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개인은 성화의 과정에서 영적으로 거룩한 전쟁을 합니다. 한편, 지상의 각 나라들 간에 현실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데요. 최후의 수단으로 불가피하게, 정의를 위하여 합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적의 침략에 맞서는 방어적 전쟁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개혁주의의 견해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정립한 것은 현세에서 '점진적 성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완전 성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초대교회 순교자가 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완전 성화'에 가까운 사고방식입니다. 예를 들어서요.
"마가복음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위와 같은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현실에서 실제로 ‘누구나’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보는 마인드가 완전성화와 같은 생각이고, 신비주의로 가게 됩니다.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오순절이나 신사도는 완전성화의 마인드와 연동합니다.
이 땅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전쟁도 발생합니다. 국토를 방위하고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전쟁을 막기 위하여 군인이 존재합니다. 이 군인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이 말하는 공직자(위정자)에 포함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에게 군복을 벗으라는 말씀을 안 하셨고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에게 군복을 벗으라고 안 했습니다. 군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신 건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장에서 백부장의 믿음을 기특하게 여기셨고,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백부장)의 믿음을 보았을 뿐, 그들이 직업 군인으로 사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23장(국가 공직자) 2항을 알면 개혁주의 성도가 되고, 이를 모르거나 부정하거나 반대하면 무정부 상태와 비현실적인 절대 평화만을 부르짖는 재세례파 또는 그와 비슷한 부류가 될 수 있습니다. 지상의 나라에 군대가 필요하고 불가피하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요.
전쟁에는, 합법적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정당한 전쟁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세력과 개혁주의자들, 특히 청교도 개혁주의는 정당한 전쟁의 개념을 인정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정의의 전쟁을 수행한 대표적 사례는 청교도 혁명과 그 기간 중의 영국 내전입니다. 토머스 굿윈, 존 번연, 존 오웬 등이 참전하고 영국을 개혁하고 종교개혁 이후의 종교개혁을 한 사례로서 일반 역사책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상에서 장코뱅의 생각은 마치고요, 정당하고 합법적인 전쟁에 대한 교리적•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 2항
기독교인들이 공직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직임을 받아들여 수행하는 것은 합법적인일이다(잠8:15-16, 롬 13:1-2, 4).
그들은 그 직임을 수행할 때 각 나라의 건전한 법에 따라 특별히 경건과 정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시 2:10-12, 딤전 2:2, 시 82:3-4, 삼하23:3, 벧전 2:13) 신약 시대인 지금, 정당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 목적을 위해 전쟁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눅 3:14, 롬 13:4, 마 8:9-10, 행 10:1-2, 계 17:14, 16). |
눅3: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롬13: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마8:8-10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행10:1-2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첫댓글 "계17:14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싸우고 승리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된 자들입니다.
@천이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종교개혁자들과 재세례파가 대립한 쟁점 중 하나가 신자의 공직자 취임, 전쟁 수행 문제라고 들었습니다.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하시고 신조와 성구를 올려 주시니 이해하기에 편합니다.
계시록17:14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서 댓글로 빼서 간략히 토를 달았습니다.
공직자 취임과 절대적 평화주의를 주장하던 분파 중에 퀘잍커가 있습니다. 이들에 반박하는 내용은 아래에 별도의 댓글로 씁니다.
@장코뱅 네, 잘 읽고 이해했습니다^^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중 23장 2항에 대한 설명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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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모습을 드러냈던 유해한 오류들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이 국가 공직자가 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국가 공직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즉시 관리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기독교인이 법과 시민적 자유를 위해 무장하고 싸우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도 퀘이커교도(프렌드 파)는 전쟁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23장 1, 2항)은 그런 견해에 반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 공직 제도와 시민 정부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다.
• 국가 공직자는 공공의 선을 증진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임명되었다.
• 기독교인이 공직자의 직임을 수행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 국가 공직자는 정의와 평화는 물론 경건을 유지해야 한다.
• 그들은 신약 시대인 지금, 정당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쟁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명쾌한 인용과 설명 감사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이 땅에서 완전성화를 추구하는 것이 극단적 신비주의로 치우치게 하는 요인 중 하나구나 싶어 더욱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하고, 라벤더님 말씀이 옳습니다. 현재 한국은 한파로 조금 긴장하고 추워하는 것 같습니다.
지상의 현세에서 완전 성화는 불가하고 점진적 성화의 끝에 가서 영화(glorification)에 이른다는 구원의 서정이 현실적이고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현실에서 일이 안 풀리고 막히니까 뭔가에 도취되어 돌파구로 찾는 것이 신사도 등의 신비주의 분파인 것 같습니다. 이 분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측은하고 안스러운 것은... 신비주의로 가면 신앙적으로 큰 혼란이 오고 현실의 문제는 더 꼬이고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이나 겨울은 추울텐데요. 항상 따뜻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라벤더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신비주의로 기울어질 수록 삶은 더 곤핍해지고 믿음의 담대함도 없어지고 자꾸만 위축되는 것을 교인들을 통해서나 사회 문제들을 통해서 봐오고 있습니다.
정의의 전쟁 개념에 공감합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안녕을 위협하고 무력으로 점령하려 든다면 나와 국가를 지키 위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서 맞서 싸우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고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세례파는 기독교인이라면 끝없는 용서와 사랑으로 피를 흘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검을 들어서는 안 된다로 평화주의를 강조하면서 군인 등 공직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면서 현실도피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왕국에서의 삶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서인데 완전한 것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이루지도 못하고 삶이 미궁으로 빠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완전하게 순종한다고 하지만 제3자가 볼 때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는 명령에 얼마나 순종하느냐는 의문입니다.
교회사의 교양을 담은 좋은 댓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람데오님의 좋은 의견과 댓글을 경청하고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격려와 공감에 감사합니다.
성경과 교리와 현실을 충족하는 좋은 글을 읽고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다행입니다. 공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