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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 이지끼을 님에게: 성경은 ‘세례 중생론’을 지지하는가?
四季 朴埰同 추천 0 조회 122 26.03.14 18:15 댓글 3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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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3.14 21:44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신학 독서를 많이 하고 고민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공감이 많이 됩니다.

  • 26.03.15 16:54

    공감합니다!

  • 26.03.15 13:07

    수고하셨습니다. 하나씩 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제별로 묶어 놓겠습니다)

    제가 저의 글로 칼빈은 세례에 대해 두 가지 이해를 했다고 했습니다.
    다음 글은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A)에 속하는 글입니다.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ingrafts us into the fellowship of his Church,
    and makes us his by adoption,
    so we have said that he performs the office of a provident parent, in continually supplying
    the food by which he may sustain and preserve us in the life to which he has begotten us
    by his word.​

  • 26.03.15 10:49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그의 교회의 교제 안으로 접붙이시고
    양자삼아 주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을 지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섭리적인 부모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기독교강요 4. 17. 1)

    칼빈(A)은 (기독교강요 4. 17. 1)에서 세례로 중생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칼빈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 이것을 보여 드렸더니 사계님은, 칼빈은 넓은 의미의 중생을 말했다고 하셨는데

    칼빈의 말을 잘 보시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

  • 26.03.15 10:26

    @이지끼을
    칼빈은 또한 우리가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고 말하였습니다

    So then we must ever come to this point, that the sacraments are effectual and that they be no trifling signs which vanish away in the air, but that the truth is always matched with them, because that God who is faithful, showed that he had no ordained anything in vain.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즉, 성례는 실로 효력이 있는 것이며, 허공 속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하찮은 표적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성례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진실한 실체가 동반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정하신 그 어떤 것도 결코 헛되이 두지 않으셨음을 친히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 26.03.15 10:19

    @이지끼을
    And by is the cause why in baptism we receive truly the forgiveness of our sins, we be washed and cleansed with the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we be renewed by operation of his holy spirit. And how so? Had a little water such power when it is cast upon head of a child?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 사함을 진정으로 받게 되는 이유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고 정결하게 되는 이유이자,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아이의 머리에 뿌려지는 그 적은 양의 물에 과연 그토록 놀라운 능력이 깃들어 있단 말입니까?

  • 26.03.15 10:26

    @이지끼을
    No, but because it is the will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water should be a visible sign of his blood and of the holy Ghost, therefore baptism had by virtue and whatsoever is there set forth to the eye, is forth with accomplished in every deed.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물을 자신의 보혈과 성령을 상징하는 ‘보이는 표적’으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정하셨기 때문에, 세례는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눈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표적의 내용은, 곧바로 실질적인 현실로서 온전히 성취되는 것입니다.

  • 26.03.15 13:22

    @이지끼을
    위 글의 출처입니다.
    Sermons on Deuteronomy by Calvin [3826 page]​

    https://www.monergism.com/thethreshold/sdg/calvin/Sermons%20on%20Deuteronomy%20-%20John%20Calvin.pdf

    그러므로 칼빈(A)은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죄사함과 중생을 얻는다) 고 말씀한 것입니다.

  • 26.03.15 13:32

    그리고
    "이지끼을 님 짧은 신학과 독해력으로 개혁 신학을 “well designed scam(잘 설계된 사기)”로 단정하신 그 자체가
    이지끼을 님 아주 큰 교만을 드러냅니다" 라고 하셨는데

    제글을 바로 이해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중세 카톨릭 신학이 성경에서 벗어 났으니
    종교개혁때는 성경으로 다시 돌아 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또 다른 길로 간 것이다 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카톨릭은 [믿음]을 제외하여,
    . . . . . . . . . . . .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고 바꾼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개혁때 [믿음]을 회복시켜야 했는데

    종교개혁의 결과를 보면,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에서 [세례]를 빼서
    믿음으로 . . . . . . 구원을 얻는다고 바꾼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정당화 하려고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카톨릭에서 바꾼 것을 또 다른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세 카툴릭 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26.03.15 11:15

    막 16:16절 말씀(1)이 카톨릭에서는 (2)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1)로 돌아 가야 하는데
    종교개혁의 결과로 (3)이 된 것입니다.

    (1) 에서 (3)으로 바로 바뀌면 금방 탄로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1) 에서 (2) 로 갔다가 (2)와 다른 (3)이 된 것입니다.

