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시도 때도 없이 오락가락이다. 장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 불현 듯 함양 상림공원에 가고 싶다. 이맘 때면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꽃들과 보랏빛 버들마편초가 지천이리라.
상림공원이다. 비는 멎어 찌는 둣한 한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보랏빛을 찾아 공원을 헤맨다. 폭염에 온 몸이 땀에 젖는다. 버들마편초가 환상을 이루는 꽃밭으로 들어선다. 옛사랑이 그리워진다. 영롱한 보랏빛 꽃잎들이 모여 모여서 군락을 이룬다.
카메라 셧터를 연신 누른다. 햇살을 퍼붓던 태양이 구름에 가린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곧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질 듯 음산하다. 꽃밭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밖으로 나온다. 두두둑 두두둑 소나기가 퍼붓는다. 카메라를 허리춤에 끼고 쏜살같이 달린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비를 피할 정자가 있다. 그곳에는 이미 먼저 온 이방인들이 황급하게 뛰어드는 비에 젖은 한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이보리 얇은 원피스가 흠뻑 젖었다. 한 남자의 시선이 따갑다. 찰싹 달라붙은 옷 속으로 불룩 솟은 나의 가슴을 탐닉하고 있다. 섬뜩 놀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카메라 가방으로 중요 부위를 가리고 눈길 둘 곳을 찾는다. 이 놈의 비는 언제 그치려나.
여우비가 싫지 않은 젊은 시절이 있었다. 설악산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8월의 태양은 눈이 부시다 못해 시력을 잃을 정도로 강렬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근다. 이럴 때 비라도 한줄기 따라준다면 더위가 가실터인데 자연은 우리가 원하는데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발만 담그던 친구가 남방을 벗어던진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