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로마여...로마여....!!!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 오려고 머나먼 길을 돌아서 온 것이다. 한국에서 파리, 베른, 융프라우,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를
거쳐서 이제 로마에 온 것이다. 아시다 싶이 로마는 이태리 반도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이태리의 국토 모형이 마치 장화와 같고, 앞에 놓여있는 축구공을 걷어차기 직전의 자세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한다. 그 말을 듣고 이태리 지도를 보니 그럴듯한 예기로 들린다.
로마는 서기전 700여년전에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도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변 일곱개의
구릉(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가 전성기에는 그 세력권이 유럽 일대와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지방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룩하였다고 한다.
고대로마는 공화정과 황제통치를 되풀이 하였고, 콘스탄티누스시대에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기독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서기 475년에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하였으나, 종교로서의 로마 캐톨릭의
위세는 중세시대를 일관하면서 그 위력을 떨치게 된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우리 일행은 우리나라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였다. 우리가 들려 본 장소가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되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한국분들을 만나,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중국과 일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듯이, 그만큼 동북아권에서 이곳으로 관광오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 바울 성당을 지나며
숙소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콜택시를 타고 시내구경에 나섰다.
광장이 발달하고, 이 광장을 중심으로 대화와 친교문화가 형성된 유럽의 도시들이라서, 우리는 그 광장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에 영어와 잘 모르는 이태리말을 섞어서 바울 사도
기념교회 이야기를 비쳤드니, 택시기사 양반이 그곳을 경유하여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하였다.
저것이 바울성당이라고 하는 말을 눈치로 알아듣고, 차창 너머로 다가오는 건물을 바라보면서, 가슴 뭉클
하는 감회에 젖어 보았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 지 모르지만 그리스도 이래로 기독교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
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지중해권으로 확산시키는데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바로 사도 바울이라고 확신
한다.
물론 신령한 하늘의 세계에서야 일등, 이등에 연연할까만은 그저 속된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써 그렇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바울사도의 위대성은 복음전도의 신기원을 이룬 공도 크지만,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바로 이분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도 대단히 위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에 의해 쓰여져서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 빌립보, 갈라디아 등지의 신생교회들에 보내진 서신은 정말
인류사에 불후의 명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는 성서, 그 중에서
신약성서의 상당부분을 기록한 그 공(功)은 아마도 인류가 이땅에 존재하는 한 계속되겠지요.
어찌 동서고금의 천하의 영웅호걸이나 절세미인들의 거품 인생과 비교하겠는가...??
광장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구경거리들을 감상하였다. 악기연주, 묘기부리기, 비누방울 놀이, 분수대 주변,
인형극 한마당 등을 살펴보고, 일행들과 음료수를 나누며 쉬다가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게 되었다.
바울성당에서
오는 길에 다시 바울성당을 지나려 하기에 기사에게 차를 잠간 세우게 하고, 서울에서 부터 동행한 가이드
와 함께 바울교회로 다가 갔다. 문앞에 이르니 문은 잠겨서 들어가지 못하고, 출입문 너머로 희미하게 서
있는 큰 동상이 하나 보였다. 입에 침을 삼키며 주시해 보니, 바울 사도께서 품에 큰 장검을 안고 서 계신
형상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사진도 좀 찍고 그 모습을 뇌리에 담아두려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아...이어른께서 바로 이자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신 곳이로구나 하는 감회가, 내 몸에 하나의 전율을
안겨 주었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서 나를 기다리는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숙소에 돌아 와 로마
에서의 첫 밤을 보내었다.
8. 성 베드로 대성당
날이 밝자 우리는 서둘러 베드로 대성당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늘어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바쁘게 움직였다.
9시에 문을 여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상당수의 인파가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여 줄을 서고 10분도 채 안되어서 입장을 기다리는 행렬이 우리 뒤로 길게 줄을 이었다.
대단한 인파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라서 마치 인종 전시장 같다. 무료하게 입장을 기다리다 한시간이 좀 지나
서 입장할 수 있었다. 이 베드로 대성당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베드로(피터 : Peter)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라 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가까이서 모시든 제자이고, 가장 고임
을 받든 제자중의 한분이 바로 이분이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때로는 과격하면서도 단순한 분으로, 종종 실수도 잘 하지만 열두제자중에서 수제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심이 투철한 분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늘 이분이 자리잡고 계셨다.
성 베드로 대성당
드디어 입장하니 내부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각종 미술품과 조각물은 물론이고, 건물의 규모가 여타 성당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 건축물이었다.
아무나 성경을 읽고 해석하지 못하든 시대에 그림으로 성경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곳곳에 성서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그림들이 천정과 벽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불세출의 예술가들인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들을 먼발치에서 나마 감상
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자세한 내력을 가이드를 통해서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한군데라도 더 보려면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결국 여행을 하려면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박물관과 신시니티 성당을 더 둘러 보고, 우리는 고대 로마시대의 유명한 공공경기장인 콜로세움으로 향하였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보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경기장을 살펴보고 돌아섰다.
로마시 외곽에 있다는 초대교회, 로마의 크리스챤들이 핍박과 박해를 피해서 은거하며 신앙생활을 한 유적지인
카타콤을 찾아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성 바울 성당을 스치듯 둘러보고
스페인 광장에서 일행들이 쇼핑하는 동안 나는 100여년이 넘었다는 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테네로 출발해야 했다. 이 로마에 와서 바울사도의 발자취와 카타콤 지하묘지를 보지 못
하고 간다는 사실에 적잖이 서운하였다.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느 것 하나 소중
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 나로서는 다른 것은 못보더라도 꼭 보고 싶은 것이 베드로 대성당과 바울 기념성당,
그리고 카타곰이었다. 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공항을 향한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막 바울성당 옆길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부랴부랴 일행들에게 5분만 좀
기다려 달라고 하고서는 뛰어서 성당으로 갔다. 어제 밤에는 문이 닫혀 있었으나 오늘은 낮시간이라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성당입구의 바울입상(立像)을 잠간 둘러보고 곧장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베드로 대성당과는 대조적으로 내부가 간결하고 소박하였다. 바울의 묘가 있다는 내실 앞으로 나아갔다.
바울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이름을 사울(큰 자)에서 바울 (작은 자)로 바꾸었지만, 내 보기에는 바울선생은
대 사도(大使徒)요, 사도 중의 사도라고 생각한다.
이 위대한 영혼의 발자취를 이곳에서 만난다니 정말 뜨거운 감회를 다 표현할 수 없다. 그것도 이분이 최후를
맞이한 순교의 현장에 세워 진 기념성당이라니 더더욱 그렇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자꾸 뒤를 돌아다 보면서 밖으로 나왔다. 다시 한번 기념성당 전체를 바라보
면서 일행들과 합류하였다.
짧은 시간에 그래서 더욱 아쉬운 로마체류였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로마를 떠나야 한다. 다시 한번 기회를 만들어
이 로마를 찾기로 하고 아테네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