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벼락이 내려치는 음산한 밤. 한 무리의 수녀들을 태운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자동차 라디오에선 연쇄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에젝스가 이날 자정 사형될 것이라는 뉴스가 들려온다. 화면은 교도소. 에젝스가 감방에서 나와 전기의자로 향하고 있다. 결백을 주장하는 에젝스. 그의 몸부림과 함께 화면은 플래시 백하면서 사건 당일 밤으로 돌아간다.
영화 <크라임 웨이브>는 저예산 공포영화인 데뷔작 '이블 데드'(1982)로 명성을 높인 샘 레이미의 두 번째 영화다. 시나리오는 '애리조나 유괴사건'(1987) 등을 감독한 코헨 영제. 컬트영화의 적자들끼리 협력한 결과물인 만큼 영화의 성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살인죄를 뒤집어쓴 주인공이 누명을 벗는다는 게 줄거리. 단순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이지만 감독은 주류 영화의 감성에서 저만치 떨어진 채 자기식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주인공, '모든 사이즈를 죽인다(We'll kill all size)'는 광고를 전화번호부에 싣는 살인청부업자들. 이들은 실수로 고용자를 죽인 뒤 "같은 가격으로 두 명이나 해치웠다"며 웃는 괴짜들이다. 이처럼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극단적이고 과장돼 있다.
전편을 수놓는 감독의 개그 감각도 신선하다. 살해 위험을 벗어난 여자 주인공이 갈 곳을 잃은 뒤 수녀원으로 피신해 수녀가 된다는 엉뚱한 상황 설정에서는 실소가 터진다. 전기충격기로 사람을 죽일 때 스위치를 '쥐(rats)'에서 '사람(man)'으로 돌리는 청부업자들. 이들이 주인공을 죽이려 할 때 '영웅(hero)'으로 스위치를 바꾸는 장면에서 유머는 절정에 달한다.
'왜'라는 물음을 접고 감각적인 영상과 유머에 눈과 귀를 맡기는 것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정교한 이야기 구조와 주제의식을 기대한다면 틀림없이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는 등장 인물, 빠른 카메라 워크,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내러티브를 가진 '별난' 영화를 원한다면... '컬트'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