    (3)은 분명히 (2), 곧 중세 카톨릭의 신학과 다릅니다.

    그래서 (3)이 옳은 신학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3)은 분명히 (1)과 다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well designed scam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 26.03.15 13:08



    고전 1:30절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사계님께서

    [[ 핵심 구문: ἐξ αὐτοῦ (Ex autou) 분석

    ∎ ἐκ (Ex/Ek): ‘…으로부터(out of)’, ‘…으로부터 기원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입니다.
    ∎ αὐτοῦ (autou: 바로 앞 절 “하나님(θεοῦ)”를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입니다.

    분석

    헬라어에서 전치사 ἐκ가 사람 존재와 관련해 사용될 때는 단순한 원인을 넘어 ‘출생’이나 ‘생명의 기원’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13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에서도 동일하게 “ἐκ θεοῦ(엑 테오)”가 쓰였습니다.

  • 26.03.15 13:09


    결론

    고린도전서 1장 10절~17절을 곧바로 이어서 보면, 바울 사도께서는 29절에서 구원에서 ‘세례를 주는 자나 세례를 받는 자나 인간 그 어떤 행위’도 자랑할 수 없음을 말씀하시며 그 까닭으로 30절을 말씀하셨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연합은 신자의 어떠함이나 신자 믿음의 행위인 외적 의식(세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신(ἐκ) 절대 대권 사역에 따른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 “하나님으로부터 나서”는 이 ἐκ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풀어낸 훌륭한 번역입니다. 그런데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NIV “because of him”은 그 의미 중 ‘원인’만을 취한 의역일 뿐이며, 원어 성경이 명시한 ‘생명의 기원’을 다 담아내지는 못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 26.03.15 13:49

    "분석"을 다시 보면,
    [ 헬라어에서 전치사 ἐκ가 사람 존재와 관련해 사용될 때는 단순한 원인을 넘어 ‘출생’이나 ‘생명의 기원’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13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에서도 동일하게 “ἐκ θεοῦ(엑 테오)”가 쓰였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마치 ἐκ Θεοῦ 라는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의미하는 것 처럼 쓰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ἀλλ’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알 엑 떼우 에게네떼산) 입니다.
    but . of God . was born

    ἐκ Θεοῦ 만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고전 1:30절에 ἐκ Θεοῦ 가 아니라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이라고 쓰여 있다면
    사계님의 말씀대로 "생명의 기원"을 담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ἐγεννήθησαν 이 없어요

    그러므로 NIV번역인 "하나님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라고 만 이해해야 합니다.

  • 26.03.15 14:33

    그리고 사계님께서
    "이같이 성경은 결코 ‘세례를 받아야 upon으로 임하신 성령의 임재가 in으로 바뀐다는 세례 중생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런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구약이나 신약에서 성령의 임재라는 말을, 능력을 주시는 것으로,
    특히 신약에서는 성령세례의 의미로 이해합니다 (The Holy Spirit comes upon people)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은 The Holy Spirit dwells in people 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의 임재가 성령의 내주와 별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제가 사계님의 다른 글에서 성령님에 관하여 두 가지로 말씀드렸던 것은
    사계님께서 임재를 내주하심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에스겔서의 예언(에스겔 36:25-27절)과
    신약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요엘서의 예언(요엘 2:28-30)은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2장, 오순절에 12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이를 베드로는 요엘서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합니다. (행2:16-21절)
    그러므로 12사도들은 능력을 받은 것이지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 26.03.17 10:37


    (1)
    마음의 할례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번호를 붙여 말씀드립니다.

    사계님께서
    [[ 11절에서 말하는 ‘육의 몸을 벗어 죽는 영적 할례’가
    12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세례’로 치환됩니다. ]] 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불어 "할례와 세례가 기능적으로 같다"는 쯔빙글리의 주장도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계님께서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너희 목을 곧게 하지 마라.(신 10: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신 30:6) ]]
    라고
    '마음의 할례'에 대한 신명기 말씀을 제시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의 할례에 대하여 말할 때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 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의 할례'를 주셨는지 간과하는 것입니다.

    사계님은
    하나님께서 언제부터 마음의 할례를 주셨는지 아십니까?

