 세우려 한 것이 발원의 본뜻, 각원사의 이 불상을 직접 친견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좌대의 지름이 10m, 좌대와 불상 전체높이가 15m로 실제 불상 앞에 서면 불상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치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크기에 압도당하고 숭엄한 불상의 모습에서 절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GPS 트랙
산행했던 GPS 트랙
설명이 포함된 다른 사람의 GPS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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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맥 이제 시작인가요?
네..
백두대간은 짝수주로..
이렇게 금북정맥은 홀수주로 다니고 있습니다.
다 일요일에 있네요..!
딱히 볼 것 없지만 그래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는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