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파른 계단이 있다 계단이 보인다는 것은 비탈이 있다는 말이다 한눈을 팔다 추락하기 십상이다 내가 나에게 받침대가 되어주는 얼개의 층층다리 비탈을 오르다 골골골 폐수가 되어 빠져나가는 불같은 마음의 수채통 휴지처럼 술술 풀리는 삶은 치욕임을 흐르는 물에게 말한다
누군가 그곳으로 오르락내리락 한다 철이 들었다는 말이다 거친 숨소리는 빛 좋은 음악이 된다 색소폰처럼 살짝 휘어진 계단은 파란만장한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뒤통수쯤에 감추고 있던 청춘의 사마귀 C3 층계가 수상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마음은 아픈 계단을 타고 수없이 오르내렸다 눈으로 확인한 걸 손으로 다시 확인하며 돌아서야만 했다 버려진 노래는 속이 꽉 찬 바람이 되어 허공에 떨어졌다 허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갖게 되었지만 버려진 나는 혼자 꽃 피우고 열매 맺고 혼자서 이중창을 불러 젖혔다 혼자 부르는 노래는 악보도 없이 뻣뻣했다
누군가 피 흘리는 벽에 기대어 운다 추억은 맹종죽처럼 자라고 백년에 한 번 핀다는 그 꽃을 피우느라 빈 등은 뜨겁다