    저는 구약의 사람들(남자들)은 육신의 할례를 받았을 뿐이고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 26.03.17 10:37


    (2)
    언제 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의 할례를 주셨는지 알 수 있는 말씀은 제시하신 신 30:6절 앞인
    신 30: 1- 5절에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으니 본문과 저의 설명은 생략하고 답만 말씀드립니다.

    포로 시대 이후입니다.
    곧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입니다 (3절, 5절)

    그러면 정확하게 언제 부터 일까요?

    답은 말씀하신 골 2:11-12절에 있습니다.

  • 26.03.17 10:38


    (3)
    골 2:11-12절 (개역개정)
    11. .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a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12 b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 . .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1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 곧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따라 개역개정 골 2:11-12절을 요약하면
    11 . .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12 a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묻혔다)
    12 b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묻혔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이와 같이 11절에서 12절로 이어서 이해하는 것이 사계님의 이해입니다

  • 26.03.17 10:49


    (4)
    하지만 개역개정의 위와 같은 번역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다음은 헬라어 성경 골 2:11-12절과 NIV 골 2:11-12절 입니다.

    11 ἐν ᾧ καὶ περιετμήθητε περιτομῇ ἀχειροποιήτῳ
    . . .ἐν τῇ ἀπεκδύσει τοῦ σώματος τῆς σαρκός, ἐν τῇ περιτομῇ τοῦ Χριστοῦ
    12 a. συνταφέντες αὐτῷ ἐν τῷ βαπτισμῷ,
    12 b. ἐν ᾧ καὶ συνηγέρθητε
    . . .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τῆς ἐνεργεία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ἐγείραντος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 26.03.17 10:50


    (5)

    11 In him you were also circumcised, in the putting off of the sinful nature,
    . . . not with a circumcision done by the hands of men but with the circumcision done by Christ,
    12 a.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12 b. and raised with him through your faith in the power of God, who raised him from the dead.

  • 26.03.17 10:50


    (6)
    제가 보기에 골 2:11-12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12 a. συνταφέντες αὐτῷ ἐν τῷ βαπτισμῷ, (신타펜테스 아우토 엔 토 밥티스모) 입니다.

    12절의 첫번째 단어인 συνταφέντες (신타펜테스, having been buried with) 는
    Aorist Participle Passive(아오리스트 분사 수동태)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NIV는 12 a 를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부사절이고
    "세례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묻혔을 때) "라는 의미입니다.

    부사절은 조건, 시간, 원인, 결과 등을 나타내는데,
    독립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앞이나 뒤의 문장을 수식하는데 쓰입니다.

    그런데 부사절인 12절 a 는 뒤에 있는 문장인 12절 b 를 수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2절 b는 NIV의 경우, and (그리고)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성경은 12b 가 ἐν ᾧ καὶ 라고 시작하는데 καὶ (카이)가 "그리고" 의 의미를 갖습니다.)

  • 26.03.17 10:50


    (7)
    NIV 12절 a 와 b,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and" raised with him through . . . 라는 말씀만을 보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을 때 "그리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말입니다.

    만약에, 12절 b에 and (그리고)가 없으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을 때 (. .)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말이 되어, 문법적으로 옳은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12절b 에 and (그리고)가 없으면, 부사절인 12절a 는 12절b를 수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절b가 and (그리고)로 시작하기 때문에, 부사절인 12절a 가 12절b 를 수식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절a 는 12절b 가 아니라 그 앞절인 골 2:11절을 수식하는 부사절입니다.

  • 26.03.17 10:50


    (8)
    그러므로, 이에 따라 골 2:11-12절을
    11 . .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12 a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묻혔을 때)
    12 b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다음의 예와 같은 경우입니다.
    11. . 저는 K 와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12 a 제가 K 의 집에 갔을 때, (부사절)
    12 b 그리고 저는 저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 말은 K 와 함께 식사를 한 후에, K 의 집에 갔고 그리고 저의 집으로 갔다는 말이 아니라

    12a. K 의 집에 갔을 때, (부사절)
    11. . K 와 함께 식사를 하였고
    12b. 그리고 저는 저의 집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 26.03.17 10:51

    (9)
    그러므로 골 2:11-12절은
    12 a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묻혔을 때)
    11 . .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12 b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이
    (먼저) 마음의 할례를 받고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세례로(세례를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골 2:11-12절은 12a, 11, 12b 의 순서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바울이 11, 12a, 12b의 순서로 말씀하였는데
    왜냐하면, 골 2장에서 바울이 강조하신 것이 " in Christ "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a, 11, 12b 의 순서가 아니라, 도치시켜서, in Christ 라는 말이 들어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라는 11절 말씀을 먼저 하고
    12a, 12b 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26.03.17 10:51

    (10)
    그러므로 골 2:11-12절을 통해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이,

    개역개정과 그외 한글 성경들의 번역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세례로(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묻혔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12a 세례로(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묻혔을 때)
    11 . .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고,
    12b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곧 새 생명을 받았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 26.03.17 10:51

    (11)
    그러므로
    모세가 예언했던 '포로시기 이후'는
    곧 모세가 예언했던, 하나님께서 마음의 할례를 주시는 시기는, 세례가 시행되는 신약시대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에 받는, 마음의 할례는 모세가 말한 예언(신 30:6절)의 성취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근거로, 세례를 통해 받는 것입니다.

  • 26.03.17 10:51

    (12)
    한편, 제가 위에서 요약한 골 2:11-12절 말씀,

    12a 세례로(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묻혔을 때)
    11 . .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고,
    12b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곧 새 생명을 받았다는 말씀은

    제가 요약한 롬 6:3-7절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롬 6:3-7절을 간단히 요약하면
    세례(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였고(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죽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였다 (새 생명을 받았다) 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롬 6:3-7절을 요약했는지는 저의 글 "마음의 할례"를 보시면 됩니다.)
    https://cafe.daum.net/1107/Y4PX/1415

  • 26.03.17 10:52

    (13)
    두 말씀을 비교하면 골 2:11절, "마음의 할례" 를 받는것이
    롬 6:6절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죽음"과 같은데.

    골 2:11절에 있는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라는 말씀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1)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마음의 할례를 받으므로(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죽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2)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새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곧 중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과 중생을 얻는 것입니다.
    곧 (복음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막 16:16절)

  • 26.03.17 10:52

    (14)
    정리하면
    구약, 곧 옛언약의 표(sign)는 육신의 할례이었고
    신약, 곧 새언약의 표(sign)는 세례를 통해 받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옛언약의 표인 육신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바라고 기다리게 하는 역활을 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새언약의 표인 마음의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근거로 세례를 통해 받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새언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 26.03.17 10:52

    (15)
    이와 같이 살펴 본 것 처럼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쯔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재세례파의 신학에 대항해서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개발하여 유아세례를 옹호하며
    막 16:16절을 다르게 바꿨습니다.

    쯔빙글리는 두 언약, 곧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각각 시작된 두 언약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단 하나의 은혜언약만이 있다고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하나의 언약이므로 "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가 기능적으로 같다" 고 주장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었던 것처럼
    신약에서 믿는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정당화 한 것입니다.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을 바꾸면서..


    그런데 위와 같이 신 30:1-6절과 골 2:11-12절을 살펴 보면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기능적으로 같지 않습니다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세례는 할례가 가리켰던 '마음의 할례'를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가 기능적으로 같다는 "오해"로 세워진 신학인 것입니다.

  • 26.03.17 10:52

    (16)
    사계님은 같은 오해를 따르므로, 할례와 세례가 "등치"라고 하셨습니다.

    사계님의 주장은
    육신의 할례로 영적할례(마음의 할례)를 받았다
    그러므로
    육신의 세례로 영적세례(마음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근거로
    [[ 성경이 말하는 단일 언약 신학’, ‘할례와 세례를 하나로 묶어 언약의 통일성을 선포하신 바울 사도,
    즉 바울 신학’을 사기 신학으로 조롱했습니다]]. 라고 저를 비난했습니다

    바울이 할례와 세례를 하나로 묶었다고요?


    그리고
    계속 저보고 교만하다 하시고 사과를 하라고 하시는데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로 세워진 것이다 라고 지적하는 것이 교만한 일입니까?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유아세례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약속인 막 16:16절을 바꿨다고 지적하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바꾼 것이, 구원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교만한 일이고 사과할 일입니까?

  • 26.03.17 10:53

    (17)
    님은 제게 마음의 할례에 관한 신명기 말씀들을 제시했습니다.

    신 10:16절,
    . .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너희 목을 곧게 하지 마라
    신 30:6절
    .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 .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사계님은 자신이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계님은 자신이 "마음의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위의 말씀들을 제시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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